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00:01:06

양상민

SUWON SAMSUNG BLUEWINGS LEGEND
파일:이미지_2024-03-25_222358374.png
수원 삼성 블루윙즈 No. 3
<colbgcolor=#e71a0f><colcolor=#ffffff> 이름 양상민
梁相珉 | Yang Sangmin
출생 1984년 2월 24일 ([age(1984-02-24)]세)
인천직할시
(現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 체중 78kg
직업 축구 선수 ( 레프트백 / 센터백)
축구 코치
프로 입단 2005년 전남 드래곤즈
소속 <colbgcolor=#e71a0f><colcolor=#ffffff> 선수 전남 드래곤즈 (2005~2007)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2022)
안산 경찰청 (2013~2014 / 군 복무)
감독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2 / 플레잉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3 / 2군 코치)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4/ 2군 코치)
프런트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3 / 스카우터)
국가대표 2경기 ( 대한민국 / 2005~2006)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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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71a0f><colcolor=#ffffff> 학력 인천석남서초등학교
제물포중학교
강화고등학교
숭실대학교 스포츠학부 (02학번 / 졸업)
가족 아내, 아들 양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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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푸른 늑대[1]
빅버드 선수소개 멘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의 전 수비수. 본래 레프트백이었으나 2015 시즌부터 센터백도 같이 겸해서 뛰기도 했다.

2007년 입단한 이후, 2022년 은퇴 이전까지 함께한 수원의 프랜차이저다.[2] 이후 선수 은퇴 후, 2023시즌부터 수원의 2군 코치를 맡았다가 현재는 스카우터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2. 선수 경력

2.1. 전남 드래곤즈

숭실대학교 축구단 시절부터 날카로운 왼발 킥을 주무기로 주목을 받았는데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포지션은 왼쪽 측면 공격수 내지 측면 미드필더였다.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전남 드래곤즈와 계약했고, K리그 무대에 데뷔하면서부터 왼쪽 윙백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후 포백을 사용하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면서 왼쪽 풀백으로 기용된다.

K리그에 데뷔하자마자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며[3] 주전으로 활약한다. 이때의 활약에 힘입어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던 국가대표팀까지 소집 되었다.

2006년 FA컵 준결승과 결승에서 모두 풀타임 출전하는 등 구단의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2007 AFC 챔피언스 리그 1차전 방콕대 원정, K-리그 1,2 라운드에 모두 풀타임 출전한 뒤 팀을 떠났다.

2.2.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시즌이 갓 개막한 3월 13일, 트레이드를 통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다.[4]

2.2.1. 2007 시즌

시즌 개막 후 합류했기 때문에 후순위 등번호인 30번을 배정받았다.

3월 31일 마계대전 원정에 선발 출전하며 수원 데뷔전을 치렀고, 프리킥으로 나드손의 헤더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데뷔전에서 첫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합류 직후 기존 주전이던 박주성, 조원희를 완벽하게 밀어내고 닥주전으로 발돋움하며 차범근 감독의 신임을 한몸에 받는다.

5월 23일 하우젠컵 B조 경남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막판 남궁웅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대승과 다음 라운드 진출에 기여했다.

5월 30일 하우젠컵 6강 성남과의 홈경기 연장 전반 추가시간에 나드손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준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6월 16일 경남과의 홈경기에서 전반 40분 에두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며 역전승에 기여했다.

9월 22일 인천 원정에서 크로스로 에두의 득점을 도우며 팀의 8경기 무패 행진에 기여했다.

결국 정규리그 2위에 기여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의 도장깨기 희생양이 되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며 아쉬운 시즌이 됐다. 그래도 양상민은 이적 직후 주전을 차지하며 밝은 미래를 계획했다.

K-리그 22경기 3도움, 리그컵 9경기 2도움, FA컵 2경기
시즌 총 33경기 5도움

2.2.2. 2008 시즌

등번호 3번을 처음 단 시즌이다.

지난 시즌처럼 시즌 초반 포백의 왼쪽 풀백 주전으로 나섰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는데, 차범근 감독이 마토, 곽희주, 이정수로 이어지는 리그 최고의 센터백 세 명을 동시에 기용하기 위해 양상민을 희생시키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정수나 마토를 왼쪽 풀백으로 두고 나머지 두 명을 센터백으로 세우거나 아예 스리백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양상민도 어쩔 수 없는 게, 우측 풀백에는 2년 전까지 국대 주전이던 송종국이 건재했기 때문에 양상민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5월 들어 마토가 부상을 당하자 차범근 감독은 다시 양상민을 중용하고 양상민은 출전하는 리그와 리그컵 경기에서 무패 행진에 기여하며 기회에 보답한다.

