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5:00

윤규진/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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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프로 데뷔, 그리고 계속되는 부상1.2. 2010 시즌1.3. 2011 시즌1.4. 군 복무1.5. 2014 시즌1.6. 2015 시즌1.7. 2016 시즌1.8. 2017 시즌1.9. 2018 시즌
1.9.1. 전반기1.9.2. 후반기
1.10. 2019 시즌1.11. FA1.12. 2020 시즌
2. 은퇴 이후

1. 개요

전 야구선수 윤규진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1.1. 프로 데뷔, 그리고 계속되는 부상

대전고등학교 야구부[1] 출신의 유망주였던 윤규진은 2003 드래프트에서 같은 지역 유망주였던 안영명( 천안북일고)(1차1번)과 함께 전체 2차 2번(전체 13위)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게 된다. 고교시절 큰 성과는 내지 못했지만[2] 당당한 체격 조건으로 유망주 육성을 중요시하던 유승안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2003년 9월 6일 KIA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 이상목의 뒤를 이어 7회부터 등판해 3이닝동안 44구를 던지며 무실점으로 막아 첫 세이브를 올렸다.

2004 시즌 후반기 송창식의 부상이탈로 인한 선발 공백을 메꾸기 위하여 본격기용 되었는데, 신인치고는 준수한 성적으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4년 8월 17일, 윤규진은 두산전에서 선발로 등판해[3] 9탈삼진 무사사구 3실점 완투로 첫 승을 올린 데 이어 2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에 당당히 진입, 코칭스태프 및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시즌 종료 후 유승안 감독이 경질되고 부임한 김인식 감독도 윤규진의 가능성에 주목하였는데, 이때 만나게 된 인연이 최일언 투수코치[4]였다. 소위 김인식 사단이라 불리던 김인식 감독의 최측근들[5] 중 한 명이었던 최일언 코치는 유망주 육성, 특히 투구폼 개조를 통한 구속업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6] 최 코치는 윤규진에게 이와쿠마 히사시를 연상시키는 특이한 투구폼을 이식시켰으며 이를 통해 윤규진은 독특한 타이밍과 디셉션, 그리고 시속 150 km/h가 넘는 패스트볼을 쥐어짜낼 수 있게 되었다. 윤규진의 패스트볼은 굉장한 위력을 발휘하였으며, 2005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의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무리한 투구폼과 포크볼 구사, 그리고 연투로 인한 부상을 얻게 되어 2006년 초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 무려 2년 여를 재활에 매진하였다. 그 와중에 투구폼은 상군매직의 도움으로 평범하게 수정되었다. 그리고 기량도 함께 평범하게 수정되었다.

그 후에 2007년 후반기부터 실전에서 투입되다가 2008년에 어깨 부상을 입고 2009년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윤규진 역시 킬인식의 희생양이라는 주장이 많다.

1.2. 2010 시즌

이후 한대화 재임 기간에 들어서야 보호 받았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시기 윤규진은 아예 내보내기가 겁나는 상태였다.

2010년 평균자책점이 3.38인데, 승계 주자 실점율이 41%로, 30이닝 이상 던진 불펜 투수들 중에서 7위를 할 정도로 분식회계에 능한 모습을 보였다. 부상 여파인지 아니면 멘탈이 부족한 것인지 구위에 비해 상대를 압도하는 피칭을 못했다.

미필이라 시즌을 마친 후 입대할 예정이었으나, 한대화 감독의 부탁으로 1년 더 뛰기로 했다. 어차피 공익으로 가는 데다가, 안 그래도 답이 없던 한화 불펜에 윤규진마저 없으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1.3. 2011 시즌

불펜의 우완 기대주로 주목받았으나 시즌 초부터 주자가 있으면 분식회계하기 바빴고 다시 장작쌓아놓기까지 했다.

5월에 결국 허리가 안좋아 2군 갔다.

