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05 21:26:50

좌종당


청사고(淸史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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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본기(本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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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cd21
1권 「태조기(太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세조기(世祖紀)」
애신각라 노이합제 애신각라 황태극 애신각라 복림
6·7·8권 「성조기(聖祖紀)」 9권 세종기(世宗紀)」 10·11·12·13·14·15권 「고종기(高宗紀)」
애신각라 현엽 애신각라 윤진 애신각라 홍력
16권 「인종기(仁宗紀)」 17·18·19권 선종기(宣宗紀)」 20권 「문종기(文宗紀)」
애신각라 옹염 애신각라 민녕 애신각라 혁저
21·22권 「목종기(穆宗紀)」 23·24권 덕종기(德宗紀)」 20권 「선통제기(宣統帝紀)」
애신각라 재순 애신각라 재첨 애신각라 부의
214권 「후비전(后妃傳)」
효정경황후 · 정강귀비 · 각순귀비 · 효각민황후 · 액이덕특씨
※ 26권 ~ 160권은 志에 해당. 161권 ~ 213권은 表에 해당. 청사고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bgcolor=#00386a><tablewidth=100%> 215·216·217·218·219·220·221권 「제왕전(諸王傳)」 ||
애신각라 예돈 · 애신각라 액이곤 · 애신각라 재감 · 애신각라 탑찰편고 · 애신각라 막이합제 · 애신각라 서이합제 · 애신각라 아이합제 · 애신각라 파아랍 · 애신각라 저영 · 애신각라 대선 · 애신각라 아배 · 애신각라 탕고대 · 애신각라 망이고태 · 애신각라 탑배 · 애신각라 아파태 · 애신각라 파포태 · 애신각라 덕격류 · 애신각라 파포해 · 애신각라 아제격 · 애신각라 뇌모포 · 애신각라 다이곤 · 애신각라 다탁 · 애신각라 비양과 · 애신각라 호격 · 애신각라 엽포서 · 애신각라 석새 · 애신각라 고새 · 애신각라 상서 · 애신각라 도새 · 애신각라 박목박과이 · 애신각라 복전 · 영친왕 · 애신각라 상녕 · 애신각라 융희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잉 · 애신각라 윤지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우 · 애신각라 윤사 · 애신각라 윤당 · 애신각라 윤아 · 애신각라 윤도 · 애신각라 윤상 · 애신각라 윤제 · 애신각라 윤파 · 애신각라 윤례 · 애신각라 윤의 · 애신각라 윤희 · 애신각라 윤호 · 애신각라 윤기 · 애신각라 윤비 · 애신각라 홍주 · 애신각라 홍휘 · 애신각라 영황 · 애신각라 영련 · 애신각라 영장 · 애신각라 영기(永琪) · 애신각라 영종 · 애신각라 영선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기(永璂) · 애신각라 영성 · 애신각라 영린 · 애신각라 면개 · 애신각라 면흔 · 애신각라 면유 · 애신각라 혁위 · 애신각라 혁강 · 애신각라 혁계 · 애신각라 혁흔 · 애신각라 혁환 · 애신각라 혁합 · 애신각라 혁혜 · 민군왕
222권 「아합출등전(阿哈出等傳)」
아합출 , 석가노 맹가불화 이만주 완자독 맹가첩목아 범찰 동산 탈라 탈원보 불화투, · 왕고 , 왕올당,
223권 「만등전(萬等傳)」
, 호이간 맹가포록 대산 오이고대, · 청길노 · 양길노 , 납림포록 금태석 포한 포양고 포이항고, 포점태 · 배음달리
224권 「장황언등전(張煌言等傳)」 225권 「액역도등전(額亦都等傳)」
장황언 , 나륜 장명진 왕익, · 정성공 , 정금 정극장 정극상 정극거, · 이정국 액역도 · 비영동 , 삭해 왜흑, · 하화례 , 다적례 화석례 도류, · 안비양고 · 호이한
238권 「장혁덕등전(蔣赫德等傳)」
장혁덕 · 액색혁 · 차극 · 파합나 · 송권 · 부이점 · 여궁 · 성극공 · 김지준 · 왕영길 · 당숭아
247권 「팽이술등전(彭而述等傳)」
팽이술 · 육진분 · 요연저 · 필진희 · 방국동 · 우붕거 · 왕천감 · 조정표
250권 「이위등전(李霨等傳)」
이위 · 손정전 · 두입덕 · 풍부 · 왕희 · 오정치 · 황기 · 송덕선 · 이상아 · 아란태 · 서원문
251권 「도해등전(圖海等傳)」 252권 「감문혼등전(甘文焜等傳)」