하지만, 6월 들어 마토가 복귀하고 남궁웅, 김대의, 홍순학, 문민귀 등 윙어 출신 선수들이 풀백으로 포지션 변경하며 양상민은 로테이션으로 출전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리그컵 부산전 전반 추가시간 다이렉트 퇴장을 당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경쟁에서 밀린다.

결국 수원은 K-리그, K리그 리그컵 더블을 거뒀지만 양상민은 지난 시즌에 비해 로테이션 자원으로 밀리며 아쉬운 시즌이 됐다. 그래도 프로 4년 차에 국내에서 들어볼 수 있는 모든 대회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K-리그 15경기 1도움, 리그컵 7경기 1도움, FA컵 2경기
시즌 총 24경기 2도움

2.2.3. 2009 시즌

지난 시즌과 달리 거의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 및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FA컵은 물론 ACL을 소화하는 팀에서 주전 선수로 완벽히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팀은 심한 부진에 빠지며 ACL과 리그컵에서 모두 탈락한데다가 리그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아쉬운 시즌을 보내게 됐다.

그리고 양상민 개인적으로 데뷔 이래 어느 대회에서도 어시스트를 기록하지 못한 시즌이 됐다. 그래도 FA컵 우승을 경험하며 수원에서 첫 FA컵 우승을 들어올렸다.

K-리그 16경기, 리그컵 2경기, FA컵 3경기 1득점, ACL 6경기
시즌 총 27경기 1도움

2.2.4. 2010 시즌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전남에서 사용하던 28번으로 옮겼다.

시즌 초반부터 주전 왼쪽 풀백으로 꾸준히 출전했다. 하지만 팀은 지난 시즌보다 더한 부진에 빠지며 리그 12라운드 기준 2승 1무 9패라는 최악의 스타트를 보였고,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사태를 맞이한다.

후임 감독으로 윤성효 감독이 부임하는데 윤성효는 양상민이 숭실대 4학년에 사제의 연을 맺은 사이이다. 수원 선수단 중 누구보다 윤성효의 전술을 잘 이해하고 있던 양상민은 주전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수원의 상승세에 기여한다.

비록 ACL은 8강에서 성남에 패하며 탈락했고 리그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했지만, FA컵 우승에 기여하며 수원에서 네 시즌 동안 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많은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K-리그 20경기 3도움, 리그컵 3경기, FA컵 5경기, ACL 7경기
시즌 총 35경기 3도움

2.2.5. 2011 시즌

자신을 상징하는 등번호 3번으로 돌아온다.

올 시즌도 양상민은 주전 왼쪽 풀백으로 나선다. 무엇보다 오버래핑 후에 날리는 송곳같은 왼발 크로스로 수원 좌측면에서 염기훈과 엄청난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FA컵 3연패를 노리는 팀에서 결승전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외에도 리그와 ACL까지 트레블을 노리는 팀에서 상당히 많은 경기를 소화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없이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K-리그 23경기 1도움, 리그컵 1경기, FA컵 2경기, ACL 8경기 1득점
시즌 총 34경기 1득점 1도움

2.2.6. 2012 시즌

개막전부터 부상을 당해 신세계와 교체아웃됐고, 4라운드 스리백의 스토퍼로 출전하며 복귀했다. 이후 늘 그랬듯 꾸준히 주전 왼쪽 풀백으로 출전하고 있다.

7월에 부상을 당해 약 한 달 간 결장했지만 복귀 후 다시 주전으로 뛰었다. 여름에 국가대표 수비수 최재수가 영입됨에 따라 로테이션으로 출전하거나 최재수가 윙어로, 혹은 양상민이 센터백으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스플릿 라운드 부산과의 홈경기에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K-리그 29경기 2득점 3도움, FA컵 2경기 1득점
시즌 총 31경기 2득점 4도움

2.2.7. 경찰 축구단

2012년 시즌을 마친 후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경찰 축구단에 입대한다.

2013~2014년 2년 동안 등번호 3번을 달며 뛰고 2014년 말 수원으로 복귀했고 등번호 3번을 되찾았다. 2014 시즌엔 수원에서 리그 3경기를 소화했다.

