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00:22:20

나성범/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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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IA 타이거즈 소속 외야수 나성범의 선수 경력을 정리해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2.1. 유년기 시절

1989년 광주광역시 출생. 형인 나성용과는 한 살 터울[1]. 대성초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형이 야구부에 들어갔으니 야구에 흥미를 가질 법 한데 본인은 로봇 같은 과학 쪽에 관심이 있었고 야구 쪽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달리기 대회에서 반 대표로 뛰었던 그의 빠른 발에 주목한 야구부 감독이 계속 설득하다가 건넨 만 원 때문에 야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야구부 학생들이 맞는 것을 목격하고 하기 싫어했는데, 야구부를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부모님 때문에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다.[2]

2.2. 고교 시절

파일:나성범_진흥고.jpg

광주진흥고 시절에는 4번 타자로 활약했으며 투수보다는 주로 외야수로 자주 출장했다. 2학년이던 200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1년 선배인 투수 정영일이 거의 혼자 던지다시피 했고 형 나성용은 정영일과 배터리를 짰으며, 나성범은 우익수로 출전했다. 정영일은 역투에도 불구하고 청룡기 결승전에서 신본기의 연장 16회 끝내기 안타에 우승을 내줬다.[3]

3학년이던 2007년[4]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8강으로 이끌고[5] 타율 5할을 기록하는 등 5개 전국대회 통산 타율 0.353의 강타자 겸 투수였다. 3학년 투수 성적은 12경기 2승 2패 30⅔이닝 29K ERA 3.19.

2008년 드래프트에서 2차 4순위로 LG 트윈스에 지명되었으나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였다. LG가 싫어서 대학에 진학한 것이 아니라,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LG가 숫자 채우기 식으로 지명한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당시 드래프트에서 LG 4순위부터는 모두 대학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지명한 것.[6][7][8]

2.3. 대학 시절

파일:나성범연대시절_1.jpg
그 때 그 연대 킹카 시절
2010년 YBS 다큐 영상 연세대 재학 당시 대학 웹진 글 모음 2014년 연세대 스포츠 매거진 인터뷰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투수로 변신,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나성범은 대학 야구리그 연세대 야구팀의 좌완 에이스로서 최고구속 148km/h를 찍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지옥에서라도 데리고 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로서 이름을 날렸고[9]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계약 제의를 여러 차례 받기도 했다.[10] 대학리그 4년간의 방어율은 1.70 / 2.92 / 2.48 / 2011년에는 방어율이 3점대까지 올라가며 약간 부진했다.

나성범은 2009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로 발탁된 데 이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1차 예비 엔트리에 대학선수로는 김명성(당시 중앙대)과 함께 유이하게 이름을 올렸다. 2010년에는 한미대학선수권 대표로 뽑히는 등 대학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나성범의 공에 대해 "낮게 제구되는 빠른 공과 슬라이더는 프로 타자라고 해도 제대로 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또다른 스카우터는 "변화구 구사 능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나성범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11] 이광환 당시 서울대 감독은 이상훈이 연상된다면서 마무리 투수가 될 재목으로 평가했으나 나성범 본인은 "일정하게 몸 상태를 관리할 수 있는 선발투수가 목표"라고 밝혔다.

후술할 연고전에서의 활약 덕분에 연세대학교에서는 2000년대 이후 한정으로 신지애 다음으로 유명한 스포츠 선수 동문으로 손꼽힌다.[12]

2.3.1. 연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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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전에서는 4년간 4경기 34⅔이닝을 던져 2승 1패(1무)를 거두어 연세대의 노예로 이름을 날렸다.