마가도해 · 이지방 감문혼 · 범승모 · 마웅진 · 부홍열
253권 「막락등전(莫洛等傳)」
막락 · 진복 · 왕지정 · 비아달 · 이흥원 · 진계태 · 진단적 · 마비 · 엽앙류
255권 「장용등전(張勇等傳)」
장용 · 조양동 · 왕진보 · 손사극
256권 「채육영등전(蔡毓榮等傳)」
채육영 · 합점 · 항애 · 화선 · 동위국 · 동국정 · 주유덕 · 장덕지 · 윤벽 · 왕계문
257권 「조국조등전(趙國祚等傳)」
조국조 · 허정 · 주구 · 서치도 · 호세영 · 당희순 · 이린 · 조응규 · 조뢰 · 이방술 · 진세개 · 허점수
261권 「양첩등전(楊捷等傳)」
양첩 · 석조성 · 만정색 · 오영 · 감리 · 황오 · 방태 · 목혁림 · 단응거
262권 「위예개전(魏裔介等傳)」 263권 「왕홍조전(王弘祚等傳)」
위예개 · 웅사리 · 이광지 왕홍조 · 요문연 · 위상추 · 주지필 · 조신교
264권 「학유눌등전(郝維訥等傳)」 265권 「탕빈등전(湯斌等傳)」
학유눌 · 임극부 · 유홍유 · 유건 · 주배 · 장정추 탕빈 · 손지욱 · 육롱기 · 장백행
266권 「엽방애전(葉方藹等傳)」 267권 「장옥서등전(張玉書等傳)」
엽방애 · 심전 · 여두눌 · 서원공 · 허삼례 · 왕사정 · 한담 · 탕우증 장옥서 · 이천복 · 오전 · 장영 · 진정경 · 온달 · 소영조 · 숭축 · 왕서령
268권 「미사한등전(米思翰等傳)」 269권 「색액도등전(索額圖等傳)」
미사한 · 고팔대 · 마이한 · 전육선 · 두진 · 살목하 색액도 · 명주 , 여국주 불륜,
270권 「학욕등전(郝浴等傳)」 271권 「서건학등전(徐乾學等傳)」 272권 「탕약망등전(湯若望等傳)」
학욕 · 양소온 · 곽수 서건학 , 옹숙원, · 왕홍서 · 고사기 탕약망 · 양광선 · 남회인
273권 「이솔태등전(李率泰等傳)」
이솔태 · 조정신 · 낭정좌 · 동봉채 · 마륵길 · 시유한
304권 「장조등전(張照等傳)」
장조 · 감여래 · 진덕화 · 왕안국 · 유오룡 · 양여곡 · 장태개 · 양석불 · 팽계풍 · 손희렴 · 몽린
305권 「전진군등전(錢陳群等傳)」
전진군 · 심덕잠 · 김덕영 · 전재 · 제소남 · 진조윤 · 동방달 · 전유성 · 추일계 · 사용 · 왕창
306권 「조사일등전(曹一士等傳)」 307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조사일 · 이신수 · 호정 · 중영단 · 시조생 · 저인지 윤계선 · 유우의 · 진대수 · 장윤수 · 진굉모
308권 「나소도등전(那蘇圖等傳)」
나소도 · 왕초증 · 서사림 · 윤회일 · 왕서 · 방현 · 풍광유 · 양석불 · 반사구 · 호보전 · 왕창
318권 「아계전(阿桂傳)」 319권 「우민중등전(于敏中等傳)」
장가아계 우민중 · 뉴호록 화신 · 소릉아
322권 「두광내등전(竇光鼐等傳)」 323권 「황정계등전(黃廷桂等傳)」
두광내 · 이수방 · 범의빈 · 조석보 · 사진정 · 전풍 · 윤장도 황정계 · 악미달 · 양정장 · 장유공 · 이시요 · 오미태 · 관보
324권 「방관승등전(方觀承等傳)」
방관승 · 부찰부명안 · 주원리 · 이한 · 이세걸 · 원수동 · 정대진 · 유아 · 육요 · 관간정 · 장조규 · 호계당
325권 「이청시등전(李淸時等傳)」 326권 「개태등전(開泰等傳)」
이청시 · 요입덕 · 이굉 · 하위 · 오사작 · 살재 · 난제석 · 한횡 개태 · 아이태 · 계림 · 원푸
340권 「왕걸등전(王傑等傳)」 341권 「경규등전(慶桂等傳)」
왕걸 · 동고 · 주규 경규 · 유관지 · 대구형 · 대균원 · 탁진 · 장후 · 노음부
342권 「보녕등전(保寧等傳)」 343권 「서린등전(書麟等傳)」
보녕 · 송균 · 배탄 · 박계특 서린 · 각라길경 · 각라장린 · 비순 · 장백령 · 백린
344권 「늑보등전(勒保等傳)」 345권 「영보등전(永保等傳)」
늑보 · 액륵등보 , 호시현, · 덕릉태 영보 · 혜령 · 의면 · 영선 · 복녕 · 경안 · 태승은
386권 「문경등전(文慶等傳)」 387권 「숙순등전(肅順等傳)」 388권 「계량등전(桂良等傳)」
문경 · 문상 · 보윤 숙순 · 목음 · 초우영 계량 · 서린 · 관문 · 문욱
389권 「백준등전(柏俊等傳)」 390권 「가정등전(賈楨等傳)」 391권 「왜인등전(倭仁等傳)」
백준 · 인괴 · 서상 · 전경 가정 · 주조배 · 주봉표 · 단무겸 왜인 · 이당계 · 오정동
392권 「새상아등전(賽尙阿等傳)」 393권 「이성원등전(李星沅等傳)」 394권 「서광진등전(徐廣縉等傳)」
새상아 · 눌이경액 이성원 · 주천작 · 노숭광 서광진 · 엽명침 · 황종한
395권 「상대순등전(常大淳等傳)」
상대순 , 쌍복 왕금수 왕수동, · 장문경 · 도은배 , 다산, · 길이항아 · 나준전 · 서유임 · 왕유령
396권 「오문용전(吳文鎔等傳)」 397권 「육건영등전(陸建瀛等傳)」
오문용 · 반탁 · 등이항 육건영 · 양정문 · 청린 · 숭륜 · 하계청
