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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9511><colcolor=#00386a> 愛新覺羅 胤祥 애신각라 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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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호 | 화석이현친왕(和碩怡賢親王) |
시호 | 충경성직근신렴명현(忠敬誠直勤慎廉明賢) |
출생 | 1686년 11월 16일 |
사망 | 1730년 6월 18일 (향년 43세) |
부친 | 청 성조 강희제 |
모친 | 경민황귀비 장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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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의 13번째 황자(皇子).2. 생애
강희제의 후궁 경민황귀비 장가씨 소생의 황13자로 태어났다. 10살 때 친모가 사망하였다. 황4자인 옹정제가 쓴 행장에서는 자신이 연장자로서 어린 인샹의 교육을 맡았다고 한다.[1]기마와 궁술 등 무예에 출중한 황자들 중 한 명이었으며[2] 시문과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강희제의 총애를 받던 황자였다. 강희 37년(1698)부터 강희 47년(1705)까지 강희제는 어딜 가든 윤상을 데리고 다녔다. 강희 43년 황8자 윤사의 스승 하작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윤상을 일컫어 "십삼전하는 황상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였다. 강희제는 윤상을 신임하여 황태자 윤잉을 보좌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윤상은 윤잉이 비행을 저질러도 강희제에게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황태자당을 결성했다. 결국 강희 47년 윤잉이 폐위됐을 때 강희제가 사적으로 한 말을 윤잉에게 흘린 것이 발각되어 강희제의 미움을 사서 유폐되었고 강희 연간에서는 그 어떤 봉작도 받지 못했고, 계속 황궁에 머물렀다. <옹정왕조> 등 강희 말년을 묘사한 각종 매체에서도 태자를 옹호하다가 유폐되었고, 태자를 실드치면서도 적당히 몸을 사리던 옹친왕 대신 행동대장 노릇을 하다 고생을 했다고 설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연구에 따르면 통설과 달리 옹정제와 인샹은 오랫동안 접점이 없고 태자 윤잉이 폐위된 뒤로 가까워졌으며 인샹이 태자의 측근으로서 태자를 옹호해서 유폐된 것은 맞지만 10년 동안 유폐되지도 않았다고 한다.[3] 윤상은 강희 48년 초에 이미 풀려났다. 하지만 강희제의 용서를 받지 못했고 신년인사를 할 때도 불충불효하다는 비난을 받았다.[4]
강희제 사후 옹친왕 윤진은 1723년에 옹정제로 즉위하게 된다. 그 후 피휘로 인해 윤상(允祥)으로 개명되었으나, 윤상의 사후에 그의 충성심에 감동한 옹정제가 윤상(胤祥)으로 다시 바꿔주었다.
옹정제는 아버지 강희제가 승하한 후 윤상을 강희제의 장례에도 참석케 했다. 또한 옹정제는 당시 모든 작위를 박탈당했던 윤상에게 화석이친왕(和硕怡亲王)이라는 최고의 작위를 내리며, 자신의 가장 큰 지지자였던 윤상에게 많은 특혜를 주었다. 심지어 이 작위는 세습을 허락함으로써 청나라에서 세습이 가능했던 12개 철모자왕(鐵帽子王) 중 9번째로 받은, 그것도 순치 시절까지의 개국공신들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임명된 세습망체 철모자왕 작위였다. 또한 옹정제는 윤상의 친모인 장가씨를 경민황귀비로 추존시키고, 후궁으로는 청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황제인 강희제와 합장시켰다. 그걸로도 모자라 윤상의 외가인 장가씨를 포의에서 만주 상삼기 중의 하나인 양황기로 올려주기까지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옹정제가 황권 강화를 목적으로 설치한 군기처에 들어감으로써 청나라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덕분에 윤상은 옹정제의 다른 형제들이 모두 옹정제에게 비참하게 숙청을 당할 때도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군기처에서 악명 높은 일 중독자였던 옹정제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기 때문에, 1730년에 45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인샹이 죽은 후 옹정제는 자신이 가장 신임했던 형제를 위해 행장을 썼는데 반은 아이신기오로 윤스에 대한 비난이고 반은 인샹에 행적에 대한 찬사다.
