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당의 전신 정당: 야권전선(2014년)
- 2014년 야권전선의 또다른 후신 정당: 야권전선(2019년)
- 이 정당의 후신 정당: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
Опозиційна платформа — За життя (ОПЗЖ) |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b4899> 러시아어 명칭 | Оппозиционная платформа — За жизнь (ОПЗЖ) |
영문 명칭 | Opposition Platform — For Life |
한글 명칭 |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 |
창당일 | 2018년 11월 9일 |
해산일 | 2022년 4월 14일 |
금지일 | 2022년 6월 20일 |
전신 |
인생을 위하여 야권전선 |
후신 |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 우크라이나의 회복 |
대표 | 유리 보이코 |
이념 |
경제적 실용주의[1] 소수자 권리 지역주의 유럽회의주의 친러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좌파 |
당 색 |
파란색 (#1B4899) [2]초록색 (#004E34) 노란색 (#FBC74F)
|
최고 라다 |
44석 / 450석 (해산 직전)
|
지방의회 |
4,312석 / 43,122석 (해산 직전)
|
청년조직 | 인생을 위한 애국자 (Патриоты — За Жизнь) |
홈페이지 |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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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초로 사용한 로고(2019)[로고] | 2019년 7월부터 사용한 로고[로고] |
수많은 로고들[5] |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은 우크라이나의 정당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의 제1야당이었으며, 원내정당 중 유일한 친러 성향 정당이었다.
2. 상세
2018년 11월 9일에 창당되었다고 하나, 법적 등록일은 1999년 12월 9일이다. 야권연단은 여러 정당이 합쳐지고 쪼개지며 생겨난 정당이지만, 이 당 법인의 전신이 1999년에 창당된 전우크라이나 연합 "중도"이기 때문이다. 2016년까지 이 이름을 쓰다가 인생을 위하여로 당명을 변경했고, 2018년 야권전선과 합당해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따라서 법적인 창당년도는 1999년이 된다.2018년 11월 야권전선의 내분이 이 정당의 기원이다. 2018년 11월 초, 야권전선에서 리나트 아흐메토프 파벌에 의해 유리 보이코 파벌이 주도한 야권전선 - 인생을 위햐여 합당 협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11월 9일에는 야권전선의 유리 보이코 대표와 인생을 위하여의 바딤 라비노비치 대표가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와 2019년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선거에서의 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반면 아흐메토우 파벌 측에서는 이를 개인적인 협약이라고 주장했다. 2018년 11월 17일, 야권전선과 인생을 위하여는 공동으로 유리 보이코를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했고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을 출범했다. # 그러나 11월 20일, 아흐메토프 파벌은 유권자 배신을 명분으로 유리 보이코 측 합당파를 제명했다. # 이러한 내분이 이어지며 야권전선은 법적 문제에 휘말려 해산되고 보이코 측은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을, 아흐메토우 측은 야권전선-평화개발당을 창당했다.
2019년 총선에서 13.05%를 득표하였으며, 지역구 6석 + 비례대표 37석으로 원내 2당이 되었다. 2021년 이후에는 집권여당 인민의 종이 경제 부진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차이를 5%까지 따라잡았다.
2021년 9월 10일, 야권연단을 창당한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의원이 반역 및 테러 지원 혐의로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우크라이나 검찰총장 이르나 베네딕토바는 10월 8일 수사 상황을 발표하면서,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의원이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산 석탄을 우크라이나로 수입하고, 그 대가로 2억 흐리우냐(90억원) 이상을 지불하도록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르나 베네딕토바 검찰총장은 이러한 행위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이뤄졌으며, 이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안보를 해쳤고, 러시아 연방이 우크라이나에 내정 간섭을 하는 것을 도왔다고 밝혔다. 이러한 혐의를 받는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의원의 딸의 대부가 러시아 연방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법원에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의원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한 검찰은 법원에 보석금을 10억 흐리우냐(452억원)로 책정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직전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의원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탈출하여 당국의 추적을 받게 됐다. # 메드베드추크는 결국 러시아군에 합류하려다가 낙오된 뒤 자국 군복을 입고 도피하다가 2022년 4월 우크라이나 보안국에 체포되었다. #
원래 우크라이나는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와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와 친유럽 세력이 박빙을 이룰 정도로 친러 지지층의 세가 만만치 않았으나, 오렌지 혁명, 유로마이단, 돈바스 전쟁 등을 거치면서 친러 성향 일부 지역이 실효지배에서 떨어져나가고, 이에 대한 역풍으로 나머지 우크라이나 지역이 반러 성향이 강해지면서 2020년대 기준 의석이 리즈 시절에 비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게다가 2022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에 돌입하면서 앞길이 더 불투명해졌다.
