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11:32:32

나기브 마푸즈

{{{#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rowcolor=#cd9f51> 1901 1902 1903 1904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쉴리 프뤼돔 테오도르 몸젠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외른손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rowcolor=#cd9f51> 1904 1905 1906 1907
파일:스페인 국기(1785–1873, 1875–1931).svg 파일:폴란드 입헌왕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호세 에체가라이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조수에 카르두치 러디어드 키플링
<rowcolor=#cd9f51> 1908 1909 1910 1911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벨기에 국기.svg
루돌프 오이켄 셀마 라겔뢰프 파울 폰 하이제 모리스 마테를링크
<rowcolor=#cd9f51> 1912 1913 1915 1916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인도 제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로맹 롤랑 베르네르 폰 헤이덴스탐
<rowcolor=#cd9f51> 1917 1919 1920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카를 기엘레루프 헨리크 폰토피단 카를 슈피텔러 크누트 함순
<rowcolor=#cd9f51> 1921 1922 1923 1924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스페인 국기(1785–1873, 1875–1931).svg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파일:폴란드 국기(1919-1927).svg
아나톨 프랑스 하신토 베나벤테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
<rowcolor=#cd9f51> 1925 1926 1927 1928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조지 버나드 쇼 그라치아 델레다 앙리 베르그송 시그리드 운세트
<rowcolor=#cd9f51> 1929 1930 1931 1932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토마스 만 싱클레어 루이스 에릭 악셀 카를펠트 존 골즈워디
<rowcolor=#cd9f51> 1933 1934 1936 1937
X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이반 부닌 루이지 피란델로 유진 오닐 로제 마르탱 뒤 가르
<rowcolor=#cd9f51> 1938 1939 1944 1945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핀란드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칠레 국기.svg
펄 벅 프란스 에밀 실란패 요하네스 빌헬름 옌센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rowcolor=#cd9f51> 1946 1947 1948 1949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윌리엄 포크너
<rowcolor=#cd9f51> 1950 1951 1952 1953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영국 국기.svg
버트런드 러셀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프랑수아 모리아크 윈스턴 처칠
<rowcolor=#cd9f51> 1954 1955 1956 1957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아이슬란드 국기.svg 파일:스페인국 국기(1945–1977).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어니스트 헤밍웨이 할도르 락스네스 후안 라몬 히메네스 알베르 카뮈
<rowcolor=#cd9f51> 1958 1959 1960 1961
파일:소련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살바토레 콰시모토 생존 페르스 이보 안드리치
<rowcolor=#cd9f51> 1962 1963 1964 1965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그리스 국기(1822-1978).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svg
존 스타인벡 요르기우스 세페리스 장폴 사르트르(거부) 미하일 숄로호프
<rowcolor=#cd9f51> 1966 1967 1968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과테말라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 넬리 작스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가와바타 야스나리
<rowcolor=#cd9f51> 1969 1970 1971 1972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svg 파일:칠레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사뮈엘 베케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파블로 네루다 하인리히 뵐
<rowcolor=#cd9f51> 1973 1974 1975
파일:호주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패트릭 화이트 에위빈드 욘손 하뤼 마르틴손 에우제니오 몬탈레
<rowcolor=#cd9f51> 1976 1977 1978 1979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스페인 국기(1977-1981).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그리스 국기.svg
솔 벨로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rowcolor=#cd9f51> 1980 1981 1982 1983
파일:폴란드 국기(1928–1980).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국기(1971–1990).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콜롬비아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체스와프 미워시 엘리아스 카네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윌리엄 골딩
<rowcolor=#cd9f51> 1984 1985 1986 1987
파일:체코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 클로드 시몽 월레 소잉카 조지프 브로드스키
<rowcolor=#cd9f51> 1988 1989 1990 1991
파일:이집트 국기.svg 파일:스페인 국기.svg 파일:멕시코 국기.svg 파일:남아프리카 연방 국기.svg
나기브 마푸즈 카밀로 호세 셀라 옥타비오 파스 나딘 고디머
<rowcolor=#cd9f51> 1992 1993 1994 1995
파일:세인트루시아 국기(1979–2002).svg.pn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데릭 월컷 토니 모리슨 오에 겐자부로 셰이머스 히니
<rowcolor=#cd9f51> 1996 1997 1998 1999
파일:폴란드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다리오 포 주제 사라마구 귄터 그라스
<rowcolor=#cd9f51> 2000
파일:프랑스 국기.svg
가오싱젠
}}}
}}}}}}}}}
[ 21세기 ]
##
||<tablebgcolor=#663334><rowcolor=#cd9f51> 2001 || 2002 || 2003 || 2004 ||

}}}}}} ||
물리학 | 화학 | 생리학·의학 | 평화 | 경제학
<colbgcolor=#000><colcolor=#fff> 나기브 마푸즈
Naguib Mahfouz | محفوظ‎ نجيب
파일:Naguib-Mahfouz.jpg
본명 나기브 마푸즈 압둘아지즈 이브라힘 아흐메드 알 바샤
Naguib Mahfouz Abdelaziz Ibrahim Ahmed Al-Basha
출생 1911년 12월 11일
이집트 케디브국 카이로
사망 2006년 8월 30일 (향년 94세)
이집트 기자 주 아구자
국적
[[이집트|]][[틀:국기|]][[틀:국기|]]
학력 카이로 대학교 (철학 / 학사)
배우자 아티야툴라 이브라힘 (1954년 결혼)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이집트의 소설가. 198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여 현재 아랍어권 작가 중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2. 생애

