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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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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극중 행적3. 평가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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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아기 때와 잠시 나온 아역 배우는 불명, 성인 때 배우 전현.[1]

2. 극중 행적

용맹함과 총명함을 두루 갖추어 아버지 견훤의 총애를 받았다. 140회에서는 경보대사로부터 총명해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 3차 대야성 전투에 참여한 걸로 시작해 전장에서도 큰형인 신검보다 엄청나게 나은 모습을 보였다.

조물성을 공략할 때 신검이 지휘했을 때에는 죽는 병사만 늘어나고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반면 금강이 지휘했을 때는 거의 함락시킬 뻔 했다.[2] 또한 고창 전투때 겨우 견훤을 피난시키고 운주성 전투 때에도 신검, 양검, 용검은 공명심 때문에 무리하다가 최필, 종훈, 훈겸 등을 잃고 크게 패배한 반면 금강은 박영규, 최승우, 김총과 함께 견훤의 병환을 걱정하여 회군을 주장하였다. 이 때문에 견훤은 후방으로 이송할 때 금강을 후계자로 확실히 정한 것이다. 신검이 싸움에 나서면 잘 나가다가 고집을 부려 실패하는 것에 비해 금강은 신중하면서도 총명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반면 견훤의 끊임없는 갈굼에 시달려온 신검은 대놓고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금강을 점점 못마땅해하며 노골적으로 차갑게 대했는데[3] 본격적으로 왕위 계승 문제가 얽히게 된 이후로는 증오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금강은 이복형들이 자신을 대놓고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우애있게 지내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계속 세월이 지나도 형들과 그들의 어머니인 박씨의 태도가 조금도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금강 역시 형들에 대한 반감을 품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본처 박씨의 등쌀에 오랜 세월 시달리다 금강을 후백제의 황제로 올려 설움을 보상받으려는 어머니 고비의 부추김까지 받으면서 신검을 제치고 견훤의 후계자가 될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는데 사료에는 최소한 지지파가 있었다는 언급이 있었으나 본작에서는 금강과 그의 지지 기반이 취약하기 짝이 없었다. 가장 큰 버팀목이자 후백제 그 자체인 아버지 견훤은 나중에 등창으로 인해 병석에 누워 앓고 있던 처지였고 견훤의 강권에 못 이겨 금강의 후원자가 된 파진찬 최승우는 본디 중도파였을 뿐더러 파벌 싸움 같은 걸 싫어해서 조정 내에 별다른 지지 기반이 없었다.[4] 신검이 군사적으로 무능하고 견훤이 죽도록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등 문제있는 행동을 많이 하긴 하지만 적장자라는 강력한 명분이 있었고 나름대로 인망도 있었기에 후백제 관료들은 대부분 신검을 따르고 있었다. 금강이 인망이 없었거나 인간성이 나빴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고 후계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드러나면서 형제들과 반목하게 됐기는 해도 그 이전까지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잘 지내려고 한 데다 견훤이 금강이 보위에 오르면 그래도 형들이니 네가 잘 챙겨주라고 부탁하자 그냥 말로만 그랬을 가능성이 있어도 그러겠노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한 점, 군사들을 닥달하거나 나무라는 모습도 없는 등 분명 인망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강점을 활용해 자기 세력을 만들어보려거나 김총, 애술 같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 한 시도는 아예 한 적이 없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도울 사람이라고는 매부인 박영규 정도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금강은 후계자가 된다는 기대감에만 들떠 후반부 그동안의 총명함을 무색하게 하는 실수를 범한다. 견훤은 자신의 사위라는 명분으로 박영규를 군부의 수장으로 세웠지만 그 이전에 신검파의 신덕이 오랜 지휘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상 군부를 통제하였으며 박영규의 말마따나 이제까지 군권은 신덕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애술, 김총 정도를 빼면 본인에게 동조하는 사람도 없는 판에 하루아침에 군권이 박영규에게 넘어 올리가 없다. 신검파의 쿠데타가 박영규의 납치와 감금에서 시작된 걸 보면 견훤과 금강은 군부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한 셈. 그리고 쿠데타 당일 금강은 내궁을 경비해야 했음에도 황제가 된다는 생각에 들떠 이나 마시고 외궁을 경비하던 상애에게 내궁까지 맡기는 실책을 저지른다.[5] 게다가 쿠데타군이 이미 전날 박영규를 잡아 가두어 군부를 장악했는데도 박영규의 안위를 알아보지도 않았다. 도성 분위기를 살피고 온 부하가 군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도성 밖 군사까지 들어온다고 보고하는 데도 비상이 걸려 그러는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무시하다가 부하의 강권에 겨우 사정을 알아보러 부장을 보냈지만 여전히 경계심은 전혀 없었다. 쿠데타 당일 금강이 보여준 행동은 평소의 신검보다도 훨씬 무능한 것이었다. 결국 신검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제대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6] 허망하게 최후를 맞게 된다. 대본에서는 생포되어 신검 앞에 끌려간 자리에서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다가 신검에게 "금강이답지 않구나"라는 조롱섞인 소리까지 듣고 목이 잘리는데 너무 찌질하다고 여겼는지 방영분에서는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파달이 "금강 태자답지 않구나"라고 말하고 어머니 고비가 보는 앞에서 붙잡혀 신검 일행 앞으로 끌려가자 당당하게 "형님. 소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이것은 반역이옵니다!"라고 강변하고 신검도 할 말이 없는지 여기에 제대로 대꾸도 못하다가 그냥 파달에게 참수당하는 것으로 나온다.[7][8]

