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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틴 조선 서울 전경 |
웨스틴 조선 서울 The Westin Josun Seoul 首尔威斯汀朝昕酒店 ウェスティンジョソンソウ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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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fff> | |
<colbgcolor=#837762><colcolor=#fff> 호텔 등급 | |
개관 | 1914년 10월 10일 ([age(1914-10-10)]주년) |
규모 | 45,400㎡ |
지하 1층 / 지상 18층 | |
총 462실 | |
총지배인 | 이정욱 |
소유사 | 조선호텔앤리조트 |
운영사 | 조선호텔앤리조트 |
시공사 | 남만주철도주식회사 · 시미즈구미[1] ( 1914년) |
삼환기업 · 현대건설 · 벡텔[2] ( 1967년) | |
설계자 | 게오르크 데 랄란데[3] ( 1914년) |
윌리엄 테블러[4] ( 1967년) | |
매출액 | 1,309억원 ( 2023년) |
멤버십 | 메리어트 본보이 |
클럽조선 멤버십 | |
주소 |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06 ( 소공동) | |
웹사이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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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06 ( 소공동)에 위치한 5성급 호텔.2. 연혁
- 1913.02. 경성철도호텔 부지로 환구단 채택
- 1913.03. 조선총독부 철도국 주관 하 경성철도호텔(京城朝鮮鐵道호텔, 경성조선철도ホテル) 착공 [5]
- 1914.02. 경성철도호텔에서 조센호테루(朝鮮ホテル, Chosen Hotel)로 개칭
- 1914.09. 조센호테루 준공 [6]
- 1914.10. 조센호테루 개관 (지하 1층, 지상 4층, 객실 52실)
- 1915.04. 전 조선기자대회 개최 [7]
- 1920. 히로히토 일본 황태자 투숙 [8]
- 1922.10.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왕(閑院宮載仁親王) 투숙
- 1924. 한국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 개관 [9]
- 1925. 남만주철도주식회사와의 계약 해지 후 조선총독부 철도국 직영 운영
- 1926.10. 스웨덴 베르나도테 왕조 제6대 국왕인 당시 구스타프 공작 구스타프 6세 투숙 [10]
- 1931.04. 간인노미야 하루히토 왕(閑院宮春仁王) 투숙
- 1945.08. 미군정청 운수국으로 운영권 이양
- 1945.09. 미군정청 사령부 및 이승만 등의 집무실 설치
- 1946.06. 미국 제34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대일 배상특사였던 에드윈 W. 폴리 대사 일행 투숙
- 1948. 이승만 대통령의 탈일본 정책에 따라 조선호텔(Chosun Hotel)로 개칭
- 1950.06. 한국 전쟁 발발로 인한 휴관
- 1951.04. 미1군 중앙정양처로 사용
- 1952. 미8군 고급장교 숙소로 사용
- 1952.12. 미국 제34대 대통령 당선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투숙 [11]
- 1953.07. AID 경제원조 관련 사무실로 사용 [12]
- 1958.08. 난로 과열로 인한 화재로 4층 소실 [13]
- 1961.03. 대한민국 정부에 조선호텔 운영권 반환 [14]
- 1961.04. 대한민국 교통부로 운영권 이양
- 1961.11. 개보수 후 외국인 전용호텔(관광호텔)로 재개 [15]
- 1963. 대한민국 교통부에서 국제관광공사로 운영권 이양 [16]
- 1964.10. 개관 50주년
- 1965.11. 베트남 공화국 제9대 수상 응우옌까오끼 투숙
- 1967.01. 경제장관회의에서 조선호텔 리모델링 결정
- 1967.02. 재건축간담회에서 만장일치로 재건축 시행 결정 [17]
- 1967.03. 독일연방공화국 제2대 대통령 하인리히 뤼프케 투숙
- 1967.06. 국제관광공사와 아메리칸항공 합작투자 결정 (각 550만 달러씩, 총 1,100만 달러 공동출자)
- 1967.06. 미국 제38대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 투숙 [18]
- 1967.07. 외국인 투자인가 및 호텔 철거 (지하 1층, 지상 4층, 객실 52실)
- 1967.08. (주)조선호텔 설립 및 조선호텔 정관 발기인 서명
- 1967.10. 재건축 호텔 기공 (지하 1층, 지상 18층, 객실 504실)
- 1968.05. 조선호텔 재건축 건축허가
- 1970.02. 조선호텔 재건축 준공 (지하 1층, 지상 18층, 객실 504실)
- 1970.03. 조선호텔 재개관 (지하 1층, 지상 18층, 객실 504실) [19]
- 1970.12. 외국인 투자기업 등록
- 1974.09. 외국인 투자변경( 아메리칸항공에서 아메리카나호텔[20]로 변경)
- 1974.11. 미국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 및 제56대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투숙
- 1976.02. 부분 개보수공사 [21]
- 1979.10. 외국인 투자변경(아메리카나호텔에서 웨스틴 인터내셔널 호텔[22]로 변경)
- 1979.11. 웨스틴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경영권 인수
- 1981. 웨스틴 조선호텔로 개칭
- 1983.06. 국제관광공사 소유주식을 (주)중앙개발 및 (주)신세계백화점에서 550억에 인수
- 1983.11.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투숙 [23]
- 1985.03. (주)반도조선아케이드로부터 주차장 인수
- 1992.05. (주)중앙개발 소유주식을 (주)신세계백화점에서 인수
- 1995.06. 웨스틴 호텔즈 앤 리조트 주식을 (주)신세계백화점에서 인수하여 (주)조선호텔 주식 지분 100% 보유 [24]
- 1996.07. 영국의 비즈니스 여행전문지 Executive Travel 선정 세계 최고의 비지니스 호텔
- 1996.10. 한국 최고(最古)의 호텔로 기네스북 인정(한국기네스 협회) [25]
- 1998.01. 다국간 위성화상회의시스템 도입
- 1998.12. 객실 및 시설 개보수공사 (5개 층, 172개실에 대한 개보수, 객실 453실)
- 2000.03. 5개층 객실 개보수공사
- 2001.08. 3층 비즈니스센터 개관
- 2006.11. 전 객실 광케이블 설치 및 디지털TV 인포메이션 서비스 개시