2.2.8. 2015 시즌

2015년부터는 홍철 때문인지 레프트백이 아닌 중앙 수비수를 맡게 되었는데 초반에는 영 좋지 않은 활약 때문에 욕을 정말 많이 먹었다. 그러나 수원의 수비 문제는 양상민보다 왼쪽의 홍철이 더 심각했고, 양상민은 시간이 갈수록 중앙 수비수로도 잘 뛰게 되었다. 결국 조성진을 밀어내고[5] 구자룡과 함께 중앙 수비를 이끌어 나갔다.

2.2.9. 2016 시즌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감바 오사카와의 홈경기에서는 레프트백으로 출장했다.
이후 뜬금포로 FA컵 결승전에 중앙 수비수로 출전했는데, 준수한 패싱력으로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 점유율 유지와 수비력 모두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결국 FA컵 우승 주역의 한 명이 되었다.

2.2.10. 2017 시즌

2017년 시즌은 부상이 장기화되면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최종전인 전북전에서 준수한 수비와 빌드업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뽐냈다.

2.2.11. 2018 시즌

2018년 시즌은 상반기에는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렸지만, 후반기에 부상을 털고 스리백의 한 축으로 그나마 답이 없는 수원 수비진 가운데, 유일하게 준수한 활약을 보이는 중이다. 매튜마저 이적한 가운데 양상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 시즌이 되었다.

2.2.12. 2019 시즌

2019년에는 주전 수비수였던 민상기가 부상당하자 백업으로 출전하기 시작했는데 기량이 저하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우려를 받았다.

그러다가 결국 제대로 사고가 터지고 마는데, 4월 20일 경남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구자룡, 박형진과 쓰리백을 구성하여 선발 출전하였으나 전반전 초반부터 불안한 백패스를 시전하더니 대인 방어에 실패하여 연이은 크로스를 허용하고 무리한 태클을 하는 등 연달아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팀이 1:0으로 앞서 나가던 전반 39분 김준범의 슈팅을 막으려다 핸드볼 파울로 PK를 내주고 말았다. 그 이전 전반 37분에는 경고까지 받았고, 팀이 3:2로 앞서 가던 후반전 추가 시간 최재수의 크로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배기종의 동점골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다 이긴 경기를 제대로 터뜨려 버렸다. 더욱이 경기 종료 직전 무리한 파울로 박스 바로 앞에서 프리킥을 헌납하는 등 데뷔 이래 역대 최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력을 선보였다.

5월 5일 FC 서울과의 슈퍼매치 홈 경기에 선발 출전하였다. 그리고 전반 3분 만에 황당한 패스 실수를 보여 주며 팬들을 좌절로 이끌었다. 그 외에는 그럭저럭 무난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여전히 대인 방어에서 판단 미스를 보이는 등 불안한 모습을 이어 갔을 뿐 아니라 전반 종료 직전 데얀의 헤딩슛이 본인 바로 앞에 떨어지는 것을 달려들면서 발만 갖다 댔어도 골이었는데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었다. 결국 초대형 사고를 치고 마는데, 팀의 승리가 눈앞으로 다가온 후반전 추가 시간 5분 박주영을 시원하게 걷어 차면서 프리킥을 내줬고 이 프리킥이 결국 동점골을 내주는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2020년까지 재계약했다. 주전 멤버는 아니더라도 수원에서 오래 뛴 멤버인만큼 구단에서도 오랜기간 같이 갈 생각인 것 같다.

2.2.13. 2020 시즌

9월 16일 포항전에서 역대 7번째 수원 소속 300경기에 출전했다.


2020 ACL에선 정말 베테랑의 품격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미 코 뼈 부상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살난 스쿼드의 가장 맏형으로써 카타르로 날아가 수원의 8강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8강 경기에선 중간에 발을 밟혀 발가락 뼈가 금이 갔는데도 경기 끝까지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0년 11월 16일 수원삼성은 양상민과 내년시즌까지 재계약했다고 공식발표했다.

2.2.14. 2021 시즌

2021 시즌은 저번 시즌에 얻은 코 부상과 발가락 수술로 인해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으나, 민상기, 장호익등의 후배들이 활약하며 맏형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꾸는 중.

2021년 8월 8일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부상에서 복귀이후 오랜만에 선발출장했지만 51분에 다시 부상당하면서 최정원과 교체아웃 되었다. 8월 9일 인스타그램에 재활게시글을 올렸다.

2021시즌 수원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9경기 출전.