전장에서 화살에 눈을 맞고는[9] 화살에 꽂힌 눈알을 부모님이 주신 것이라면서 씹어먹는 < 삼국지연의>의 하후돈 짝퉁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본인이 직접 하후돈의 일화를 언급하며 먹는다. 작가 이환경이 < 삼국지>의 팬이라[10] 금강이 실명했다는 기록을 토대로 <삼국지>를 덧붙였다고 한다. 드라마 속에서 이 사건은 처음으로 전장에 나온 고려의 정윤(태자) 왕무에게 큰 인상을 남겼으며[11] 견훤에게는 그 효성에 감동하게 만드는 역할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견훤은 금강을 위로한답시고 "예전의 궁예 왕도 한 쪽 눈 없이 왕 노릇을 잘만 했다"며 순식간에 신료들의 분위기를 갑분싸로 만든다.[12] 듣기에 따라서는 금강이 나중에 나라를 다스릴 거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문제 발언이었다. 그 외에 조물성 전투를 다룬 145~146화에서 역병에 걸렸을 때 태평과 달리 끈질기게 살아남았다.[13]

3. 평가

장수로서는 견훤의 아들중 누구보다 자질이 있고, 인품도 넘치면 넘쳤지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유능함을 드러내지 못한 인물이다. 금강의 무인으로서 재능은 누가 봐도 형제들보다 출중했고, 아버지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으며 성격도 나쁘지않아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그러나 정치적 감각이 무능을 넘어 아예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서, 대다수 신료들과 무장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형제 간 우애도 점점 좋지 않은 상황에서 적장자라는 명분을 가진 형에 맞서기 위해선, 무장과 중신들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할 정치적 역량이나 인망이 더 중요했는데 이 점에서 금강은 한참 부족했다.

비록 신검이 장자이고 정통성 면에서 우위에 있기에 신료들을 포섭하기가 쉬웠지만, 유능한 무인이라는 강점과 신검이 저지른 수많은 실책을 생각해보면, 금강이 정치적 입지에 조금만 신경 썼다면 설사 결과는 같더라도 신검의 본대와 싸워보기도 전에 그리 쉽게 제압 당하여 죽지는 않았을 것이며 아예 결과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지방 군대는 당장 어쩌진 못해도 금강은 최소한 황도와 그 주변 군권은 확실히 틀어 쥐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황도는 고사하고 황궁 수문장 상애부터가 신검의 사람이였다. 군부 내 인맥 조차 매부 박영규와 청년 시절부터 함께한 부장 몇 명이 전부였다. 이미 한 줌 밖에 안되는 세력은 신검군 본대와 싸우기도 전에 상애가 이끈 신검파 황군과의 전투 한 번으로 와해 되었다. 게다가 금강은 군권 장악에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박영규가 신덕이 군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반대로 우호적인 군사 조직이 없다고 우려를 표했음에도, 금강은 이를 조금도 걱정하지 안았다.

신검이 군인으로서도 정치가로서도 아버지의 자질을 어정쩡하게 물려받았다면, 금강은 무인으로서의 자질은 제대로 물려받았지만 정치적 감각은 전혀 물려받지 못했다. 전장에서 싸우는 건 잘 했으나 정치적 감각이 너무 없는 나머지 맏이가 아닌 아들이 권력을 성공적으로 이양받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입지가 더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신검은 견훤에게 계속 꾸중을 받는 와중에도 왕후 박씨를 비롯해 후백제의 개국공신이자 관료들 중 서열 1위이며 견훤의 의제이기까지 한 능환과 작은아버지 능애가 열심히 변호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또한 애술, 김총, 신덕 같은 군부 실세들과 어울리는 장면도 여러 번 있다. 반면에 금강은 다른 누군가가 그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 물론 신검에 비하면 실수를 하거나 못미더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기는 했으나, 능환이나 능애 등 신검파 관료들이 신검이 후계자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할 때 견훤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가 그를 반박하는 장면은 전혀 없다. 이런 것은 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신검은 견훤의 명령에 따라 독자적인 지휘권을 받은 상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는 장면이 나오는 반면 금강은 견훤을 따라 종군하는 장면만 나올 뿐 독자적으로 군을 지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즉 일반 지휘관들에게 신검은 능력은 신통치 못해도 엄연한 총사령관으로서 존재감이 있었던 반면, 금강은 총사령관인 견훤을 따라온 태자 정도에 불과했다.