- 2007.02. 객실 전층 개보수공사 완료 (지하 1층, 지상 18층, 객실 453실)
- 2008.05. 저층 로비 개보수공사 완료 (홍연,아리아,베키아 에 누보, 격물공부 개관)
- 2008.11. 20층 일식당 스시조 재개관
- 2009.07. 20층 이그제큐티브 클럽 라운지 재개관
- 2010.08. 리뉴얼 스위트, 프리미엄 주니어 스위트 개관
- 2011.05. 리뉴얼 개관 (로비, 피트니스 센터, 연회장, 나인스 게이트 그릴, 써클)
- 2011.06. (주)신세계의 인적분할을 통해 (주)신세계와 (주)이마트 분리 [26]
- 2012.02. 전 객실 금연 정책 시행 [27]
- 2013.03. 법인명 변경(㈜조선호텔 → ㈜신세계조선호텔) [28]
- 2014.10. 개관 100주년
- 2017.04. 조선델리 개관
- 2017.05. 라운지 & 바 개관
- 2017.09. 나인스 게이트 리뉴얼 재개관
- 2020.05. 영문명 Westin Chosun Seoul에서 Westin Josun Seoul으로 개칭
- 2021.01. 법인명 변경((주)신세계조선호텔 → (주)조선호텔앤리조트)
- 2024.07. 와인갤러리 개보수 후 재개관 [29]
- 2024.10. 개관 110주년
3.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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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1967 - 1981[30] | 1981 ~ 2000 | 2000 ~ 2021 | 2021 ~ 현재 |
4. 역대 총지배인
- 1969. 호스트 G. 프랭크 (Horst G. Frank) (1969~1971)
- 1971. 케네스 B. 햄랫 (Kenneth B. Hamlet) (1971~1972)
- 1972. 단테 데이비드 (Dante David)[31] (1972~1979)
- 1979. 제러드 루옛 (1979~1980)
- 1980. 댄 리 (Dan Lee) (1980~1982)
- 1982. 데이비드 J. 헤이든 (David John Hayden) [32] (1982~1984)
- 1984. 지오반니 엔젤리니 (Giovanni Angelini) [33] (1984~1988)
- 1988. 데이비드 섀클턴 (1988~1991)
- 1991. 키어런 켈리 (1991~1993)
- 1993. 로버트 휘츠너 (1993~1996)
- 1996. 에드워드 허버넷 (1996~1997)
- 1997. 케빈 몰로이 (1997~1999)
- 1999. 베르나르트 브렌더 (1999~2002)
- 2002. 로타 필 (2002~2003)
- 2003. 프랑크 벡 (Frank Beck) (2003~2005)
- 2005. 게하르트 슈미츠 (Gerhard Schmidt) (2005~2012)
- 2012. 브라이언 백 (Brian Pak) (2012~2015)
- 2015. 노상덕[34] (2015~2017)
- 2017. 류재영 (2017~2020)
- 2021. 이정욱 (2021~)
5. 역대 지배구조
<rowcolor=#fff> 연도 | 지배사 | 피지배사 |
1913년 ~ 1945년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조선총독부 철도국 (1913년~1945년) [[일본| ]][[틀:국기| ]][[틀:국기| ]] 남만주철도주식회사 (1913년~1925년) [35]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조선철도호텔경영주식회사 (1932년~1934년) [36] |
조선호텔 |
1945년 ~ 1961년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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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 1963년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교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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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 1967년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국제관광공사 |
|
1967년 ~ 1974년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국제관광공사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아메리칸항공 |
(주) 조선호텔 [37] |
1974년 ~ 1979년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국제관광공사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아메리카나호텔 |
|
1979년 ~ 1983년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국제관광공사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웨스틴 인터내셔널 호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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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 1995년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중앙개발 (37.4%) | 신세계백화점 (12.6%)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웨스틴 인터내셔널 호텔 |
|
1995년 ~ 2011년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신세계백화점 (1995년~2001년)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신세계 (2001년~2011년) [38] |
|
2011년 ~ 현재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이마트 [39] |
(주) 조선호텔 (2011년~2013년) (주) 신세계조선호텔 (2013년~2021년) [사명변경] (주) 조선호텔앤리조트 (2021년~현재) [사명변경] |
† 웨스틴에서 더 이상 소유하지 않지만, 매년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메리어트[42]에게 마케팅수수료 및 경영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 |
6. 역사
6.1. 일제강점기 당시의 경성철도호텔
