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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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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종합청사 內閣綜合廳舍 Government Complex of DP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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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종합청사의 모습[1] | |
<colbgcolor=#ED1C27,#222222><colcolor=white> 준공 | 1954년[2] |
기능 | 내각 청사 |
상주 기관 | 내각 산하 기관들[3] |
주소 |
내각종합청사 (
평양시
중구역 경림동)
|
[clearfix]
1. 개요
1954년에 완공되어 주석궁이 완성된 1977년까지 북한판 중앙청이자 정부종합청사로써 북한의 최고 지배기구이자 행정건물로써 쓰이던 건물이다. 주석궁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북한의 내각 혹은 정무원의 모든 기능을 쥐고 있던 건물이나, 주석궁이 건립된 이후로 내각의 기능 상당수가 주석궁으로 들어가면서 그 위상이 많이 낮아졌었다. 우상화에 미쳐버린 북한이 초대 지배자인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주석궁을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명하고 그 건물을 김일성의 시체를 보존하는 미라보관소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북한 최고의 행정건물이었던 주석궁이 사라지게 되자. 다시 내각의 핵심기능과 기관들을 가진 건물로써 쓰이고 있지만 모든 기능을 돌려받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열병식 장소 옆이기 때문에 류경호텔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북한 건물 중 하나이다.[4] 북한의 평양직할시 중구역 경림동에 있다.
2.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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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종합청사 주변 풍경[5] |
1948년에 북한이 막 개국할 무렵에는 북한도 남한과 같이 일본 제국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하던 행정건물을 압수해서 행정건물로 썼기 때문에, 평양 시청 등이 북한의 행정건물로 쓰였다. 하지만 6.25전쟁시기에 북한 전역이 공습으로 초토화되면서 북한에는 더 이상 정부 조직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전후에 소련이 전후복구를 지원할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북한에 행정건물을 지어주는 것이었는데, 이에 따라서 1954년에 평양시에 소련이 소련의 물자를 가져와서 소련식 설계대로 지어놓은 건물이 내각종합청사이다. 덕분에 일본 제국의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존한 대한민국의 중앙청과 완벽히 대비되는 스탈린시기의 소련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당대 소련은 불과 10여년 전에 독일군의 공습에 시달린 경험 때문인지 행정건물은 반드시 철근콘크리트로 짓는 관행이 있어서 북한 내에서는 대단히 튼튼한 건물 중에 하나이겠지만 소련 특유의 인명경시사상과 문화경시사상이 들어간 설계라 편의성이 떨어지고, 미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많은 건물이라서 건축물 자체는 큰 보존가치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해당 건축물의 가치는 배제하고서 이 건물을 사용하는 주체가 내각이라는 점[6] 때문에 주석궁이 건립되기 전까지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 중에 하나였다. 1954년부터 1977년까지 북한의 권력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1977년에 주석궁이 완공되자 내각의 상당수 기능이 내각종합청사에서 주석궁으로 옮겨갔다. 1995년에 주석궁이 금수산태양궁전으로 개명되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체를 보관하는 미라보관소로 변한 이후로는 다시 가장 규모가 큰 행정건물이 되었으나, 주석궁에 넘어갔던 상당수의 기능들이 전부 돌아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북한 내의 위상이 다시 높아지지는 않았다. 이는 김정일 시기에 북한이 선군정치를 하면서 내각의 이름이 정무원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주석궁이 사라진 이후,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본부청사이다. 이 건물은 김일성 사후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며,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이 맛이 가는 와중에도 인민들의 고혈을 짜내서 지은 건물이다.
소련식 행정청 설계가 그렇듯이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는데, 1954년에 소련이 내각종합청사를 지어준 이후부터 모든 북한의 행정건물은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다.[7] 이는 6.25전쟁 당시에 제공권 문제로 모든 도시가 초토화되었고 이로 인하여 행정건물도 전부 파괴되었던 경험에 의한다. 북한처럼 주요 격전지였고 공산군 측과 자유진영 측 양쪽에 공습이나 폭격을 받고도 멀쩡히 중앙행정건물로 기능했던 중앙청의 사례를 보고 배운 것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행정건물들의 내구도가 나중에 지은 건물일수록 점점 내려가서 피난시설로 쓰기도 힘들어지고 있는 것과 반대인 것[8]이 아이러니하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소련식 설계 자체가 인명경시가 심하고 편의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데다가 그 설계마져 현재로써는 구식설계[9]이기 때문에 평화통일이 안된 상태로 북한이 존속하고 있는 상태라도 북한이 경제여건을 회복하고 경제적으로 발전을 해서 여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부수고 최신 설계로 다시 지어야할 건물 1순위를 다툴 것이라고 보이는데, 대한민국의 중앙정부청사였던 정부종합청사는 박정희 시절인 1970년에 지어졌음애도 설계의 구식과 건물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행정기능의 중심을 담당하기에 무리라는 판정을 받고 중앙청사 지위를 박탈당하고 지역복합청사로 강등되었는데, 1954년에도 구식기술 구식설계로 지어진 건물이 발전하는 북한의 행정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김일성광장을 앞에 두고 있다. 북한이 열병식을 하는 위치가 김일성광장이므로 남측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북한의 열병식을 방영할 때, 반드시 나오는 건물이다. 따라서 류경호텔, 인민대학습당과 더불어서 외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북한의 건물 중에 하나이다. 김일성광장을 가운데 두고 그 맞은 편에는 대외경제성 청사가 위치해 있다.