2021년 12월 23일, 수원 삼성과 플레잉코치로 2022시즌까지 재계약했다. 이로써 수원과 16년째 동행을 이어가게 되었다.

2.2.15. 2022 시즌

플레잉 코치로서 맞이하는 첫 번째 시즌이었기에 아무래도 코칭스태프로 활동하고 있고, 새로 영입된 불투이스가 양상민과 비슷한 왼발잡이 센터백이고 바로 주전으로 나서고 있었기 때매 리그초반 본인은 경기에 나서진 않았다.

하지만 불투이스에게 너무 과부하가 오자, 2022년 8월 3일 대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좌측 스토퍼로 시즌 첫 선발 출전했다. 투지 넘치는 수비로 민상기와 함께 베테랑의 관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수원의 리그 11경기 무승을 끊는 천금같은 승리에 보탬이 됐다. 경기 종료 후 포효하며 이종성과 양손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은 수원 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어진 수원 더비에서도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만 소화하고 고명석과 교체 아웃됐다.

2022년 9월 7일, 슈퍼매치가 끝나고 불과 3일 뒤 울산 현대 원정에 1.5군을 투입한 수원 라인업에 포함되며 좌측 스토퍼로 선발 출전했다. 무난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후반 17분에 고명석과 교체되었다.

파이널 B그룹 1라운드인 성남 FC 원정에서 오랜만에 고명석과 함께 포백의 센터백으로 선발출전하였다. 나이와 경기감각이 무색하게 경기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불투이스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고 팀의 2:0 완승에 공헌했다.

파이널 라운드 3번째 경기인 대구 FC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김태환과 교체출전하였다. 팀이 지고 있자, 본인이 센터백 자리로 들어가는 대신 불투이스를 전방으로 투입시켜 상대 진영에서 공중볼을 따낸 뒤 득점 찬스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중볼이 죄다 대구 수비진에 컷팅당하며 별 활약도 하지 못했고, 팀도 1:2로 패하며 승강 플레이오프행이 가까워졌다.

10월 26일 승강 플레이오프행 1차전 지지대 더비 원정에 불투이스 대신 선발 출전했다. 약 80분 간 상대 우측에 백성동과 홍창범을 잘 막아내며 분전했고 후반 막판 불투이스와 교체 아웃되며 맡은 바 임무를 잘 수행했다. 팀은 무실점 무승부를 거뒀다.

그러나 스플릿 라운드 도입 직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것으로 본인의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폼이야 아직 나쁘진 않지만 연봉이 너무 높아 은퇴하거나 이적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안양과에 승강 플레이오프 끝에 잔류 확정 후 “난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퇴장하는 것이 수원 팬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

이후 스포츠니어스의 보도에 의하면 은퇴 전 전남으로 복귀가 유력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3. 지도자 경력

하지만 2023년부터 수원 삼성 2군 코칭스탭에 합류한다고 오피셜이 떴다. 은퇴식은 2023년 2월 25일 광주 FC와의 홈 개막전에서 치렀다. 하지만 수원 공식 유튜브에선 쇼츠 이외에 별다른 영상이 올라오지 않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팀에서 오래 뛴 만큼 차후 감독의 가능성도 있다. 이때 플레잉 코치로 1차 연수는 끝내었으니, 본격적으로 정식 지도자 단계와 P급 라이센스 수강 절차를 밟을 듯 보인다. 단 이러면 1년 선배 염기훈과 기수가 꼬이기에[6] 교통정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7]

김병수감독이 선임되면서 2군 코치에서 스카우터로 보직이 변경되었으나, 김병수 감독이 경질된 이후로는 다시 코치직으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24시즌을 앞두고 정식 2군 코치로 선임되며 코칭스탭에 돌아왔다.

2024년 6월 5일 변성환 감독이 선임되면서 코치진 개편으로 수원을 떠나게 되었다.

4. 우승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주연급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준수한 스쿼드 멤버로서 우승 타이틀을 획득해내는 우승 DNA가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4개[8]의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개인 통산 FA컵 우승 5회[9], 리그 우승 1회로 13년간 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또, 수원 삼성 블루윙즈 FA컵 5회 우승 중 무려 4회의 우승을 함께 한 선수이자 마지막 K리그1 우승 멤버이다.[10]

5. 플레이스타일

현역시절엔 빠른 발과 준수한 크로스, 좋은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파이터형 레프트백이었다. 또한, 수비지능과 리더십도 갖추고 있어서 센터백도 가능했으며, 또 발밑도 부드러워서 볼 배급 혹은 연계도 가능했다.