슬하에 9남 5녀의 자식을 남겼다. 이 중 4번째 딸이었던 화석화혜공주[5]는 옹정제가 직접 데려다 키웠다고 하며[6] 죽은 후 이친왕의 작위는 7남인 홍효에게 이어졌다.
3. 가족 관계
정실인 적복진 조가씨를 총애한 것으로 유명하며, 14명의 자녀들 중 7명이 조가씨 소생이다. 조가씨가 무려 7명의 자녀를 출산하며 이친왕의 부인들 중 가장 많은 자녀를 낳은 반면 이친왕의 다른 부인들은 대부분 자녀가 한 명밖에 없고 많아봐야 두 명이 전부인 걸 보면 이친왕이 조가씨를 각별히 총애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청 황족들이 정략혼을 통해 맺어진 적복진이 아닌 측복진이나 서복진 사이에서 자녀를 많이 낳은 것과 대조적이다.[7] 적복진인 조가씨의 나이는 이친왕과 동갑으로, 부군과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본인은 옹정제의 총애를 받고 옹정제의 치세동안 청나라 최고의 실력자였지만 슬하의 아들들은 사건 사고가 많았다. [8]
- 강희제가 옹정제에게 폐태자 윤잉의 계승자인 홍석를 차기 계승자로 지명하라는 유조를 남겼다는 소문이 돌았고, 건륭제는 이친왕의 아들 홍창과 홍교가 홍석과 사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처벌했다.[9] 그 외에도 홍석이 내무부 속하의 사아를 사사로이 설치하고, 건륭제의 생일에서 공경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과장은 있을 수 있으나 홍석이 그동안 억눌러왔던 불만을 표출했던 정황은 분명하다. 또한, 홍석과 어울린 황족들은 이미 옹정연간에도 불만을 드러내거나 처벌을 받았던 이들이다. 홍창은 옹정 원년에 인샹이 자진해서 왕부에 감금시켰고, 항친왕 윤기의 장자 홍승은 옹정제에게 작위를 박탈당했다. 이들과 어울린 황족 중엔 옹정제의 측근이었던 윤록도 있었는데, 윤록은 옹정제에게 수혜를 받았음에도 내심 옹정제의 숙청에 반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10] 원래 인샹은 폐태자 윤잉의 측근이었고 윤잉이 몰락한 후 옹정제와 동맹을 맺으며 그의 신임을 받았으나 이 두 사람이 죽은 후 동맹이 약화되어서 태자당인 황족들이 다시 뭉치고, 옹정제가 죽고 억압된 분위기가 해소되자 옹정제에 대한 황족들의 반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건륭제는 홍석만 종신형을 선고하고 나머지는 일시적인 감금, 작위 박탈[11], 벌금 등 옹정제와 비교하면 관대한 처벌을 내렸다.
