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13:49:31

보스턴 레드삭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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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창기 강팀 시절2. 트레이드가 불러온 재앙3. 테드 윌리엄스의 시대4. 언더독의 눈물5. 90년대의 슈퍼스타들6. 테오 엡스타인의 등장과 두 번의 우승7.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강팀으로
7.1. 2008 시즌7.2. 2009 시즌7.3. 2010 시즌7.4. 2011 시즌7.5. 2012 시즌7.6. 2013 시즌
8. 본격적인 고난의 리툴링 시기
8.1. 2014 시즌8.2. 2015 시즌
9. 다시 지구 우승 전력으로
9.1. 2016 시즌9.2. 2017 시즌9.3. 2018 시즌9.4. 2019 시즌
10. 윈나우의 끝, 리툴링 시작
10.1. 2020 시즌10.2. 2021 시즌10.3. 2022 시즌10.4. 2023 시즌



레드삭스의 75년 역사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6년 제작)

1. 초창기 강팀 시절

1901년 보스턴 아메리칸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고 레드삭스라는 이름은 1908년부터 사용했다. 1903년 전설적인 투수 사이 영과 함께 첫 우승을 한 뒤 1910년대에는 1912, 1915, 1916, 1918년 네 번의 우승을 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베이브 루스는 1915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이 시기에는 타자보다는 투수로서 맹활약했다. 1919년 팀이 5할 밑으로 떨어지자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뉴욕 양키스 베이브 루스를 12만 5000불에 추가적으로 융자를 받는 조건으로 현금 트레이드한다[1].

이 때만 해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8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2]

현재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는 이 시절인 1912년부터 사용했으며 최초의 홈구장이었던 헌팅턴 에비뉴 그라운드[3]는 현재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부지에 있다. 11,5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헌팅턴 에비뉴 그라운드는 최초의 월드시리즈를 개최하였다는 역사적인 장소였지만 잔디가 자라지 않는 외야와 너무 깊은 센터 필드 외야 (160m) 때문에 팀은 이전 후 철거를 결정한다. 당시 부지인 월드시리즈 웨이 부근은 현재 체육관을 비롯하여 노스이스턴 대학의 부지로 사용중이지만 사이 영 의 동상이나 홈플레이트, 폴대를 알리는 명판 등 당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2. 트레이드가 불러온 재앙

그리고 양키스는 루스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레드삭스로부터 주축 선수들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 양키스는 1920년대 이후로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에 등극하게 되지만, 레드삭스는 베이브 루스 트레이드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버금가는 암흑기를 가졌다. 1919년부터 1933년까지 6년 연속 AL 최하위를 포함, 15년 연속 5할 미만 승률이라는 비참한 성적을 냈다.[4] 참고로 15년 이상으로 연속 5할 미만 승률을 기록한 구단은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도 4개밖에 없다. [5]

3. 테드 윌리엄스의 시대

팀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또다른 레전드 테드 윌리엄스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타격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와 함께 팀은 상당히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1930년대에는 항상 양키스에 막혀서 아메리칸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기간에는 그가 참전하였고, 그에 따라 팀의 성적은 하락했다. 윌리엄스의 선수 시절 동안 리그 1위를 한 것은 1946년 단 한 번. 이 때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3승 2패까지 올렸으나 6차전과 7차전[6]을 내리 패하면서 우승에는 실패한다.

1948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역사상 최초로 열린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패했다. [7] 1949년에는 또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패했다. 상대는 뉴욕 양키스.

그리고 현재까지도 테드 윌리엄스 조 디마지오의 MVP 경쟁은 논란이 되고 있다. 윌리엄스가 세이버 스탯은 물론이요 클래식 스탯마저도 압도한 시즌이 여러 번 있었는데 결국은 디마지오가 MVP를 가져가게 되었다.