결국 군대를 안 가느니만 못한 상황이 되었고, 불펜에 믿을 투수가 없어져서 박정진만 과부하되고 유원상이 등판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1.4. 군 복무

2011년 10월 중 입대가 확정되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문제를 해결한 후 2014시즌 팀에 복귀했으며, 반납했던 등번호 55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안영명하고 같은 곳에서 공익근무 복무를 했다고 한다.

1.5.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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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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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후 어깨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1.7.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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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투에서 선발로 보직을 바꾸어 나름의 역할을 해주다가, 8월부터 보직이 파괴된 채 마구잡이로 등판하며 볼질하다 얻어맞기를 반복 중이다.

한동안 안 나오나 싶더니 팔꿈치 통증 때문에 일본으로 검진을 갔다고 한다. # 다행히 별 탈은 없었다고 한다. #

1.8. 2017 시즌

시즌 전부터 개막 즈음까지는 외인 두 명과 부활한 배영수까지가 3선발을 맡고 무난히 4-5선발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개막 이후 2달 가까이 선발이든 불펜이든 어느 보직에서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에 따라 김성근에게 백정질을 당한 혹사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행보를 답습하는 시즌으로 보였다. 그러나 전반기 마무리 시점부터 후반기에 이르기까지 선발 투수로서 탁월한 모습을 보이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4월 1일 2차전에 0.2이닝을 던진 정우람의 뒤를 이어 마지막 투수로 등판했고 10회 말 무실점 후 팀이 4대4 동점 상황인 2사 만루에서 김원석의 2타점 2루타로 역전한 뒤 11회 말을 1실점으로 막아내어 2이닝 1실점으로 한화의 17 시즌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정우람과 함께 더블 스토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4월 8일 KIA전 8회 말 2-2 동점 1사 만루 위기에 마운드에 올라 김선빈 희생플라이로 송창식의 주자를 분식회계한 후, 김주찬을 3루 땅볼처리했고 9회 초 김태균의 역전 적시타로 팀이 역전하면서 단 3구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4월 11일 삼성전 8회 말 마운드에 올라 1.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갔다.

4월 15일 팀의 마무리이지만 왜인지 패전조로 나와서 1이닝 3피안타(2피홈런) 2실점으로 추격은 커녕 똥만 거하게 싸고 SK 타자들에게 혼구녕이 났다.특히 이날 전까지 매우 부진하던 정의윤에게 홈런을 허용하여 정의윤이 힐만 감독의 가슴팍에 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이날의 백미.

4월 29일 등판했다.

4월 30일 등판했다.

5월 1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3-3 동점 주자 1명 있는 상황에서 등판하여 무슨 근거없는 자신감인지 나주환에게 높은 똥볼을 던지다 역전 투런 홈런을 얻어맞았다.이번 시즌 SK에게 벌써 피홈런 3개째.계속되는 김성근의 혹사로 구위가 점점 떨어져가는 모습이다.이날 기록은 1이닝 1실점.

5월 2일도 등판해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았다.

5월 3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나주환 타석때 등판해 저번의 리벤지를 하고싶었던것인지 제구가 안된것인지 한가운데 똥볼을 던지다 권혁이 남겨둔 2루 주자를 분식하는 투런을 나주환에게 이틀전처럼 얻어맞더니 한동민에게 볼넷을 주고 정의윤에게 겁대가리없이 높은 포크볼[7]를 던졌고 당연히 두번째 투런포를 얻어맞아 1대2의 점수를 순식간에 1대6으로 만들고 0.1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다만 보다시피 연투가 절대로 불가능한 투수임에도 5연투를 했고 권혁이 2사까지 잘 잡다 2루타 한 번 맞았다고 바로 내려버린 감독 탓이 더 커서 노리타를 제외한 팬들은 크게 까지 못했다.그러나 본인의 컨디션이 좋지않음에도 닥치고 공격적으로 피칭하는 무모함을 버리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욕을 먹을듯.이날 기록은 0.1이닝 2피안타(2피홈런) 1볼넷 3실점.