1학년 때부터 연세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8 연고전에서부터 선발 등판, 3회초 대거 7득점한 타선의 지원에 힘입어 9이닝 완투 2자책점의 훌륭한 성적으로 9:2의 완승을 거둔다. 다음해 2009 연고전에서는 8회까지 3점만 내주는 호투를 펼쳤으나, 당시 고려대의 에이스였던 신정락도 호투하며 마지막까지 박빙으로 경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당시 양승호 고려대 감독의 대타 작전으로 9회초 무사에 연속 3루타와 단타를 맞고 4:5로 역전당해 완투패를 기록했다.[13][14]

2010 연고전에서는 경기 초반 만루에서 싹쓸이 2루타를 맞고 3실점하여 연세대의 패색이 짙어졌으나, 타선이 간신히 동점까지 쥐어짜내면서 간신히 3:3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7회 이후에는 지친 나머지 제구력이 흐트러져 볼넷을 남발하기도 했으나, 9회말 2사 만루에서 풀카운트 삼진으로 대타 김경도를 잡아내면서 4:4 무승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15] 6회까지 0:3으로 지고 있던 연세대 학생들은 이 야구 만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에 환호했으며, 고대 학생들은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아연실색하며 자교의 물타선을 욕했다.

2011 연고전에서는 0:1로 지고 있던 2회 2사 1, 2루의 위기 상황에서 계투로 등판, 경기 종료까지 7 2/3이닝 동안 140구 이상 던지고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3:1로 승리를 챙겨 고려대학교 학생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경기 말부터 잠실구장 3루 측(고려대 응원석)에서는 "또 쟤 나왔냐?" "저건 사기야."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상으로 인해 선발출전이 어려웠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투구 내용은 그다지 좋지 못해 빈번히 위기상황을 맞이했지만, 속구의 구위를 바탕으로 꾸역꾸역 이닝을 먹었다. 그래서 고대생들은 나성범이 아니라 자기 팀 빠따 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16]

흥미롭게도 이 날 경기에서 2회부터 9회까지 마운드를 지켰던 나성범을 상대했던 고려대학교 투수는 3명으로, 두산 베어스 1차지명 윤명준, SK 와이번스 1차지명 문승원, 그리고 SK 와이번스 임치영이었다. 대학 최정상 선발진들이 계투로 나오는 중요한 경기에서 비자책으로 승리를 거둔 나성범은 타자전향설이 불거진 시점에서 '투수로서의 가치하락' 이라는 의혹을 깨끗이 씻어냈다.

여담으로 2011 연고전 방송제[17]에서 고려대 방송국에서는 성동일의 현대스위스 광고를 더빙하여 "나성범은 아직도 직구밖에 모른다~" 라는 디스를 시전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대학교를 디스하면 디스했지 특정선수를 디스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 정도로 나성범이 연고전 야구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고려대학교 타자들이 나성범의 속구를 공략하기 위해 합숙훈련 과정에서 피칭머신의 속도를 160에 맞춰놓고 연습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년간 나성범의 역대 연고전 기록을 정리해 보면
2008 9이닝 2실점 2자책 완투승
2009 9이닝 5실점 4자책 완투패
2010 9이닝 4실점 3자책 완투무승부
2011 7⅔이닝 무실점 무자책 승
총 4경기 34⅔이닝 ERA 2.34 2승 1패
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다.

나성범의 연고전 활약은 연세대와 고려대의 당시 전력차를 생각하면 더욱 빛을 발한다. 연세대학교에 나성범이 재학중이던 2008~2011년에 연세대학교에서 배출한 인지도 있는 프로선수는 그의 친형인 삼성 라이온즈 나성용, KIA 타이거즈 고영창, 유민상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고려대학교 야구부는 당시 대학리그 최강으로 꼽혔으며, 나성범과 동기급인 선발 트로이카 임치영, 윤명준, 문승원과 나성범이 신입생이던 시절 30.1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던 대학리그 최고의 투수였던 신정락, 그리고 타선에는 김재율, 홍재호, 박세혁, 황정립, 김상호, 문상철 등 당시 대학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18][19]

3. NC 다이노스

No.47 나성범
2012~2021
파일:photo_1605630845_faa.jpg

1081경기 4763타석/4259타수 1330안타 212홈런
830타점 814득점 365BB/1062K 94도루
.312/.378/.538 OPS .916 wRC+ 136.7 sWAR 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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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의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팀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3.1. 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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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갸성범.jpg
KIA 타이거즈와 6년 총액 150억 원[20]에 계약했다.