4. 언더독의 눈물

칼 야스트렘스키 테드 윌리엄스의 뒤를 이어 팀을 이끌었지만 1960년대는 전체적으로는 팀의 암흑기였다. 1967년 칼 야스트렘스키가 WAR 10이 넘어가는 무지막지한 활약을 하여 AL MVP, Sportsman of the year에 선정되었고, 팀도 깜짝 지구 1위를 하며 다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이번에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3:4로 패한다.
[kakaotv(378105856)]

1975년에는 빅 레드 머신으로 통하던 신시내티 레즈를 월드시리즈에서 만난다. 7차전에서 보스턴은 3:0으로 앞섰지만 6회에 토니 페레즈의 2점 홈런, 7회 피트 로즈의 동점타, 9회 조 모건의 결승타가 터지면서 7차전 경기 3:4, 월드시리즈 전적도 3:4로 다시 무릎을 꿇고 만다.

1978년에는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의 타이브레이커로 유명하다. 초반에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무려 13게임 차로 뉴욕 양키스를 따돌렸지만, 결국 다 따라잡히고 162번째 경기에서 99승 63패로 동률이 되었다. 그리고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지면서 양키스에게 지구 우승 타이틀을 내줬다. 그리고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

1980년대의 전성기를 이끈 것은 타자 웨이드 보그스, 짐 라이스, 드와이트 에반스, 마이크 그린웰과 투수 로저 클레멘스다. 그리하여 1986년에 다시 월드시리즈에 나왔고 이번 상대는 뉴욕 메츠. 시리즈에서 3:2로 앞서던 6차전 게임은 연장에 돌입하여 10회초 2점을 낸 보스턴이 5:3으로 앞섰지만, 보스턴은 2아웃을 잡아 놓고 연속 3안타를 맞고 와일드 피치로 동점을 내줬으며, 그 유명한 빌 버크너의 끝내기 알까기 실책이 나오면서 패했다.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언급되기 시작된 것부터 이 때 부터이다. 이후 7차전도 패하면서 다시 우승 좌절. 이때부터 양키스 팬들을 1918년을 언급하며 삭스 팬들을 놀렸다.

5. 90년대의 슈퍼스타들

90년대 팀 타선의 주축은 모 본이었다. 1995년에는 MVP를 수상한 모 본[8]의 맹활약과 너클볼을 들고 갑툭튀한 팀 웨이크필드의 등장에 힘입어 지구우승을 했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한테 3패로 광탈. 이후 1996, 1997년에는 성적도 좋지 않았고 로저 클레멘스도 FA로 다른 팀에 그대로 내준다. 하지만 1997 시즌이 끝나고 댄 듀켓 단장[9]은 크게 한방을 터트리는데, NL 사이영상 위너였던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유망주 칼 파바노와 토니 아마스 Jr.을 주고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것이다.[10] 이어서 1997년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스타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타선을 이끌면서 다시 팀 성적은 상승.

1998년과 1999년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오른다. 하지만 1998년에는 디비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힘으로 1차전만 승리하고 3연패하며 막혔고, 1999년에는 클리블랜드에게 거의 탈락했다가 5차전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캐리로 챔피언십에 도전했으나 뉴욕 양키스에게 패배하면서 무너진다. 이 때 보스턴은 페드로 선발경기 외 나머지 경기를 모두 패하면서 시리즈를 내줬다. 패패패패[11]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1999년 정규 시즌에는 11.6fWAR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하고 포스트 시즌에는 17이닝 0실점 5피안타라는 기록을 찍었다. 마침 몇년 전부터 양키스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지구 1위를 독식하고 보스턴이 이에 도전하는 구도가 짜여진다.

이후 2000년에는 트레이드로 유망주 애덤 에버렛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내주고 호타준족 중견수 칼 에버렛을 받아오고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신화적인 활약을 했지만 지구 2위에 와일드카드는 실패. 2001년에는 8년 계약으로 강타자 매니 라미레즈를 데려왔지만, 페드로가 부상으로 18경기 선발에 그치고 노마도 부상당했으며 칼 에버렛은 역시 리그 최악의 악동답게 팀내 다른 선수들과 충돌하며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노모 히데오가 깜짝 활약으로 부활하여 13승을 했으나 팀은 5할을 간신히 넘는 데 그친다.

