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04:27:40

리나 베르트뮐러

리나 베르트뮐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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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공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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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하워드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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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버겐 W. 하워드 그린 현대미술관 영화도서관 맥 세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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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940년 1941년
테크니컬러 USA 밥 호프 네이선 레빈슨 월트 디즈니
윌리엄 가리티
존 N. A. 호킨스
RCA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그의 동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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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J. 블룸버그
리퍼블릭 스튜디오 사운드 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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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리나 베르트뮐러
Lina Wertmüller
파일:Lina_Wertmüller.jpg
본명 아르캉겔라 펠리체 아순타 베르트뮐러 폰 엘그 에스파뇰 폰 브라우아이히[1]
Arcangela Felice Assunta Wertmüller von Elgg Español von Braueich
출생 1928년 8월 14일
이탈리아 로마
사망 2021년 12월 9일
이탈리아 로마 (향년 93세)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직업 영화 감독, 각본가
장편 데뷔 1963년 《도마뱀》
가족 엔리코 잡[2] (남편)
마리아 줄리마 잡 (딸)

1. 개요2. 생애 및 작품 활동3. 작품 스타일4. 필모그래피5. 기타

[clearfix]

1. 개요

리나 베르트뮐러는 이탈리아가 낳은 70년대 최고의 스타급 여성감독이었다. 공산주의 진영에서 비난을 받는 무정부주의자였으며 페미니스트들의 오해를 살 만큼 남성적인 성향의 작품을 만들었고, ‘여자 펠리니’라는 칭찬 같기도 하고 비난 같기도 한 별명을 얻었다.
- 씨네21 영화감독사전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및 각본가. 1970년대에 크게 활약했으며, 여성 영화 감독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대표작으로는 《미미의 유혹》, 《사랑과 무정부주의》, 《귀부인과 승무원》, 《세븐 뷰티스(7공주댁 파스콸리노)》 등이 있다.

전성기 시절 페르소나 배우로는 잔카를로 잔니니와 마리안젤라 멜라토가 있다.

2. 생애 및 작품 활동

1928년 스위스계의 가톨릭 신자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잘 나가는 변호사이자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학교에서도 타고난 반항정신을 어쩌지 못하는 망나니로 찍혀 학교를 열다섯군데나 옮겨다녔다.

성인이 되어 로마의 스타니슬랍스키 연극학교를 졸업한 베르트뮐러는 방송국에 취업해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구성작가로 일한 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8과 1/2에서 조감독을 맡게 된다.

이때 펠레니와의 작업에서 자극을 받은 베르트뮐러는 펠리니 영화에 자주 참여했던 기술 스태프들을 시칠리아로 데리고 가서 장편 데뷔작 <도마뱀>(1963)을 연출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은표범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감독 데뷔를 마친 베르트뮐러는 <남자를 얘기해보자> (1965)를 발표하며 영화 감독의 활로를 열려 했으나 제작비 문제 때문에 다시 텔레비전으로 돌아간 베르트뮐러는 TV 영화 <리타 모기>를 만들며 70년대 작품 활동을 함께하게 될 배우 잔카를로 잔니니와 처음으로 알게 되고, 그를 주연으로 찍은 영화 <미미의 유혹>(1972)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고 흥행성적도 성공을 거두며 이탈리아의 중요한 감독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듬해에 발표한 <사랑과 무정부주의> (1973)는 제목 그대로 ‘사랑 또는 성과 정치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으로 그녀의 작품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 받았으며, 해당 작품을 통해 잔카를로 잔니니에게 칸 영화제/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이어서 차기작으로 낸 <귀부인과 승무원>(1974)은 부유한 집안의 귀부인과 가난한 선원이 무인도에 표류하면서 두 사람의 우위관계가 뒤집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해당 설정을 통해 이탈리아 정치 갈등, 시칠리아인과 밀라노인의 남북 갈등, 성별 갈등,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돌직구로 풍자한 매우 정치적인 영화라는 평을 받으며 서구 평단에서 꽤 큰 호응을 얻었다. 후에 가이 리치 감독, 마돈나, 아드리아노 잔니니 주연의 '스웹트 어웨이'로 리메이크 되었다. [3]

