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7 14:35:39

2009년 마다가스카르 정치 위기

마다가스카르 혁명에서 넘어옴
1. 개요2. 과정
2.1. 라치라카의 실각2.2. 라발로마나나의 영광과 몰락2.3. 라조엘리나의 등장2.4. 한국 기업 '대우 로지스틱스'의 아프리카 농장 개발 논란2.5. 비바 TV 폐쇄사건에서 군부의 항명 사태까지
3.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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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se politique de 2009 à Madagascar [1]

신자유주의 사회주의, 독재자 라치라카의 복귀 여부, 그리고 대한민국 대우 로지스틱스의 농지 구매 1997년 외환 위기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복합적인 사건으로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과 관련이 깊은 혁명이다. 실질적으로는 1990년 알베르 자피의 쿠데타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맞지만 1994년 디디에 라치라카의 재선 이후 알베르 자피의 지지 세력들이 라치라카 지지 세력으로 다시 바뀐 것 등 1990년의 쿠데타는 혁명이라고 보기 어려우니 이 문서에서는 2001년 마르크 라발로마나나의 취임부터 서술한다.

2. 과정

2.1. 라치라카의 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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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라치라카(Didier Ratsiraka, 1936 ~ 2021)는 친프랑스, 계획통제경제 성향을 가진 군인, 정치인이다. 1976년부터 장기집권한 독재자로서 1980년 코카콜라 파동[2]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큰 문제 없이 그럭저럭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8년 전세계적인 개혁, 개방 운동으로 나라의 문을 개방하면서 재앙이 시작되었다.

기초 경제력이 부족한 마다가스카르는 가진 돈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경제자유구역(EPZ)을 지정하고 국영기업의 대규모 민영화를 통해 해외자본을 유치하려고 했지만 실패하여 1990년 알베르 자피(Albert Zafy)에 의해 실각당했다. 다만 자피 정권의 능력이 후달렸던 것인지 마다가스카르 경제는 좋아지기는커녕 계속 나락으로 치닫는 바람에 라치라카는 자피를 물리치고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라치라카가 재기한 후 그럭저럭 정치 상황도 안정되고 국가 경제도 점차 좋아지면서 마다가스카르에 희망이 생기나 싶었다.

그런데 한국발[3] IMF 사태가 터져 버렸다. 위축된 세계 경제 속에 마다가스카르는 해외 자본이 모조리 빠져나가면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본이 초토화된 상황에서 경제를 회생시키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라치라카는 민심을 잃어버렸고 2001년에 국민들이 마르크 라발로마나나(Marc Ravalomanana)를 당선시켜 라치라카는 재실각했다. 라발로마나나는 CEO 출신이며 대통령 취임 직전 수도의 시장을 역임하였다. 국민들의 관심은 모두 경제에 쏠려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라발로마나나가 라치라카를 선거로 밀어냈다고는 해도 경제를 살려낼 뾰족한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그가 IMF에 엎드려 절이라도 할 은혜(?)를 입게 되었다. 바로 취임 직후 IMF 주도의 PRSP(빈곤감소전략계획)의 최우선 수혜국으로 지정되어 외국 자본이 다시 유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덕분에 경제는 상승곡선을 탔고 국민들의 머리 속에서 라치라카는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결국 라발로마나나의 당인 TIM(Tiako-I-Madagasikara)은 압도적 여당이 되어 라치라카의 재선은 요원해졌다.

라치라카는 이에 맞서 자신 휘하의 군부를 이끌고 2002년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이미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뒤였기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그는 기반을 모두 잃고 완전히 실각하여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라발로마나나의 행적을 보면 차라리 이때 쿠데타가 성공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2.2. 라발로마나나의 영광과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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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발로마나나는 집권 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는데 문제는 그게 너무 과도했다는 점이다. 국내 농지를 외국인들에게 전면 개방하였으며 경제자유구역을 대규모로 확대하고 친 기업 중심의 세율 정책, 부자 감세, 녹색관광사업 육성, 대규모 원시림 개발 토목사업, 국유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