조선호텔은 1910년 이후 각 철도간선이 완공됨에 따라 외국인의 서울 통과가 많아지자 양식 호텔의 필요성이 생겨 건설한 근대식 호텔로, 1914년 9월 20일에 준공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개관하였다.조선호텔은 처음에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건설했는데, 1920년대에 들어와서 조선총독부 철도국 직영이 되었다. 당시 규모는 대지 6,700평에 건평 583평, 서구식과 한국식을 겸한 4층 건물로 전체 객실수 69실, 여객 수용인원 106명이었으며, 건설 비용으로 당시 일본 화폐 기준 84만 3000원이 소요되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와 초고층 건물의 근대식 건물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호텔 설비는 당시 동양호텔 가운데 일류시설로 각 방에는 대부분 욕실이 갖추어져 있었고, 방마다 탁상전화와 세면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 당시만 해도 각 객실마다 세면대가 배치되어 있는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국내 최초로 도입한 오티스사의 전동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로도 위상을 떨쳤다.[43] 또한 거대한 규모의 식당과 연회장이 있었고, 난방과 소방 시설, 주차장도 갖추고 있었다. 뒤뜰에는 3층의 팔각건물인 황궁우가 현존하고 있다. #
매일신보 1914년 11월 8일 자 ‘조선호텔 영업 호황’ 제하의 기사에 “개업 후 22일간의 영업 총수입은 7828원(圓)18전(錢), 대소연회 29회, 숙박 인원은 129명이었다. 그 중 내지인(일본인)이 54명, 영국인 13명, 미국인 45명, 스위스인 1명, 기타 4명”이라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조선호텔은 개업 초기부터 호황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
조선호텔 개관 후 10년이 지난 1924년 국내 최초 프렌치 레스토랑 팜코트가 오픈했다. 1900년대 초 프랑스 요리는 서양요리를 대표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으며 팜코트는 정통 프랑스식을 표방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천장까지 이어지는 통유리 안으로 투명한 햇살이 쏟아지는 인테리어에 국내 최초로 고베 소고기와 갈빗살을 제공했다. 서울 최초로 에그 베네딕트, 시저 샐러드, 타르타르 스테이크를 소개했으며 달팽이 요리와 다양한 와인 리스트를 자랑했다. #
6.2. 해방 직후 조선호텔
1945년 해방 이후 조선호텔의 경영권은 미군정청 운수국으로 이양되었다. 그 다음에 미군정청 사령부와 이승만의 집무실이 설치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은 탈일본 정책에 따라 조센호텔(Chosen Hotel)을 조선호텔(Chosun Hotel)로 개칭하였다.2년 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전쟁 동안 조선호텔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뀐다. 가장 먼저 북한군에게 넘어갔다. 1950년 6월 26~27일 사이, 오전 7시 북한군이 호텔에 들이닥쳤다. 북한 장군 리승엽이 조선호텔 201호[44]를 차지했고 호텔 저장고에 남아있던 와인, 캐비아, 버번, 카멜 담배를 전리품으로 취했다. 북한의 고위 장교들은 3개월 가량 조선호텔에 주둔하며 호화로움을 즐겼는데 한 장교가 세면장의 비누를 과자인 줄 알고 덥석 깨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호텔 로비에는 마오쩌둥과 김일성 초상화가 걸리기도 하였다. #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 탈환 이후 서울수복기념식이 열렸고 식장을 떠난 관료들과 각국의 기자들은 조선호텔 바로 향했다.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남하로 다시 한번 조선호텔의 주인이 바뀌었다. # 중공군 장교들이 조선호텔을 차지하고 201호에서 전략 회의를 열기도 하였다. 이후 3월 UN군이 서울을 재탈환하고 7월부터 유엔과 중국, 북한 사이의 휴전회담 본회의가 시작되었다. 8월 1일에는 조선호텔을 국방부에서 징발하여 미1군단 중앙정양처로 제공되었다. 다음해인 1952년 8월부터 미8군 고급장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
1953년 5월, 마지막으로 조선호텔은 유엔군의 안식처가 됐다. 정찰기 조종사들은 조선호텔을 찾아 잠깐 수면을 취하고 다시 전방으로 날아가기도 하였다. 조선호텔 객실에 야전침대가 놓였고 1인용 객실에 많을 때는 10명까지 잠을 잤다. 마릴린 먼로가 주한 미군 위문공연단의 일원으로 조선호텔에 머문 것도 조선호텔이 미군 장교 숙소로 쓰이던 1953년의 일이었다. #
6.3. 한국의 품으로 돌아온 조선호텔
조선호텔은 전쟁 중에도 외관이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 일부가 파괴되는 정도로 그쳤다. 1952년 1월 조선일보는 수리 중인 호텔 소식을 전했다. #“…일부 파괴된 조선호텔의 수리 공사는 작년 4월부터 교통부와 유엔군의 협력 하에 착착 진행 중인데 이 달 중으로 수리가 완성될 것이라고 한다. ”
조선호텔修理 今月中으로完了 (조선일보, 1952.01.21)
조선호텔修理 今月中으로完了 (조선일보, 1952.01.21)
이후 1955년 11월 한국민사원조사령부 민간구호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조선호텔의 귀추가 주목되었다. 이달말이면 민사원조사령부가 정식으로 해체되기 때문이다. 이때 한국 정부는 조선호텔의 군 징발도 자연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기대[46]하였으나 아직 미국인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만큼 이들의 마땅한 대체 거처는 없는 상황으로 수차례에 걸쳐 미8군과 극동사령부 사령관에게 군 징발해제를 재차 요구하기도 하였다. #
<rowcolor=#fff> 조선호텔 화재 (한국정책방송원, 1958-08-31) |
1958년 난로 화재로 인하여 4층이 소실되었다. 이때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게 조선호텔을 다시 돌려달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3년 뒤 1961년 3월 한국 정부로 조선호텔 운영권이 이양되었다. 7개월 동안 개보수를 마치고 외국인 전용 관광호텔로 영업을 재개하였다. 이는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11년만이다. 1963년에는 대한민국 교통부에서 국제관광공사에게 운영권이 이양된다.