399권 「여현기등전(呂賢基等傳)」
여현기 · 추명학 · 대희 · 장비 · 황종 · 도정걸 · 풍배원 · 손명은 · 심병원 · 장석경
400권 「하계진등전(何桂珍等傳)」 401권 「상영등전(向榮等傳)」
하계진 · 서풍옥 · 온소원 · 김광저 · 이맹군 · 조경현 상영 · 화춘 · 장국량
402권 「오란태등전(烏蘭泰等傳)」
오란태 · 등소량 · 주천수 · 요문선 · 문서 · 팽사거 · 장옥량 · 노점오 · 유계삼 · 서쌍래 · 구등룡 · 왕국재 · 호곤원 · 대문영
403권 「승보등전(勝保等傳)」 404권 「승격림심등전(僧格林沁等傳)」
승보 · 탁명아 · 진금수 · 덕흥아 승격림심 · 서통액 · 항령 · 소극금 · 하건오 · 전순 · 사영춘 · 악선
405권 「증국번전(曾國籓傳)」 406권 「낙병장등전(駱秉章等傳)」 407권 「강충원등전(江忠源等傳)」
증국번 낙병장 · 호림익 강충원 · 나택남
408권 「이속빈등전(李續賓等傳)」 409권 「탑제포등전(塔齊布等傳)」
이속빈 · 정예의 · 증국화 · 이속의 · 왕진 · 유등홍 · 장익풍 탑제포 · 필금과 · 다융아 · 포초, 송국영 누운경 담등달, · 당인겸 · 유송산
410권 「팽옥린등전(彭玉麟等傳)」 411권 「이홍장전(李鴻章傳)」
팽옥린 · 양악빈 · 왕명산 · 손창개 · 양명해 · 사준여 이홍장
412권 「좌종당전(左宗棠傳)」 413권 「증국전등전(曾國荃等傳)」
좌종당 증국전 · 심보정 · 유곤일
414권 「이신전등전(李臣典等傳)」
이신전 · 소부사 · 이원길 · 유연첩 · 팽육귤 · 장시일 · 오유수 · 주남계 · 나봉원 · 이상화 · 소경연 · 오종국
415권 「황익승등전(黃翼升等傳)」
황익승 · 정의방 · 왕길 · 오가방 · 이성모 · 이조빈 · 강복산 · 유배원
416권 「정학계등전(程學啟等傳)」
정학계 · 하안태 · 정국괴 · 유명전 · 장수산 · 주성파 · 주성전 · 반정신 · 오장경
418권 「원갑삼등전(袁甲三等傳)」 419권 「낙병장등전(左宗棠傳)」 420권 「한초등전(韓超等傳)」
원갑삼 · 모창희 유장우 · 유악소 · 잠육영 한초 · 전흥서 · 증벽광 · 석보전
421권 「심조림등전(沈兆霖等傳)」
심조림 · 조육영 · 허내보 · 조광 · 주준 · 이함 · 장상하 · 나돈연 · 정돈근 · 방종로
422권 「왕무음등전(王茂廕等傳)」
왕무음 · 송진 · 원희조 · 문서 · 육록 · 서계여 · 왕발규 · 염조윤 · 뇌이함 · 도양 · 오존의 · 은조용
423권 「종직진등전(宗稷辰等傳)」 424권 「오진역등전(吳振棫等傳)」
종직진 · 윤경운 · 왕증 · 목집향아 · 유백천 오진역 · 장량기 · 모홍빈 · 장개숭
425권 「이혜등전(李僡等傳)」 426권 「왕경운등전(王慶雲等傳)」
이혜 · 오당 · 영한 · 유용 · 교송년 · 전정명 · 오원병 왕경운 · 담정양 · 마신이 · 이종희 · 서종간 · 왕개태 · 곽백음
451권 「이조의등전(李朝儀等傳)」
이조의 · 단기 · 정수창 · 증기봉 · 저유립 · 서철산 · 계중행 · 유함방 · 진횡거 · 유지개 · 이용청 · 이금용 · 김복증 , 웅기영 사복가, · 동조용
452권 「홍여규등전(洪汝奎等傳)」
홍여규 · 양종렴 · 사박 · 사극관 · 심보정 · 주기앙 , 주기조, · 종원한 · 서경장 · 서진 · 괴광전 · 진휼성 · 반민표 · 엄작림 · 당석진 · 누춘번
457권 「장동재등전(蔣東才等傳)」
장동재 · 이남화 · 동리고 · 동전승 · 우사한 · 조덕경 · 마복진 · 정문병 · 방요 · 등안방
458권 「서연욱등전(徐延旭等傳)」
서연욱 · 당형 · 하경 · 장조동
459권 「풍자재등전(馮子材等傳)」
풍자재 · 왕효기 · 진가 · 장종한 · 소원춘 · 마성치 · 왕덕방 · 장춘발 · 소득룡 · 마유기 · 오영안 · 손개화 · 소득승 · 장고원 · 구양이견
460권 「좌보귀등전(左寶貴等傳)」 461권 「송경등전(宋慶等傳)」
좌보귀 · 원영산 · 등세창 · 유보첨 · 대종건 송경 · 여본원 · 서방도 · 마옥곤 · 의극당아 · 장순
462권 「정여창등전(丁汝昌等傳)」 463권 「당경숭등전(唐景崧等傳)」
정여창 · 위여귀 · 엽지초 당경숭 · 유영복
464권 「이단분등전(李端棻等傳)」
이단분 · 서치정 · 진보함 · 황준헌 · 증화 · 양심수 · 양예 · 유광제 · 담사동 · 임욱 · 강광인
465권 「서동등전(徐桐等傳)」 466권 「서용의등전(徐用儀等傳)」
서동 · 강의 · 조서교 · 고아랍계수 · 하영년 · 희탑랍유록 · 육현 서용의 · 허경징 · 원창 · 토묵특입산 · 최가연원
471권 「성선회등전(盛宣懷等傳)」 472권 「육윤상등전(陸潤庠等傳)」
성선회 · 서징 육윤상 · 세속 · 이극탄 · 양정분 · 서방 · 노내선 · 심증식
473권 「장훈등전(張勳等傳)」 474권 「오삼계등전(吳三桂等傳)」 475권 「홍수전전(洪秀全傳)」
장훈 · 강유위 오삼계 · 경정충 · 상지신 · 손연령 홍수전
476·477·478·479권 「순리전(循吏傳)」
