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6:52:15

빌 버크너

빌 버크너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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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버크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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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키스 에르난데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빌 버크너
( 시카고 컵스)
빌 매들록
( 피츠버그 파이리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8번
짐 버닝
(1969)
빌 버크너
(1969)
샌디 반스
(1970~197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22번
폴 포포비치
(1969)
빌 버크너
(1970~1976)
부그 파웰
(1977)
시카고 컵스 등번호 22번
웨인 타이론
(1976)
빌 버크너
(1977~1984)
빌리 해처
(1984~1985)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16번
톰 버그미어
(1978~1982)
빌 버크너
(1984)
데이브 삭스
(1985~1986)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6번
리코 페트로첼리
(1966~1976)
빌 버크너
(1985~1987)
릭 케론
(1988~1989)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등번호 6번
마크 라이알
(1986~1987)
빌 버크너
(1987~1988)
조 레드필드
(1988)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번호 14번
빌리 가드너
(1987)
빌 버크너
(1988~1989)
스톰 데이비스
(1990~1991)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22번
존 레이스터
(1987)
빌 버크너
(1990)
마이크 마셜
(199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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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빌 버크너1.jpg
윌리엄 조셉 버크너
William Joseph Buckner
출생 1949년 12월 14일
캘리포니아 주 발레이오
사망 2019년 5월 27일 (향년 69세)
아이다호주 보이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나파 고등학교 -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 사우슨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체 183cm / 83kg
포지션 1루수, 좌익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68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25번 (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9~1976)
시카고 컵스 (1977~1984)
보스턴 레드삭스 (1984~1987)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87~1988)
캔자스시티 로열스 (1988~1989)
보스턴 레드삭스 (1990)
1. 개요2. 데뷔 이전3. 선수 시절4. 은퇴 후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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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리그의 전 1루수, 외야수. 1969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한 이후 그저그런 활약상을 보여준 이후 시카고 컵스로 이적, 컵스의 암흑기 당시 팀의 주축 타자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뒤에도 짧은 기간동안 메이저리거로서 전성기를 보여준 후 1990년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한차례 타격왕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통산 OPS .729에서 볼 수 있듯 당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정도의 스타 선수라고 하기는 어렵다.[1] 그보다는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6차전에서 보여준 끝내기 실책으로 레드삭스의 우승을 좌절시킨 원흉으로 오명을 쓰고 보스턴 팬들에게 천하의 역적으로 남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2]

2. 데뷔 이전

버크너는 고교시절 캘리포니아 주에서 미식축구와 야구를 병행하였는데, 야구선수로서는 2학년때 .667, 3학년때 .527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하였으며, 미식축구에서는 와이드 리시버로 뛰며 리시빙 야드와 관련된 지역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올 아메리칸 2회에 선정 될 정도로 뛰어난 유망주였다.

풋볼 선수로서의 재능을 높게 산 스탠퍼드 대학교 USC에서 앞다투어 그를 영입하려 하였으나 그는 이를 모두 거절하고 1968년 MLB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 2라운드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야구선수가 되었다

3. 선수 시절

버크너는 1969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데뷔전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 리그에서 보냈고,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거로 뛰기 시작했다.

이 당시 주 포지션은 외야수 1974년 4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다저스의 애틀란타 원정 경기에서 좌익수로 출전해 행크 애런의 홈런성 타구를 펜스 위로 올라가 잡으려다 실패했는데, 이 홈런이 베이브 루스의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깨는 715번째 홈런이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수비력은 리그에서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타격에 있어서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지는 볼도 적극적으로 받아치는 배드볼 히터의 성향으로 이로 인해 출루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1976년에는 193안타로 200안타에 근접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많은 수의 안타를 만들어냈다.

1976년 시즌 이후에는 시카고 컵스로 3대2 트레이드로 이적, 컵스에서 실력을 발휘하며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3.1. 1986년 월드 시리즈

6차전 10회말 5:5 동점 상황에서 뉴욕 메츠 무키 윌슨의 평범한 땅볼을 뒤로 빠뜨리면서 포구에 실패, 타구가 우익선상으로 흘러가는 것과 동시에 2루에 있던 레이 나이트가 홈으로 쇄도하여 경기가 종료되어 팀의 우승을 저지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나온 것이 바로 이 월드 시리즈 패배 이후이다.

당시 버크너는 시카고 컵스의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밤비노의 저주+염소의 저주가 동시 발동되어 보스턴의 우승이 좌절되었다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어지기도 했었다.

3.2. 이후

이후에 빌 버크너는 한 번 트레이드되었지만, 은퇴는 레드삭스에서 하였다.

버크너는 은퇴 이후 보스턴에서 살았는데, 밤비노의 저주를 연장시킨 원흉으로 지목받은 만큼 보스턴 팬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버크너의 집에 쓰레기를 버리던가, 바에서 버크너를 알아본 보스턴 시민이 과일을 굴려서 잡아 보라고 한 적도 있었고, 버크너의 자녀들마저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결국 2004년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저주가 깨지자 보스턴 팬들은 지난 일이라고 버크너를 용서했지만, 버크너 측에서 안 받아주다 2007년 월드 시리즈 후 보스턴과 화해했다. 버크너의 알까기는 보스턴이 21세기를 통틀어 월드 시리즈를 4번이나 우승한 현재는 가끔 언급되긴 하지만 막 죽일듯이 까이지는 않는 소재다.

4. 은퇴 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첫해 2.1%로의 투표를 얻는데 그치고 첫선에서 탈락한다.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가 2019년에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5. 관련 문서


[1] 통산 BWAR도 15.1, FWAR도 18.8에 불과하다. [2] 레드삭스 팬덤은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86년만에 우승하기 전까지 버크너에게 수많은 비난을 퍼부었다. 예를 들자면, 보스턴의 어느 바에서 버크너를 알아보고 누군가가 과일을 굴려서 버크너한테 잡아 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