공식적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이 입주해 있지만 폐쇄적인 북한의 사정상 구체적으로 어떤 기관이 입주해있는지는 민간에서 알 수 없다. 일단 외부에 다른 청사를 쓰고 있는 것이 밝혀져 있는 국가계획위원회, 대외경제성, 외무성을 제외한 기관들이 입주해 있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데, 북한은 국민복지를 완전히 포기하고 사실상 지방행정과 시장경제운영을 포기한 나라라서 많은 행정조직이 들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남한 조차도 늘어나는 행정수요 때문에 계속 건물을 증축하거나 신축하는데, 1954년에 지어진 건물을 계속 쓰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구글 지도에는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로 뜨나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기 힘들다.
3. 통일 이후 예상
이 건물은 1954년에 지어진 건물로써 매우 낙후된 건물이다. 건물 면적도 현대행정을 담당하는 중앙정부청사로 쓰기에는 크지 않으며, 건물 내부설계도 그다지 편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10] 북한이 경제를 거의 포기한 상태고 국민에 대한 복지를 버린 상태이며 행정도 인민위원회의 도움을 받아서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상황이라서 저런 건물에서 국가의 주요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 한국 수준의 행정조직을 갖추면 저 정도 덩치 갖고는 수용하기 어렵다.따라서 평화통일을 하더라도 내각종합청사는 오래 못 갈 것으로 보인다. 통일 직후에는 건물 하나하나가 귀하니 사용을 하겠지만 북한 지역 행정이 좀 숨 돌릴 만해지면 바로 좁아터진 내각청사를 떠나 새로운 부지에다 신청사를 지어 이전할 것이 뻔하기 때문. 만수대의사당이 있으므로 평양의 시의회 건물로는 쓸 이유가 없고 평양시청으로 쓰기에는 평양시 인민위원회의 건물이 있다.[11] 여러모로 계륵같은 건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건축기술의 정수와 국력을 크게 써서 지은 금수산태양궁전을 제외하면 북한의 건물 중에서는 상당히 잘 지은 편인 건물이라는 것이다.
4. 입주 기관
[1]
23년 열병식 전후로 인공기와 선전 문구 부분이 바뀌었다.
[2]
김일성광장이
6.25 전쟁 후
1954년에 지어질 때 함께 지어졌다.
[3]
국가계획위원회,
대외경제성,
외무성 등 일부 기관들은 별도 청사에 입주.
[4]
단 류경호텔과 달리 외국인들에게 이름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소련식 설계와 커다란 인공기 덕에 주변 건물과 상당히 달라보이는 건물 쯤으로 알려져 있다.
[5]
뒤에
창전거리가 보인다.
[6]
그리고 주석궁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이 건물이 북한의 행정건물 중 가장 거대한 건물이기도 했다.
[7]
대한민국의
중앙청의 경우에도
일본 제국이 자국의 건축기술의 정수를 모두 갈아넣어서 만들었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폭격을 받고
방화를 당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보수를 받고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북한도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 중앙청을 사용해 봤고 UN군의 서울 탈환 때 농성도 해봤으니 중앙청의 내구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건설할 당시 중앙청의 내구도 수준은 요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8]
건축비 절감 문제로
유리궁전 형식으로 짓기 때문이다.
[9]
전산망이 없던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라 서버실을 두기 힘든 설계고, 내구도를 강화하려고 벽을 두껍게 지어서
에어컨 설치가 힘든 구조다.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반드시 외벽에 실외기를 설치할 외벽장치를 설치해야만 하는데 벽이 두꺼울수록 에어컨 공사가 힘들어진다. 실제로 실외기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에어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10]
1970년대에 지어진
정부서울청사도 이미 수많은 부서가 과천청사와 세종청사 등으로 빠져나갔음에도 포화상태가 계속되고 있어서 재건축을 하거나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중이다.
[11]
다만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져서 내각종합청사보다 더 오래된 곳이다. 때문에 차라리 평양시청을 내각종합청사로 옮기고 현재의 평양시청 건물은 철거하거나
서울특별시청 청사처럼 전시관으로 전환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