1975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강제수용소를 탈출한 연합군 병사를 소재로 한 영화 <세븐 뷰티스(7공주댁 파스콸리노)>(1975)를 통해 맵시는 있지만 위선적인 이탈리아 남성의 미디어 스테레오 타입을 차용하여 나치에 비굴하게 굴복한 이탈리아의 근현대사를 풍자함으로써 호평을 들었다. 이후 이 작품이 1977년 제49회 아카데미상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4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고, 베르트뮐러 감독 본인도 여성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면서 커리어에 정점을 찍게 된다.[4]

그러나 1978년 할리우드 자본이 투자되어 찍은 <비 내리는 밤>이 비평과 흥행 모두 실패한 이후 베르트뮐러 감독의 커리어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80년대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놓은 <붉은 무대> (1985), <문 나이트> (1989), <토요일, 일요일과 월요일> (1990) 같은 작품들이 소소하게 호평을 받았음에도 70년대 작품처럼 반향을 일으킬만큼의 작품들은 아니라는 평을 받았고, 전반적인 작품들의 퀄리티가 졸작과 수작을 오가기도 하기에 이전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2010년에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영화 시상식인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 시상식에서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커리어 공로상을 수상했다.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예술에 대한 탁월한 공헌을 인정 받아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때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였다는 상징성 때문에 같은 여성 감독들인 그레타 거윅 제인 캠피온이 축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9일, 로마의 자택에서 향년 93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며,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과 다리오 프란체스키니 문화장관이 애도를 보내기도 했다.

3. 작품 스타일

페데리코 펠리니의 조감독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만큼 펠리니 스타일의 현실과 만화적 공상의 결합이 엿보이기는 하나, 펠리니 작풍보다는 마르코 페레리, 에토레 스콜라, 엘리오 페트리 같은 70년대 이탈리아 영화 감독 세대가 그렇듯 정치적 풍자와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을 만드는 데 더 주력했다.

개중에서도 베르트뮐러는 가장 광범위하고 난폭하게 풍자를 시도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데, 여타 이탈리아 감독들이 좌익 성향을 띄어 공산주의적 색채를 보이거나 정치, 사회에 대해 비판을 던지는 데에 주력했다면 베르트뮐러는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성향을 띄는 동료들과 반대로 아나키즘적 성향을 띄어 이를 작품에 투영하기도 했고 논쟁적인 주제들인 사회에서의 남녀 역할, 계급 차이, 명예롭게 사는 규칙, 파시즘, 성폭력, 계급 투쟁 등 광범위하게 풍자의 범위를 다루며, 이에 대한 묘사도 아주 노골적인 감독이었다.

때문에 베르트뮐러의 작품에 대해 호평을 보내는 평론가도 많았지만 '악취미', '천박한 무정부주의'라고 평하면서 비판하는 평론가 또한 적지 않았다.

게다가 아카데미 감독상에 최초로 후보로 오른 여성 영화 감독으로써 여성 영화 감독들의 위상을 높인 감독 중 한명이지만, 정작 작품 내에서 여성을 다루는 취급은 남성적 성향이 강해 여성주의적 시각의 평론가들에게서도 그러한 묘사에 대해 종종 비판을 듣곤 했다.

현세대 영화 감독들 중에서는 루벤 외스틀룬드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으로 꼽힌다.

