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00:39:27

라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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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지역의 남쪽 지역은 중국-인도 국경분쟁으로 인도 실효 지배 중이다. 인도 행정구역상 아루나찰프라데시주.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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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티베트 자치구의 수부
[ruby(拉萨, ruby=Lāsà)][ruby(市, ruby=Shì)] | ལྷ་ས་གྲོང་ཁྱེར།
라싸시 | Lhasa City
시정부 소재지 티베트 자치구 라싸시 청관구
장쑤다다오69호
西藏自治区拉萨市城关区江苏大道69号
지역 시난
면적 29,274km²
하위 행정구역 3구 5현
시간대 UTC+8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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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867,891명 (2020)
인구밀도 30명/km²
민족 구성 티베트족 76.7% | 한족 21.64%
후이족 1.15% | 토가족 0.12%
HDI 0.743 (2016)
서기 풀포톤춥(普布顿珠 | ཕུར་བུ་དོན་གྲུབ་)( 티베트인)
시장 고꼭(果果 | གོཁོཁ་)( 티베트인)
GRDP 전체 $95억 6,000만 (2020)
1인당 $12,554 (2020)
상징 시화 물싸리꽃
시목 메타세쿼이아
차량번호 藏A
행정구역 약칭
행정구역코드 540100
지역전화번호 0891
우편번호 850000
ISO 3166-2 CN-XZ-01 }}}}}}}}}
홈페이지
파일:C3742731-E447-4EC6-AB12-CA20F6F7EAF0.jpg

파일:라싸시.jpeg-271.jpg

1. 개요2. 관광3. 라싸 교전4. 창작물에서의 등장

[clearfix]

1. 개요

중국 티베트 자치구[1]의 성도이자 중심지.

실제 현지인들의 발음은 "하싸"에 가깝다.[2]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의 티벳장경연구소가 만든 티베트어 표기안에 따르면 "하싸"로 표기된다. 하싸란 티베트어로 "신들의 땅"[3]이라는 뜻이다. 라싸는 중국어 拉萨에서 온 말에 가깝다.[4] 과거에는 '염소의 땅'이라는 '라싸(ར་ས།, Ra-sa)'로 불렸다고 하나, 이후 '하싸'로 바뀌었다.[5]

이곳의 해발고도는 자그마치 3,600~3,650m에 달한다. 고도만 놓고 보면 백두산보다도 600m~900m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스의 고도와 맞먹기에 고산병을 정말 조심해야 한다.

2006년 칭짱철도의 종착역인 라싸역이 개통되면서 라싸는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6] 철도를 통해 화물이 운송되면서 라싸의 물가가 이전에 비해 상당히 싸졌고, 여행객도 많아지게 되었다. 중국 정부에서도 티베트 색을 지우기 위해 라싸 구시가지를 기준으로 라싸 강 건너편, 라싸 강 남쪽의 라싸역 인근에 인구 30만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또한 쓰촨성과 라싸를 연결하는 촨짱철도도 건설중에 있고, 장기적으로는 철도가 인도까지의 연장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라싸 인근에 대규모의 산업단지도 들어서고 있다.[7]

현재 쓰촨성에서 한족 이주민이 늘면서 이 곳도 위구르의 수도 우루무치시처럼 한족화되었다. 지금 라싸의 생활상은 맥도날드 KFC 패스트푸드 음식점을 가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끔 한식당에 가는 등 타 중국 대륙 대도시와 똑같다. 단지 티베트 특유 색채가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티베트 문화는 한족이 유입되지 않은 히말라야산맥 산지가 중심으로 남아있다. 라싸의 티베트 불교 등 티베트적인 문화 대부분이 문화대혁명 시기 궤멸적 탄압을 받아 절멸했기 때문이다. 문혁 때 티베트 고승들도 홍위병 패거리에게 대거 학살당했고 그 유명한 조캉사원은 돼지 우리로 전락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홍위병들을 토사구팽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한족이 많이 이주해 티베트색이 옅어지기도 했다.

2. 관광

달라이 라마가 기거하던 포탈라궁 1994년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조캉 사원도 2000년에 추가로 등록되었고, 노블링카[8] 2001년 확대 등록되었다.