단점으로는 심하게 거친 플레이로 비매너 논란을 종종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카드 수집의 위험을 항상 안고 있어야 했다. 또한 머리보단 몸을 쓰는 플레이가 많아 부상도 꽤 있었으며, 전반적인 플레이가 투박한 점도 다소 아쉬웠다.

그래도 수원에서는 팀이 필요한 어느 위치에서나 제 몫을 하며 거의 준레전드 대우를 받았다.

6. 여담

  • 마초적인 외모와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늑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수원으로 이적한 이후에는 주로 '푸른 늑대'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다만 좋게 말해 공격적인 스타일이지, 심하게 거칠다. 그리고 2016시즌 부터는 부상이 잦다. 간혹 출전하는 경우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데, 그 이후 경기를 부상으로 못나오는 악순환의 연속.
  • 예전 슈퍼매치 때마다 서울 고요한을 상대로 한 반칙이 유독 잦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포지션상 경합할 수밖에 없는 위치임을 고려해야 한다지만 2015년에는 허벅지를 가격하다 사후징계 2경기 출장 정지를 받아 그대로 시즌 아웃이 된 바가 있고 #, 2016년 4월 30일 경기에서는 염기훈에게 걸려넘어진 고요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는 척 하다 머리를 밀쳐버리는 기만적인 행동을 했다. # 2019년 어린이날 펼쳐진 그 해 첫 슈퍼매치에서는 박주영을 페널티박스 바로 밖에서 가격하는 바람에 종료 1분 전에 세트피스 찬스를 내줬는데, 이게 자신이 갈궈오던(?) 고요한에게 패스로 연결됐고 그 고요한이 쇄도하다가 노동건 골키퍼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을 헌납, 4년만의 승리를 극적으로 날려버렸다. 고요한에게 직접 파울한 게 아닌데도 고요한이 결정적 기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만 것.
  • 전남에서 뛰던 시절 당시 허정무 감독이 양상민을 몹시 아껴서 자신의 딸과 맺어 주려 하기까지 했다는 카더라가 있었는데, 어느 쪽에서는 또 자신의 딸이 너무 양상민에게 매달려서 바로 수원으로 내쫓아버렸다는 설도 있었다...
  • 자신을 따라 축구의 길을 걷고있는 아들을 경기장에 잘 데리고 다닌다. 다만, 아빠랑은 달리 오른발잡이라고 하는데 처음에 왼발 연습을 시켰는데 화를 내며 무척이나 거부했다고 한다.
  • 에이전트를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하며 돈과 관련해 상의할 일이 생기면 아내와 상의했다고 한다.
  • 은퇴 이후 그의 상징인 등번호 3번을 가장 아끼는 후배라고 알려진 장호익에게 물려줬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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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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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드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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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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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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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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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23)
[O] 원 클럽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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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 시즌부터는 아예 늑대 울음소리도 같이 나왔다. [2] 사실 프로데뷔는 전남 드래곤즈에서 해서 엄밀히 말하면 원클럽맨은 아니다. 하지만 수원에서 뛴 지 햇수로 10년이 훌쩍 넘을 정도로 오래되어서, 구단과 팬들도 원클럽맨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고 있다. [3] 데뷔전에서부터 세트피스 전담키커를 맡는 위엄을 보여주었고 이날 경기에서 왼발 프리킥으로 골대를 한 번 맞추었다. [4] 수원은 중앙 수비수 고경준에 현금 3억을 얹어주고 양상민을 데려왔는데, 고경준은 전남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고 내셔널리그, 챌린저스리그를 거쳐 현재 무적 상태였다가 은퇴. [5] 양상민이 중앙 수비수로 자리매김하면서 서정원 감독은 조성진을 당시 부상 중인 김은선을 대신하여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한다. 조성진 또한 시간이 갈수록 미드필더로도 잘 뛰게 되면서 양상민-조성진 모두에게 득이 되었다. 서정원 감독의 지도력을 알 수 있는 부분. [6] 염기훈은 2023시즌에 '플레잉코치'로 등록되어서, 선수생활을 더 오래하기 때문이다. [7] 심지어 둘 다 성격도 비슷하여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크다. [8] FA컵 3회(전남 1회, 수원 2회), 리그 우승 1회(수원) [9] 팀 최다 우승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5회)와 동률. [10] 현재 수원의 스쿼드에서 유일한 리그 우승 멤버이다.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염기훈도 2010 시즌에 영입되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