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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당위원장 | |||
김정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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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 | 양종아 | 김정현 | 안태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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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 金潤 | Kim Yoon |
|
<colbgcolor=#e61e2b><colcolor=#fff> 출생 | 1963년 10월 3일 ([age(1963-10-03)]세) |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 |
학력 |
순천심산국민학교[1] (
전학) 광주계림국민학교 ( 졸업) 무등중학교 ( 졸업) 광주진흥고등학교 ( 졸업)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 서양사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서양사학 / 석사 과정 수료) |
소속 정당 |
|
현직 |
북촌학당 학장 국민의힘 광주 서구 을 당협위원장 |
경력 |
대우자동차 세계경영기획단장 사단법인 세계경제화포럼 대표 전진코리아 공동대표[2] 통합민주당 서초구 을 지역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 국민의당 동대문구 갑 지역위원장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국민의당 정치혁신특별위원회 상임위원 국민의당 기획1실장 국민의 도전 선거대책위원회 조직본부장 국민의당 서울특별시당위원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2. 정계 입문 이전
2.1. 출생과 어린 시절
1963년 10월 3일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한학자 출신으로 몰락한 양반 가문의 마지막 세대다. 1969년 삼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집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던 한자와 글공부에 익숙했던 터라 처음부터 공부를 잘 했다고 한다. 4학년 때는 광주에 있는 계림초등학교로 유학(전학)을 갔다. 전학 간 뒤로 도시 아이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1등을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인간의 존재와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 급기야 고2 때 머리를 깎고 ‘출가’ 하겠다며 돌연 전남 순천의 송광사로 들어갔다. 송광사 스님은 처음에 가출이 분명해 보이는 고삘이를 받아주지 않으려 했다. “출가하려면 반드시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스님의 말에 “부처님 가르침 어디에 출가하려면 부모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말씀이 있는지요? 근거를 대보시지요 스님?”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그렇게 송광사에서 설거지와 법당 청소 등을 하며 한 달을 보냈지만 전라도의 절이란 절은 샅샅이 뒤진 어머니의 끈질긴 탐문수사에 걸리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귀가하였다.2.2. 학생운동
2.2.1. 광주항쟁
고3 때였던 1980년 5월, 광주의 참혹한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3]공포도 있었지만, 치솟는 분노도 참을 수 없었다. 전두환의 만행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자기학교뿐만 아니라 전주고등학교까지 가서 또래들에게 광주의 실상을 알렸다. 이 때 ‘녹두장군 전봉준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를 위해 싸우자’는 말도 했다. 나라가 이렇게 된 판에 대학은 가야 하는지를 고민했지만 흥사단 형들이 “전두환이랑 싸우려면 대학교에 가야 한다”고 충고하는 바람에 방황을 끝내고 입시공부를 시작했다.
2.2.2. 소년범
대학시절은 거의 운동권 생활이었다. 학교 수업은 빠지는 날이 더 많았고 탈춤 동아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1983년 5월 24일.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는데 이 때 형사들이 “너 전과 7범이야!” 라고 말했다. 이미 사진 채증 등으로 7번 이상 경찰 정보망에 올라갔다는 얘기였다. 당시 만 20세가 채 안 되어 소년범으로 분류, 죄수 번호 376번을 달았다.
0.7평의 독방에서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처음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으나, 좀 지나니 약간 적응이 되었다고 한다. 1984년 학원자율화 조치로 출소한다.
2.2.3. 비주사 NL 수장
당시 서울대 운동권에는 여러 정파가 온갖 논쟁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주사파의 시조로 유명한 김영환이 구학련을 만들어 NL그룹의 천하통일을 추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김윤은 구학련 그룹과는 별개의 노선을 추진했는데 이를 자주파 NL이라 불렀다.NL은 NL인데 주체 사상은 거부하는 NL이었던 것이다. 자주파 NL그룹은 주사파 NL인 구학련과 대립하고 동시에 PD 계열과도 대립했다. 나중에 이 그룹은 ‘비주사 NL’이라는 말로 더 알려진다. 이 조직은 나중에 서울대 학생운동 족보에서 ‘21세기 연합’의 뿌리가 되었는데, 진보적 사회진출을 주장하며 공장이 아니라 일반 시민단체나 사무직노조로 나가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자주파NL은 자신들의 사상과 노선을 정리한 기관지로 <현대와 혁신>을 발간하기도 했다. 비주사 NL의 주요 인물로는 김윤 외에 원희룡(전 제주지사, 국토부장관)을 꼽는다. 김윤의 1년 후배였던 진중권은 학번상 후배인데 김윤이 초등학교를 일찍 들어가는 바람에 나이는 김윤보다 많았고, 원희룡 역시 1년 후배이지만 나이로 따지면 두 달 차이밖에 안 났다고.