당장은 실업자가 감소하고 외화벌이도 큰 폭으로 오르는 효과가 있어서 이 정책들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허나 증가된 국가 수입은 일반 국민이 아닌 소수의 투자자에게 돌아갔으며 갖은 토목사업에 환경이 파괴되었고 국유기업 민영화로 공공요금이 인상되어 국민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기둥이 매우 부실한 경제였다. 물가 역시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 자체가 이전부터 워낙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던 국가였기 때문에 당장 이런 심각한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한 국민들은 라발로마나나를 못된 독재자를 쫓아내고 국가를 안정시킨 훌륭한 정치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라발로마나나는 2006년 압도적인 지지율로 연임되었고 그의 TIM당은 127석 중 105석을 차지하는 초거대 여당이 되었다. 그 지지율을 바탕으로 라발로마나나는 지방행정조직이 모두 중앙집권 형태로 개편되는 대규모 개혁을 실시했다. 그 결과 마다가스카르는 안타나나리보 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수도에 모든 부와 권력이 집중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라발로마나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권한과 모든 언론을 통제하는 권한까지 손에 넣으면서 마침내 독재자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쫓아낸 라치라카와 똑같이 권력을 독점한 독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우선 자신의 출신 민족인 메리나족의 지역과 자치단체에 엄청난 이권을 몰아주고 기타 요직에서 메리나족이 아닌 인사들은 직, 간접적으로 축출시켜 버렸으며 수도를 제외한 지방에 대한 차별을 내세워 지방의 부와 권력을 몽땅 제거하려 들었다. 또 부정부패를 저지르기도 했는데 국가의 광산 채굴권, 유전 개발권 등을 해외 기업에 경매를 통해 마구 팔아넘기면서 긁어모은 돈으로 보잉 737 비행기(대략 6천만 달러)를 대통령 전용기로 구매하기도 했다.

결국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부유층과 일반 국민의 삶의 수준의 차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문맹률이 대폭 증가하고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갔을 정도였다. 이 시기 마다가스카르는 당장의 GDP 그래프만 따지면 잘나가는 나라였지만 그건 대부분 나라의 기반이 될 만한 것들을 몽땅 팔아넘겨서 벌어들인 수익이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심하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마다가스카르에 격변의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로 수도의 음악 DJ인 안드리 라조엘리나(Andry Rajoelina)의 등장이었다.

2.3. 라조엘리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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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라조엘리나는 평소에 거친 입담으로 정부를 강력히 비판하는 언동을 펼친 안타나나리보의 시민으로 카리스마적인 입담과 말한 걸 지키는 추진력, 신뢰를 주는 언동 등으로 안타나나리보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얻고 있었다. 그의 별명은 TGV(프랑스 고속전철)인데 프랑스 고속전철처럼 시원하게 나간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안드리 라조엘리나( 1974년 5월 30일 생)는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인을 하기에는 매우 어린 나이에 해당하는 무려 34세에 안타나나리보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그것도 무소속으로. 안타나나리보는 마다가스카르의 수도로서 라발로마나나의 핵심 지지 기반이자 TIM당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TIM당은 권력의 2인자급 핵심 요인을 안타나나리보 시장 후보로 올려 놓고 각종 정책을 급조하여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안드리 라조엘리나가 약 63%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때문에 라발로마나나와 TIM당은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라조엘리나의 등장에 매우 긴장하였다. 이들의 우려대로 라조엘리나는 자신의 별명을 따 'TGV당'을 만들고 'viva TV'라는 언론기관을 만들어 TV 방송을 진행하는 등 라발로마나나의 경쟁자로 급부상했다.

그러자 라발로마나나의 TIM당은 라조엘리나를 견제하기 위해 안타나나리보에 지원되는 모든 국고 예산을 차단해 버렸다. 수도 안타나나리보는 이미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는 인구로 시가지 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는데 국가 예산 지원이 끊어지자 더욱 상황이 안 좋아졌고 심지어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담 등 대규모 국제 회의를 안타나나리보가 아닌 TIM 지지 지역에 위치한 공항에서 개최하는 짓까지 저지르면서 마다가스카르의 민심은 급격히 라조엘리나에게로 기울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라발로마나나는 집권 사상 최악의 사고를 저질렀는데 바로 한국 기업 대우 로지스틱스에게 국가 경작지의 절반을 양도한 것이다.