<rowcolor=#fff> (좌) 조선호텔 화재 (1958) | (우) 조선호텔 개관식 (1961) |
1967년, 경제장관회의에서 조선호텔 리모델링이 결정되었다. 당시 조선호텔은 너무나도 노후화되어 호텔 운영비용의 40%가 개보수에 쓰이는 비용일 정도로 신축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또한 1961년부터 1965년까지 외국 관광객은 매년 30% 이상 증가율로 매년 증가추세였다. 1966년 한일 국교정상회담 이후 일본인 관광객이 급격하게 늘었으며, 굵직한 국제 행사들이 서울에 개최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관광산업 육성을 위하여 대형 연회장과 호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47][48] 6월에는 국제관광공사와 아메리칸항공 간 합작투자 계약을 맺었다. 각 550만 달러씩 출자하여 총 1,100만 달러를 공동출자하기로 계약하였다. 그 다음달에는 외국인 투자를 인가받으면서 4층짜리 조선호텔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8월경 주식회사 조선호텔이 설립되었다.
<rowcolor=#fff> 조선호텔 기공식 당시 (조선호텔앤리조트, 1967-10-03) |
조선호텔 철거 전 내외부영상 (대한뉴스, 1967-07-15)
조선호텔 철거영상 (대한뉴스, 1967-09-23)
조선호텔 기공식 (대한뉴스, 1967-10-13)
6.4. 서구화의 시작을 알린 웨스틴 조선 서울
<rowcolor=#fff> (좌) 조선호텔 신관 준공식 (1970) | (우) 아시아 개발은행 총회 개최 당시 조선호텔 (1970) [49] |
<rowcolor=#fff> 조선호텔 개관 당시 (1970) |
1970년 3월 17일, 조선호텔은 지하 1층, 지상 18층, 객실 504실 탈바꿈하여 재개관[50]한다. 개관식은 11시에 진행되어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부총리, 백선엽 교통부 장관, 마리은 사드라 아메리칸항공 부사장, 제임스 밴 플리트 미합중국 제4대 제8군 사령관이 함께하였다.
1967년 10월 3일 기공하여 29개월만에 준공한 조선호텔은 Y자의 현대식 건물로 연면적이 12,200평에 달한다. 지하2층에는 60대의 차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 지하1층에는 기계실과 응급 치료실, 토산품 판매점, 종업원 식당이 있다. 2층에는 21개의 각종 점포, 은행과 각종 항공사 사무실, 20층에는 나이트 클럽 '밀키웨이(은하수)', 칵테일 라운지 등이 생겼다. 객실은 5층[51]에서 19층[52]까지로 방값은 최하 13$에서 최대 100$에 달하였다.
실질적인 첫 영업일은 2월 19일부터다. 객실 일부와 커피숍, 인형의 집[53] 등은 개업식 전에 손님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시설이 완성된 건 3월 1일이고, 개관식만 보름이 지난 3월 17일에 진행하였다. 여담으로 2월 19일에 방문한 첫 손님은 노스웨스트 항공 도쿄 지점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박양과 일본인 오가와양이었다.
<rowcolor=#fff> 당시 언론보도 (조선일보, 1970-02-20) |
1970년 12월, 조선호텔은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등록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974년 9월에는 아메리칸항공에서 자회사인 아메리카나호텔로 외국인 투자 주체가 변경되었다. 당시 아메리칸항공은 전 세계 호텔을 처분하고 항공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조선호텔은 10년 동안 아메리칸항공에 큰 수익을 안겨주며 성공적인 투자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실제로 1973년에는 조선호텔이 전 세계 호텔 중 2위의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1974년 11월에는 미국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와 제56대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가 조선호텔에 투숙하며 호텔의 위상을 높였다. 1976년 2월에는 4억 원을 투입하여 스프링클러 설치와 객실 개보수를 진행하는 등 시설 개선에도 힘썼다.
1979년에는 웨스틴인터내쇼날 호텔이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1981년 웨스틴 조선호텔로 개칭되었다. 이처럼 조선호텔은 아메리칸항공, 아메리카나호텔, 웨스틴 인터내셔널 호텔 등 다양한 외국계 호텔 기업과의 인연을 맺으며 국제적인 호텔로 성장해나갔다. 1983년 국제관광공사는 당시 무리하게 호텔 사업을 확장하던 탓에 적자 규모가 심각하게 불어났고, 보유하던 호텔들을 민영화하였다. 그 중 웨스틴 조선 서울 소유주식은 중앙개발과 신세계백화점에 550억원에 매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중앙개발 주식은 훗날 신세계백화점이 전부 인수하였다.
1995년 6월, 웨스틴 호텔즈 & 리조트 주식을 신세계백화점이 전부 인수함으로써 웨스틴 조선 서울은 완전히 신세계백화점 소유가 되었다. 웨스틴의 호텔 노하우를 전수받으면서 매출액의 일부를 웨스틴 본사에게 지급하는 구조로 운영되는데 이는 나중 조선호텔앤리조트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글로벌 럭셔리 호텔인 웨스틴의 경영 노하우와 서비스 메뉴얼 등을 전수받으면서 축적해온 지식은 훗날 조선팰리스와 그랜드 조선호텔이라는 독자적인 럭셔리 호텔 브랜드를 탄생할 수 있게 해주었다. [54]
2011년, 웨스틴 조선 서울은 4개월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재개관하였다. 이번 리노베이션은 로비층부터 3층까지 총 3개층 공사로 2006년 객실을 시작으로 약 1,000억 원을 투자해 5년 간 진행한 호텔 전체 리노베이션의 마지막 단계다. 이번에 새롭게 리뉴얼돼 선보이는 곳은 로비, 비즈니스 센터, 연회장, 피트니스 클럽, 양식당 '나인스 게이트 그릴'과 로비 라운지 '써클'로 인테리어는 아담 티아니(Adam D. Tihany), 레스토랑과 웨딩 프리뷰룸 컨설팅은 마샤 이와다테(Marcia Iwatate), 신부대기실과 폐백실 디자인은 서정기, 웨딩플래닝은 정리(Jung Lee)가 담당했다.