백등명 , 탕가상 임진단 우종요, · 송필달 · 육재신 · 장목 , 장훈(張塤), · 진여함 · 목수 , 진시림, · 요문섭 , 황정린, · 낙종린 , 최종태 조진조, · 조길사 · 장근 · 강고 , 장극억 가박, · 소사요 , 위입정 고음작 근양, · 최화 · 주중횡 · 유계 · 도원순 · 요기형 · 동국롱 · 육사 · 공감 · 진덕영 · 예복전 · 장림 · 염요희 · 남정원 · 엽신 · 시초정 · 진경문 · 주인룡 · 동화 · 이위 · 사중훈 · 이대본 · 우운진 · 장견도 · 소대업 · 주극개 , 정기 강기연 언여사 주제화, · 왕휘조 , 여돈화 주휴도, · 유대신 · 오환채 · 기대규 · 소희증 · 장길안 , 이육창, · 공경한 · 개방필 · 사소등 · 이갱예 · 이병수 · 적상경 · 장돈인 · 정돈윤 · 이문경 · 유체중 , 유후, · 장기 , 석가소, · 유형 , 서동, · 요간지 · 오균 · 왕조겸 · 조근 · 계초만 · 장작남 · 운무기 · 서대영 · 우수매 · 하왈유 · 오응연 · 유병림 , 진숭지 하자령 소세본, · 이병도 , 유주 주근인 추종준 왕무훈, · 괴덕모 · 임달천 · 방대제 · 진호 · 양영서 · 임계 · 왕인복 · 주광제 · 냉정형 · 손보전 · 가소경 · 도관준 · 진문불 · 이소 · 장해 · 왕인감
480·481·482·483권 「유림전(儒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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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485·486권 「문원전(文苑傳)」
487·488·499·490·491·492·493·494·495·496권 「충의전(忠義傳)」
497·498·499권 「효의전(孝義傳)」
주용순 · 오번창 오겸목 · 주정 · 적요 · 이경염 · 왕호 · 황농 · 조형 · 황가장 · 정명윤 · 유종수 · 하복한 · 허계각
500·501권 「유일전(遺逸傳)」
502·503·504·505권 「예술전(藝術傳)」
506 · 507권 「주인전(疇人傳)」
설봉조 · 공사연 · 왕석천 · 방중통 · 매문정 · 명안도 · 유상규 · 왕문계 · 주홍 · 박계 · 허여란 · 이황 · 왕래 · 진걸 · 시왈순 · 이예 · 낙등봉 · 항명달 · 정취충 · 사가화 · 오가선 · 나사림 · 고관광 · 좌잠 · 증기홍 · 하란상 · 추백기 · 이선란 · 화형방
508·509·510·511권 「열녀전(列女傳)」
518·519·520·521·522·523·524·525권 「번부전(藩部傳)」
526·527·528·529권 「속국전(屬國傳)」
조선 · 유구 · 월남 · 면전 · 섬라 · 남장 · 소록 · 구르카 · 호한 · 보노특 · 합살극 · 안집연 · 마이갈랑 · 나목간 · 탑십간 · 바다흐샨 · 박라이 · 아부한 · 감거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386a><tablebgcolor=#00386a> ||
}}}}}} ||
<colbgcolor=#00386a><colcolor=#ffd700> 左宗棠[1]
좌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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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12년 11월 10일
청나라 호남성 악양시 상음현
사망 1885년 9월 5일
청나라 복건성 부주시
시호 문양(文襄)
좌(左)
이름 종당(宗棠)
계고(季高)
상상농인(湘上農人)
작위 2등각정후(二等恪靖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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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역임한 관직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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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86a><colcolor=#ffd700> 군사 경력 <colcolor=#373a3c,#ddd>군복무 : 청나라
복무기간 : 1851년 ~ 1885년
소속 : 상군
참전 : 태평천국의 난, 염군의 난, 회민 반란, 야쿱 벡의 난
역임 지위 절강순무 1861년 ~ 1862년
민절총독 1863년 ~ 1866년
섬감총독 1869년 ~ 1880년
양강총독 1881년 10월 28일 ~ 1884년 2월 8일
}}}}}}}}}

