1. 개요
중국의 작위 요구자를 다루는 문서.2. 등재 기준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작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중국의 현재 작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 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3.1. 촉한 황제
관련 칭호 | 한나라[1] 황제 |
작위 요구자 | 류창(유강) |
계승 실패 원인 | 263년 제국 멸망 |
3.2. 조위 황제
관련 칭호 | 위나라[2] 황제 |
작위 요구자 | 차오쭈이(조구의) |
계승 실패 원인 | 265년 제국 멸망 |
3.3. 마카오 영주
관련 칭호 |
포르투갈 국왕 알가르브 국왕 브라간사 공작 마카오 영주 |
작위 요구자 | 두아르트 피우 |
전임자 | 두아르트 누누 |
후임자 | 아폰수 |
계승 실패 원인 |
1834년 폐위 1910년 왕정 폐지 1999년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영유권 반환 |
3.4. 홍콩 영주
관련 칭호 |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홍콩 영주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
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3] |
계승 실패 원인 |
1901년 왕조 단절 및 교체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영유권 반환 |
3.5. 연성공
관련 칭호 |
연성공 대성지성선사봉사관 |
작위 요구자 | 쿵추이창(공수장) |
전임자 | 쿵더청(공덕성) |
후임자 | 쿵유런(공우인) |
계승 실패 원인 | 1935년 연성공에서 대성지성선사봉사관으로 칭호 개편 |
3.6. 오주 황제
관련 칭호 | 주나라[5] 황제 |
작위 요구자 | 우위룽(오우로) |
계승 실패 원인 | 1681년 제국 멸망 |
오삼계 문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오삼계가 한족과 만주족 양쪽에게 모두 배신자이자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오주의 역대 황제위 요구자들은 진지하게 오주의 재건을 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만약 오삼계의 후손들 중 누군가가 진지하게 오주의 재건을 원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서로 앙숙인 한족 민족주의자들과 만주족들이 합심하여 그 사람을 욕할 것이다.
본 문단에 나와 있는 국새는 오주 국새가 아니라 명나라 국새인데, 오주의 국새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며 오주 자체가 명목상 명나라의 후신을 표방한 국가라서 편의상 명나라 국새의 이미지를 첨부한다.
3.7. 원나라 황제
관련 칭호 |
대칸 천자 원나라 황제 |
작위 요구자 | 스티브 조르첸 해럴드 보르지긴 |
후임자 | 단젠 보르지긴 |
계승 실패 원인 |
1368년 원나라 멸망 1388년 북원 멸망 1635년 대칸국 멸망 |
3.8. 쿠처 회부친왕
관련 칭호 | 쿠처 회부친왕 |
작위 요구자 | 다우티 |
계승 실패 원인 | 중국의 공산화에 따른 쿠처 회부친왕 작위 부정 |
[1]
촉한이라는 명칭 자체는 후대인들이 붙인 것이며, 촉한의 실제 명칭은 그냥 한(漢)이었다.
[2]
조위라는 명칭 자체는 후대인들이 붙인 것이며, 조위의 실제 명칭은 그냥 위(魏)였다.
[3]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
[4]
홍콩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홍콩 독립운동이나
영국으로의 재귀속을 희망하는 여론이 늘면서, 현재의
영국 국왕인
찰스 3세가 이 목록에 올라올 가능성이 생겼다. 허나, 아직 영국 정부와 왕실의 공식 입장은
홍콩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수준에서 그치므로 찰스 3세는 공식적으로는 홍콩의 영주위 요구자가 아니다.
[5]
오주라는 명칭 자체는 후대인들이 붙인 것이며, 오주의 실제 명칭은 그냥 주(周)였다.
[6]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0207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