2.3. 노동운동과 도올 김용옥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김윤도 구로공단을 거쳐 부천과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렌즈공장, 인쇄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인천노동교육연구소에서 상담, 교육, 조직 활동을 했다.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며 조금씩 이념적 회의가 들었다. 1992년 사회주의권이 무너지자 운동의 방향과 목표를 상실한 운동권 집단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고, 혼란 속에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김윤은 1994년 무렵, 도올 김용옥의 <도올서원>에 찾아가 제1기 제자가 되었다.2.4. 김우중과의 만남
1992년 결혼한 뒤, 김윤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번역 일을 해서 아이들의 분유값을 벌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니 생계가 어려웠다. 그때 마침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경영’을 내걸고 인재들을 찾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 운동권 출신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련 해체 이후 방황하고 있던 운동권 출신들 100여명이 대거 대우로 몰렸다. 김윤은 1995년 10월 힐튼호텔 지하 중식당에서 김우중과의 짧은 만남을 나눈 뒤로 운동권 전사에서 세계경영의 첨병으로 변신했다. 김윤은 이 순간을 나중에 “낡은 학생운동의 틀에 갇혀 있었더라면 만날 수 없었던 세계를 만났다”고 회고했다. 대우입사 당시 대우가 좋았다. 김우중 회장은 운동권 경력도 ‘경력’으로 인정, 신입사원이 아니라 고참 대리로 입사하도록 배려했다. 김윤은 대우의 ‘세계경영’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꼈다. 인사와 조직의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윤은 대우자동차 부문 김태구 회장 앞에서 자신의 전략과 대안을 브리핑했다. 새벽 6시 단독면담 자리였다. 이 단발 브리핑으로 대우자동차 세계경영기획단장이 되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대우는 직격탄을 맞고 쓰러졌다. 김윤은 우크라이나 합작법인 Autozaz-Daewoo의 경영관리를 맡고 있었지만, 결국 기회의 땅 우크라이나를 뒤로 하고 눈물의 귀국길에 오른다.3.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3.1. 전진코리아
2007년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 새로운 길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전진코리아>를 창립해 ‘정치혁명을 위한 제3당 창당’에 도전한다. 출범 당시 언론은 전진코리아를 ‘중도개혁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386세대 전문가 중심모임’으로 소개했다. 전진코리아는 ‘제3정치세력’을 예고하는 최초의 움직임이었지만, 유력인사들 중에는 유일하게 손학규 경기도지사만 참여했다. 특히 학생운동 시절부터 오래된 후배였던 원희룡의 참여가 불발로 끝나자, 전진코리아는 1년여 만에 실패한다.3.2. 대통합민주신당 입당
전진코리아의 유일한 거물, 손학규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하자 김윤도 같이 입당한다. 하지만, 당시 당내경선에서 손학규는 정동영에게 패한다. 뒤이은 본선에서 정동영은 이명박에게 500만 표 이상의 큰 차이로 대패했고, 대통합민주신당은 손학규로 간판을 바꾸고 2008년 총선을 치른다. 이때 김윤도 출마를 결심한다.3.3.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초구 을 출마
스스로 험지 출마를 자청해 서초구 을 지역에 출마했다. 서초구는 강남3구에 속한 곳이라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패배는 예견된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 상대가 고승덕 후보였다. 여기에 민선 1,2,3기 서초구청장을 지냈던 조남호 후보까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낙선하면 해당지역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김윤은 낙선 후에도 거의 4년 동안 서초을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지역위원장은 자금과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자리라 출혈이 컸다.