듀켓 단장은 스타급 선수들을 트레이드, 드래프트, FA 등으로 여럿 끌어모았고 이외에도 마무리 히스클리프 슬로컴을 시애틀 매리너스에 내주고 새로운 마무리 데릭 로우와 주전 포수 제이슨 배리텍을 데려오는 등 굵직한 성공작은 많았지만, 팀의 다른 선수들은 그것을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전체적인 그림이 조화롭게 되지 못한 셈. 2002년 초 존 헨리 구단주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인수하고 바로 댄 듀켓을 해고한다.

2002 시즌에는 데릭 로우의 선발전환이 대성공. 21승 8패 2.58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외로운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지원했다. 게다가 팀 웨이크필드도 오랜만에 부활하여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163.1이닝으로 규정이닝을 소화하고 11승 5패 2.81의 호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 세 명을 갖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은 실패했다. 성적이 나아져서 93승을 올리긴 했지만 당시 돌풍을 일으켰던 와일드카드1위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따라잡기엔 역부족.

6. 테오 엡스타인의 등장과 두 번의 우승



존 헨리 구단주는 2002 시즌이 끝나고 새로운 단장으로 테오 엡스타인을 임명한다. 머니볼 이론과 세이버메트리션 등 새로운 흐름을 깨우친 테오 엡스타인은 적당한 중저가 선수들(케빈 밀라, 빌 뮬러, 토드 워커)을 FA 혹은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타선을 탈바꿈시킨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오클랜드 출신의 출루머신 제레미 지암비를 영입했으나, 오프시즌이 끝나가던 1월말 페드로가 다른 팀에서 논텐더로 풀린 고향친구 한 명을 추천해 추가한다. 그가 바로 데이빗 오티즈. 이러한 타선 새판짜기는 제레미 지암비를 제외한 영입파 대부분의 대성공에 기존의 매니와 노마는 말할 필요도 없고 제이슨 배리텍 트롯 닉슨까지 터지면서 .491의 팀 장타율 신기록, 9명 주전 전원 10홈런 이상, 리드오프 조니 데이먼을 제외한 8명 전원 85타점 이상 등등 각종 정신나간 기록들을 세웠다.

반면 투수진은 2002 시즌의 활약을 재현하지 못한데다, 초반 집단 마무리 체제 실험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버벅거렸다. 결국 마무리로 김병현을 트레이드해온다.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디비전에선 오클랜드를 리버스 스윕으로 2:3으로 꺾었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시 뉴욕 양키스 앞에서 쓴맛을 본다.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끝내 호르헤 포사다에게 8회에 동점 2루타를 얻어맞았고, 팀 웨이크필드가 애런 분에게 연장전 끝내기 홈런을 맞았다. 이후 그래디 리틀 감독이 물러나고 테리 프랑코나 감독이 새롭게 돌아온다.

2004 시즌은 몇몇 타자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면서 2003 시즌과 같은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고 기존 투수들은 더욱 부진하여 페드로 마르티네즈도 더이상 외계인이 아니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트레이드해온 에이스 커트 실링과 FA로 받아온 마무리 키스 풀크, 마이너에서 수련받고 오랜만에 복귀한 브론슨 아로요가 활약하며 안정되었다. 그리고 트레이드 데드라인인 7월 31일, 테오 엡스타인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보내고 올랜도 카브레라와 덕 민케비치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트레이드의 반향은 엄청났고 보스턴 팬들은 경악했으며 전문가들은 컵스가 노마를 스틸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레드삭스는 승승장구. 98승으로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올라 디비전에서 애너하임을 스윕한뒤, AL 챔피언십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며 뉴욕 양키스를 꺾는다. 상세한 내용은 2004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문서 참조.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선 지난 역사 속에 보스턴의 우승 시도를 두번이나 좌절시켰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맞아 단 한번도 리드를 허용하지 않고 4:0으로 가볍게 스윕. 86년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깬다. ALCS 리버스스윕+월드시리즈 셧아웃으로 도합 8연승이라는 엄청난 결과로 인해 이 해 역대 세 번째로 팀 전체가 Sportsman of the year에 선정되었다. [12]

이후 2005 시즌과 2006 시즌은 조금은 부족한 성적을 낸다. 많은 기존 선수들이 FA로 팀을 나갔지만 잡지 않았다. 또한 에드가 렌테리아, 맷 클레멘트, 윌리 모 페냐, 훌리오 루고와 같은 삽질영입도 있었다. 하지만 테오 엡스타인의 중요한 초점 중 하나는 유망주 육성에 있었다. 2003년부터 관리된 팜은 2006년부터 조금씩 결과물이 올라온다. 더스틴 페드로이아, 케빈 유킬리스, 자코비 엘스버리등의 타자와 에이스 존 레스터, 마무리 조나단 파펠본 등이 빅리그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또다른 유망주 핸리 라미레즈 아니발 산체스는 트레이드로 이용되어 에이스 조시 베켓과 3루수 마이크 로웰을 데려온다.