김성근 감독이 보직을 재편성하면서 1이닝을 안정감있게 막아주기엔 적합하지 않은 듯 하다는 이유로 윤규진을 다시 선발진에 합류시키겠다고 밝혔다.

5월 20일 삼성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그럭저럭 잘 막아 주었다. 타선의 지원속에서 승리를 가져가나 했지만 6회 초 불펜이 불질로 승리를 홀라당 날라먹었다. 기록은 5이닝 3자책.

5월 26일 볼질로 만루를 2번이나 만들고도 그야말로 꾸역투의 정석을 보여주며 5이닝 111구 1실점을 기록해 간신히 승리요건을 만들었다. 권혁도 1이닝을 10구 이내로 막아 그렇게 승리 투수가 눈앞에 아른거릴 즈음 송은범이 1점 차에서 올라오는데... 이 후의 일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6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2승으로 이미 위닝 시리즈를 거두고 스윕을 앞둔 중요한 홈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이닝 6실점으로 부진하며 패전을 기록하였고, 팀의 12년 만의 두산 스윕 기회를 놓치고 똥을쌌다. 특히 2피홈런으로 구위가 매우 좋지 못한것이 절망적이었고 많은 한화 팬들 또한 성장세가 더디면서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윤규진에게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구위하락의 원인은 역시나 김성근이 어깨 수술환자를 당겨쓴 것이라는 게 중론. 이날 경기로 윤규진의 시즌 ERA는 5.51을 찍었다.

14일 문학 SK전에서 첫번째 투수로 나선다. 1회 1실점을 빼면 6이닝까지 9탈삼진으로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였으나 7회 무사 1,2루에 몰린 뒤 번트를 내주지 않으려다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었고, 송창식과 교체되었다. 전날에도 던졌던 탓인지 송창식은 승계주자들을 하나하나 불러들였고 권혁과 심수창까지 연속으로 불을 질러대며 6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6월 20일 대전 넥센전 선발 등판. 1회 2회 좋은 구위로 두 이닝 연속 삼자범퇴를 이끌었다. 그러나 3회부터 급격한 제구 난조로 실점을 거듭하여 4 1/3 이닝 5 자책점 강판되었다. 이날 최고 구속 146 km/h을 기록하였다.

6월 25일 4일 휴식 후 삼성전에 선발 등판하였다. 턱 없이 하락한 직구 구속과 구위로 인해 연속 안타를 맞으며 2이닝 3 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스태미너가 고질적인 약점이란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경기.

7월 1일 두산과의 홈 대결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 선발승을 챙겼다. 최고 구속 146 km/h.

7월 8일 LG와의 원정경기에서 7이닝 2실점으로 13년만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고 다시 선발승을 챙겨갔다. 최고 구속 145 km/h

7월 13일 롯데전 스윕을 주지않기위해 안영명 대신 구원등판하여 1피안타 2삼진으로 무실점으로 승리를 챙겨갔다. 최고 구속 146 km/h.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경기라 선발투수의 구원 등판이었지만 까이지 않았다.

7월 18일, 4일 휴식 후 NC전 후반기 첫 경기 선발로 등판하였다. 그러나 불안한 제구와 142 km/h를 밑도는 직구 구위를 보이며 5이닝 1피홈런 4자책을 기록하였다.

7월 23일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6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고 호투한 비야누에바의 뒤를 이어 팀이 4-1으로 앞서는 상황에서 구원등판하여 0.2이닝 3실점...[8] SK팬들은 이미 2015년초부터 김성근에게 백정질을 당한 윤규진이 이렇게 망가질꺼라고 예상했다 카더라.