그랜드볼룸, 피트니스 클럽은 규모를 늘리고, 나인스 게이트 그릴과 써클은 환구단의 전경을 즐길 수 있도록 위치를 이동하는 등 방문 목적에 따라 공간 배치, 동선 그리고 규모를 조절했다. 분주했던 로비는 레스토랑, 연회, 객실 등 고객에 따라 이동 방향이 나누어지며 프론트와 컨시어지 데스크도 '로비 안의 로비' 개념으로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됐다. 나인스 게이트 그릴은 87년 만에 파인다이닝에서 인터내셔날 스타일의 브라세리로 콘셉트가 캐주얼하게 변경됐다. 피트니스 센터인 시티 애슬레틱 클럽은 980평으로 270평이나 늘어나며 호텔 최초로 근골격 재활 트레이닝 장비를 비롯해 최점단 운동 설비, 필라테스 스튜디오 등에도 라운지가 신설되었다. #
2013년에는 로비층에 스위트룸 투숙객과 VIP 고객 전용 공간인 `웨스틴 로얄 클럽'(Westin Royal Club)을 신설하였다. 웨스틴 로얄 클럽은 VIP 고객 전용 체크인·체크 아웃 서비스·여행 안내·레스토랑 예약대행 등을 해주고, 다과 등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더불어 로비 라운지&바 `더 써클'과 저층로비 뷔페 레스토랑 `아리아', 이탈리안 비스트로 `델리 베키아 에 누보' 등 시설도 개선했다. 아리아는 주방장 추천 메뉴 혹은 대표 인기 메뉴를 코스로 구성해 테이블까지 서비스하는 '에볼루또 서비스'를 도입한다. 또 외부 창호 공사 및 녹지 조경을 해 외부 조경을 즐길 수 있도록 환경도 바꿨다. 특히 외부 공간에는 호텔 개관 100년을 기념해 제주에서 공수한 100년 된 팽나무를 심었다. #
이듬해인 2014년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한국에 현존하는 호텔 중 최고(最古)의 호텔이다. 2017년 조선델리와 라운지 & 바를 오픈하고, 나인스게이트를 리뉴얼 오픈하였다. 새로 생긴 라운지&바의 특징이라면 기존에 인기 있었던 화려한 스타일의 웨스턴식에서 벗어나 단조롭고 기본기를 중요시하는 클래식 칵테일을 강조한 점이다. 라운지&바에서는 칵테일이 처음 시작된 170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정통 클래식 칵테일을 만날 수 있다. 또 하나의 구경거리는 내 최초로 도입한 무빙 바이다. 무빙 바는 카트 형태의 움직이는 바 테이블로 바에 앉지 않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자리에서 바로 바텐딩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
같은해 국내 최초로 BMW 740Li 리무진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이는 2010년부터 제공되어 국내에서 유일한 서비스로, 공항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미리 마친 뒤 호텔 내 프런트 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객실로 가는 에어포트 원스톱 서비스다. 인천공항 부스 운영시간은 오전 6시30분~오후 10시30분이며 체크인이 가능한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BMW 740Li 공급은 BMW 코리아의 공식 딜러사인 신호모터스가 담당하며 리무진 서비스는 삼화택시가 맡았다. # 다만, 신호모터스는 2018년 12월 30일까지 영업을 진행하고 그 이후로는 모든 판권을 BMW 측에 반납하고 영업을 종료하였다. [55]
<rowcolor=#fff> BMW 740Li 리무진 서비스 도입 (2017) |
2020년 웨스틴 조선 서울은 기존 조선호텔의 영문명 통일과 브랜드 확장 및 인지도 제고를 위하여 영문명 Chosun을 Josun으로 개칭하였다. 조선호텔의 전통성을 이어가면서도 한국적인 발음을 살린 마스터브랜드 조선 (JOSUN)을 적용한 신 사명은 2021년 1월부터 적용되었다.
다만 이 당시 Josun은 백과사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영문명으로 외국인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 실제로 영어사전과 프랑스어사전 등에는 '조선왕조'를 말하는 조선은 'Chosun'이나 'Joseon'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즉 'Josun'은 외국어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조선호텔은 한국적인 발음을 정확히 표한한 것이 ‘Josun’으로 발음상의 편의를 고려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rowcolor=#fff> BI 변경 전 | BI 변경 후 |
현재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은 대한민국의 비즈니스와 쇼핑의 중심지 서울의 심장부에 위치한 5성급 호텔로, 각국의 대사관, 은행, 정부부처, 고궁과 백화점과 명동에 인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총 462개의 객실과 수영장, 사우나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중식당 ‘홍연’, 하이엔드 스시를 제공하는 일식당 ‘스시조’, 환구단 뷰의 프렌치 레스토랑 ‘나인스게이트’, 이탈리안 레스토랑 ‘루브리카’, 서울 3대 뷔페로 손꼽히는 ‘아리아’, 스타벅스 환구단점 그리고 ‘라운지앤바’와 ‘조선델리’, 고품격 플라워 샵 ‘격물공부’가 함께 하고 있다.
