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00:14:25

요르요스 아베로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Averof_Today2.jpg
성능제원
전장 140.5m
전폭 22.2m
높이 7.18m
기준배수량 9,832t
최대출력 20,000hp
최대속력 23kt
항속력 12kt로 2,672해리
무장 23.4cm 연장포 2기
19cm 연장속사포 4기
76mm 단장속사포 16기
47mm 단장기총 2기
45cm 어뢰발사관 3기
탑재기 수 없음
승원 684명

요르요스 아베로프(Θ/Κ Γεώργιος Αβέρωφ)는 그리스 해군 장갑순양함으로 함명은 이 함을 구입할 당시 대금의 3분의 1을 기부한 그리스의 대부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본 함은 1911년 취역부터 현재까지 남아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장갑순양함이기도 하다.

1829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개입에 의해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그리스 왕국 에게해를 끼고 동쪽에 위치한 오스만 제국과 긴장관계가 계속되었다. 유럽의 환자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오스만 제국이 약해졌다 해도 소국 그리스 왕국에겐 여전히 강적이었다.

한편 오스만 제국은 1896~97년 크레타 전쟁에서 그리스 해군에게 완패할 정도로 몰락할대로 몰락한 상태였던 자국의 해군 재건에 나섰다. 영국으로부터 군사 고문단을 초빙해 해군 장교와 수병을 양성하고 영국과 독일 등으로부터 장갑함과 프리깃, 잠수함 등을 대거 사들였는데, 여기에 당시 그리스 해군 전력으로는 이길 수 없었던 배수량 1만톤 급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브란덴부르크급 전함 2척을 구매한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이에 대항해 그리스 해군은 배수량 1만톤급의 최신형 장갑순양함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1907년에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 자국 조선사인 오를란도사에 발주를 넣었으나 예산 부족으로 발주가 취소되어 건조가 중단된 피사급 장갑순양함 3번함 가칭 <X>이 있었는데,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오를란도사는 때마침 최신형 장갑순양함을 구매하길 원하던 그리스 정부에게 구매 대금을 원 가격의 3분의 1인 30만 파운드로 깎아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금액도 약소국 그리스 입장에선 엄청난 부담이었는데, 운 좋게도 몇 년 전 당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해상왕(海商王)이며 대부호였던 요르요스 아베로프(Γεώργιος Αβέρωφ, 1815~1899)가 사망하면서 유언으로 군함 구입에 쓰라고 그리스 해군에 30만 파운드라는 대금을 기탁했었고, 아베로프가 기탁한 이 대금으로 그리스 해군은 무사히 최신형 장갑순양함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후 그리스 해군이 구매한 피사급 장갑순양함 3번함은 1910년 3월 12일 진수식을 거쳐 1911년 5월 16일에 완성 후 그리스로 인도되었고, 그리스 해군은 함선 구매에 도움을 준 아베로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함선에 그의 이름을 붙었다.

취역직후 그리스 해군의 기함으로 해군의 핵심 전력이 된 아베로프은 1912년 10월 17일에 발생한 제1차 발칸 전쟁에서 해방전함 이드라급 3척과 구축함 14척을 거느리고 오스만 제국 해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8일부터 20일에 걸쳐 다르다넬스 해협봉쇄를 노린 렘노스 섬 작전을 성공하자 1912년 12월 16일에 오스만 제국해군은 그리스에 반격을 개시했다.

전노급전함 발바롯사 하이레딘급의 튈구드 루이스와 발바롯사 하이레딘2척과 장갑함 아사르 테부픽,방호순양함 메지디에와 구축함 4척으로 돌격해 온 오스만 제국해군에 대해 그리스 함대는 기함 아베로프와 이드라급 해방전함 3척과 구축함 4척으로 반격을 실시했다.

오스만 제국함대는 해안에서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 90도로 선회했다. 이에 아베로프의 콘드리오티스 소장은 속도가 빠른 함선들을 거느리고 20노트를 하명한 후 나머지 함에겐 자유행동을 지시했다. 아베로프를 기함으로 한 고속함대는 횡렬진, 장갑함 3척은 횡렬진을 따라 전진했다.

오스만 제국함대는 9,000m에서 사격을 개시했는데 중장갑의 프랑스제 해방전함을 방패로 한 아베로프는 서로 포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리스 해군의 맹렬한 기세에 놀란 오스만 제국함대는 다다넬즈로 철수하려 했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오스만 함대는 서로 먼저 나아가려고 하다 행렬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리스의 압승으로 끝난 이 해전은 엘리 해전으로 전사에 남았는데 이 이름은 1914년에 중국을 경유하여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경순양함 엘리에 그 이름이 부여되었다. 1913년에 다시 오스만 함대가 주력함 4척과 구축함 14척을 거느리고 다시 다다넬즈 해협을 넘어왔다.

그러나 다시 그리스 함대가 출동해 아베로프가 그 위용을 자랑하자 여기에 놀란 오스만 함대는 다시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콘드리오티스 소장은 이를 추격해 장거리 함포사격을 실시하면서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 약 2시간만에 5,000m까지 접근해 명중탄을 먹였다.

포격을 당한 발바롯사 하이레딘과 튈구드 루이스는 격렬한 화재가 발생했지만 전노급전함답게 다다넬즈 요새의 사격범위 안으로 도망쳤다. 허나 발바롯사 하이레딘의 2번 주포탑은 사용불능 상태가 되었고 튈구드 루이스도 포탑 1기가 파괴되었으며 장갑함 아사르 테부픽은 대파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그리스 해군의 피해는 운이 나쁜 수병 1명의 중상에 그쳤다. 그리스 함대는 건재했던 반면 오스만 제국함대는 전투함 2척이 중파되고 장갑함 1척이 대파되면서 31명의 사망자와 82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번에도 그리스 해군의 승리로 끝난 이 해전은 레므노스해전으로 전사에 남아 이 이름은 미국으로부터 인도받은 준노급전함 미시시피급 2척 중 2번함인 레므노스에 영광스런 이름이 부여되었다.

제1 차 세계대전 연합군 측에 참가한 그리스는 함대를 프랑스로 보냈다. 프랑스 해군과 함께 선단호위에 종사한 아베로프는 1차대전 후 근대화 개장을 행했다. 노후화된 엔진을 교체한 흔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리스 해군의 중핵을 담당한 아베로프는 제2 차 세계대전시엔 영국함대와 함께 지중해에서 추축국의 함선과 상대하면서 수송과 초계를 담당했다.

전후 1952년 8월 1일에 퇴역함이 된 아베로프는 팰리온 만으로 옮겨져 현재 그리스를 대표하는 전쟁기념 박물관함으로 개장되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