2007 시즌에는 이런 유망주들이 자리잡은 데다가 2006년 삽질했던 조시 베켓이 귀신같이 홀수해 에이스 모드로 돌아오고 마쓰자카 J.D. 드류 같은 FA도 적절하게 활약하면서 96승으로 지구 우승을 한다. 그리고 에인절스를 다시 스윕하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1승 3패까지 몰렸으나 에이스 베켓이 5차전을 잡고 6-7차전 타선이 폭발하며 힘겹게 승리한다. 월드시리즈에서는 락토버 돌풍의 콜로라도 로키스를 만나 4:0으로 스윕하며 잠재운다. 2004년 우승이 단기간에 영입된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면 2007년 우승은 팀에서 키운 젊은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7.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강팀으로

7.1. 2008 시즌

2008년에도 어김없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지만 하필 만난 상대가 꼴지팀의 기적이라 불린 탬파베이 레이스였던지라…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7.2. 2009 시즌

2009 시즌에는 그간 열심히 털어먹었던 양키스에게 8연승 찍고도 1승 9패를 찍으며 겨우겨우 5:5를 맞추었으며,[13] 매니가 떠난 빈자리를 메꿔줘야 할 오티즈가 헤메고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온 베이는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와일드 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매번 포스트시즌에서 보스턴의 밥이었던 에인절스가 되려 이번에는 보스턴을 발라버려(…) 월드시리즈 진출은커녕 챔피언십 진출에도 실패하고 말았다.[14]

타선의 노쇠화와 강력한 투펀치의 부재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2009 시즌 중에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에이스 펠릭스 에르난데스를 얻으려고 유망주 중에서 찍으셈 했지만 시애틀이 거절했고[15] 스토브리그에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강타자 애드리안 곤잘레스 트레이드를 추진했지만 무산되었다.[16] 한편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 투수인 로이 할러데이를 놓고 양키스와 쟁탈전 중이었지만 로이 할러데이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갔고 보스턴은 LA 에인절스의 에이스였던 존 래키를 영입했다.

7.3. 2010 시즌

2010 시즌에는 아드리안 벨트레, 마이크 카메론, 제레미 허미다, 존 래키 등을 영입해 비교적 조촐하게[17] 시즌을 시작했던 터라 보스턴 팬들도 그렇고 프런트도 그렇고 이렇다하게 기대는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장기 계약을 맺었던 조시 베켓은 개털리다가 2달 남짓 DL 갔다오는 모습을 보였고, 래키 역시 팀내 최다이닝을 소화했지만 고액 FA 계약자치곤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뭐, 클레이 벅홀츠 존 레스터가 제몫을 해줘서 다행. 마쓰자카 다이스케 역시 이번에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불펜진이 박살났다는 점이다. 매니 델카맨, 오카지마 히데키, 라몬 라미레즈[18], 조나단 파펠본이 단체로 삽을 푸면서 불펜이 경기를 말아먹은게 한 두번이 아니다. 이로 인해 프런트에서는 쓸만한 불펜보강을 노렸다.

타선에선 오티즈는 그래도 5월 즈음부터 살아나면서 결국 타율 2할 7푼에 30홈런-100타점을 달성했다. 일단 자기가 할 최소한의 일은 다 해줬고, 케빈 유킬리스는 출장은 많이 못했지만평소 기대치인 3-4-5를 찍으며 0.975의 OPS를 기록했다. 그리고 FA로 온 벨트레가 3할대의 타율에 5할대의 장타율을 뽐내면서 타선에 활력을 불어놓았다.