4. KIA 타이거즈

4.1. 2022 시즌

파일:KBO 골든글러브 로고.svg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2022)
파일:22나성범.jpg
KIA 이적 후 첫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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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23 시즌

파일:15.4도홈런나성범.png
7월 5일, 백승건을 상대로 발사각 15.4도, 타구속도 181km의 홈런을 치고 있는 나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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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024 시즌

파일:탕성범.jpg
8월 16일, 9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유영찬을 상대로 역전 투런 홈런을 친 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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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가대표 경력

리그에서의 성적이 무색하게도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이 매우 저조하다. 박병호, 최정, 양의지와 함께 국내용 선수로 자주 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2023 WBC 맹활약으로 체면치레에 성공한 양의지, 박병호와 달리 최정과 나성범은 여기서도 평가를 뒤집지 못했다.

5.1.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파일:나성범_2014인천.jpg

호성적을 바탕으로 첫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좋은 활약을 남겼는데, 특히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는 2-2의 균형을 깨는 역전 1타점 적시타를 쳐낸 것에 이어 2루 도루 과정에서 상대 송구가 뒤로 빠져나간 틈을 타 열심히 달려서 홈까지 들어와 2-4의 스코어를 만들며 이 날의 수훈갑이 되었다. 대만과의 결승전에서도 3-3 동점이던 8회초 1사 만루에서 느린 2루수 땅볼로 역전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대표팀이 6-3으로 승리하면서 병역 특례 획득. 첫 국대 발탁이지만 부족함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

아시안게임 최종 성적은 5경기 타율 .400 8안타 6타점 5득점 2도루. 중견수 수비에서도 나름대로 밥값했다.

5.2. 2015 WBSC 프리미어 12

세간의 예상대로 무난히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8경기 중 2경기에만 선발로 출전하는 데 그쳤고 나머지 경기에서는 주로 대타와 대주자로 출장했다. 한정된 기회 속에서도 좀처럼 활약을 펼치지 못하면서 총 12타석 11타수 1안타 0타점 1득점 0.091/0.167/0.091 OPS 0.258을 기록했다.

5.3.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파일:국내용성범.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2 5 0 0 0 0 0 0 0.000 0.000 0.000 0.000 0 2 0

2015년 프리미어 12 이후 8년 만인 2023년, 지난해 활약을 바탕으로 8년 만에 대표팀에 승선하게 됐다. KIA로 이적한 이후로는 처음 국가대표에 승선하게 됐으며, KIA에서는 양현종 이의리 등 선발투수 두 명과 함께 선발됐다.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인 호주전부터 찬스 때마다 삼진만 적립하며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고, 양의지의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 가져온 분위기를 완전히 말아먹는 견제사까지 당하며 주루에서도 답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8회말 8대7까지 추격한 상황의 2사 만루 찬스에서 대형 파울 홈런을 때렸지만 결국 3구 삼진으로 허무하게 물러나면서, 세리머니하다 아웃당한 강백호, 대량실점의 양현종, 김원중과 함께 호주전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중이다.

일본전에서는 경기에서 제외되었고 체코전에서는 박병호 대신 교체출전하였으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현재까지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WBC에서 심각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전에서는 경기에서 제외되었으며 팀은 대승을 했다.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약 8년 만에 대표팀에 승선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번 대회의 처참한 성적[22]으로 오히려 본인이 오랜 기간 동안 대표팀에 뽑혀오지 못했던 이유가 제대로 드러나고 만 나성범에게 있어 아쉬움과 쓰라림만 남게 된 대회였다.

6. 수상 경력

6.1. KBO 리그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svg
나성범의 KBO 수상 경력
2012 퓨처스 남부리그 타격왕
퓨처스 남부리그 홈런왕
2013 웨스턴 올스타(감독 추천)
2014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웨스턴 올스타(베스트 11)
2015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나눔 올스타(감독 추천)
2016 나눔 올스타(베스트 12)
2017 나눔 올스타(감독 추천)
2018 나눔 올스타(감독 추천)
2019 -
2020 한국시리즈 우승
나눔 올스타(베스트 12)
페어플레이상
2021 -
2022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나눔 올스타(베스트 12)
2023 -

6.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나성범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2014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5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