나기브 마푸즈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나깁이라는 이름[1]은 출산을 도왔던 의사 나깁 바퍄 마푸즈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마푸즈는 부동산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뒤 예술 관련부처 검열관으로 자리를 옮겼다[2]. 뒤에 영화제작 지원 업무도 맡아 했었고[3] 공직생활 마지막은 문화부 자문위원으로 마감했다. 마푸즈는 소설 34편을 냈고 단편 350편 이상을 발표했다. 또 작가생활 70년 동안 영화زب수십편과 희곡 다섯 편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아랍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마푸즈는 항상 거칠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명료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작가였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동성애 같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썼지만 언제나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이집트는 물론이고 다른 아랍 국가들에서도 신( 알라)에 대해 감히 논하는 것은 금기시됐으나 마푸즈는 예외였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영향을 준 ‘게벨라위의 아이들 أولاد حارتنا)’이나 훗날 영화로 만들어졌던 ‘미다크 골목[4]’ 같은 것들이 그런 예들이다.

1959년작 ‘게벨라위의 아이들’은 그야말로 마푸즈 문학세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집트에서 종교 세력으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고 사실상 출판·판매가 금지됐던 이 작품은 ‘ 아브라함계 종교’라고 불리는 세 유일신교, 즉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1989년 이란 라흐바르 호메이니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라는 파트와[5]를 내린 뒤 이집트 맹인 신학자 오마르 압둘 라흐만은 한 기자에게 “마푸즈가 ‘게벨라위의 아이들’로 진작 벌을 받았더라면 루시디가 감히 그따위 책을 낼 엄두를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집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오마르는 훗날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파트와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1994년 이슬람 근본주의자 그룹이 오마르의 발언을 이집트 이슬람 지도부의 ‘공식 파트와’라고 해석하고 마푸즈를 공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82살이었던 마푸즈는 자택 앞에서 칼에 찔렸고,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손 신경이 끊어져 불구가 됐다. 마푸즈는 이 일이 있은 뒤 사망할 때까지 경호원들의 보호 속에 살아야 했다. ‘게벨라위의 아이들’은 2006년 초에야 비로소 공식 출간될 수 있었다. 잡지에 연재됐던 것 외에 이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이집트에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민음사에서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마푸즈의 또다른 대표작 '나일 강변 한담 ثرثرة فوق النيل'(1966)도 수난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은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시절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가말 압델 나세르 정권 시절 이집트 사회의 데카당스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덕택에 사다트 정권으로부터 바로 금지처분을 당했고 1990년대 말이 될 때까지 이 작품은 이집트에서 출판될 수 없었다. 영화도 상영금지된 것은 물론이다. 마푸즈를 또다른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게 만든 것은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이었다. 사다트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 측과 악수를 나누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 사다트 대통령은 결국 이슬람 과격파 조직원에게 암살당함으로써 ‘목숨으로 값을 치른’ 셈이 됐는데, 마푸즈는 이 평화협정을 드러내놓고 지지했었다.

마푸즈는 2006년 8월 30일 카이로 시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워낙 고령이었던 데다가, 심장 질환과 신장병을 앓고 있던 차였다. 마푸즈의 장례식은 다음날 국장으로 치러졌다. 카이로 교외 나스르시티에 있는 알라슈단 모스크에서 열린 장례식은 이집트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엄숙하게 이뤄졌지다. 하지만 생전의 마푸즈 자신은 ‘카이로 빈민을 비롯해 이집트의 모든 이들이 애도해주는 것’을 바랐다고 한다. 2005년 내내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저항하는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었다. 그 해 9월 극히 비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5선 연임’에 성공한 무바라크 정권은 마푸즈가 가진 영향력을 의식했는지, 그의 장례식에 극소수 각료들만 참석토록 제한해버렸다. 마푸즈가 사랑했던 ‘민중들’은 철저히 배제된 채 장례식이 치러짐으로써 아쉽게도 그의 마지막 꿈은 이뤄질 수 없었다.


[1] 표준 아랍어에서는 ‘나지브’라고 해야 하지만 이집트 아랍어에서는 표준 아랍어의 j 발음을 g로 읽어 ‘나깁’ 혹은 ‘나기브’라고 읽는다. [2] 훗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종교적 ‘검열’ 때문에 오랜 세월 고통받았던 마푸즈가 원래 검열관 출신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3] 이집트는 중동 전체에 영화를 만들어파는 영화수출국이다. [4] زقاق المدق· 셀마 헤이엑이 주연한 멕시코산 영화 제목은 El callejon de los milagros [5] 파트와 자체는 이슬람 율법학자의 견해를 뜻한다. 그러나 이란의 이슬람 최고 지도자이자 국가최고지도자인 라흐바르의 파트와는 이란 같은 신정 국가에서 명령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이를 지키지 않거나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경우 생명권과 같은 기본적 인권마저 위태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