포수면에서는 주전 포수 빅터 마르티네스가 수비 능력에서 다소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도루 저지율이 3할이 안되며, 블로킹에서도 약점이 노출되었다. 그래도 빅터는 공격형 포수라 이런게 좀 안되도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벨트레가 시즌 초반 마이너리거의 희망으로 부상하면서[19] 부상자가 서서히 늘어났고, 조시 베켓, 마이크 로웰, 제이슨 배리텍, 더스틴 페드로이아, 빅터 마르티네스 등 주전급 선수들이 단체로 부상병동에 이름을 올렸다. 마치 2009 시즌의 뉴욕 메츠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성적은 열약한 상황 치고는 잘 나왔다.

결국 올스타전 이후 레드삭스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케빈 유킬리스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나란히 시즌 아웃을 당하면서 실질적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다. 성적은 괜찮았다. 같은 지구에 리그 1, 2위인 레이스와 양키스가 있어서 그렇지. 전체 리그 5위, 서부지구 우승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에 비해 1승이 모자랐고, 그놈의 양키스만 없었어도 다른 지구 2위를 모두 바르고 와일드 카드로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을 성적이었다.

7.4.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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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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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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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본격적인 고난의 리툴링 시기

8.1.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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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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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다시 지구 우승 전력으로

2010년대 드래프티[20], 국제 계약[21] 등 자체 생산된 선수들의 포텐이 만개하며 주전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다시 지구 우승과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이 되었다. 대신 데이빗 돔브로스키가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요안 몬카다, 마이클 코펙[22], 앤더슨 에스피노자[23] 등 상위 팜 선수를 팔아 즉시 전력감을 데려왔다. 트래비스 쇼[24]처럼 사기를 당한 케이스도 있었다.

9.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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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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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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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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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윈나우의 끝, 리툴링 시작

10.1.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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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세일(토미존), 데이비드 프라이스(트레이드), 릭 포셀로(FA) 등이 빠진 선발진에 설상가상으로 2019년 실질적 에이스 역할을 했던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마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이탈하면서 선발진에는 네이선 이볼디와 FA로 영입한 마틴 페레즈만이 남게 되었다. 2019년에 붕괴되었던 투수진의 상태보다 훨씬 더 심각해진 상황. 이에 9월 기준으로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5위 겸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작년보다 살아난 볼티모어에 이어, 8월부터 토론토 블루제이스마저 강팀으로 거듭나자, 보스턴 레드삭스는 압도적인 리그 꼴지로 추락했다. 보스턴이 뉴욕 양키스와 함께 AL 동부지구를 호령하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약체였던 팀들이 어느새 보스턴을 압도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2020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투수진이다. 2019년 이미 붕괴된 투수진에 마틴 페레즈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보강은 없었고 다른 팀에서 웨이버 된 투수들을 영입하며 로또를 노려봤지만 모두 꽝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다. 그나마 제 몫을 해주던 마무리 투수 브랜든 워크맨마저 필리스로 트레이드해 보내면서, 2019년 이미 실패로 드러난 브래지어-맷 반즈의 셋업-마무리 조합을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가동하고 있다. 9월 기준으로 투수진의 전체 fwar가 -1.1을 기록하고 있으며 2020년 기준 팀 투수 전체 fwar 최하위이자 유일하게 음수를 기록하고 있는 팀이다.

10.2.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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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즌도 버리는 시즌으로 예상되었으나, 이적생 키케 에르난데스, 헌터 렌프로, 카일 슈와버의 활약과 잰더 보가츠, 네이선 이볼디, 라파엘 데버스 등 기존 선수들의 활약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뉴욕 양키스, 탬파베이 레이스 등 탑독으로 평가받는 강팀들을 연파했고 2021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4차전 8회까진 상대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으나 역전패를 당한 끝에 5,6차전에서도 연패를 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과정이 다소 아쉬울 뿐 생각지도 못한 가을야구였기에 보스턴 팬들에겐 기대 이상의 시즌이었다.