전시상태에 돌입하자 이러한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들도 정치적 차이를 떠나 조국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우겠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를 지지하고, 당 내 반역자들을 색출하겠다고 공언했다. # 그러나 이런 대답이 무색하게 당의 네스토르 슈프리치 의원이 군 기지 검문소에서 셀카를 찍은 것도 모자라 군부대 위치를 러시아한테 넘기려고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면서 반러 감정이 고조된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그 외에도 일리야 키바 의원의 의원직이 박탈되었다. # 본인들 딴엔 억울한 점도 있겠지만, 전쟁 분위기상 당 자체가 소위 찍힌 상태이다.
2022년 3월 20일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 친러 정당 11개의 활동을 제한함을 밝힘에 따라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금지당했다. 이번 활동금지 조치는 전시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지속된다. # 금지 조치 이후 당의 최고 라다 의원들 중 일부가 탈당했고, 친러 성향이 강한 오데사주 의회에서는 의원들이 대거 탈당해 친러 색깔을 없앤 주의회 원내 그룹으로 가기도 했다. #
전쟁 기간 치러진 한 여론조사에선 전쟁 직전 조사엔 9.6%보다도 훨씬 떨어진 봉쇄조항(5%)도 못 넘는 1.3%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당의 존립까지 위태로워졌다.
4월 14일 당을 해산하고, 남은 의원들 중 유리 보이코 대표를 따르는 의원들이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이라는 의회 교섭단체를 만들었다. #
5월 22일에는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에 합류하지 않은 의원들이 우크라이나의 회복이라는 교섭단체를 만들었다. #
6월 20일 우크라이나 법원은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
3. 성향
전반적인 성향, 경제와 외교 문제에서 중도좌파에 가깝다. 외교적으로 친러, 반유럽 성향이 강했다. 친러다보니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의 지지를 받는 편이었다.4. 여담
2019년 총선 기준 여성 당선자 비율이 11.4%로 저조한 편이다.지역적으로는 러시아와 접경한 동부( 돈바스) 지방 및 루마니아와 접한 남부의 오데사주 일부 선거구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편이었다. 인민의 종도 이 지역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정치판은 역사 문제까지 끼여서 꽤나 복잡한 편인데, 원래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은 중세까지만 해도 키예프 공국에 살고 있는 한 동족이었다. 그런데 당시 몽골 제국이 쳐들어와 세력이 나뉘면서 정체성이나 언어 등도 갈리기 시작했다. 러시아 제국이 들어선 이후 우크라이나 일대는 우크라이나어 사용 제한을 받는 등 우크라이나어의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해 러시아와 가까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이 러시아어권으로 바뀌게 된다.[6]
20세기 들어선 소련에 편입됐지만, 소련이 1991년 붕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러시아어 사용 비중이 높은 동부 지역 영토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하는데, 동부 지역은 탄광과 공업시설이 많았기에 농업 위주의 서부보다 부유해 제정 러시아와 소련 시절 이주한 러시아계+이주해온 러시아인들도 많았고 독립 이후에도 경제적으로 러시아와 교역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친러 성향이 강해졌다. 진짜 심한 지역은 친러 정도가 아니라 러시아인이나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이 주류로 서부 우크라이나와는 큰 동질성조차 못느꼈을 정도.[7] 그래서 1994년 대선을 기점으로 해서 2019년 총-대선 때를 제외하면 동부 친러, 서부 친(서)유럽 구도가 2014년까지 이어져왔다.
[1]
공식적으로는 좌익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를 내세웠으나,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2]
남색 계열부터 하늘색 계열까지 다양한 파란색을 사용한다.
[로고]
야권연단은 배경 색, 글자 크기, 배경 모양 등이 다른 로고를 혼용해서 사용했다.
[로고]
[5]
야권전선 시절부터
우크라이나어 로고보다
러시아어 로고를 더 많이 사용해 왔다.
[6]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 반도는 원래 러시아계, 러시아어가 우세한 지역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어는 원래 우크라이나 전역은 물론 캅카스 지역까지 넓게 사용되고 있었으나 러시아 제국의 우크라이나어 탄압 정책으로 쇠퇴하면서 모스크바에 더 가까운 동부 지역에서 쇠퇴한 것이고 크림반도의 러시아인들은 스탈린 시절에 일부러 이주시킨 사람들로 그전에는 크림 타타르인들이 주류였다.
[7]
이 지역들이(크림 반도 등) 2010년대 들어서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하니마니하고 러시아는 개입하니마니 하면서 동유럽의 화약고가 되는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