6.3. 기타

나성범의 기타 수상 경력
2018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 수비상

7. 연도별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나성범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12 NC 1군 기록 없음(NC 1군 입성 이전)
2013 104 458 98 18 5 14 55 64 12 33 95 .243 .319 .416 .735 98.6 2.98
2014 123 536 157
(5위)
28 5 30 88 101
(5위)
14 42 128
(2위)
.329 .400 .597 .997 149.8 5.50
2015 144
(1위)
622
(4위)
184
(2위)
34 5 28 112
(4위)
135
(4위)
23 32 127
(4위)
.326 .373 .553 .926 134.3 4.79
2016 144
(1위)
653
(3위)
177 37 2 22 116
(4위)
113 7 67 136
(1위)
.309 .388 .497 .885 125.1 4.20
2017 125 561 173 42
(1위)
2 24 103 99 17 48 116
(5위)[23]
.347
(4위)
.415 .584
(5위)
.999 153.8 5.72
2018 144
(1위)
620
(4위)
177
(5위)
36 3 23 110
(4위)
91 15 44 131 .318 .381 .518 .899 123.4 4.17
2019 23 106 34 12 1 4 19 14 2 12 26 .366 .443 .645 1.088 198.2 1.71
2020 130 584 170 37 2 34
(3위)
115
(2위)
112 3 49 148
(3위)
.324 .390 .596
(3위)
.986
(4위)
151.4 4.93
2021 144
(1위)
623
(5위)
160 29 1 33
(2위)
96
(5위)
101
(4위)
1 38 155
(2위)
.281 .335 .509 .844 121.4 2.92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sWAR
2022 KIA 144
(1위)
649
(1위)
180
(3위)
39
(2위)
2 21 92
(4위)
97 6 64 137
(1위)[24]
.320
(5위)
.402
(4위)
.508
(4위)
.910
(3위)
161.8
(3위)
6.94
(2위)
2023 58 253 81 12 1 18 51 57 0 26 36 .365 .427 .671 1.098 209.8 3.57
2024 102 424 109 17 1 21 51 80 0 38 98 .291 .357 .511 .868 118.4 1.73
KBO 통산
(12시즌)
1385 6089 1700 341 30 272 1008 1064 100 493 1333 .314 .381 .538
(3위)[25]
.919 137.1 49.14