10.3.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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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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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보스턴의 행보를 보면 2~3년 정도는 리툴링 시즌을 갖지만, 리툴링이 끝나면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는 강팀이 돼서 돌아오곤 하는데 딱 그럴 시기가 왔다. 물론 무키 베츠 잰더 보가츠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2014~2015 리툴링 기간만은 못하지만 2020~2022 시즌 동안 데이브 돔브로스키를 내보내고 젊은 사장 하임 블룸을 영입하는 등 팀의 체질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고 월급 루팡이 된 데이비드 프라이스와 연장 계약에 실패한 무키 베츠를 트레이드하는 등 무키 베츠 못 잡은 건 100% 손해였지만 팀의 페이롤을 줄이고 팜을 충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끝에 2023 시즌 들어서는 다소 여유로워졌다. 2022 시즌 트레버 스토리를 6년 1억 4천만 달러로 데려온 것은 보스턴이 슬슬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2019 시즌 이후 드러누운 크리스 세일의 고액 계약은 여전히 남아있고 팀 차원에서 거포 유망주로 밀어주던 바비 달벡이 좀처럼 터지질 않아서 풀타임도 치르지 못한 트리스톤 카사스에게 희망을 걸어야 하는 등 위험요소가 존재한다. 결국 FA를 선언한 잰더 보가츠를 잡을 수 있느냐와 팀의 최대 약점인 불펜진을 보강할 수 있느냐에 따라 2023 시즌의 행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이며, 알동 경쟁팀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감안하면 스토브 리그를 잘 보낸다 해도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 앞에서 위험요소로 꼽힌 세일 혹은 달벡, 아니면 새파랗게 어린 유망주 카사스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팀 차원에서 결단이 내려질 것이다.세일, 달벡이 잘하길 바라는 시점에서 아직 때가 안 온 것 같지만 말이다.

근데 보가츠에게 시즌 전부터 4년 90M이라는 호세 라미레즈급 염가 계약을 제시한 데다가 이후에도 6년 160M이라는, 예상치에 비해 다소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보가츠와의 결별이 사실상 확실시되었다. 이후 결국 보가츠가 11년 280M이라는 충격적인 계약을 맺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떠났으며, 이로 인해 보사구팽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25] WAR 6에 육박하는 유격수 하나가 빠진 셈이라 험난한 시즌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2010년대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이탈이 발생했기에 흥행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26] 이대로라면 라파엘 데버스를 놓치는 순간 보스턴 팬들이 얼마나 분노하게 될 지 모른다.

그러나 2023년 1월 4일, 11년 $331M라는 초대형 계약으로 라파엘 데버스를 지키는 데에 성공했다. 오프시즌 동안 돈을 안 쓰는 건 아닌데 너무 이상하게 쓴다는 평을 받으며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레드삭스지만 우선 팀의 중심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다.