1. 개요2. 생애
2.1. 초기이력2.2. 태평천국의 난2.3. 회민 반란 진압2.4. 신장 재정복2.5. 말년
3. 평가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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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의 정치인, 군인으로, 이홍장, 증국번, 장지동과 함께 양무운동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이들과 함께 만청4대 명신 중 하나이다. 군사적 역량을 보면 청나라 최후의 명장이라고 할 만하다. 또, 현대까지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격동의 근현대를 지나고도 중국의 영토로 남아있게 한 결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유금당과 함께 새방파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이홍장과의 해방새방 논쟁[2]으로 유명하다.

2. 생애

2.1. 초기이력

1812년 후난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는 엄청나게 잘했던지 16세에 현에서 치러지는 부시에 합격했다. 밀덕후였던지 과거 본시를 준비하느라 공부하는 와중에도 여러 군사서적이나 병서를 즐겨 읽었다.

하지만 본시에서 거듭 탈락하자 과거시험을 포기하고 26세부터는 고향의 녹강서원에서 훈장 노릇을 하였다. 이때 양강총독 도주와 알게 되어 그 아들의 가정교사를 하였다. 그러다가 도주의 인맥을 이용해 37세에 흠차대신 임칙서와 안면을 텄다. 임칙서는 당시 65세로 대정치인이었으나, 좌종당을 만나보고는 그의 안목에 경탄하여 자신이 모은 서역에 관한 자료를 모두 넘겨주었다. 임칙서는 중앙아시아 방면과 극동 방면으로 팽창하던 러시아 제국을 매우 우려해왔는데,[3] 바로 자신의 안보관을 계승할 이로 좌종당을 손에 꼽은 것이다. 이를 통해 좌종당은 평생 러시아를 경계하며 북방의 안보를 중시하였다.

2.2. 태평천국의 난

1850년부터 홍수전이 세운 태평천국이 장강 이남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마침 이때 도광제는 붕어하고 함풍제가 즉위했다. 흠차대신 임칙서는 어명을 받아 토벌하고자 남방으로 이동하는 도중 사망하고 말았다.

1852년 그동안 밀덕질로 유명해진 좌종당은 천거를 받아 호남순무[4] 장량기 휘하에서 종군했고, 서생에서 갑자기 군인이 된 그는 엄격한 훈련을 실시하고 건실한 병참을 조직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과거에 번번히 떨어졌던 그는 이런 군공 덕분에 같은 호남성 출신인 증국번에세 천거받아 4품관직인 경당에 올랐고, 이런 직위를 이용해 의병 5천여 명을 모아서 태평천국 토벌전에 가담했다. 관군이 너무 털려서 빡친 나머지 장수를 발로 차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적이 있다.

이후 애로호 사건(또는 제2차 아편전쟁)이 터지자, 자신의 병력을 끌고 서양열강들의 군대와 대결하였으나 그들의 압도적인 화력을 당해내지 못하여 패배했다. 이후 프랑스 해군 장교 오귀스트 레오폴드 프로테에게 지원받아 상첩군을 창설해 태평천국 세력에 맞섰다.