7. 객실
<rowcolor=#fff> 웨스틴 조선 서울 객실 |
<rowcolor=#fff> 객실명 | 면적 | 침구구성 | 비고 |
디럭스 | 36m² | 1 킹베드 | 이그제큐티브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 |
2 트윈 베드 | |||
1퀸&1싱글 | |||
주니어 스위트 | 55m² | 1 킹베드 | |
1퀸&1싱글 베드 | |||
프리미엄 주니어 스위트 | 1 킹베드 | 침대 구역이 마루로 된 것이 특징이다. | |
이그제큐티브 스위트 | 81m² | 1 킹베드 | |
1퀸&1싱글 베드 | |||
리뉴얼 스위트 | 81m² | 1 킹베드 | 침대 구역이 높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한국 전통의 문양을 살린 디자인이 특징이다. |
로얄 스위트 | 177m² | 2 킹베드, 2 베드룸 | |
프레지덴셜 스위트 | 310m² | 2 킹베드, 2 베드룸 | |
† 객실 어메니티: 화이트 티 알로에 컬렉션(White Tea Aloe Collection) †† 사우나 어메니티: 조선호텔앤리조트 마인드풀니스(JOSUN HOTELS & RESORTS MINDFULNESS) |
8. 부대시설
8.1. 다이닝·바
<rowcolor=#fff> 업장명 | 분류 | 위치 | 수용인원 | 영업시간 | |
조선 델리 | 베이커리 | 저층 로비 | - | 매일 | 오전7:00 ~ 오후9:00 |
아리아 | 뷔페 | 저층 로비 |
총 240석 별실 3개 (최대 10명 수용 가능) |
월-목 |
오전7:00 ~ 오전10:00 오전11:30 ~ 오후2:30 오후5:30 ~ 오후9:30 |
금 |
오전7:00 ~ 오전10:00 오전11:30 ~ 오후2:30 오후5:30 ~ 오후7:30 오후8:00 ~ 오후10:00 |
||||
토-일 |
오전7:00 ~ 오전10:00 오전11:30 ~ 오후1:30 오후2:00 ~ 오후4:00 오후5:30 ~ 오후7:30 오후8:00 ~ 오후10:00 |
||||
홍연 | 중식 | 저층 로비 |
총 122석, 별실 10개 (최대 40명 수용 가능) |
매일 |
오후12:00 ~ 오후3:00 오후6:00 ~ 오후10:00 |
스시 조 | 일식 | 20층 |
총 97석, 별실 8개 (스시 카운터 10석) |
매일 |
오후12:00 ~ 오후3:00 오후5:30 ~ 오후10:00 |
더 나인스 게이트 | 미국식 | 로비 |
총 68석 (PDR 16석, Bar 8석) |
월-금 |
오전7:00 ~ 오전10:00 오후12:00 ~ 오후3:00 오후6:00 ~ 오후10:00 |
토-일 |
오후12:00 ~ 오후3:00 오후6:00 ~ 오후10:00 |
||||
라운지 & 바 | 바 | 로비 |
총 82석 (Hall 74석, Bar 8석) |
월-금 | 오전9:00 ~ 오전1:00 |
토 | 오전10:00 ~ 오전1:00 | ||||
일 | 오전10:00 ~ 자정 | ||||
루브리카 |
양식 (이태리식) |
저층 로비 |
총 68석, 별실 1개 (최대 8명 수용 가능) |
매일 |
오전11:30 ~ 오후3:00 오후5:30 ~ 오후10:00 |
웨스틴 클럽 | 라운지 | 20층 | - | 매일 |
조식 월~토: 오전 6시~오전 10시 일요일/공휴일: 오전 7시~오전 11시 칵테일 아워 일~목, 공휴일: 오후 5시~오후 8시 금/토: 오후 5시~오후 9시 50분 |
와인 갤러리 | 와인 | 저층 로비 | - | 매일 |
8.2. 스파·피트니스
<rowcolor=#fff> 업장명 | 분류 | 영업시간 | |
V SPA | 스파 | 매일 | 오전10:00 ~ 오후9:00 |
피트니스 센터 | 헬스장 | 매일 | 오전6:00 ~ 오후10:00 |
시티 애슬레틱 클럽 | 수영장[56] | 매일 | 오전6:00 ~ 오후10:00 |
8.3. 연회장
대연회장인 그랜드 볼룸과 중, 소연회장이 있다. 그랜드 볼룸은 최대 45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며, 최상급 스피커, 8개의 스크린, 182대의 라이트와 콘솔로 다양한 행사를 연출할 수 있다. 환구단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중, 소연회장은 최대 200명의 연회가 가능하다.8.4. 환구단
자세한 내용은 환구단 문서 참고하십시오.<colbgcolor=#837762> 환구단 황궁우 |
고종황제가 대한제국 황제 즉위식을 열었던 곳이다. 환구단의 일부인 황궁우가 위치하고 있다.
9. 대중교통
9.1. 버스
자세한 내용은 을지로입구역 문서 참고하십시오.9.2. 도시철도
10. 여담
-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로 국내 호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 최초의 댄스홀, 최초의 상설 야외 영화관, 최초의 승객용 전동 엘리베이터, 최초의 프렌치 레스토랑과 로스트 비프 등 다양한 서구 문화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영예를 안았다. 그 밖에도 최초의 호텔 내 세탁전문부서, 호텔업계 최초 인터넷 전용회선, VIP 리무진 서비스 등 타 호텔보다 우선하여 혁신적인 서비스들을 최초로 제공하고 있다.
- 이는 1914년 개관한 이래로 변함없이 지속해오던 웨스틴 조선 서울만의 원칙이자 철학이다.