8월 12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원정경기에서 다시 선발등판해 6.2이닝 7피안타 3k 1자책 무사사구를 기록했다. 제구가 상당히 잘 된 경기였다.
내년엔 아예 선발 한자리를 주는것도 나쁘지않아 보인다.

8월 19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 선발등판하였다. 연승 기류를 타던 롯데의 타선을 6이닝 동안 완벽 봉쇄, 시즌 7승을 달성하였다.[9] 6이닝 6K 2볼넷.

8월 26일 SK 와이번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하였다. 훌륭한 완급조절과 제구 능력이 돋보인 경기. 7이닝 84구 5K 무사사구 2실점을 기록, 3경기 연속 QS의 쾌투였으나, 본인은 타선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별개로 평균자책점을 4.83 으로 끌어내리며 인터뷰에서 밝힌 8월 목표 달성엔 일단 성공하였다.

9월 2일 롯데전에서 그야말로 두들겨맞았다. 그러나 최준석에게 실책성 포구로 도루를 허용하거나, 평범한 병살 코스에서 공을 더듬어서 이닝을 못 끝내주는 유격수 최윤석, 펜스 근처 외야플라이를 흘려 점수를 허용한 이동훈을 비롯한 실책성 수비에 3회까지의 훌륭한 피칭이 빛 바랬다.

9월 9일 NC전에서 7이닝 113구 2볼넷 2자책 3K로 역투하며 시즌 8승을 챙겼다. 개인최다승 기록. 최고 145km 직구 외에도 슬라이더, 포크볼, 커브를 섞어 던졌다. 투구수 113개는 올 시즌 개인 최다기록. 8월 이후 6경기 3승 2패 평균자책점 3.48.

9월 15일 넥센전에서 6이닝 110구 3볼넷 4자책 7K로 꾸역투하였다. 간만의 5일 휴식 후 금요일 등판. 그다지 제구가 잘 된 경기는 아니었으나 구심이 아래쪽 공에 유독 박해 넥센의 밴 헤켄도 마찬가지로 제구난조로 고전하였다. 8회 하주석 결승점으로 팀은 승리하였으나 승리 투수는 되지 못하였다. 8월 이후 7경기 3승 2패 평균자책점 3.97.

9월 29일까지 정우람과 함께 개막엔트리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말소되지 않은 유이한 선수였다. 9월 30일 김진영, 이창열의 1군 콜업과 맞물려 1군 말소되며 시즌을 마무리 지었다.

두산 상대 첫 선발승을 거둔 7월 1일부터 총 10경기 선발 등판, 61.2이닝 소화, WHIP 1.35, K/BB 3.5, 5승 3패 ERA 4.23의 성적을 거두었다. 동 기간 선발 등판한 9명의 한화 투수들 가운데서 오간도와 함께 가장 많은 승수를 챙겼다.[10] 61.2이닝을 뛰어주며 안영명 제외 최다 이닝을 소화했다. 동기간 경기 당 6이닝 이상씩을 책임져준 유일한 선수이다. 배영수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ERA와 가장 높은 K/BB를 기록하였다. 선발 정착 후 윤규진이 한화 외인투수들 못지 않은 에이스급 활약을 펼쳤음이 지표에 나타난다.[11] 게다가 비야누에바는 팔꿈치 통증으로 고생하느라 그다지 위력적이지 못했고, 오간도는 10승을 거두기는 했으나 투구 내용이 전반기와 달리 크게 나빠져가다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으니...

여담으로 투구 폼을 두고 고민하던 중 김태균이 지나가다 '데뷔 초기 원래의 폼으로 던져보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는데 이게 맞아떨어졌다고 한다.[12] 이 덕분에 김태균의 별명에 김포인트, 야신 김태균이 추가되었다.

1.9. 2018 시즌

1.9.1. 전반기

어째 신뢰감을 많이 주지 못했는지 예비 FA를 앞두고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는 인터뷰에 ' ???: FA 신청 굳이 막지는 않겠다'는 식의 반응들이 많다.

