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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續武定寶鑑. 조선 명종 3년(1548) 홍언필(洪彦弼)ㆍ윤인경(尹仁鏡)ㆍ이기(李芑)ㆍ정순붕(鄭順朋)ㆍ황헌(黃憲)ㆍ 윤원형(尹元衡) 등이 명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역사책. 성종대부터 명종 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내우외환에 대해 정리하였다. 총 5권 2책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 중이다.2. 내용
을사정난기(乙巳定難記)라고도 부른다.조선 명종의 명으로 1548년에 만든 관찬 역사서로, 성종으로부터 명종대까지 조선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들을 기록했다. 속(續)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1469년 조선 예종의 명으로 만든 무정보감의 속편이다. 이때 예종의 명으로 편찬한 최초의 무정보감은 조선 개국 당시부터 예종대까지의 모든 국가적 일들을 총망라한 책이었는데 이 책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본래 명종 대에 만든 것은 총 8권 4책이었고 훗날 광해군 대에 증보하였지만 현전하는 것은 5권 2책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으로 반출하였으며, 2010년 11월에 한국으로 다시 반환되었다. 연합뉴스 : 이토 히로부미가 국내서 반출한 도서, 한겨레 : ‘을사정난기’ 등 희귀자료 포함
이것을 편찬할 때 작은 소동이 있었다. 본디 속무정보감은 문정왕후가 을사사화를 영원히 남기게 하겠다는 의도로[1] 편찬하게 했는데 편찬하는 사관들이 사고를 쳤다. 편찬에 참여한 이들은 을사사화가 의롭지 않다고 여겼는지 윤원형ㆍ이기 등은 부정적으로, 윤임ㆍ유관, 그들을 옹호한 이언적ㆍ권벌은 우호적으로 서술했다. 담당관들이 이를 보고하자 문정왕후가 사관 안명세를 참형에 처하고 다른 두 명은 유배조치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이 쓴 글은 폐기되지 않았는데 문정왕후 사후 사림이 집권했기 때문이다.
3. 외부 링크
[1]
지금이야 을사사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게 정의였으니까 윤임 등의 역모 사실을 영원히 후세에 전하겠다는 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