2.4. 한국 기업 '대우 로지스틱스'의 아프리카 농장 개발 논란

2008년 11월 20일 한국 기업인 대우 로지스틱스는 아프리카 진출을 위해 마다가스카르의 대규모 농장을 국가로부터 임차, 점유했는데 무려 130만 헥타르(13,000 km2)라는 엄청난 넓이의 농토를 자그마치 99년간 임대하는 계약을 맺었다. 참고로 대한민국이 실효지배 중인 영역(통칭 남한)의 총 면적이 100,000 km2가 겨우 넘고 경지 면적은 2020년 기준으로 156만 헥타르다.[4] 실제로 엄청난 넓이의 땅으로, 마다가스카르의 총 경작지 양은 정부 통계상 250만 헥타르이므로 절반 이상이다! 이와 관련해서 온갖 낭설이 돌았으며 여러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해당 지역은 인프라가 전혀 확충되지 않은 지역이라 도로와 취수용 댐, 항만, 교량 등을 신규로 만들거나 재구축해야 하는 난관이 존재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농산물 생산, 판매비로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더구나 한국 식량 안보를 위한 목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중국에 수출할 사료용 옥수수 생산 계획이었고 결국 감당이 불가능해지니 손을 떼고 나왔다.

게다가 대우 로지스틱스가 구매한 땅 130만 헥타르 중 90만 헥타르 이상이 아마존과 같은 열대 우림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열대 우림이 아니며 사바나와 비슷한 자연 환경이다. 일각에서는 사바나 환경을 개발하는 것이라 자연환경 파괴도 조작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대규모 기업 농업 자체가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수반하기 때문에 환경파괴 문제는 논란의 여지도 없는 사실이다.[5] 애시당초 대부분의 식량기업들이 시민단체들에게 비판받는 원인이 이런 대규모 광작을 통한 환경파괴와 후술하는 경제주권 파괴 행위 때문이다. 한국 일반인 입장에서는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라 정보에 혼선이 있었던 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실 한국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어서 수탈한다는 것은 부풀려진 것이다.'라는 반응도 나왔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대우 측과 마다가스카르의 시각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 수많은 제3세계 국가의 경제 주권이 박살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 중 하나가 약소국의 인프라를 깔아 준다고 한 후 그 대금으로 황무지를 비롯한 토지를 받아가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제3세계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제1세계 식량기업들이 세력을 확장할 때 쓴 수법으로 많은 식민제국들이 이 방식을 썼으며 특히 일본 제국 대한제국 시절 한반도의 황무지 개간권을 요구해 보안회가 조직되어 저항한 전적이 있다.
따라서 한국의 기업인 대우는 본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과거 식량기업들이 침탈할 때를 연상시키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려고 시도한 것이고 마다가스카르는 이런 사례들을 다른 국가들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한국에게 똑같이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과 우려가 나온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에도 본인들의 과거 행적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6] 다른 나라 언론, 특히 일본이나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대놓고 한국이 식민주의적 발상으로 아프리카를 한국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며 비판한 것은 결국 자신들이 시도했던 전례와 너무나도 비슷한 짓을 한국이 했기 때문에 비판한 것으로 추측된다. 결과적으로 대우는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무리한 사업을 하려고 했고 그 결과 대우를 신뢰하지 못한 마다가스카르의 여론이 나빠져서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의심되자 손해를 보기 전에 철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우가 손을 뗀 후에는 포항시의 지원으로 통일벼와 한국 농법을 전수하는 등 지원 사업을 해 주고 있다.

2.5. 비바 TV 폐쇄사건에서 군부의 항명 사태까지

2008년 8월 라조엘리나가 사장이었던 비바 TV(viva TV)는 TIM당과 라발로마나나를 매우 분노하게 만들 사건을 일으켰는데 바로 프랑스로 망명한 전직 독재자, 라치라카의 인터뷰를 독점으로 중계한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비바 TV는 즉시 폐쇄되었고 사장 라조엘리나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라조엘리나는 이에 '새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해 버렸다. 라조엘리나는 안타나나리보 시민들에게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했고 급기야 안타나나리보에서 수돗물에 독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도국에서도 "그렇지 않다. 그러나 주의해라."라는 알쏭달쏭한 말로 해명하는 바람에 안타나나리보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해졌다.