- 히로히토 일본 황태자, 일본 천황가, 스웨덴 구스타프 왕자,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남베트남 까오끼 수상, 미국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미국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하여 20세기의 명사들이 숙박한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한국 전쟁기에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에는 김일성의 초상화가 걸리기도 했는데, 아마 본인이 방문했을 가능성도 높다.
- 오래된 호텔 역사나 서비스 철학, 재건축했던 점 등 일본의 제국호텔과 유사한 점이 많다.
-
1923~1924년 서울에서 가장 선망 받는 피서지 중 하나는 조선호텔이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나 흰 여름 양복을 입고 조선호텔에서 선풍기 바람에 감기 들 근심을 하면서 얼음보다 더 찬 맥주를 마시거나, 아이스크림으로 타오르던 가슴의 불을 끄는 것이 행복이다.” (<개벽> 1923년 38호, 1924년 50호) - 1966년 미국의 우주비행사 월리 시라, 프랭크 보먼이 방한 당시 투숙했던 호텔이다.
- 1985년 웨스틴 조선호텔은 3억 7천만원을 투입해 국제 자동전화 시스템을 완비했다.
- 2015년 일본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가 방한 당시 이 호텔에서 투숙했다. [57]
- 웨스틴 조선 서울 임직원들은 재능기부 차원에서 매달 한 번씩 덕수궁 석조전을 찾아 전문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황궁 정비의 날’로 불리는 이 봉사 활동은 석조전의 목조 마룻바닥과 내부 장식품 닦기, 카펫 세탁과 정비 등을 진행하고 있다.
- 주차장 나가는 길이 오거리로 바로 이어지는데 유일하게 진입 가능한 길로 가려면 크게 우회전하는 수밖에 없다. 말이 우회전이지 사실상 유턴수준으로 크게 돌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안내판과 노면 표시가 너무 단순하고 밤에는 역주행 금지 표지판조차도 거의 안보여서 역주행 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결국 서울 시청역 교차로 차량 돌진 사고에서 역주행이 다시 튀어나와 재조명됐다.
<rowcolor=#fff> |
11. 관련 문서
글로벌 5대 호텔 체인 | ||||
[1]
現 시미즈 건설(清水建設).
한국은행 본점,
경성역과 조선은행 군산지점을 준공한 회사로 1804년에 설립된 회사다. 시미즈 기스케(淸水喜助)가 창립하였고, 1936년 시미즈 테이키치(淸水釘吉)가 사장이 되었다. 본점은 도쿄에 있으며, 경성지점은 1915년에 창설하였다. 당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인 건설업자가 경부선 및 경의선 철도공사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
[2]
Bechtel
[3]
Georg de Lalande
[4]
William B. Tabler
[5]
건립 및 위탁경영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 만철회사)에서 맡겼다.
[6]
호텔 준공에 약 80만원(圓)의 예산을 투입되었다.
[7]
당시 대규모 정식회합의 시초
[8]
당시에는 천황이 아닌 황태자였다.
[9]
現 더 나인스 게이트
[10]
경주
서봉총 및 제129호분의 발굴을 위하여 방문하였다. 이 방문은 고이즈미 아키오가 주도하여 당시 황태자를 한국으로 초청한 것이다.
[11]
1960년 방한 당시에는 미대사관저에서 투숙하였다.
[12]
2층은 AID 경제원조 관련 사무실로, 3층은 직원 숙소로 사용되어 1955년까지 계속되었다.
[13]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교통부가 미군에게 호텔을 이양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14]
이때 당시 정부(제2공화국)는 국무총리 관저로 사용하려고 계획하다가 제3공화국 들어서면서 이 계획을 취소하고 결국엔 관광호텔을 유치하였다.
[15]
8월부터 10월까지 5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개보수공사를 진행하였다.
[16]
이때 공사는 함께 워커힐호텔의 운영권을 인수했으며, 정부가 운영하던 7개 국영 관광호텔을 비롯해 대한여행사·운수사업소·반도호텔도 잇따라 인수했다.
[17]
당시 서울시 부시장, 문화재관리국장, 건축가, 언론인, 대한상의사무국장, 관광호텔협회장 등 13명이 참석하였다. 이 당시 두 가지의 대안이 있었는데 A안은 기존 조선호텔을 철거하고 새로운 호텔을 짓는 것, B안은 기존 조선호텔을 그대로 두고 동측 대지를 활용해 새로운 호텔을 짓는 것이었다. 이 당시만 해도 조선호텔 건물은 53년된 건물이라 조선호텔 건물의 보수비가 수입의 84%를 차지하였다. 효율을 극대화하고 국제적인 수준의 호텔로 거듭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18]
당시 조선호텔 201~204호에서 4박 5일 동안 투숙했다. 201호는 이승만 전 대통령, 서재필 박사, 맥아더 장이 투숙한 곳이기도 하다.
[19]
당시 개관식에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부총리,
백선엽 교통부 장관, 마리은 사드라
아메리칸항공 부사장이 함께하였다.
[20]
아메리칸항공의 자회사. 당시 아메리칸항공은 전세계의 보유 호텔을 전부 처분하고 항공업에만 전념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10년 동안 아메리칸항공이 조선호텔로 톡톡히 재미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1973년에는 전세계 호텔 중 조선호텔이 2위의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1]
4억원을 투입하여 스프링클러와 객실 개보수를 진행하였다.
[22]
1963년부터 1981년까지 웨스틴 인터내셔널 호텔이라는 사명을 사용하다가, 이후 웨스틴 호텔즈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23]
1992년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부터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투숙하고 있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1989년 2월에도 방한한 적이 있으나, 이때에는 낯에 방한하여 약 5시간 동안 정상회담과 오찬, 국회에서 연설을 마친 후 오후에 출국하였다.