3.4. 민주당 탈당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친노세력이 민주당 외부에 혁신과 통합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민주당과 당대당 통합을 요구했다. 김윤은 이들과의 통합에 반대한다. 386세대의 뿌리 깊은 패권주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손학규 대표는 물러나고, 이어 한명숙 체제가 들어서자 4년간 피와 땀을 쏟아 부은 민주당 서초을 지역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고 “친노세력과 낡은 386세대 정치인들이 중심이 된 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의 경험과 나만 옳다는 교만으로 똘똘 뭉쳐 시대에 역행하는 패권세력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탈당한다.3.5. 청년당 창당
386세대 중심으로 변모한 민주당 탈당 이후, 평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청년리더십아카데미 강사로 나가 청년들과 새정치 구상을 얘기하며 ‘청년당’ 창당을 제안한다. 결국 한국 정당사상 최초로 청년당이 탄생했다. 2012년 총선에 청년당 이름으로 지역구 3명, 비례 4명이 출마했지만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다.3.6. 법륜과 첫 인연
김윤과 안철수의 인연은 법륜스님에서 비롯되었다. 20대 시절에 이미 법륜스님을 잘 알고 있던 김윤에게 어느 날 법륜스님이 ‘안철수가 누구냐?’ 고 물었다. 젊은 청년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돌려보니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아무래도 안철수가 태풍의 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시작한 것이 청춘 콘서트다. 이후 법륜스님이 좌장 역할을 하며 김종인 윤여진 최상룡 등의 인사들을 만났고, 이 모임이 최초의 안철수 팀이 된다.3.7. 안철수 진심캠프 합류
2012년 9월 안철수가 대선 출마선언을 하고 ‘진심캠프’를 꾸리자 미래기획위원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안철수가 야권단일화 프레임 속에서 대선승리의 꿈을 접고 새정치추진위원회를 결성해서 신당 창당을 추진하지만, 이게 여의치 않자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합당을 선택한다. 이때 안철수는 김윤에게 <지방자치단체장 자격심사위원>을 맡겼는데, 내부 공천과정에 실망한 그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새정치민주연합을 또다시 탈당한다.3.8. 박근혜 탄핵과정에서의 역할
2016년 가을 박근혜 탄핵 국면 당시 김윤은 국민의당 전략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탄핵 초기 국면 당시에는 탄핵론이 명확하지 않았다. '탄핵을 걸 것인가? 말 것인가? 가두로 나갈 거냐 말 거냐?'를 두고 논쟁이 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는 문재인 민주당 대표도 신중론을 펴고 있을 국면이었다. 이 때 당시 국회의원, 고위당직자 전체회의를 통해 김윤은 전략위원장으로서 대통령 탄핵을 공식결의하자고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3.9.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국민의힘에서 서울 동대문구 갑에 출마를 신청했으나 컷오프됐으나 호남 출신인 점을 고려해 당으로부터 호남 지역에 전략공천됐는데 하필이면 공천을 받은 지역이 보수정당의 무덤인 광주광역시 서구 을이다.[4]4. 방송 활동
2020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코너인 '해뜰날클럽'[5]에 약 1년 6개월 이상 고정 출연했다.2022년 4월 22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에 따라 4월 2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뉴스공장에서 하차했다.
5. 사건사고 및 논란
5.1. ' 좀비 대깨문' 발언 논란
2020년 11월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해뜰날클럽' 코너에 출연해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관련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좀비 대깨문들이 득달같이 달라붙어서···"라고 발언해 논란이 되었다.
결국 뉴스공장이 방심위로부터 '권고' 징계를 받았다.
5.2. 국힘 걸레 발언 논란
국민의당 소속 시절, 지난 20대 대선 기간 동안 윤석열-안철수 간 단일화 협상이 순탄치 않자 자신의 페북에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 국민의힘은 고쳐 쓸 수 없다. 청산 대상 이라고 비난을 한 적이 있다. 같은 날 더 나쁜 놈을 먼저 자빠뜨려야 한다. 적폐교체 필요 없다. 국민의힘 때려잡자! 라고 추가타도 날렸다.그런데 합당 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당 최고위원으로 김윤 전 국민의당 서울시당위원장을 추천하면서 김윤의 걸레 발언이 다시 논란이 되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국민의힘과의 합당 과정에서 최고위원, 대변인 등 당 주요 직책에 국민의당 몫 인사 배정을 약속 받은 바 있다. 그래서 안철수가 주요 자리에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을 추천했으나, 이 중에서 국민의힘에 막말을 퍼부었던 김윤이 포함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국힘은 걸레” 안철수가 최고위원 추천한 인물, 과거 발언 보니…
국민의힘 지도부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 국민의당 몫 추천 인사가 적합한지 재논의하기로 했다. 최고위원회에서 안 의원이 추천한 인사들이 부적합하다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13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 이준석 당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한기호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조만간 안 의원을 만나 국민의당 몫 추천 인사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국민의당이 추천한 몇몇 인사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게 나오면서 이같은 만남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안 의원이 최고위원 두 자리 중 한 자리에 추천한 김윤 전 국민의당 서울시당위원장의 경우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와 안 의원의 단일화 과정 등에서 나온 발언이 문제됐다고 한다. 그는 앞서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반성한다. 워낙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과 실정이 극심해 지금까지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다 우군이라고 착각했다”라며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 국민의힘은 고쳐 쓸 수 없다. 청산 대상이다”라고 했다.
또 김 전 위원장에 대해 “집권여당 최고위원에 원외 인사가 들어오는 게 맞느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또 안 의원 측이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을 추천한 데 대해서도 국민의당 몫인데 국민의힘 의원을 추천한 것은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이외에도 국민의당이 추천한 홍보본부장 1명, 당 대변인 1명, 부대변인 3명,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2명 등에서도 부적합한 인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이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최고위원 한 분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우리 먹이자는 건가’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의 명단이었다”고 말했다.