군부 인사들 가운데 확고한 친신검파인 신덕 같은 인물들이야 무리더라도 최소한 김총, 애술처럼 반역에 합류하지 않고 금강과 박영규와 궤를 같이할 사람들은 포섭하려는 시도라도 했어야 하는데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은 반역에 합류하지 않아 구금되었다가 견훤도 폐위되고 금강도 죽은 상황이라 신검에게 순순히 협력했는데[14], 금강이 이들을 포섭하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기울였다면 동조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더군다나 이 둘은 군부 내에서 나름대로 인망이 있었기에, 금강을 지지했다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일례로 신검이 애술과 신덕 등 후백제 군부의 핵심 장수들과 편을 나눠 격구 시합을 하는 씬을 보면 설명에는 신검이 연이은 전투에서의 실패와 그로 인해 계속 되는 견훤의 질책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격구를 통해 해소하는 중이라고만 했지만, 한편으로는 후백제의 후계 경쟁에서 신검의 정치적 입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는데 당시 정권의 핵심인 군부의 실세 장수들과의 격구를 통해 친목을 다지는 것은 물론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그야말로 내부 정치의 끝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직한 무인인 금강은 신검의 이런 행동이 뭘 뜻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금강의 어머니인 고비마저 신검이 할 일이 없어 격구나 즐긴다고 비웃기만 했다.

아무리 아버지인 견훤이 밀어주더라도 나라는 결코 왕 혼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신료들의 지지는 필수적인 것인데 금강은 정통성에서 한참 부족한 탓에 신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설상가상 주변에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 잡아줄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 견훤은 금강에게 제대로 된 지지세력도 만들어주지 않고 무조건 총애하기만 했으며, 어머니 고비는 옥좌에 대한 욕심과 신검에 대한 미움으로 아들을 부추기기만 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정치적 입지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아버지가 황제 자리 물려주기만 하면, 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신검의 반격으로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물론 이 모든 게 금강 만의 잘못은 아니고 변명의 여지도 있다. 일단 정치력 문제가 계속 언급되긴 하나 사실 금강은 견훤에게 정치력 같은 걸 배운 적이 아예 없다. 앞서 신검과의 후계 다툼 이야기가 계속 나오지만 정작 금강이 정식으로 후계 구도에 올려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후계자의 자질을 놓고 안 좋은 방향으로나마 평가받아 온 것은 적장자인 신검 뿐이었다.[15] 그리고 견훤은 견훤의 명령만 내려지면 천하가 벌벌떤다거나 일리천 전투에서도 후백제 군이 전의를 상실하게 할 정도로 후백제 그 자체인 사람이라 아버지인 견훤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으며 군권과 권력은 표면적으로나마 박영규와 최승우에게 넘어갔고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는 복종하니 안심하고 경계를 푸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기다 금강 본인이 최승우에게 항변했다시피 뛰어난 금강의 공적과 효심, 인덕 등 모든 것이 신검보다 뛰어난데 비해 신검은 큰 공적은 고사하고 몇 번 사고나 치며 결정적으로 아버지인 견훤이 죽도록 의도적으로 지원을 오지도 않은 적이 있으니 본인의 입지가 탄탄하다 생각했어도 큰 무리는 없다.[16]

결국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견훤이라고 할 수 있다. 견훤이 금강을 총애 했던 것과는 별개로, 정작 금강은 정치적 커리어를 쌓거나 많은 수하를 부린 적도 없다. 금강을 후계자로 만들고 싶었다면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놓든가, 권력 누수가 발생하기 이전에 숙청을 감행하여 아예 반대파의 기를 확 꺾어놓든가 해야 했다. 하지만 견훤은 차일피일 후계자를 정하는걸 미루기만 할 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신검의 실책이 큰 벽진군 전투, 신검이 사실상 아버지를 죽게 방치한 고창 전투 등에서의 책임을 이유로 신검과 그들을 보좌한 장수들의 기를 꺾거나 숙청을 시킬 수도 있었으나 그래도 자식이라는 이유로 그저 면박만 줄 뿐 어떠한 책임도 지우지 않았다. 이렇게 신검의 지지 세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기회를 계속 주다 보니, 오히려 신검 지지 세력은 능환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된다.