태평천국의 진압에서 상첩군을 이끌고 세운 공로로 과거에 번번히 떨어지던 밀덕후는 일약 중앙정계에 등장했다. 그리하여 배경이 비슷한 이홍장[5]과 함께 조정의 신진세력이 되었다. 이들이 중체서용(中體西用)[6] 양무운동을 개시하여 중국에는 1860년대부터 각종 근대적(서양식) 무기공장이 들어섰다.

2.3. 회민 반란 진압

좌종당은 1866년 섬감[7] 총독에 임명되어, 이곳에서 봉기를 일으킨 회족들을 진압하려 했다.[8] 그러나 중원에서는 다시 반청운동인 염군이 발생하여 혼란에 빠졌고, 좌종당군은 일단 변경의 회민 반란은 제쳐두고 중원으로 와서 염군을 진압하였다.

1868년 이홍장 등과 함께 염군을 완전 진압한후, 다시 군대를 서쪽으로 돌려 회민 반란을 진압하였다. 회족들은 몇년간을 끈질기게 저항했고, 좌종당은 부장 유송산이 전사하는 등 큰 고전을 했으나, 결국 반란군의 정신적 지도자인 마화룡을 체포해 처형하고 난을 진압했다. 이후 계속 반란군의 잔당을 토벌하면서 1873년에는 난주( 란저우)까지 진주했다. 이때 마점열, 마해안 등 여러 회족 지도자들이 투항하여 벼슬을 받게 되는데 이들의 부하들과 그 후손들이 훗날 민국시대까지 청해, 감숙, 영하를 지배하게 되는 마치(1869), 마린(1873), 마부팡, 마훙쿠이, 마훙빈, 마중잉 일족이다. 이들의 서북 지배는 결국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나서야 끝장났다.

좌종당은 현지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식량을 지원하고 회족에게 보복함을 금지하는 등 여러 원호책을 펼쳐 회족들을 다시 청의 신민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회족들은 오늘날의 닝샤후이족자치구를 중심으로 재정착했다. 적지 않은 수의 회족들은 청나라의 손이 닿지 않는 러시아 제국의 투르케스탄 영토로 도피하였다. 이들은 둥간족이라고 하는데, 후에 소련의 소수민족이 되었다. 이들의 언어인 둥간어는 거의 중국어와 같은데, 단지 키릴문자로 표기될 뿐이다.

2.4. 신장 재정복

섬서성-감숙성의 회민반란은 진압되었으나, 그보다 더 서북쪽의 신강지역, 특히 그중 타림분지 지역은 중앙아시아 출신 야쿱 벡이라는 야심가가 스스로 에미르를 자처하며 점거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원래 18세기 건륭제 때 대대적인 준가르 정벌로 청나라에 복속된 지역이어서, 신강(新疆, 새로운 강역)[9]이라고 불렸는데, 이 정벌로 청나라 영토는 우즈베키스탄 동부와 타지키스탄 일대의 코칸트 칸국과 인접하였다. 코칸트는 청나라와 접경하면서 조공을 바치다가 이후 청나라를 호자들로 괴롭힌 결과 코칸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을 맺는 등 한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청나라가 약화되자 코칸트의 장군이었던 야쿱 벡은 처음엔 코칸트왕국의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다 코칸트 칸국 또한 막장이 되자 신강 지역에서 오합지졸이 된 코칸트 칸국의 군대를 불러와서 당시 타림분지의 쿠차 반란 이후의 여러 무슬림 세력들을 모두 점령했다.

좌종당은 이를 격퇴하기 위해 출진하려 하지만, 이홍장과 유명한 해방새방(海防塞防) 논쟁을 벌였다. 좌종당은 러시아를 경계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남하에 맞서 북방 방비를, 이홍장은 영국 세력을 경계했기 때문에 해안지대 방비를 주장했다. 태평천국의 난에서 전우였던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심하게 다투어 원수지간이 되었다. 이홍장은 신강지역을 러시아에 할양하고 그 도움을 받아 해군을 확충하여 영국에 맞서자고 주장했기 때문에 출진을 앞둔 좌종당과는 타협이 불가능했다. 결국 광서제가 나서서[10] 1875년 두 방침 모두 행하기로 결정되었고, 좌종당은 흠차대신에 임명되어 12만 병력을 이끌고 신강으로 출진했다.

사실 이 원정은 무리가 많았다. 신강 지역의 면적은 남한의 16배에 달하는 데다가[11] 야쿱 벡은 청을 약화시키려는 오스만 투르크-러시아-영국에게 지원을 받았다. 제1차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제2차 아편전쟁을 겪으며 참패를 거듭한 청나라군의 사정은 말이 아니었고, 충원도 받기가 힘든데다가, 중원으로부터의 보급로는 수천킬로에 이르다보니 사실상 원정이 불가능했다.[12] 이들 외세는 야쿱 벡이 청나라 원정군을 이길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좌종당은 야쿱 벡과 대립하는 사이였던 신장의 하미(쿠물) 술탄의 도움을 받아 하미 일대에서 둔전을 실시하면서 엄격한 훈련과 병참 및 보급 확충에 힘을 기울여, 중앙정부로부터의 보급이 어려운 변경지역에서 전투를 대비했다.

