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3:25

자도 전투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의 대외 전쟁·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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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3,
- 당나라
칠중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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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라
매소성 전투
,675,
- 당나라
기벌포 전투
,676,
- 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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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733,
당나라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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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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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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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 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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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통일 전쟁
,889 ~ 936 ,
원종ㆍ애노의 난
,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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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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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성 전투
,916,
- 후백제
대야성 전투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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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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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통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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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세력
원종·애노의 난
,889,
신라 원종ㆍ애노
비뇌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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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후백제
나주 공방전
,90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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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조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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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승부) 후백제 (무승부)
제4차 대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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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백제
서라벌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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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신라 고려
공산전투
,927,
후백제 신라 고려
삼년산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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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 고려
제5차 대야성 전투
,928,
후백제 고려
백제의 나주 탈환
,928,
후백제 고려
고창 전투
,929~930,
고려 후백제
예성강 전투
,932,
후백제 고려
사탄 전투· 자도 전투
,933,
고려 후백제
운주성 전투
,934,
고려 후백제
고려의 나주 탈환
,935,
고려 후백제
일리천 전투
,936,
고려 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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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 전투
子道 戰鬪
<colbgcolor=#fedc89,#444444><colcolor=#670000,#FFCECE> 시기 933년 (태조 16년)
원인 후백제의 고려군 기습
교전 세력 <rowcolor=black> 고려-신라 연합
(수세)
후백제
(공세)
주요 인물
지휘관

파일:고려 의장기.svg 유금필
지휘관

파일:백제 군기.svg 견신검
참가자

참가자 불명
참가자

파일:백제 군기.svg 금달
파일:백제 군기.svg 환궁
병력 병력 규모 불명 병력 규모 불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고려의 승리
영향 후백제의 내분 가속화
1. 개요2. 배경3. 전개
3.1. 후백제군이 기습하다
4. 결과5.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933년 발생한 후삼국시대의 전투.

2. 배경

견신검 유금필의 저지로 인해 신라 공격에 실패하면서 고려군은 서라벌에서 7일간 머무르고 고려로 귀환하려 했다.

3. 전개

3.1. 후백제군이 기습하다

유금필군이 다시 의성부로 돌아가는 길에 자도에서 신검의 기습공격을 받지만 오히려 박살내고 금달과 환궁 등 후백제의 고위 지휘관 7명을 생포했다고 한다(...).

참고로 견신검이 유금필을 기습하기 위해 7일 넘게 기다린 이유는 금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확실한 군공이 필요한데, 후백제 최정예부대인 대규모의 갑사를 이끌고 유금필의 제번병 80기에 후퇴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이다.

4. 결과

결국 견훤은 신검이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패하자 금강에게 완전히 마음이 기울게 된다. 후백제는 한편으로 이듬해인 934년 운주성 전투에서는 또다시 유금필을 필두로 한 고려군에 대패하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에 후백제의 내분은 가속화되어 박영규를 필두로 한 순천인물들이 중심인 친금강파와 능환을 필두로 완산계가 중심인 친신검파의 권력다툼 끝에 견훤이 강제폐위되는 계기가 되었다.

5. 대중매체

소설 전화앵에서 묘사된다.

서라벌에서 열흘 간 묵고 유금필이 돌아가는데, 유금필이 출발하기 직전에 윤선, 홍양덕, 재충, 인일 등이 먼저 4백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출발했다가 선도산을 넘은 후 여궁이 이끄는 후백제의 군사와 싸웠다. 유금필도 도착해 싸웠고 여궁이 유금필을 공격했지만 패해 말에서 떨어지자 고려의 군사가 달려들어 여궁을 죽였고, 후백제의 군사들이 달아났다.

고려군이 다시 나아갔으나 신검이 부달, 김상금, 환궁 등을 이끌고 1천여 명의 군사로 막아섰고, 고려군은 신검의 공격에도 잘 버텼으며, 고려군이 주사산 기슭에 도착하자 윤선이 부산성에서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 후백제군을 공격하자 신검이 달아나고 진금패가 붙잡혔다.

가척골에서 우봉이 이끄는 후백제의 군사가 고려군을 기습했고, 도중에 여근곡성에서 홍양덕이 이끄는 고려군이 나타나 후백제군을 공격하며, 홍양덕이 우봉에게 쇠뇌를 쏴서 부상입혀 달아나게 한다. 아화에서는 애술이 이끄는 후백제의 군사들이 화살을 쏘았고 봉화산에서 대기한 재충이 이끄는 고려군이 후백제의 후방을 공격해 후백제를 물러나게 했다.

고울부에서는 신검, 부달, 애술, 김상금 등이 나타나 유금필의 군사를 공격해 고려군이 고전하면서 윤선이 부상을 입었으며, 금강성에서 황보능장과 상술이 이끄는 군사가 후백제군의 후방을 공격해 포위했다. 부달, 애술, 우봉, 금달, 환궁 등이 신검을 달아나게 하도록 고려군과 맞서다가 금달, 환궁은 고려군의 화살에 전사했고, 부달, 애술, 우봉은 부상을 입고 고려군에게 붙잡혔다. 책사로 참전한 종훈도 이 전투 직후 붙잡혔다가 유금필이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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