[오키나와 LIVE] '첫 등판' 윤규진, 주니치전 3이닝 4실점...직구 140km
23일 연습경기에 선발로 첫 등판한 윤규진은 3이닝 4실점을 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1, 2회에 홈런과 연속 안타 등으로 점수를 주었고, 2회 1사 만루 이후에 삼진과 범타 등으로 간신히 3회까지 이닝을 마쳤다. 물론 아직은 연습경기기에 속단은 이르지만, 제대로 제구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기아한테도 3이닝 3실점으로 털렸다. 황윤호에 피홈런까지 허용.

3월 26일 NC 다이노스 전에 선발로 나선다. 3⅓이닝 동안 4피안타(1피홈런) 3사사구 6실점(3자책)으로 무너졌다. 선발의 의무인 이닝도 못 먹어줬고, 계속 볼넷과 몸에 맞는 볼, 피안타로 실점을 자초했다. 김태균의 실책도 수비 상황을 길게 가져가게 만든 투수의 책임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3월 28일 1군에서 말소됐다. 로테이션이 조정될듯.

4월 11일 백창수가 내려간 자리에 등록되어 KIA 타이거즈 전에서 선발로 복귀해, 4⅓이닝을 7피안타(1피홈런) 3사사구 6K 4실점으로 마쳤다. 4이닝까지는 6피안타 6K(!!!) 1실점 꾸역투로 중요한 순간마다 삼진으로 잘 막다가 5회에 들어서자 갑작스러운 제구난조로, 주자를 출루시켜, 최형우에게 3점 홈런을 내주고, 나지완까지 볼넷으로 내보낸 뒤, 강판됐다. 다행히 경기는 송은범의 3이닝 무실점 호투(!!!)로 패전은 면했다.

피칭 레퍼토리는 속구보다는 변화구 위주의 피칭이었으며 스플리터로 카운트를 잡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속구의 구위가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불안한 점. 손에서 공이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위닝샷인 스플리터가 높게 형성된점이 아쉬웠다. 다행히 송은범, 안영명, 이태양의 호투로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으나, 계속해서 이닝을 먹어주지 못한다면, 15승은 글쎄...?

4월 17일 그야말로 꾸역투로 5이닝을 무실점했으나 6회 무사만루의 폭탄을 남겨두고 내려간 뒤 박상원의 분식으로 2자책이 추가되어 5이닝 2실점을 기록했고, 타선의 득점지원과 박상원-송은범-정우람의 호투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또한 이는 배영수-김재영에 이은 토종투수 3연승으로 무려 6년만에 나온 기록. [13]

4월 22일 넥센전 4.1이닝 8실점으로 그야말로 비오는 날 먼지 날리도록 줘터졌고, 팀이 100구를 로저스에 허무하게 완투승을 내주며 시리즈 스윕을 당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결국 부진이 이유였는지 다시 1군에서 말소되었다.

6월 10일 선발로 예고됐다. 배영수가 영 부진해서 2군으로 내려가고 대체 선발로 등판할 예정. 기록에 비해 구위가 많이 올라왔다고 한다. 시작부터 로맥에 투런을 맞으며 KBO 통산 30,000호 홈런을 퍼줬다.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빵빵한 구위로 SK타선을 틀어막으며 이후 무실점, 7이닝 2실점 2자책 QS+를 달성했다.

6월 16일 타선이 대폭발중인 두산을 상대로 5이닝 2실점 7삼진 5피안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확실히 146km까지 올라온 직구의 구위가 나쁘지 않은걸로 보아 당분간은 선발의 한축을 전담하게 될것으로 보인다.