중국의 통치에 수시로 터지는 티베트 독립운동으로 인해 불안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성과 유물들 덕에 연간 40만 명에서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비교적 여행이 자유로웠으나[9]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한 여러 소요사태 이후로 라싸 여행이 아주 어려워졌다. 현재에도 허가증 없이는 여행이 불가능하며, 개인 여행도 불가능하고 단체 여행만 가능하다. 여행 상황은 자주 바뀌니 티베트 여행 관련 사이트들을 참고하자.

다만, 학술 혹은 연구 목적으로는 개별 여행이 가능하다. 대학 중어중문학과 재학생은 학과장이나 소속 대학 학장의 추천이나 공자학원의 추천을 받아서 중국대사관의 확인을 통해 개별 여행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라싸 궁가 공항으로도 갈 수 있지만 한국에서의 직항편은 없고 청두에서 환승해야 한다.

3. 라싸 교전

1959년 3월, 중국은 시민 수천 명을 학살하여 라싸 항쟁을 억압했다. 중국은 1951년에 맺은 조약을 위반했고 티베트 정부를 해산시켰으며 티베트 지역을 중국 성급 행정구로 흡수했다. 공산당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전 세계의 반발에 대응하기로 한 정책의 시작이었다.

2019년은 라싸 교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라싸 교전은 중국공산당의 인권 침해와 국제법 및 협정에 대한 공개 저항과 관련해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신장 자치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1950년대 티베트에서 시작된 정책의 논리적 연장선에 있다. 공산당에 있어 자신의 이념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국제 이미지나 선전 활동보다 중요한 셈이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때 공산당의 첫 대응은 가짜 뉴스 조작이다.

라싸 교전에 관하여 중국어 티베트어에 익숙하지 않은 서구 독자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제는 리 쟝린(李江琳)의 <고통 속의 티베트: 라싸 1959>[10]의 영문 번역본을 통해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리 쟝린은 미국에서 학위 교육을 받은 중국인 역사가로 현재 미국에서 거주 중이다. 2016년 하버드 유니버시티 프레스가 출판한 리의 저서는 2010년 대만 및 홍콩에서 중국어로 출간한 글을 다듬고 확장한 것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연구이기도 하다.

리의 주장의 핵심은 티베트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가 지리에 관한 불완전한 지식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티베트는 정확히 어디일까? 만약 인구 대다수가 티베트어를 사용하고 티베트 불교를 믿는 지역을 의미할 경우 현재 중국이 티베트 자치구(TAR)라 부르는 곳이 대략 반을 차지한다. 나머지 반은 전통적으로 암도 및 캄이라 불리는 지역으로 칭하이(靑海)성, 간쑤(甘肅)성, 쓰촨(四川)성, 윈난(雲南)성으로 나뉘었다. 더 큰 면적을 차지하는 이 지역을 지리학자와 역사학자는 "인종적 티베트(Ethnic Tibet)"라 부른다. 오늘날의 TAR는 "정치적 티베트(Political Tibet)"에 해당한다.

티베트가 1950년 중국 침략 이전에 합법적인 독립 국가였는가에 대해서는 역사적, 법률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티베트가 사실상의 독립을 보장받았으며 현실적인 이유로 달라이 라마와 그 정권에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언급은 오늘날의 TAR 영토[11]에 적용된다. 중국공산당이 1949년 정권을 쥐기 전에 중화민국 티베트 모두 암도와 캄 지역의 주권을 주장했지만 그 누구도 통치하지는 않았다. 이 지역의 소구역 대다수가 불교 사찰의 주지 승려 또는 세습 부족장의 지배를 받았다.

리가 언급한 문건에 따르면, 마오쩌둥(1893~1976)이 정권을 장악한 이래로 티베트 전역을 점거해 중국의 성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사실이 매우 명백해진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이러한 과정이 인내심을 요하며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국제적 반발을 피하고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첫째, 마오는 암도 및 캄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 지역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티베트에 속했으나 라싸 티베트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중화민국은 이미 해당 영토를 여러 개의 중국 성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이론적인 조치였을 뿐 실제로는 전통적인 통치자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서둘러 전통적인 지배자를 제거하고 중화민국의 이론을 공산당식의 행동으로 옮겼다. <1959년 라싸 교전(티베트 봉기): 모든 것의 시작점>