수도는 가히 내전급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치안 유지는 거의 불가능했고 가게들이 공격당해 약탈당하는 등 갖가지 범죄가 판치기 시작했다. 라발로마나나는 군 부대를 출동시켰으나 역부족이었고 되려 라발로마나나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사태가 점차 악화되었다. 마침내 2009년 2월 7일 시위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통령궁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곳의 군부대가 시위대에게 발포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나 무려 100여 명이 사망하고 218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 사건으로 당장은 대통령궁이 위기에서 빠져나오긴 했으나 시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졌고 국방장관인 세실 마노로한타(Cécile Manorohanta)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기자회견 후 사임해 버리자 라발로마나나는 더욱 궁지에 몰렸으며 라발로마나나 정권은 자국민을 향한 발포로 인해 최소한의 도덕적 명분조차 사라져 버렸다. 이에 군부가 정부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라조엘리나 측에 가담하기까지 했으며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 라발로마나나는 대통령궁도 제압당해 여기저기 도망치다가 2월 17일 사임을 발표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도망쳤다.

공식 정권은 군부로 이양되었으나 군부는 다시 라조엘리나에게 정권을 위임하였고 라조엘리나 정권은 2010년 1월 국민투표를 통해 정식 정부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군사 쿠데타 정권'이라며 아프리카 연합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바로 다음날인 2월 18일 라조엘리나는 대우 로지스틱스와의 농지 매매 계약이 전면 무효임을 선포하였고 광산 계약도 전면 재검토되었다. 위에서 기술한 비행기를 팔아서 병원을 짓겠다고 하기도 했다.

당장은 소강 상태에 접어든 마다가스카르였지만 라조엘리나의 정치 기반이 군부와 안타나나리보라는 극히 국소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정권이 불안하다고 할 수 있었고 세계 언론도 라조엘리나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당장 아프리카 연합을 봐도 호의적이지가 않았다.

참고로 세계 언론들은 라치라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라조엘리나도 그렇고 군부도 그렇고 라치라카의 정치 기반은 사실상 완전 소멸 상태라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외부 개입이 없는 한 라치라카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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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혁명을 주도한 라조엘리나는 2011년 5월 경주에서 개최된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에서 마다가스카르 선수단에 대한 환대에 대한 답례로 같은 해 6월 경주 시장을 초청하여 환담을 했다.( #) 자신의 집권 기반이 마다가스카르 자원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로 인한 것임에도 (기사에 따르면) 자국의 자원에 대한 투자를 호소했다. 아마 대우 로지스틱스와는 다른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한국의 자국에 대한 투자를 모색하는 듯 싶었다. 대우 로지스틱스가 문제가 될 만한 계약을 맺어서 그렇지 건전한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마다가스카르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라치라카도 비록 망하기는 했지만 그런 방식을 통해 국가 경제의 발전을 꾀했다. 어쩌면 몇 번이고 자국에 투자한 전력이 있는 한국을 아예 적대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마다가스카르는 대우가 벌인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대우의 건을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들이 꽤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는 듯하다.

당장 라조엘리나 본인도 군부에 의해 권력을 이양받은 것이지 어쨌든 선거로 당선된 건 아니기 때문에 민정이양을 위해 정식으로 대선을 해야 하는데 이 대선 일자가 왠지 자꾸 차일피일 미뤄졌다. 원래는 2012년 6월 즈음에 대선을 실시하게 되어 있었지만 일단 그게 미뤄졌다. 그런데 탄자니아의 니에레레도 그렇고 사실 출신이나 집권 배경, 독재 여부와 상관 없이 아프리카에서 장기집권은 흔한 일이다.

결국 아프리카 연합이나 서방 국가 등 해외 여론이 계속 라조엘리나 정권을 군사 쿠데타에 의해 세워진 정당하지 못한 정권이라고 몰아붙이면서 경제지원을 끊자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기 위해 라조엘리나가 전임 대통령인 라발로마나나와 세이셸 섬에서 회담을 가졌다. 회담 내용은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선거 날짜 등이고 회담을 중재한 것은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제이컵 주마였다. 이는 애초에 라발로마나나가 남아공에 망명한 데다 두 사람 사이의 협상을 중재한 남아프리카 개발 공동체의 사실상 수장이 바로 남아공 대통령이었던 제이컵 주마였기 때문이었다.

2013년 1월 15일 라조엘리나가 마다가스카르 2013년 5월 대통령 선거에 불출마 선언을 했으며 라발로마나나도 불출마 선언을 했다.( #) 이것은 민주주의적 절차를 밟는 평화적인 이양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그런데 이후 라발로마나나의 부인 랄라오가 출마를 선언했다. 이에 라조엘리나도 불출마 선언을 뒤집고 출마를 선언했으며 심지어 전 독재자였던 디디에 라치라카까지 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이 꼬라지에 프랑스가 참지 못해 세 사람 모두 사퇴 안한다면 마다가스카르 대선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가 얼마나 기분이 안 좋았냐면 세 사람의 프랑스 입국도 불허하겠다고 선언해 버렸을 정도였다.[7] 이렇게 되자 마다가스카르는 한 발 물러서서 일단 7월로 예정되었던 대선을 연기했는데 마다가스카르 입장에서는 프랑스와의 교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마다가스카르의 국정 정상화는 요원해 보였다.