[24]
신세계가 (주)조선호텔, 조선비치호텔 경영권을 완전히 인수하였다. 1967년 계약 당시 아메리칸항공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30년 후 한국에게 매각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25]
“웨스틴 조선호텔이 지난 10일 개관 82돌을 맞았다. 우리나라 호텔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호텔은 10일을 기해 한국기네스협회로 부터 ‘한국 最古(최고)의 호텔’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인정을 받은 기쁨도 함께 누렸다.”(1996년 10월12일, 매일경제)
[26]
(주)신세계를 존속법인으로 하고,
(주)이마트를 신설법인으로 하여 분할. 이때 조선호텔은
(주)이마트 산하로 귀속되었다. 당시
(주)신세계 백화점 산하로 귀속된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결국 이마트 산하로 편입되었다.
[27]
1984년 비흡연 고객을 위한 전용 객실을 마련하는 것으로 전 객실 금연 호텔로의 첫걸음을 뗐다. 이후 1995년부터 2006년까지는 20개 층 중 6개 층만을 흡연 객실로 운영했으며, 2007년 3개 층, 2008년 2개 층으로 그 수를 줄여 나갔다. 또한 1995년부터 서울 시내 특급호텔 중 처음으로 전 좌석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해 운영해 오고 있다.
[28]
웨스틴 조선 서울의 개관 100주년을 맞아 교체하였다.
[29]
소믈리에가 엄선한 샴페인,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등 카테고리별 세분화된 와인 섹션과 고급 와인과 빈티지 와인 등을 추가해 약 1000여 종의 와인 리스트를 보유하며 상품 선택의 폭을 넓혔다.
[30]
현재는 폐업했지만 경주조선온천호텔에서 잔재를 찾아볼 수 있다.
[31]
이탈리아 국적으로 태국 방콕의 인드라 리젠트 호텔(Indra Regent Hotel) 호텔 총지배인으로 전임.
[32]
前 샹그리라 호텔 대표이사, 샹그리라 홍콩 호텔 총지배인. 1999년 퇴직
[33]
前 샹그리라 호텔 대표이사, 해운대 조선비치호텔(웨스틴 조선 부산) 총지배인, 현재 홍콩시티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중
#, 아내는 비영리 교육·자선재단 아트 오브 리빙(Art of Living) 한국지부 전 대표 양현희.
[34]
現
메리어트 호텔 앤 레지던스 대구 총지배인.
[35]
조선총독부 철도국 위탁경영
[36]
조선총독부 철도국 위탁경영.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부산, 신의주, 평양, 장안사, 온정리 철도호텔들을 함께 민영화하였다. 이때 호텔 종업원에게 호텔 인수 및 경영권을 주었다. 다만, 기존 건물과 설비를 무료로 대여해주는 대신 철도국은 이익의 절반과 감독권을 가지는 조건으로 계약하였다. 2년 후인 1934년 다시 국영화되었다.
[37]
1967년 8월 8일, 주식회사의 형태로 설립된다.
[38]
사명변경
[39]
신세계와 인적분할
[사명변경]
[사명변경]
[42]
웨스틴의 모기업이었던 스타우드가 2016년에
메리어트와 인수합병되었기 때문이다.
[43]
국내 최초 승강기는 1910년 조선은행에 설치된 화폐 운반용 수압식 승강기와 요리 운반용 리프트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의 에스컬레이터는 1941년 서울 화신백화점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44]
당시 조선호텔 객실 중 가장 좋은 방이었다. 오늘날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해당한다. 각종 외빈, 이승만 대통령, 서재필 박사, 맥아더 장군, 백범 김구 선생 등이 투숙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제3공화국 출범 전진기지였던 민주공화당 창당작업(1963년)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45]
‘백우드 협약(白, C. T. Wood)은 한국경제 재건이 UN과 미국의 원조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리고 그 원조 하에서 통화·재정의 안정, 단일외환율의 설정을 중심으로 하는 가격 정책의 확립, 자유기업체제의 확립, 미국의 대외원조 물자를 받은 국가의 정부가 국내에 팔아서 얻은 자금을 적립한 대충자금(對充資金, counterpart fund)의 운용 등 경제시책의 방향을 규정한 조약이다.
#
[46]
군 징발이 해소된다는 것은 미군 소유의 조선호텔이 대한민국 정부 교통부 소속으로 환원되는 것을 뜻한다.
[47]
1967년 1월 10일
매일경제에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당시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객실 총수는 1,327실에 불과하고 그 가운데 국제관광공사 소속 435실만이 괜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열악한 시설들로 가득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48]
엎친데 덮친격 1966년 12월 서울은
아시안 게임 개최지로 선정되어 1970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대규모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엔 서울에 대형 호텔이 턱 없이 모자라던 실정이었다. 이에 정부는 재건축간담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재건축 시행을 결정하였다. 외국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피할 수 없던 결정이었다. 다만, 1968년 3월 아시안 게임 유치를 포기했다. 당시 서울시는 고가도로 건설, 시민 아파트 건축, 세운상가 건설 등 여러 건설 사업을 벌이느라 재정압박이 심했던 탓에 아시안 게임을 유치했다간 서울시가 파산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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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한 달 만에 대형 국제행사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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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실 54실, 보통실 460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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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4층이다. 동양사람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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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17층이다. 13층과 4층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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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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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신라호텔이나 롯데호텔도 개관 당시에는 일본 호텔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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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해당 서비스가 제공되는지는 호텔에 문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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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창이며 사진이 예쁘게 잘 나오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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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롯데호텔은 자위대행사 거부로 잠깐 일본 정부와 냉랭한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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