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3:11:13

세총통

파일:조선군 좌독기_White.svg
조선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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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ff> 백병 <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ff> 도검 사인검, 월도, 왜검, 장검, 창포검, 환도, 협도, 쌍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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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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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별대완구,대완구,중완구,소완구,소소완구, 총통기, 호준포, 불랑기포, 홍이포, 운현궁 화포( 소포, 중포, 대포), 목모포, 파진포, 지뢰포, 수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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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세총통.jpg

위의 사진은 수집가 박호병씨가 기증한 것으로 보물 제854호로 지정되어 육군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1. 개요2. 특징3. 외양4. 기타


1. 개요

細銃筒. 조선 초기 조선 북방을 침입한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세종 14년(1432년) 최초로 제작된 휴대형 총통으로 지금으로 치면 권총에 해당한다. 당시 화약무기들의 대부분은 보병용이였다는 걸 감안하면[1] 아직 권총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에 등장한 좀 특이한 무기.

2. 특징

보병이 사용하는 것을 상정한 다른 총통들과는 다르게, 여진족과 기병전을 벌이면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크기가 아주 작아 휴대하기 쉽고 발사하는 데 편리하며 말 위에서 많이 소지하면서 연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으며 어린이와 부녀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대 30개까지 소지할 수 있으며, 미리 장전해뒀다가 집게에 끼워 발사하는 방식으로 총통의 단점인 낮은 연사력과 휴대성을 보완했고, 몇몇 면에서는 오히려 나중에 등장한 피스톨을 능가하는 은근히 시대를 앞서나간 물건.

이 총통에는 다른 휴대용 총통과는 달리 뒷부분에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없어서 철흠자(쇠집게)에 끼워 발사했는데, 우리나라 이외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방식이다. 권총손잡이의 형태와 유사한데, 카트리지를 교환하듯 총통을 갈아끼워 장전 속도를 늘릴 수 있었다.[2] 근대 화기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중대한 발명이 탄피의 발명임을 생각하면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물건. 발사물로는 차세전을 사용했다. 사거리는 200보.(약 250미터 가량)

조선이 기록의 나라라는 드립에 걸맞지 않게 군사 관련 기록은 많이 남기지 않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공문서들도 임진왜란기에 승정원일기가 불타 버리며 사라졌기 때문에 세총통의 실전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체탐인이 사용할 법한 무기이고 기병이 쓰기에도 좋았으므로 실전에서 사용한 적은 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3. 외양

파일:external/static.wmk.kr/img_0_0_0.jpg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철흠자에 끼워진 장전된 상태의 세총통.

유물은 최근까진 박호병 씨가 기증한 것 밖에 없었지만 2011년 세종로에서 발굴되었다.

파일:/image/001/2011/03/25/AKR20110325069000005_02_i.jpg
위 사진에서 오른쪽 제일 아래에 있는 것이 세총통

4. 기타

문화재청 헤리티지 채널에도 나왔다. 영상

독특하고 특이한 생김새의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매체에서는 나온 모습이 거의 없다. 조총이 있던 시대에 나온다면 그냥 권총 형식의 조총이 나온다. 세총통이 나온 대표적인 대중매체는 대왕 세종이다. 무려 충녕을 암살 시도를 하는 것으로 첫 등장. 쇠집게로 잡는 형식이 아닌 권총의 모습을 쇳덩이를 그냥 움켜잡는 모습으로 튀어나왔고 그곳에 그대로 심지를 꽂아 불을 지펴 발사하는 모습으로 나왔다. 당연히 재현 오류.


[1]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도 화약무기를 기병이 운용하려는 시도가 있기는 있었지만, 세총통처럼 소형의 것이 아니라 기병, 보병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카빈에 가까운 것이였다. [2] 실제 탄피와도 어느 정도 일치하나, 심지가 타들어가는 방식이었으므로 원하는 타이밍이 오기 전에 미리 불을 붙이고, 쓰고 난 후 교체하는 것이기에 일종의 카트리지 교환식 개념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