야쿱 벡이 발포 중지 명령을 내린 것을 틈타 1876년 5월, 좌종당의 선봉은 우루무치 근교에서 야쿱 벡군을 격파하고 우루무치를 탈환했다. 야쿱 벡이 발포 중지 명령을 미처 철회하지 못한 상황에서 1877년 5월에는 투르판이 함락되고, 야쿱 벡이 화병으로 죽으면서 대세는 결판났다. 그리하여 11월까지는 신강 전역이 청나라군의 손에 떨어지고, 좌종당은 과거 이곳의 행정 단위였던 준가르부와 회부를 통합한 행정단위인 신장성을 설치했다. 야쿱 벡은 마화룡의 회민 반란군과는 달리 서양에서 수입한 신무기로 군인들을 무장시켰으나,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서 지역에서 신망을 잃었던 데다가 탈레반식으로 샤리아법을 지배지역에서 실시했기 때문에 세속적인 투르크계 주민들에게 인심을 잃었다. 그리하여 원거리에서 원정 온 청나라군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런 민심이반을 파고듦으로써 위구르인들을 청의 편으로 만들어 쉽게 야쿱 벡의 왕국을 무너트렸다. 야쿱 벡의 성년 자손들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졌고, 미성년자 자손들은 궁형에 처해져 내시가 되었다.

2.5. 말년

좌종당은 1880년 7월에 조정의 호출을 받아 개선했고, 이후 대러시아 매파로서 청나라 조정에서 활약하며 1881년 신강지역에서 러시아와의 국경을 확정한 일리조약의 체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군기대신, 양강총독 겸 남양대신, 동각대학사의 요직을 전전하다가 1885년 청불전쟁이 벌어지자 흠차대신으로 임명되어 다시 전쟁터인 복건성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지병이 발병해 72세 나이로 병사했다.

3. 평가

청나라의 최후의 명장으로 내환외환 가리지 않고 여러방면에서 큰 활약을 했다.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13]는 중국전토의 1/6을 차지하는 거대한 영토로서, 건륭제가 청나라로 복속시킨 곳이긴 하지만, 좌종당이 이곳을 평정하지 않았다면 영영 중국의 영토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홍장의 제안처럼 러시아에 할양했거나 혹은 야쿱 벡 왕국을 그대로 두었다면 이곳은 후에 중앙아시아의 여러 투르크계 공화국처럼 소련의 영토가 되어 소련 해체기인 20세기 후반기에 동튀르키스탄 혹은 위구르스탄으로 독립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좌종당의 군사적 역량으로 이 곳은 청나라에 수복되었고,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모두 이 곳을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현재까지도 중국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북방중시파였기 때문에 조선과의 관계는 그의 라이벌이었던 이홍장이 주로 관여했기 때문에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좌종당이 진압했던 후이족들도 긍정적으로 평한다. 굳이 좌종당이 나서서 후이족의 투항을 관용하지 않았다면 태평천국 때처럼 서북 지역의 회족들 전체가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다.[14] 신장의 위구르인들에게 서당에서 유교 경전을 교육시킨 정책은 의도와 결과 모두 좋게 평가하기 힘들지만, 비슷한 시기 베트남에서는 무슬림 참족들에게 돼지고기를 강제로 먹이고 힌두교도 참족들에게는 소고기를 강제로 먹이며 창씨개명까지 시키던 상황이었다.

다만 성격은 매우 거칠고 직설적이어서 주위 사람들과는 사이가 나쁜 경우가 많았다. 호림익(胡林翼)은 일찍이 좌종당을 이렇게 비판했다.
강렬이근어교격(剛烈而近於矯激), 면절인과(面折人過), 불소관가(不少寬假)
너(좌종당)는 자주 다른 사람을 면전에서 비판하지만 조금도 봐주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사람들이 너를 원망할 것이다.

또한 좌종당이 아직 보통막료로 있을 때, 한 번은 호남순무 장량기(張亮基)를 따라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정식 군사회의에서 그는 영주진총병(永州鎭總兵) 번섭(樊燮)과 말다툼을 벌였다. 쌍방은 갈수록 말싸움이 격렬해지고 말은 점점 더 세졌다. 결국 마지막에 죄종당은 화가 난 나머지 자리에서 뛰어 올라 번섭에게 발길질을 날리자 번섭은 그 자리에서 뻗어버렸다. 번섭은 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땅바닥에서 재빨리 일어나 칼을 뽑아들고 싸우려고 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두 사람을 떼어놓아야 했다. 모두 싸움을 말리는 동안 좌종당은 번섭에게 "왕빠단(王八蛋)[15], 꺼져라!" 하고 외쳤다. 이 일로 좌종당과 번섭은 서로 원한을 품었다. 출처