6월 22일 엔씨를 상대로 8이닝 8삼진 1피안타 1볼넷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6.1이닝까지 정범모에게 볼넷 하나를 내주고 노히트 중이였다. 또한 시즌 최다이닝 및 최다 투구수(113구)를 기록했다. 상승세를 탄 엔씨 타선을 꽁꽁 묶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군에서 올라온 뒤로 선발 3경기 동안 20이닝 21삼진 3볼넷 4실점 ERA 1.80으로 선발진 중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8일 삼성을 상대로 5이닝 4삼진 5볼넷 1실점으로 호투(?)한다. 5볼넷으로 볼넷이 많았지만 위기를 잘 넘겨가며 5이닝을 채운다. 특히나 4회에 1사 볼넷을 2개나 허용하며 1사 만루를 자초했지만, 뜬공 2개로 잘 막아내며 큰 위기를 넘겼다.

7월 10일 넥센을 상대로 7이닝 7삼진 1볼넷 1실점으로 팀의 승리에 일조한다.[14] 평소 직구와 포크볼 조합이 대부분이던 볼배합에서 체인지업 위주의 피칭을 선보이며 상대 타선을 압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큰 기복없이 점점 선발의 가장 믿음직한 한축을 맡고 있는 모습이다.

1.9.2. 후반기

7월 18일 kt전 6이닝 5삼진 1볼넷 1실점으로 7회초 공격때 승리조건을 갖추지만 7회말 불펜에서 실점하며 오늘도 승리조건이 날아간다.승운이 휠러급

7월 25일 4.2이닝 7실점을 하며 강판되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31일 5이닝 4실점을 했다.

8월 5일 3.1이닝 5실점했다. 타자진이 이후 동점을 만들어준 덕에 ND.

8월 14일 롯데전 선발로 등판하여 4 1/3이닝 6실점하며 강판되었다. 이쯤이면 포스트시즌 선발은 어림도 없어보일 수준.

8월 15일 최진행과 함께 전격 1군 말소되었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김창혁과 드디어 그분.

아시안게임이 끝난 9월 4일부터 1군에 등록되었다.

9월 6일 kt전에서 9-0으로 앞선 8회부터 등판하여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다만 9회말에 로하스에게 투런홈을 허용한것은 아쉬운 부분.

9월 12일 삼성전에서 1회부터 3실점을 하며 제구가 전혀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4이닝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 다행히 팀은 승리.

9얼 18일 NC전에서 ⅔이닝 5실점으로 시즌 최악의 피칭을 하며 강판되었다. 이정도면 남은 후반기에는 도저히 선발로 쓸 수가 없는 수준이다. #

결국 9월 19일 1군에서 말소됐다.

FA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96이닝을 채우거나, 1군 엔트리 등록 일수가 145일이 넘어야 하는데 올해 소화한 이닝은 84이닝이고, 등록일수는 97일인 상황. 등록일수를 채우기는 불가능하고 이닝을 12이닝 더 채워야 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아마 내년 취득이 유력할듯.

1.10. 2019 시즌

2019년 2월 21일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어깨 통증으로 조기 귀국, 검진 후에 재활 파트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6주간의 재활 판정을 받아 개막 엔트리 합류는 날아갔다.

이후 6월달에 콜업되어 3경기 4.1이닝 5실점만 기록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아무 소식이 없다가 아내의 인스타에 구단에 실망스럽다는 게시글이 떴는데 전력 외 통보를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서른 중반의 투수가 그냥 나가는구나 하겠지만, 베테랑들을 방출하는 과정에서 워낙 잡음이 많았던지라[15] 팬들 사이에선 베테랑 다 쫓아내더니 팀이 망가졌다는 의견과 그간 공무원 야구로 악평이 있던 팀이 이제라도 내보낼 사람 내보내고 있으며 나간 선수들 중 주전급이 몇이나 있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16] 다만 이와 별개로 윤규진이나 송창식, 박정진, 김태균, 최진행 등은 구단에서 은퇴식이라도 치러 주며 원클럽 맨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데엔 대부분 동의한다.

놀랍게도 정우람, 이성열, 김태균과 함께 FA 신청자 명단에 올랐다.