이후 그나마 당시에 나이도 어리고 권력싸움에 휘말리지 않은 이친왕의 7남 홍효가 이친왕의 작위를 물려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희친왕 홍효의 후손(윤상의 5대손)인 재원(1816-1861)은 함풍제 사후 정친왕 단화, 단화의 동생 숙순 등과 함께 동치제의 섭정인 보정8대신에 올랐으나 서태후가 공충친왕 혁흔과 함께 친위 쿠데타( 신유정변)를 일으켜 숙순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재원 역시 자결을 명받고 작위를 박탈당한다. 이 과정에서 작위는 같이 반란에 가담한 정친왕 작위와 함깨 세습망체 철모자왕에서 8등급 강등된 불입팔분보국공이 된 후 후손 중 하나인 재태에게 간다. 원래 재태는 이친왕의 7남인 홍효의 아들 영만의 후손이지만 이친왕의 장남인 이혁패자 홍창의 후손이 끊어짐에 따라 홍창의 사손이 되어 그위 제사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1864년 이친왕 작위를 복권시키며 재태의 작위를 봉은보국공으로 1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후 이친왕 작위는 앞에서 말한 윤상의 차남인 영랑군왕 홍교의 직계손인 재돈(1822-1890)에게 간다.[12]
3.1. 부인
- 적복진 조가씨(兆佳氏 1686~1730): 상서 마이한(馬爾漢 1634~1718)의 7녀
- 측복진 부찰씨(富察氏): 좌령 승격(僧格)의 딸
- 측복진 오소씨(烏蘇氏): 금보(金保)의 딸
- 측복진 과이가씨(瓜爾佳氏): 낭중 아합점(阿哈占)의 딸
- 서복진 석가씨(石佳氏): 영최 장격(莊格)의 딸
- 서복진 납라씨(納喇氏): 경차도위 오이돈(吳爾敦)의 딸
3.2. 자녀들
- 1녀 군주(郡主 1703~1776): 측복진 과이가씨 生 / 진제리 살극신(津濟里 薩克信)에게 출가
- 1자 다라패륵 홍창(多羅貝勒 弘昌 1706~1771): 측복진 과이가씨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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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녀 군주(郡主 1707~1726): 적복진 조가씨 生 / 이이근각라 부승액(伊爾根覺羅 富僧額)에게 출가
남편 부승액은 강희시대 대학사 이상아(李桑阿)의 손자이며 산서총독 이도립(李都立)의 아들로 군주 본인의 이종사촌이기도 하다.[13] - 2자(1708~1709): 서복진 석가씨 生 / 요절
- 3녀(1710~1711): 측복진 부찰씨 生 / 요절
- 3자 다라패륵 홍돈(多羅貝勒 弘暾 1710~1725): 적복진 조가씨 生
- 4자 다라영량군왕 홍교(多羅寧良郡王 弘皎 1713~1764): 적복진 조가씨 生
- 4녀 화석화혜공주(和碩和惠公主 1714~1731): 적복진 조가씨 生 / 세종 옹정제의 양녀[14]
- 5자 홍형(弘哼 1715~1722): 적복진 조가씨 生 / 요절
- 6자 다라패륵 홍금(多羅貝勒 弘昑 1716~1729): 측복진 오소씨 生 / 요절
- 7자 화석이희친왕 홍효(和碩怡僖親王 弘曉 1722~1778): 적복진 조가씨 生
- 8자 수은(綏恩 1725~1727): 적복진 조가씨 生 / 요절
- 9자 아목산랑(阿穆珊琅 1726~1727): 서복진 납라씨 生 / 요절
4. 미디어믹스
- 1999년 드라마 <옹정황제> - 왕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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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보경심> - 원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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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내선 · 심증식 473권 「장훈등전(張勳等傳)」 474권 「오삼계등전(吳三桂等傳)」 475권 「홍수전전(洪秀全傳)」 장훈 · 강유위 오삼계 · 경정충 · 상지신 · 손연령 홍수전 476·477·478·479권 「순리전(循吏傳)」 백등명 , 탕가상 임진단 우종요, · 송필달 · 육재신 · 장목 , 장훈(張塤), · 진여함 · 목수 , 진시림, · 요문섭 , 황정린, · 낙종린 , 최종태 조진조, · 조길사 · 장근 · 강고 , 장극억 가박, · 소사요 , 위입정 고음작 근양, · 최화 · 주중횡 · 유계 · 도원순 · 요기형 · 동국롱 · 육사 · 공감 · 진덕영 · 예복전 · 장림 · 염요희 · 남정원 · 엽신 · 시초정 · 진경문 · 주인룡 · 동화 · 이위 · 사중훈 · 이대본 · 우운진 · 장견도 · 소대업 · 주극개 , 정기 강기연 언여사 주제화, · 왕휘조 , 여돈화 주휴도, · 유대신 · 오환채 · 기대규 · 소희증 · 장길안 , 이육창, · 공경한 · 개방필 · 사소등 · 이갱예 · 이병수 · 적상경 · 장돈인 · 정돈윤 · 이문경 · 유체중 , 유후, · 장기 , 석가소, · 유형 , 서동, · 요간지 · 오균 · 왕조겸 · 조근 · 계초만 · 장작남 · 운무기 · 서대영 · 우수매 · 하왈유 · 오응연 · 유병림 , 진숭지 하자령 소세본, · 이병도 , 유주 주근인 추종준 왕무훈, · 괴덕모 · 임달천 · 방대제 · 진호 · 양영서 · 임계 · 왕인복 · 주광제 · 냉정형 · 손보전 · 가소경 · 도관준 · 진문불 · 이소 · 장해 · 왕인감 480·481·482·483권 「유림전(儒林傳)」 손봉기 · 황종희 · 왕부지 · 이옹 · 심국모 · 사문존 · 고유 · 탕지기 · 육세의 · 심윤 · 응휘겸 · 주학령 · 심호정 · 백환채 · 호승락 · 조본영 · 유원록 · 안원 · 이공 · 조포 · 이내장 · 이광파 · 장형양 · 왕무굉 · 이몽기 · 호방 · 노사 · 고동고 · 맹초연 · 왕불 · 요학상 · 당감 · 오가빈 · 유희재 · 주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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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숙한 황자가 어린 동생들을 지도하는 게 청나라의 관습이었다.