최고위는 이날 국민의당 몫 최고위원 인사 임명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추천 인사 재논의를 위해 전면 보류된 셈이다. 국민의힘 한 최고위원은 “합당 과정에서 추천 인사에 대해 임명에 적합한 인사인지 심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만, 국민의당은 추천 인사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안 의원이 만남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양당 합의 사항에서 우리가 우리 중심으로 추천하기로 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
13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 이준석 당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 한기호 사무총장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조만간 안 의원을 만나 국민의당 몫 추천 인사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당 최고위원회에서는 국민의당이 추천한 몇몇 인사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게 나오면서 이같은 만남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안 의원이 최고위원 두 자리 중 한 자리에 추천한 김윤 전 국민의당 서울시당위원장의 경우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와 안 의원의 단일화 과정 등에서 나온 발언이 문제됐다고 한다. 그는 앞서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반성한다. 워낙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과 실정이 극심해 지금까지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다 우군이라고 착각했다”라며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 국민의힘은 고쳐 쓸 수 없다. 청산 대상이다”라고 했다.
또 김 전 위원장에 대해 “집권여당 최고위원에 원외 인사가 들어오는 게 맞느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또 안 의원 측이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을 추천한 데 대해서도 국민의당 몫인데 국민의힘 의원을 추천한 것은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이외에도 국민의당이 추천한 홍보본부장 1명, 당 대변인 1명, 부대변인 3명, 여의도연구원 부원장 2명 등에서도 부적합한 인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이 대표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최고위원 한 분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우리 먹이자는 건가’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의 명단이었다”고 말했다.
최고위는 이날 국민의당 몫 최고위원 인사 임명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추천 인사 재논의를 위해 전면 보류된 셈이다. 국민의힘 한 최고위원은 “합당 과정에서 추천 인사에 대해 임명에 적합한 인사인지 심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만, 국민의당은 추천 인사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안 의원이 만남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양당 합의 사항에서 우리가 우리 중심으로 추천하기로 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
안철수 의원이 추천한 국민의당 인사 중 당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곤란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그 중 국힘은 걸레 발언을 한 김윤이 임팩트가 제일 커서 이번 인사 논란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13일에 국힘 지도부는 이러한 인사 추천에 난색을 표하며 재고해 달라는 뜻을 전달하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3일 기자회견 중 안철수 의원이 추천한 명단 중 부적절한 사람이 있다며 당 최고위원이 명단을 보더니 '이거 우리 먹이는 거지?'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 중 우리 당에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비난을 퍼부은 사람도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실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김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4일 안철수 측은 '니편 내편이 어디 있냐'며 재고 요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국당 측에서는 이번 인사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6.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서초 을 |
[[통합민주당(2008년)| |
12,685 (15.85%) | 낙선 (3위) | |
2016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동대문 갑 |
[[국민의당(2016년)| |
14,674 (15.79%) | ||
2020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국민의당(2020년)| |
1,896,719 (6.79%) | 낙선 (8번) | |
2024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 광주 서 을 |
|
6,360 (7.82%) | 낙선 (3위) |
역대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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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총선 ( 서울 서초구 을) | 20대 총선 ( 서울 동대문구 갑) | }}}}}}}}} |
7.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대통합민주신당| |
2007 - 2008 |
창당 정계 입문 |
[[통합민주당(2008년)| |
2008 | 합당[6] |
[[민주당(2008년)| |
2008 - 2011 | 당명 변경 |
[[민주통합당| |
2011 - 2012 | 합당[7]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2 | 탈당[8] |
[[청년당|]] |
2012 | 창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2 - 2014 | 정당 해산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4 | 창당준비위원회 |
[[새정치민주연합| |
2014 | 창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4 - 2016 | 탈당[9] |
[[국민의당(2016년)| |
2016 - 2018 | 창당 |
[[바른미래당| |
2018 - 2020 | 합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20 | 탈당[10] |
[[국민의당(2020년)| |
2020 - 2022 | 창당 |
|
2022 - 현재 | 합당 |
[1]
現 순천심산초등학교
[2]
디시인사이드의 설립자 겸 대표이사인
김유식과 공동대표였다.
[3]
“두려웠다. 총소리가 주는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4]
광주 서구 을은 17대 총선 때 선거구가 분구된 후 꾸준히
민주당계 정당 내지는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됐던 곳이다. 다만 19대 총선 때는
이정현 후보가 무려 39.7%의 득표율을 기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5]
2020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각 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의 낙선자 및 신인 예비 정치인들 5명이 모여 정치적 이슈를 토론하는 코너이다. 아직 해 뜰 날이 오지 않은 정치인들의 클럽이라는 의미로 네이밍.
[6]
민주당(2007년)에 신설 합당
[7]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
[8]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9]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10]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