[1] 다만 나성용이 빠른 88년생이라 87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입학했지만 도중에 부상으로 유급한 경력이 있어 최종적으로는 88년생들과 졸업했기 때문에, 기수로는 1년 차이다. [2] 2009년 정기전호 인터뷰. # [3] 타격성적은 정영일 .500(25타석 24타수 10안타), 나성용 .278(26타석 18타수 5안타), 나성범 .250(27타석 24타수 6안타)다. [4] 정영일을 혹사시켰던 박철우가 해임됐고 최재영 감독이 부임했다. [5] 8강전에서 덕수고에 패했다. 우승은 충암고, 준우승은 덕수고가 차지했다. [6] 다만 5순위 노진용은 진학을 번복하고 입단했다. [7] 이는 형 나성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둘 다 LG의 지명을 받았지만 연세대에 입학했다. 여러 인터뷰를 조합해 보면, 나씨 형제의 부모님도 만일 프로 야구선수가 안 될 경우 대신 교사라는 직장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에 대학에 갈 것을 원했고(실제로 교생 실습을 온 나성범의 이야기를 디시에 올린 사람도 있었던 것을 보면 교사 준비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진학이 결정된 상황에서 LG의 픽순위가 높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학교 진학을 결정한 듯하다. [8] 대부분의 체육특기자 대학생들은 체육교육과로 진학한다. 어차피 체육관련 학과로밖에 못 가며, 이왕 진학하는 거 자격증이 나오는 학과가 훨씬 낫기 때문. 체교과의 경우 체육교사 자격증이 졸업하면 나오기 때문이며, 대신 교생 실습을 무조건 해야만 한다. [9] 대학교 1학년 동계훈련 때 볼 스피드가 갑자기 10km/h가 올랐다고 한다. 고3시절 좌완투수임에도 2차 4라운더라는 비교적 낮은 지명을 받은 이유가 느린 구속에 있었던 것인데 이를 해결한 것. 인터뷰 [10] 그런데 손을 뻗은 에이전트가 다름 아닌 마이너스의 손 재미교포 더글라스 조(한국명 조동윤) 였다. 구대성이 2005년 뉴욕 메츠에 있었을 때의 에이전트로, 당시 구대성의 연봉 일부를 본인이 착취했다는 소문과 과거 안산 돔구장 사업에서 미국인 투자자와의 계약불이행 사건 등 에이전시 계에서 평이 나쁘기로 유명하다. 더글라스 조에 관한 더 자세한 것은 기사 참조. 결과적으로 천만 다행이다. [11] 지명을 앞두고 당시 나성범은 "체인지업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캐치볼 할 때도 평소 때도 체인지업 그립으로 공을 가지고 논다."고 말한 적이 있다. [12] 90년대까지 올라가면 더 윗학번 선배들은 워낙 쟁쟁하기 때문에 그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13] 2009 연고전은 나성범에게 있어 다른 의미로 안타까운 기억이기도 하다. 이 날 경기에서 나성범은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크게 다쳤는데, 해당 경기는 물론 투수 생활을 마치는 날까지 이전의 구위를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성범은 4학년 시절에도 147~8km/h 의 공을 뿌리며 야구 월드컵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150km/h를 넘나드는 대포알 직구는 그 날 이후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결과에는 나성범 뿐만 아니라 연세대 코치진들의 책임도 있는데,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한 나성범을 무리하게 완투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나성범의 투구수는 150구를 넘어갔으며 부상을 당한 몸으로 그 정도의 전력투구를 시키는 것은 자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14] 당시 상황에 대해 나성범의 인터뷰 내용은 이러하다. "형이 홈런을 쳐서 4-3으로 역전한 경기를 9회 2실점하며 역전을 당했다. 9회 말 1사 후 타석에 들어섰는데 어떻게 하든 살아나가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상황에서 친 땅볼을 2루수가 살짝 놓쳐서 잘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는데 어깨를 베이스에 부딪쳤다. 그땐 아픈 줄도 몰랐고 아웃된 게 억울해서 땅을 꽝 쳐버렸다. 결과적으로 그게 부상을 키웠다. 조금 다친 상황에서 들어서 찍어버린 거다. 게다가, 9회까지 완투하며 던진 투구 수도 160개를 넘겼으니까." [15] 연고전 역시 대학리그 경기에 포함되기 때문에 연장은 하지 않는다. [16] 후술되어 있지만 당시 고려대 타선은 교내 역사상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최고였다. 나성범과 동기인 08학번 선수들 중 6명이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았고, 신고선수까지 합치면 한 학교 한 학번에서 8명 이상이 프로에 갔으니 말 다한 셈. 선수 명단을 보면 대졸들임에도 대부분이 프로지명 후 주전 혹은 준주전급으로 활동한 선수들일 정도로 누구에게 욕먹을 타선은 절대 아니었고, 고대생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을텐데도 욕했다는 건 그만큼 좌완투수 나성범이 위협적이었다는 이야기. [17] 5회말 종료 후 진행 [18] 문승원과 윤명준은 1라운드 지명, 신정락은 2년 전 드래프트 되긴 했지만 전체 1순위 지명 [19] 그래서 당시 김한중 총장은 나성범을 끌어안고 응원단상위로 올라가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러분 우리 나성범 선수가 138구를 뿌리며 우리에게 승리를 으흐흑" 이라며 감격했다고. [20] 계약금 60억, 연봉 총액 60억, 옵션 30억 [21] 이 홈런은 2024시즌 KIA는 물론이고 모든 구단의 홈런을 통틀어도 한 손에 꼽히는 임팩트를 남겼던 홈런으로, 염경엽 LG 감독은 정규시즌 막바지에 이 경기를 잡지 못한 것이 선두 싸움에 가장 큰 타격이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당시 KIA가 이 홈런이 나온 시리즈를 스윕한 이후 정규시즌 우승을 사실상 확정하는 수순에 돌입했고 KIA를 추격하는 2위 팀은 사실상 사라졌다. [22] 대표팀 타자들 중 유일하게 안타를 치지 못했다. [23] SK 로맥과 공동 5위 [24] SSG 한유섬과 공동 1위 [25] 3000타석 이상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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