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6-08-30 17:53:22

아메리카(대륙)

1. 개요2. 명명의 이유3. 인간이 살던 역사

1. 개요

아프로-유라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등과 더불어 지구의 육지 부분을 구성하는 대륙의 하나. 동으로는 대서양, 서로는 태평양에 면해 있으며, 지리적으로는 크게 파나마 지협을 경계로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로 구분된다.

대한민국, 홍콩, 일본 동아시아와는 매우 먼 거리다. 의외로 유럽 아프리카 유라시아 대륙으로 붙어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도 그렇게 멀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아메리카는 기본이 12~14시간이며 남아메리카 인천국제공항 기준 24시간은 넘게 걸리는 지구 반대편이다. 대서양을 경계로 하는 유럽과도 꽤 멀다. 심지어 같은 아메리카에서도 남북의 차이가 꽤 크다. 당장 미국 멕시코, 미국 캐나다 퀘벡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미국내서도 남북, 동서 간 분위기가 다르며 특히 히스패닉이 몰려사는 텍사스 남부와 플로리다 등 남부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 더 가깝다.

2. 명명의 이유

이름의 유래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세비야에 거주했던 아메리고 베스푸치. 사실 그가 이렇다할 지리적 발견에 기여한 바는 없다. 이 사람은 원래 선박조달사업을 한 인물로, 문제의 대륙으로 몇번 항해를 한 적은 있으나, 모두 승객이거나 하급관리의 신분이었다. 이 사람을 탐험가나 항행사라고 부르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영문인지 1505년 무명작가[1]가 쓴 편지가 신세계(Nuovo Mundo)라는 제목으로 피렌체에 널리퍼지기 시작했는데, 황당하게 여기에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탐험선의 선장이며, 동시에 신대륙의 발견자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일이 꼬이려니, 프톨레마이오스식 지도를 만들던 프랑스의 지도학자 마르틴 발트제뮬러 교수가 이 책과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항해이야기에 꽂히면서 이 대륙에 이름을 붙여버린 것이다. 정확한 변천은 아메리고를 라틴어 식으로 아메리쿠스라고 적었다가, 다시 여성형[2]으로 고쳐서 아메리카라고 바꾸었다. 그런데 이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런 지도가 나돌고도 40년이나 지난 다음이었고[3], 그나마도 남아메리카에 한정된 것이었다. 도대체 왜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고, 이 무명의 지도제작자의 지도가 공식명칭이 되었는지는 귀신도 모른다.

당연하지만 콜럼버스는 지옥에서도 무척 억울해 했을 것이다. 다만 콜롬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발견한 땅이 인도인 줄 알았으니. 그래서인지 콜롬부스의 이름을 따 콜롬비아로 이 대륙을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되었고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는 새 독립국가의 국명을 콜롬비아로 명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데다, 볼리바르가 건설한 대(大)콜롬비아 공화국은 내분으로 여러 독립국들로 사분오열되면서, 콜롬비아는 현재의 일개 국가를 부르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물론 원주민들이 부르던 '마푸', '아나우악', '타완틴수유' 같은 이름들이 깡그리 무시당한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대우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를 내린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 박병규 교수의 논문을 링크하니 참고는 해보자.

3. 인간이 살던 역사

유럽인이 도래하기 이전 아메리카 대륙에 거주하던 선주민들은 빙하기 베링 해협에 존재하던 육로를 통해 아시아에서 이주했다는 것이 정설. 물론 이집트 페니키아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이주하였다고 주장하는 재야 사학자들-대표적으로 이 분-도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의견. 이들 선주민들은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각지에 정착하여 아즈텍, 마야, 잉카 등의 문명을 건설하였으나, 16세기 들어 도래한 유럽인들에게 군사적으로 정복당하였다. 이들의 문명은 아직 그 전모가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수학, 천문학, 건축 기술 등 일부 분야에서는 현대 기술을 능가하는 발전상을 보여주는 반면 철기나 바퀴와 같은 (구대륙의 관점에서는) 간단한 기술은 모르고 있는 등, 기묘한 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기존 13,000여년 전에 이주했다는 이론보다 약9000년 전인 22,000년 전에 아메리카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사. 기사에 아시안보다 오스트레일리아대륙의 원주민들이 먼저 정착했을수 있다는 의견도 소개되어있는데 아직은 논란이 되고 있는 내용이며 정확한 사실은 관련 연구가 더 진행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 선주민들은 유럽인의 군사적 정복과 더불어, 그들이 옮긴 전염병에 의해 극심한 인구 감소를 겪었다. 그 결과 특히 북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섬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아메리카의 남단 국가들에서는 선주민 인구가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멕시코 이남,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선주민들과 그들의 혼혈 후손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4]

위에서 언급한 인구가 감소한 지역 및 본래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던 지역(대표적으로 브라질)에서는 노예 노동을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많은 흑인들이 강제로 이주당하여 정착하였다. 이들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결합시킨 매우 독특한 문화를 창조했는데,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중문화는 매우 심심했을 것이다. 이들이 남긴 대표적인 결과물만 꼽아봐도 재즈, 블루스, 레게, 삼바, 힙합, 부두교, 브라질 축구, 카포에라 등등. 흠좀무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유럽인들. 가장 먼저 아메리카에 발을 내딛은 유럽인은 바이킹으로 보이는데,[5] 이들은 후대에 이렇다할 영향을 미치지 못한 채 소멸해버렸고, 결국 영광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게로 돌아간다. 이후 브라질을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 전체는 스페인의 세력권에 귀속되었지만, 스페인의 국력이 쇠락하면서 결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러시아 등의 열강들이 앞다투어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다.

결국 현재의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영국, 현재의 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 현재의 멕시코, 쿠바, 칠레, 과테말라,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페루등 기타 대부분 지역에서는 스페인이 각자 차지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식민지의 역사가 길어지다보니 현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식민지인들과 유럽의 본국인들 사이에서 갈등이 심해졌고, 18세기 후반 아이티 미국을 시작으로 19세기 중엽에는 캐나다를 제외한 아메리카 대륙 거의 전체가 유럽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무슬림 항해사들이 콜럼버스 이전에 무슬림 항해사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했었다고 주장했었는데, 문제는 출처가 종교서적이라 조롱받았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평가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능숙한 정치가로서 그의 상투적인 수법.
[1]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썼다는 이야기도 없진 않다. [2] 대륙이나 지명에는 여성형을 많이 붙인다. [3] 참고로 정작 발트제뮬러 교수는 초판이 발매된 이후에 자신이 낚였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후기 판본에서 아메리카 라는 이름을 지워버렸다. [4] 이 지역들은 본래 인구가 많은데다 다른 지역보다 복잡한 문명을 이루고 있어 전염병에 강하게 저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그런것보다는 19-20세기의 인구폭발 버프가 크긴 했지만. [5] 1960년대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확정된 역사적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