마침내 33명이라는 수가 입후보하여 아무도 과반을 얻지 못하고 결선투표에서 한국시간 2014년 1월 3일 라조엘리나 계열의 인사 헤리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Hery Rajaonarimampianina)[8]가 대선에서 장 루이 로빈슨을 7% 차이로 꺾고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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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가 집권한 후 나름 국민 통합 및 정파 간의 화해를 추진하는 모양이었는지 전현직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인 적도 있다. 그러나 전부 손을 맞잡고 웃으면서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각자 다른 방향을 보는 등 어색한 티를 숨기지 않았다. 특히 자피와 라발로마나나 사이에 껴 있는 라치라카는 대놓고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2018년 말 치러진 차기 대선에서 위 5명 중 알베르트 자피[9]를 제외한 4명의 후보가 격돌하였으며 라발로마나나와 라조엘리나[10]가 결선투표까지 간 끝에 라조엘리나가 승리하게 되었다. 이때의 라조엘리나의 나이는 44살. 역시 대통령이라고 하기엔 매우 어린 나이로 이보다 더 어린 대통령은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1977~)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허구한 날 내전이 벌어지는 아프리카에서 이 정도로 마무리된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의 대륙 국가들과 달리 가난하긴 해도 그 때문에 폭력이 일상화된 곳까지는 아니었다는 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말리아처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력으로 해결하자는 마인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적당한 타협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 때문에 라발로마나나도 숙청을 피하고 재기할 기회를 얻었지만 후일 재출마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해명은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끝난 이유는 지리적으로 따지면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섬나라이자 기독교 신자가 절대다수인 국가라 테러 단체가 잘 못 들어오는 것도 있다. 현재 전세계의 네임드 테러 조직은 거의 다 이슬람 근본주의 계열 단체인 만큼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했거나 적어도 전체 인구의 몇 %만이라도 차지했으면 이슬람 근본주의 계열의 테러 단체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라도 있었겠지만 여긴 그 반대니까 그럴 일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기독교 계열 테러 단체는 거의 없고 그나마 네임드라고 할 수 있는 게 우간다의 군벌 두목인 조지프 코니가 이끄는 신의 저항군이 고작이지만 얘네는 우간다 영토 밖으로는 세력을 뻗치지 못하므로 마다가스카르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의 단체가 나타난다고 한들 이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마다가스카르 입장에서는 상당히 천운인 셈이다.

3. 관련 문서



[1] 현지 공용어인 프랑스어 명칭이다. [2] 마다가스카르는 전세계 바닐라 생산의 40%을 차지하는데 코카콜라에는 바닐라가 들어간다. 그러던 중 1980년 코카콜라가 뉴 코크를 출시하면서 콜라의 바닐라 함량이 적어졌고 이 때문에 바닐라 수출이 급감하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후 뉴 코크가 실패하고 코카콜라가 원래 콜라를 다시 생산함에 따라 경제가 정상화되었다. [3] 경제위기 자체는 태국발이지만 사태가 커진 건 한국에서부터다. [4] 단, 대한민국은 지속적인 개발 등으로 인해 경지 면적이 지속적으로 줄어 왔다. 1970년대에는 220~230만 헥타르 정도였다. [5] 당장 아프리카 대륙의 사바나 환경에서도 사자, 누우, 기린, 코끼리 같은 수많은 야생동물이 산다. 그리고 이들 아프리카 대륙 사바나 지역도 계속되는 개간과 기후변화 등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지역이다. [6] 동인도회사,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 델몬트, Dole [7] 구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프랑스의 위상은 거의 천조국급이다. [8] 아래의 사진에서 맨 왼쪽의 눈이 몰려 있는 사람이 라자오나리맘피아니나다. 참고로 마다가스카르 회계협회의 회장까지 지낸 회계사 출신이며 안드리 라조엘리나 정권 하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9] 사진의 왼쪽에서 두 번째 [10] 사진에서 각각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리고 제일 우측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