1.11. FA

해가 넘어가고 2020년 1월 14일 한화와 1+1년 총액 5억 원에 합의했다. # 구체적인 내용은 계약금은 없고, 연봉 총액 4억에 옵션 1억 원으로, 1년차 연봉이 1억 7천만 원이고 옵션인 2년차 계약은 2억 3천만 원이다. 대체적으로 잘 계약했다는 평가가 많다. 설사 부진하거나 드러눕더라도 한화가 금전적으로 손해를 많이 보는 게 아니라서 그런 듯하다. 요정도 금액이면 플레잉 코치급이다.

1.12. 2020 시즌

코로나-19 사태로 개막이 밀렸으나 1군 개막 엔트리엔 들지 못했고, 5월 6일 kt 위즈와의 2군 경기에서 2이닝 6실점으로 털리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28일 장민재, 신정락, 김종수가 말소되자 송윤준, 이태양과 함께 1군으로 콜업되었다.

5월 29일, 1.2이닝 37투구수 2실점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퓨처스 리그에서도 부진하다가 10월 11일 두산전에서 홀드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젊어진 불펜진에 밀려 1군에는 올라오지 못했다.

결국 11월 6일 재계약이 결렬되면서 웨이버 공시되었다. 기사 그리고 팀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직후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

2. 은퇴 이후

2021 시즌부터 친정팀 한화 이글스의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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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년 유급으로 같은 학년이 된 정민혁은 연세대 진학 후 투수로 전향했고 활약을 인정받아 한화 이글스의 유니폼을 입는다. [2] 고3이던 2002년 배명고 무등기 결승에서 대결했으나 연장 12회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3] 6월에 한 번 선발등판한 적은 있으나 6실점을 하고 내려와야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도 두산전. [4] 2019년 현재 LG 트윈스 투수 코치. [5] 유지훤, 우경하, 최일언 등. [6] 두산 베어스 시절 강속구 투수 박명환, 진필중, 이혜천을 육성했다. 2014년 현재 NC의 젊은 투수들이 시속 150 km/h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이유는 최코치와 무관하지 않다. [7] 포크볼은 높게 던졌을때 피장타 허용확률이 매우 크다! 일례로 이승엽에게 한일통산 600호 홈런을 맞은 이재우의 공도 떨어지지 않은 포크볼이었다. [8] 하지만, 송광민과 김태균의 알까기성 수비가 컸다. 둘다 허도환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잡겠다 싶은 타구들이었다. 블론 세이브 기록은 강판당한 윤규진의 뒤를 이은 권혁이 가져가고말았다.권혁이 4-3 상황에서 윤규진이 남겨놓은 승계주자를 홈으로 들여보냈기 때문. [9] 이날 경기로 윤규진 개인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과 동률을 이루었으며 2017 시즌 한화 공동 최다승 투수로 등극하였다. [10] 윤규진, 오간도, 비야누에바, 배영수, 김재영, 안영명, 김범수, 김민우, 장민재 [11] 스탯티즈 [12] 감독대행도 원래대로 투구 폼을 바꾸는 걸 추천했다고. [13] 당시 투수는 김혁민- 유창식- 송창식. [14] 팀이 7회까지 1점밖에 못 내다가 8회에야 역전에 성공하면서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다. [15] 박종훈 단장과 한용덕 감독의 워딩이 지나치게 거칠다는 말은 18시즌 중반부터 죽 있었으나 호성적에 묻히고 있다가 19시즌 성적 부진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16] 한화가 추락한 건 18시즌 플루크가 꺼지고 불펜진이 정우람을 제외하면 집단으로 부진한 탓이 크다. 방출되거나 스스로 나간 베테랑들주에서는 그나마 권혁이 두산에서 제 몫은 하고 있으나, 혹사의 여파로 기량이 하락하여 원 포인트 릴리프로만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