[2]
나머지는 황장자 윤제, 황3자 윤지, 황8자 윤사, 황14자 윤정이 있다.
[3]
이것은 강희 47년 폐태자 사건 이후 10년 동안 실록에서 윤상의 기록이 나오지 않았고, 황8자 윤사의 아들 홍왕이 집필한 <황청통지강요>에서 윤상의 유폐된 사실이 나와있었기 때문에 나온 추측이었다. 윤상이 윤잉을 비호하다 유폐됐다는 설과 윤잉을 모함해서 유폐되었다는 설이 병존했으나 2010년대 이후 만주어 기록을 통해 전자임이 밝혀졌다.
[4]
그래도 강희제가 윤상을 완전히 내친 것은 아니어서 윤상의 발에 심각한 고름이 생기자 황3자 윤지를 보내 상태를 살폈다.
[5]
1714~1731. 1728년 몽골 객이객(할하부)지용친왕 박이제길특 다이제새포등에게 하가. 화혜공주는 1731년 아들인 상재다이재를 낳은 후 산욕열로 죽는다. 이후 지용친왕 작위는 남편이 죄를 지음에 따라 강등되지만 1755년 아들인 상재다이재가 준가르 정벌전에서 5촌 아저씨인 초용친왕 성찬간포(고륜액부 초용친왕 책릉과 강희제의 10녀인 고륜순각공주의 아들)와 함께 공을 세워 복권된다. 참고로 상재다이재의 복진은 강희제의 21남인
신군왕 윤희의 딸인 다라격격으로 화혜공주와 사촌간이다. 상재다이재 역시 장인인 윤희가
건륭제의 친구이자 총신인지라 꽤나 총애를 받은 듯 하다.
[6]
사실 이처럼 청나라 황실에서 황제 본인에게 딸이 없을 경우에는, 자신의 동생이나 친척의 딸을 양녀로 들이는 건 꽤나 흔한 일이였다. 이는 몽골의 박이제길특씨가 청나라의 주요한 군사적 동맹이자 한편으로는 적이 될 수 있는 관계(특히
강희제 때 무력으로 복속시킨 객이객(할하)는 더욱)이기 때문에 공주를 몽골에 시집보냄에 따라 동맹을 강화하고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한가지 예시로 윤상의 할아버지
순치제는 자신의 형인 승택친왕 석새(
|윤록이 받은 그 장친왕작 맞다)의 딸을
화석화순공주에 책봉한 후 평남왕 상가희의 딸인 상지륭과 결혼시켰다. 이로 인해
삼번의 난이 벌어지던 당시에
오삼계와 공유덕, 경정충이 신나게 반란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상가희는 어느 정도 중립(?)을 지켰다. 참고로 옹정제의 양녀는 화석숙신공주(1708~1785, 강희제의 망나니 황태자 윤잉의 딸로 1726년 몽골 과이심부 박이제길특 관음보에게 하가. 참고로 관음보는
효혜장황후의 조카손자다.), 화석단유공주(1713~1753.