그러니까 과거 중화민국 티베트는 비록 여러 논란이 있지만 사실상 독립국이었으며 신장이 신장성이 된 것과 달리 티베트는 그냥 티베트였다. 그 외 중국국민당 치하에 직접 놓인 칭하이성의 티베트인들은 엄연히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이는 내몽골도 마찬가지로 차하르성과 싱안성, 러허성 등으로 나누긴 했지만 그래도 내몽골 왕공들의 자치를 보장했다. 신장성도 성스차이 위구르 카자흐인 따위에 관심 따위 없이 자기네들이 해먹기 바빴을 뿐이다. 나머진 위구르인들이 알아서 했다.

사실 중국 국민정부는 그 자신들인 쑨원, 장제스 등이 소수민족에 대해 호의적이지는 않았으나 칭하이성의 군벌 마부팡 티베트인들을 억압하더라도 종교와 문화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고 존중해줘서 티베트 불교가 융성했다. 이는 타 소수민족들도 마찬가지로 신장성도 이슬람교 문화를 일절 손대지 않고 위구르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었다. 성스차이는 신강왕이라 불린 사람이었음에도 위구르인 등 현지인보다는 오히려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다른 중국인들을 주로 탄압하고 자기 살림 모으기에만 정신이 팔렸다. 단지 소련 장제스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시전했을 뿐이다.

현재 티베트가 시끄러워진 건 순전히 국공내전 이후 자치를 보장한다던 중국공산당이 당초 약속을 깨고 1951년 중국 인민해방군을 티베트로 밀고 쳐들어가서 생긴 일이었다. 중국공산당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인민해방군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경력을 총동원해서 티베트 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학살했으며 일반 티베트인 주민들도 강간, 살해, 폭행하였다. 이런 끔찍한 인종청소, 문화청소 지옥을 피하여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산맥을 넘었으며 지금은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자락에 있는 다람살라[12]에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인들이 망명정부를 꾸리고 산다. 그때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면서 많은 티베트인들이 네팔과의 국경을 방어하는 경찰들에게 살해되었다. 중국 인민해방군과 국경 경비를 담당하던 경찰은 만년설로 덮여서 하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피난 가는 티베트인들을 조준사격으로 사살했다.

4. 창작물에서의 등장


[1] 시짱자치구라고도 한다. [2] 무성 치조 설측음이라서 한국인들에게는 ㄹ처럼 들리지 않고 마치 ㅎ처럼 들리기 쉽다. 호날두의 예를 생각하면 된다. 티베트어 영어와 같이 L, R의 발음 차이가 명확하다. '라싸'의 티베트어 라틴 문자 표기는 "Lha-sa"이다. [3] Lha: 신, 제왕, 본존. Sa: 땅, 대지, 흙 [4] 拉萨는 원래 염소의 땅이라는 뜻의 Ra-sa의 음차이다. 티베트인들도 과거엔 이 땅을 라싸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하싸로 개명한 것이다. [5] James Valby's Tibetan-English Dictionary 참조. [6] 원래 라싸역 인근은 협곡과 산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개발과정에서 산을 통째로 치워버리는 대륙의 기상을 보였다. [7] 문제는 현재 다시 인도와 중국간의 국경분쟁이 격화되고 티베트 특수부대들이 남부 국경지대를 점령하는등 거의 국지전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인도까지의 철도 연장은 현재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8] 여름 궁전이다. 달라이 라마가 여름에는 여기 노블링카에 머물렀다. 높은 고지에 있는데다가 복잡다기한 포탈라궁과는 달리 여기는 나무도 많고 공원 느낌이 나며 밝다. 여기에 중국공산당 정부가 동물원을 만들어 놓았다. 일본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고 동물원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9] 그 때에도 허가증 제도가 있었으나, 허가증 없이 여행하는 사람도 많았고 특히 외국인 티가 덜 나는 중국인과 외모가 비슷한 한국인 여행자들이 단속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았다. [10] Tibet in Agony: Lhasa 1959 [11] 중국인이 1950년에 점령해 정치적 티베트로부터 분리시킨 창두(昌都) 지역도 추가한다. [12] 영국식으로 맥그로드 간즈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