청일전쟁 의화단 운동 등 청나라가 본격적으로 막장 테크를 타기 이전에 죽었으므로, 이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며 말년을 굴욕으로 장식한 이홍장에 비해 고평가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 역시 있다. 량치차오는 좌종당이 기량 면에서는 이홍장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10여년 일찍 저세상에 가는 바람에 (이홍장과 달리) 운 좋게 명성을 보존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4. 여담

중화요리 중에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름 붙인 좌종당계라는 요리가 있다. 미국에선 좌종당의 이름에서 따온 제너럴 쏘 치킨으로 불린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제너럴 쏘 치킨을 먹으며 도대체 이 쏘 장군이 누구인가? 하고 품는 의문의 답 되시는 분(...)이기도 하다. 좌종당의 중국어 발음은 '쭤쭝탕'에 가깝다. 현재의 한어병음으로는 그의 이름을 Zuǒ Zōngtáng이라고 옮기지만, 과거에는 Tso Tsung-t'ang란 표기를 썼다. 여기서 쭤(Tso)란 성에 '제너럴'을 붙여서 '제너럴 쏘'가 된 것이다.

전장에서 피로에 찌든 부하들을 위해 좌종당이 손수 만든 요리가 기원이라는데, 영화 북경반점에 나오는 조리법에 의하면 약한 불에서 온도를 높인 기름이 담긴 웍에 계란물과 녹말이나 밀가루를 적절히 배합한 튀김옷에 담근 닭고기 조각들을 넣고는 서서히 온도를 높여사면서 높이며 익힌 다음, 새콤달콤매콤한 소스를 끼얹는 요리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닭고기를 익히면 개구리 뒷다리 같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라고 한다. 그 점으로 인해 본격 한중일 세계사 만화에서는 변발에 뿔테안경을 낀 치킨집 사장으로 비유가 된다.

하지만 이건 그냥 유명한 민담에 가깝고, 실제로는 이 요리와 좌종당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한다. 좌종당의 고향이었던 호남성(후난성)의 한 요리가 좌종당의 이름을 따서 유명해졌는데,[16] 그의 자손들은 자신들은 그런 요리를 본 적도 없다고 했다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칭기즈 칸과 아무 상관 없지만, 그 이름이 붙은 일본식 전골요리 징기스칸과 비슷한 일이다.

고향 후난성 창사에 묘가 조성되었으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 묘를 화약으로 폭파하고 유해를 꺼내 부관참시하고 남은 유골은 버렸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인 1986년 무덤을 다시 조성하여 유적지로 만들었으나 시신이 없는 허묘(虛墓)이다.
[1] 웨이드-자일스 병음 Tso³ Tsung¹-tʻang², 한어병음 Zuǒ Zōngtáng, 쭤쭝탕 [2] 이홍장을 위시한 해방파는 영국과 일본 등 해양 세력을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좌종당과 유금당을 위시한 새방파는 러시아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신장 지역이 뚫리면 몽골 및 섬서, 감숙 지역이 뚫린다고 하였고, 몽골이 뚫리면 북경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3] 실제로 러시아는 청나라의 세력권이었던 위구르 몽골, 투바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적극 후원하였다. 심지어 청나라의 성지인 만주를 차지하려고도 하였으나 러일전쟁 패배로 좌절되었다. [4] 호남성의 군사책임자 [5] 하지만 이홍장은 당당한 과거 합격자이다. [6] 중국의 체제에 서양의 기술을 접목시키자 [7] 섬서성-감숙성 [8] 이른바 회민 반란. 태평천국의 난의 여파로 한족 농민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평소 한족들과 사이가 나빴던 감숙, 섬서성의 회족들도 화기를 구입하다가 유혈폭력사태가 점점 심해져, 결국 1862년 수피즘 지도자 마화룡이 이끄는 봉기로까지 이어졌다. 이 사건 이후 감숙, 섬서성에 각각 백만명 정도 되던 회족들은 거의 다 죽거나 난민이 되어 흩어졌다. [9] 중국어로 하면 신장(xinjiang)이라고 읽힌다. [10] 광서제는 당시 동아시아식 나이로 겨우 다섯 살 꼬꼬마였으니 섭정하던 서태후의 의지라고 봐야한다. [11] 남한 약 10만 ㎢, 신강 약 160만 ㎢ [12] 현재도 이곳에 가려면 베이징에서 열차로 사흘이 걸린다. [13] 중화민국은 소수민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치구가 아니라 그냥 신장성이라고 했다. [14] 회민 반란 전까지만 해도 4백만 명에 달하던 섬서성의 후이족은 회민 반란과 그 뒤를 이은 기근에 휘말려 2만 명만 남기고 전멸했다. [15] 우리말로는 "새끼" 정도쯤 되는 중국어 욕이다. [16] 참고로 후난성 지역엔 좌종당계 외에도 닭을 튀겨 소스와 함께 먹는 요리가 많다고 한다. 그 전에 중국 요리 자체가 닭을 튀겨 소스와 함께 먹거나 튀긴 다음 또 쪄서(!) 양념이 된 육수나 소스 등과 함께 먹는 요리가 많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