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02:37:11

에토레 스콜라

에토레 스콜라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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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파일:베를린 국제 영화제 로고.svg
은곰상 : 감독상
제33회
( 1983년)
제34회
( 1984년)
제35회
( 1985년)
에릭 로메르
( 해변의 폴린)
에토레 스콜라
(발랜도 발랜도)
로버트 벤튼
(마음의 고향)

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감독상
<rowcolor=#000000> 제28회
( 1975년)
제29회
( 1976년)
제30회
( 1977년)
코스타 가브라스 / 미셸 브럴트
(스페셜 섹션) / (오더러스)
에토레 스콜라
(추하고 더럽고 미천한)
안드레이 콘찰롭스키
(시베리에이드)
각본상
<rowcolor=#000000> 제32회
( 1979년)
제33회
( 1980년)
제34회
( 1981년)
수상작 없음 에토레 스콜라, 푸리오 스카르펠리, 아게노레 인크로치
(테라스)
서보 이슈트반
( 메피스토)

역대 다비드 디 도나텔로상
파일:David di Donatello logo.png
감독상
제22회
( 1977년)
제23회
( 1978년)
제24회
( 1979년)
마리오 모니첼리 / 발레리오 추를리니
(나약한 복수) / (타타르인의 사막)
에토레 스콜라
(특별한 날)
프란체스코 로시
(그리스도는 에볼리에서 멈추었다)
제28회
( 1983년)
제29회
( 1984년)
제30회
( 1985년)
비토리오 타비아니, 파올로 타비아니
( 로렌조의 밤)
에토레 스콜라
(발랜도 발랜도)
프란체스코 로시
( 카르멘)
제31회
( 1986년)
제32회
( 1987년)
제33회
( 1988년)
마리오 모니첼리
(나는 삐까리)
에토레 스콜라
(스플렌도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 마지막 황제)

역대 세자르 시상식
파일:cesarawards.png
감독상
제1회
( 1976년)
제2회
( 1977년)
제3회
( 1978년)
안제이 바이다
(당통)
에토레 스콜라
(발랜도 발랜도)
클로드 지디
( 마이 뉴 파트너)
외국영화상
제1회
( 1976년)
제2회
( 1977년)
제3회
( 1978년)
디노 리시
( 여인의 향기)
에토레 스콜라
(우리는 그토록 사랑했네)
에토레 스콜라
(특별한 날)
제2회
( 1977년)
제3회
( 1978년)
제4회
( 1979년)
에토레 스콜라
(우리는 그토록 사랑했네)
에토레 스콜라
(특별한 날)
에르만노 올미
( 나막신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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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efd88f> 에토레 스콜라
Ettore Scola
파일:Ettore_Scola.jpg
출생 1931년 5월 10일
이탈리아 왕국 트레비코
사망 2016년 1월 19일 (향년 84세)
이탈리아 로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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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영화감독, 각본가
활동 기간 1964년-2016년

1. 개요2. 주요 대표작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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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각본가.

한국에서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유럽 영화계에서는 페데리코 펠리니, 루키노 비스콘티 못지않게 이탈리아 대표 감독으로 꼽히는 감독이다.

좌파적 관점에서 보는 현대 이탈리아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며 정치성이 강한 영화들을 멜로 드라마나 코미디적인 요소를 결합하여 풀어냈다.

70년대에 엘리오 페트리, 마르코 벨로키오, 리나 베르트뮐러, 마르코 페레리 등과 함께 이탈리아 정치 영화 붐을 이끈 감독으로 이들 중에서도 가장 큰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감독으로 꼽힌다.

보통 《우리는 그토록 사랑했네》와 《특별한 날》이 최고작으로 뽑힌다. 프랑스 영화계에 진출해서 세자르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1989년에는 이탈리아 문화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2. 주요 대표작

3. 기타

  • 1998년 제5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는데 영화제 기간 중 가장 호평받은 에릭 로메르 감독의 《 가을 이야기》에는 황금사자상 대신 각본상을 수여하고 이탈리아 감독 잔니 아멜리오의 《우리가 웃는 법》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했다. 이에 대해 스콜라가 좌익 성향이라 우익 성향인 로메르를 배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뒷말이 당시에 돌았다고 한다.
  • 《우리는 그토록 사랑했네》의 주제가 Io Ero Sandokan은 영화를 위해 창작된 곡이지만 멜로디와 가사가 좋아 이탈리아 레시스텐자의 음악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 대표작 중《추하고 더럽고 미천한》이란 제목은 이탈리아에서 욕으로 자리잡아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주로 정치인들을 욕할 때 쓰인다.

[1] 당시에는 세계 4대 영화제였다. [2]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 영화계 진출작이다. [3] 프랑스 영화계 진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