장각친왕 윤록의 장녀로 역시 몽골 과이심부 좌익후기 찰살극 보두얼러거타이 군왕 박이제길특 제묵특다이제에게 하가. 참고로 이 둘 사이에는 자식이 없어 동생이 작위를 계승하는데 동생의 양손자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당시 장군인
승격림심이다.)가 있다.
[7]
황가의 적복진은 만주족 고위 관료 및 종실녀들의 딸인 명문가 규수 중에서 골라 책봉되는 정략결혼 상대라서 총애를 못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상을 비롯한 강희제의 아들들은 이례적으로 적복진과 사이가 좋은 경우가 많았다. 황장자 윤제는 첫 적복진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1남 4녀를 볼 동안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아이를 보지 않았고, 장남을 본지 7년만에 첩에게서 5녀를 얻었다. 황3자 윤지는 적복진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4명 두었고, 황16자 윤록은 적복진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6명 보았다. 황8자 윤사는 적복진과의 사이에서 자식을 두지 못했지만 기록상 금슬은 좋았고, 황14자 윤정은 유폐 생활 중 적복진이 죽은 후 윤정의 불복종에 화가 난 옹정제가 적복진의 유골함을 강제로 빼앗아 가자 온 동네에 들릴 정도로 울부짖었다.
[8]
만약에 옹정제보다 장수하고 건륭제의 치세까지 생존했다면 황숙으로 건륭제의 예우를 받고 아들들을 잘 단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9]
강희제의 차남이자 유일한 적자였던 폐태자
이밀친왕 윤잉의 장남인 이친왕 홍석은 강희제가 가장 아끼는 손자였다.건륭은 강희제가 가장 아끼던 손자가 아니다 강희제는 사비를 털어 홍석을 위한 저택을 지으려고 한 기록이 있다.
강희제는 임종하는 순간에마저도
옹정제에게 윤잉에 대해 폐태자가 되었지만 그래도 네 형이니 섭섭하지 않게 대접하고, 윤잉의 아들도 조카이니 친왕에 봉하여 잘 챙겨주라고 당부할 정도로(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까지 남은 기록이다!) 윤잉을 아픈 손가락으로 여겼다. 이에 이복형제는 물론 동복형제까지 가차없이 숙청했던 옹정제도 아버지의 유언만은 잘 받들어, 윤잉과 그의 아들들을 잘 챙겨줬으나일부 기록에 따르면 윤잉은 지방에 감금되어 생활하였다라는 이야기도 존재한다.(정확하게는 옹정제 초기쯤 지방에 좋은 집을 베이징에서 왔다는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서 인근 주민들이 누가 거주하는지 몰랐다라고 한다.) 옹정제 사후 그의 아들
건륭제가 즉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건륭제의 십수년 연상의 사촌형인 홍석은 한때 태자였던 윤잉의 적장자이자 강희제의 황장손이라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갖고 있었기에, 같은 항렬로서 제위를 물려받은
건륭제에겐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건륭제 즉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석에 대해 영문도 모르는 숙청이 진행되었다. 이에 홍석은 친왕에서 강등된 군왕작도 동생 홍위에게 내준채 황실 족보에서까지 제명되어 이름은 사십육으로 개명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홍석은 건륭 43년에 복권되었다.
[10]
윤록은 건륭제가 즉위하자마자 종적을 박탈당한 홍시를 동정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홍시의 복권을 주장했다.
[11]
몇몇은 나중에 회복시켜주었다.
[12]
즉 영군왕 계통(홍교계)와 이친왕 본계(홍효계)의 후손들이 작위를 교환한다. 따라서 홍교의 후손인 재돈이 이친왕이 된 반면 홍효의 후손인 재태는 과거 재돈의 작위인 봉은보국공을 받은 셈
[13]
부승액의 어머니가 군주의 어머니 조가씨의 언니다.
[14]
보보경심에 등장한 승환공주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