4. 필모그래피

<rowcolor=#fff> 년도 제목 연출 각본 제작 비고
1963 도마뱀
I basilischi
1965 남자를 얘기해보자
Questa volta parliamo di uomini
1966 리타 모기
Rita la zanzara
TV 영화
1967 모기를 쏘지 마세요
Non stuzzicate la zanzara
TV 영화, 리타 모기의 속편
1968 벨르 스타 이야기
The Belle Starr Story
TV 영화
1972 미미의 유혹
Mimì metallurgico ferito nell'onore
1973 사랑과 무정부주의
Film d'amore e d'anarchia, ovvero 'stamattina alle 10 in via dei Fiori nella nota casa di tolleranza...'
1974 올 스크루드 업
Tutto a posto e niente in ordine
1974 귀부인과 승무원[5]
Travolti da un insolito destino nell'azzurro mare d'agosto
[6][7]
1975 세븐 뷰티스[8]
Pasqualino Settebellezze
1978 비 내리는 밤
La fine del mondo nel nostro solito letto in una notte piena di pioggia
1978 불의 여인
Fatto di sangue fra due uomini per causa di una vedova. Si sospettano moventi politici
1983 운명의 농담
Scherzo del destino in agguato dietro l'angolo come un brigante da strada
1984 부드럽게, 부드럽게
Sotto... sotto... strapazzato da anomala passione
1985 붉은 무대[9]
Un complicato intrigo di donne, vicoli e delitti
1986 그리스 흉상을 놓고 지낸 여름밤
Notte d'estate con profilo greco, occhi a mandorla e odore di basilico
1989 수정 또는 석탄, 불 혹은 바람에 대하여, 사랑하는 한[10]
In una notte di chiaro di luna
1989 10번째 지하활동가
Il decimo clandestino
1990 토요일, 일요일과 월요일
Sabato, domenica e lunedì
1992 안녕, 교수님!
Ciao, Professore!
1996 님프
Ninfa plebea
1996 섹스와 정치의 소용돌이 속 블루칼라 노동자와 미용사
Metalmeccanico e parrucchiera in un turbine di sesso e di politica
1999 페르디난도와 카롤리나
Ferdinando e Carolina
2004 투 머치 로맨스
Peperoni ripieni e pesci in faccia

5. 기타

  • 평생 흰색 뿔테 안경을 애용했으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였다.
  • 국내에서는 동세대 70년대 이탈리아 영화 감독들[11]이 그렇듯, 인지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해당 세대 감독들의 영화가 이탈리아 좌파 특유의 공산주의 성향을 띄었다는 점에 얽혀 당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베르트뮐러는 한술 더 떠 당시 서구에서도 논쟁을 일으켰을만큼 노골적인 묘사와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뤘다는 점도 더더욱 국내에 인지도가 저조해진 원인으로 추론되는 듯.
  • 테리 길리엄은 역사상 최고의 여자 영화 감독이 베르트뮐러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 중간에 von이 들어가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스위스계 귀족가문 출신이었다. [2] 이탈리아의 영화 프로덕션 디자이너 (1934~2008)로, 세르조 코르부치 감독의 위대한 침묵이나 아내인 베르트뮐러의 작품들 속 미술과 의상을 담당했다. [3] 다만 이 리메이크판은 원작의 정치풍자적 블랙코미디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버린 단순한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가 되었는데, 때문에 원작에서는 그러한 함의 때문에 개연성 없이 넘어가도 왜 그런 것인지 이해할 수 있던 전개들이 단순히 사랑 때문에 전개가 두리뭉실 넘어가는 이상한 내용으로 변모하면서 스토리가 완전히 엉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 아쉽게도 4부문 모두 수상에는 실패했다. 감독상은 록키 존 G. 아빌드센, 남우주연상은 네트워크 피터 핀치, 각본상은 네트워크의 패디 차예프스키, 외국어영화상은 장자크 아노의 색깔 속의 흑백이 받았다. [5] '무인도의 열정'이라는 제목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6] 2002년에 가이 리치가 당시 아내였던 마돈나를 주연으로 해 '스웹트 어웨이'로 리메이크 했으나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망해버렸다. [7] 여담으로 리메이크판의 남자주인공은 원작의 주역이었던 잔카를로 잔니니의 아들 아드리아노 잔니니가 맡았다. 아들이 대를 이어 아버지의 배역을 연기한 셈. [8] 국내에는 '7공주댁 파스콸리노'라는 제목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9] '여인에 관한 복잡한 플롯'이라는 제목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10] '문 나이트' 라는 제목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11] 에르만노 올미, 엘리오 페트리, 마르코 페레리, 에토레 스콜라, 타비아니 형제, 마르코 벨로키오 등. 이 중 타비아니 형제는 그래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 백두대간의 소개로 인지도가 높아진 편에 속한다. 타비아니는 정치적 성향이 있어도 저들과 다르게 목가적인 감수성 때문에 어느정도 한국에 먹혔던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