다만 보스턴이 시즌 중반에 알바생 데려오는 데에는 도가 텄기에 리툴링 시즌이 1년 연장될 지, 윈나우 시즌이 시작될 지는 2023 시즌 중반 쯤에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팀은 포스트시즌 탈락과 동시에 2년 연속 지구 꼴찌로 꼬라박으며 리툴링 시즌을 1년 더 연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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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의 발단이 된 사건이었다. [2] 우승만 기다리다 돌아가신 분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물론, 당시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는 파블로 산도발, 빌 버크너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보스턴 사람들한테 자손 단위로 욕을 먹게 된다. 실제로 2003년에 프레이지의 손자가 주변에서 영 좋지 못한 대접을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3] 1901~1911년까지 사용 후 철거 [4] 5할 이하로 하면 16년이 된다. 1934년은 정확히 승률 5할을 기록했기 때문. [5] 나머지 세 개의 구단은 각각 1933~194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1953~1967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1993~2012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이다. [6] 에노스 슬로터의 '광란의 질주'로 유명한 경기이다 [7] 공교롭게도 1948년이 클리블랜드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이다. [8] 하지만 이때 논란이 있었는데 모 본의 성적이 타율 .300, 출루율 0.388, 장타율 0.575, OPS 0.963, 165안타, 2루타 28개, 39홈런, 316루타, 126타점, 98득점, WAR 4.3인데 문제는 그 당시 경쟁자가 2위 알버트 벨, 3위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있었다. 알버트 벨의 성적은 타율 0.317, 출루율 0.401, 장타율 0.690, OPS 1.091, 173안타, 2루타 52개, 50홈런, 377루타, 126타점, 121득점, WAR 6.9,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성적은 타율 0.356, 출루율 0.479, 장타율 0.628, OPS 1.107, 182안타, 2루타 52개, 29홈런, 321루타, 113타점, 121득점 WAR 7.0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모 본은 에드가 마르티네즈, 알버트 벨 둘이서 비교했을때 타점빼고 비교자체가 아예, 아니 비교를 하면 안 된다. 추가로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이끌었던 시애틀은 약팀이었냐? 그것도 아니다. 보스턴과 함께 지구우승을 했고 양키스를 기적같이 발라버리고 아메리칸시리즈까지 갔다. 덧붙여서 알버트 벨이 이끌었던 클리블랜드는 그 시애틀을 이기고 월드시리즈까지 갔다. 결론은 알버트 벨 아니면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받아야되는데 이미 지나가버렸으니 [9] 현재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단장. [10] 댄 듀켓은 몬트리올 엑스포스 단장 재직 시절에 평범한 내야수 딜라이노 디실즈를 내주고 다저스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스틸해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듀켓을 까는 사람들은 듀켓 커리어에서 페드로 빼면 뭐가 남냐(...)고 지적한다. [11] 참고로 페드로가 등판한 경기는 1차전이 아니라 3차전이었다. 클리블랜드와의 디비전 시리즈가 5차전까지 가는 대접전이었고 5차전에서 페드로가 6이닝을 먹었기 때문에 가볍게 3연승으로 레인저스를 누르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선착한 양키스와 달리 보스턴은 선발 로테이션부터가 불리했다. [12] 첫 번째는 1980년 아이스하키 대표팀, 두 번째가 1999년 여자 축구대표팀 [13] 지구 순위는 당연히 양키스가 1등 [14] 그리고 2002년부터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하면 양키스를 발라왔던 에인절스가 이번엔 되레 양키스한테 발렸다.(…) 여러모로 징크스 파괴의 시즌인 2009 시즌. [15] 킹 펠릭스는 시애틀과 연장계약을 했다. 근데 매리너스의 눈물나는 타선을 보는 킹은 과연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6] 케빈 타워스 단장도 빌리 빈이나 테오 엡스타인처럼 머니볼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고, MLB에서도 유망주 보는 눈이 좋은 명단장으로 꼽힌다. 2010년 9월 애리조나 디백스로 옮겼다. 뒤에 언급할 2011 시즌을 앞둔 애드곤조 트레이드 성공 역시 케빈 타워스가 있었으면 보스턴에게는 좀더 많은 출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17] 옆 동네 양키스는 닉 존슨, 커티스 그랜더슨, 하비에르 바스케스 등 여러 이름값 비싼 선수들을 많이 데려왔다. 대신 기존에 있었던 조니 데이먼, 마쓰이 히데키, 멜키 카브레라 등을 정리하긴 했지만. [18] 한국에 왔다 먹튀가 된 그 라몬 라미레즈와는 동명이인이다. 두산에 왔던 라몬 라미레즈는 보스턴 마이너에 머물렀고, 여기서 말하는 라몬 라미레즈는 여름에 샌프란시스코로 트레이드되어 그 해 우승을 맛본다. 항목도 같은 페이지에 작성되었다. [19] 경기 도중 자코비 엘스버리, 제레미 허마이다와 3중 추돌 사고 부딪히면서 둘이 단체로 DL을 갔고, 그 사이에 빌 홀, 다넬 맥도날드 등 많은 마이너 선수들이 올라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 [20] 무키 베츠 : 2011년 5라운드,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 : 2011년 1라운드 보상픽(아드리안 벨트레), 앤드류 베닌텐디 : 2016년 1라운드(전체 7번) [21] 잰더 보가츠 : 2009년 [22] 이상 크리스 세일 트레이드 [23] 드류 포머란츠 트레이드 [24] 타일러 쏜버그와 트레이드 [25] 추가 영입이 없는 이상 트레버 스토리가 본래 자리인 유격수로 돌아가고, 크리스티안 아로요가 2루수를 볼 확률이 높아졌다. [26] 실제로 보가츠가 이탈하자 보스턴 팬들은 단체로 극대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단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오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