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7:04:53

노농당

(창당) 노농당 민족주의민주사회당
(당명 변경)
대한국민당
(개별 합류)
노농당
공식 명칭 <colbgcolor=#fff,#1F2023>노농당
(勞農黨)
창당일 1955년 2월 15일
당명 변경 1959년 11월 20일 ( 민족주의민주사회당)
의석 수
0석 / 233석 (당명 변경 직전)
당 색
노란색 (#FDFF00)
1. 개요2. 노농당 정치세력의 기원3. 역사4. 강령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노농당은 1955년 2월 15일 자유당을 탈당한 전진한이 노동자·농민·소시민층을 기반으로 하여 자유협동주의 이념을 내세우면서 창당한 반공주의 협동조합주의 정당이다.

이름이 비슷해 노동당으로 잘못 보일 수도 있지만, 노동당과는 다른 정당이다.

2. 노농당 정치세력의 기원

노농당의 기원은 대한국민당에 대거 합류한 1949년 7월 원내교섭단체로 탈바꿈한 대한노농당이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대한노농당 창당에 합류했다가 중도에 이탈한 한국노농당이다.

1948년에 창당을 시도했던 대한노농당은 노농대중의 복리증진을 내세웠던 무소속 국회의원들의 창준위였던 대한농우당과 대한노총 전진한, 대한농총의 채규항 등이 합쳐서 창당하려고 했던 정당이었다. 그러나 내부적인 이념과 노선투쟁으로 인해서 분열되어서 노총과 농총은 10월 24일 원외세력인 한국노농당을 창당하고 잔여세력은 대한노농당을 그대로 창당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노농당 출신이자 초대 사회부장관이며 친이승만 성향의 전진한은 1951년 12월 부산의 조선방직 쟁의를 계기로 이승만과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1954년 1월 족청계 숙청을 계기로 이승만의 자유당과 완전히 결별하였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3대 총선에 출마하여 3선 의원으로 제헌국회 때부터 3연속 당선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독립을 추구했다. 어떻게 본다면 이승만이 말한 통일노농당의 진정한 후계 정당이다.

노농당은 전진한의 자유협동주의 이념이 당의 강령에 들어간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전진한의 노동운동적인 노선과 관계가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적인 노동운동에 맞서 협동조합운동사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적인 노동운동을 추구했다. 즉, 전진한의 자유협동주의 이념은 코포라티즘의 일종이다.

3. 역사

전진한이 자신의 정치사상을 담은 책까지 발간하면서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노농당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노농당에게 호의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이후 이승만 자유당의 정치적 독선에 놀란 야권에서는 야권통합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이승만에 반대하는 보수주의 정치세력만의 결집을 외치는 자유민주파와 이승만에 반대하면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뭉치는 빅텐트 정당을 주장하는 민주대동파로 나뉘어진 것이다. 결국 노농당이 창당되고 7개월이 지난 1955년 9월 18일 자유민주파의 의견대로 보수주의 정치세력이 뭉친 민주당이 창당되었고 이후로 1955년 이전에는 여당 야당밖에 없었던 한국정치는 보수 진보로 급속도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심화된 것이 바로 1956년 자유당의 이승만과 민주당의 신익희, 진보 성향의 무소속 조봉암이 붙은 3대 대선이었다. 이때부터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정계 전체가 거대한 정국재편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진보진영에서는 대선 이후 자신감을 얻고 자유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보수양당에 맞서 민주혁신당이라는 진보세력들의 대동단결을 추진했고 1957년 10월 15일에는 서상일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는데 조봉암과 서상일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당 창준위와 자유당 출신의 구 족청계들간에 합의된 민주혁신운동의 3대원칙[1]을 내걸고 민주혁신당 추진 12인위원회가 단일진보신당결성을 추진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결론적으로 따지자면 조봉암 중심의 진보당과 서상일 중심의 민주혁신당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1958년 1월 진보당 사건이 일어나고 2월 25일 진보당의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으며 같은해 5월 2일 치러진 4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들, 특히 자유당과 민주당만 승리한 양당제의 구도로 변하였다. 이로 인해서 전진한도 낙선하였고 노농당은 어쩔 수 없이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1958년 총선 후 노농당은 민주혁신당과 손을 잡으면서 여러 정치세력들과 함께 제 3당의 창당을 위해서 노력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1959년 민주사회주의 이념을 확실하게 내세우고 보수정치세력과의 대결을 강조하며 민족주의민주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강령도 고치며 진보정당화 되었다.

4. 강령

① 우리 노농당은 근로대중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한다.

② 우리 노농당은 사회정의에 입각한 균형있는 국민생활을 보장한다.

③ 우리 노농당은 대한민국 주권하에 남북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④ 우리 노농당은 국제연합기구와 협조하여 세계평화를 촉진하며,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과 제휴하여 진정한 자유세계 건설에 매진한다.

⑤ 우리 노농당은 자유협상주의로서 공산독재주의와 자본독점주의, 관료독선주의를 배격하고,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자유협동사회를 건설한다.

강령의 5번이 특징적인데 협동조합주의의 일종인 전진한의 자유협동주의가 반영되어있다. 전진한은 이외에도 제헌헌법에 이익균점권을 집어넣었으며 근로기준법을 만들기도 했다. 강령을 보면 알겠지만 오늘날 경제민주화로 불리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독일식 사회자유주의 질서자유주의 사상의 사회적 시장경제 개념에 가깝다. 생디칼리슴 성향도 있는데, 본래 생디칼리슴이 좌와 우 모두 넘나드는 이념이므로 역시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전진한은 온건한 반공주의, 자유협동조합주의, 가부장적 보수주의[A] 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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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공통일 재건에 효과적인 경제정책, 비보수, 원내세력에 의한 추진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