4. 여담


[1] 큰형인 신검 역의 배우 이광기보다 1살 많다. [2] 다만 운이 없게도 난전 중에 한쪽 눈을 잃었고 그 바람에 공략에 실패한다. [3] 형들과 같이 나간 조물성 전투에서 금강이 선봉에 서겠다고 하자 신검은 이를 반대하고 예비대로 남겼다가 자신과 형제들이 지고나자 패배하면 군령을 적용하겠다는 말과 함께 마지못해 맡긴다. 눈을 잃고 돌아온 금강을 보고도 '네가 실수해서 다친 것 때문에 내가 아버지에게 질책당하게 생겼구나'라며 못마땅한 기색만 드러냈다. 문제는 견훤이 정말로 신검이 예상한 반응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4] 신검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얼마 전에 최승우는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여 금강을 찾아가 후계자 자리를 포기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강은 그렇게 되면 자신은 형들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라 장담했기 때문에 거절하였다. [5] 실제로 외궁의 경비를 담당하란 금강의 명을 받은 상애는 옳다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풋내기 같으니 어찌 저런 주제에 옥좌를 탐하냐"며 속으로 비웃으면서 혀를 찬다. [6] 당장 신검군을 상대하기도 전에 상애가 이끄는 황군과의 전투에서 대부분의 군사를 잃고 도망쳐야 했다. [7] 사실 금강은 일찍부터 형제들과 잘 지내려고 엄청 노력했으나 신검 형제가 무턱대고 금강을 증오하며 미워했을 뿐 제대로 된 동생 대접은 단 한번도 해준 적이 없었고 어머니 고비도 왕후 박씨에게 온갖 협박과 수모를 받으며 살았기에, 다른 건 몰라도 형제 관계가 파탄난 건 전적으로 신검 형제와 왕후 박씨의 책임이지 금강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명분도 없고 실적도 없는 신검이 황제의 자리에 눈이 뒤집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니 충분히 억울할만 하다. [8] 애초에 신검 형제의 반란은 명분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능환을 비롯한 일부 신료들의 꼬드김에 의해 억지 명분을 내세운것이다. [9] 연출에 차이가 있다면 궁예는 왼쪽을 상실한 것으로 만들었고 금강은 오른쪽 눈으로 연출했다는거다. [10] 이 장면은 방영 직후에 큰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 삼국지연의>를 흉내냈다는 것도 그렇지만(< 삼국지연의>는 수백 년 뒤 명나라 시절에 나왔다.) 지상파의 드라마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고어한 연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뽑혀나온 눈알을 (물론 찹쌀떡으로 만든 소품이지만) 모자이크 처리도 안 하고 대놓고 내보냈으니 한마디로 무리수. 그나마 이후 같은 작가가 집필한 < 연개소문>에서는 이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현재는 왕건 드라마도 케이블 재방영시 눈알은 모자이크에 먹는 부분을 삭제하고 있다. 그러나 KBS Drama Classic 유튜브 채널 스트리밍에서는 그대로 내보낸다. [11] 왕무뿐만이 아니라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박술희나 박수문 형제 같은 내로라하는 장수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왕건 역시 이 일을 듣고 감탄했는지 나중에 금강이 사신으로 찾아오자 이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12] 하지만 동시에 그 궁예의 말로를 보자면 복선이기도 하다. [13] 후백제의 의원 훈겸이 어느 날 아침 늪지대에서 지렁이를 캐고 있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에게 그 괴질에는 열을 내리는 지렁이가 좋다는 말을 듣고 금강에게 이를 처방했는데 과연 효험이 있었다. 문제의 그 노인은 훈겸이 돌아보자 갑자기 사라졌는데 이에 견훤은 조상신들이 내려온 것이라며 탄복하였다. 이 태몽은 고려에도 알려져서 고창 전투에 참여한 고려군은 거듭된 패배로 가라앉은 사기도 끌어올릴 겸해서 강에 소금을 뿌리는 의식을 치렀다. 왕건은 그 사람은 용에 비유되어야 할 사람인데 지렁이가 뭐냐고 마뜩찮아 했지만 군심이 중요해서 제지하진 않았다. [14] 김총 같은 경우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혁명은 당연하다. 금강이 너무했다." 라는 논지의 말(다만 금강이 너무했다는 것이 자신에게 무심했다는 말인지, 장자도 아니면서 왕위를 노렸다는 말인지는 불분명하다)을 내뱉으며 그야말로 순순히 따랐으며, 애술은 잠시 망설였으나 신검으로부터 "고려를 격파하고 유금필도 잡고 해야 하지 않은가" 라는 한 마디에 바로 넘어가 버렸다. [15] 금강이 후계자로 정식으로 논의되기 시작한건 운주성 전투 이후부터다. 이전부터 신검과 자주 비교되어 오긴 했지만 정식으로 후계 구도에 놓고 후계자 교육을 시키거나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 전투에 내보내는 등의 모습은 없었다. [16] 다만 작중 금강이 보여준 모습은 자신의 입지가 탄탄하다고 오판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런 개념이 없는 수준이다. 입지고 자시고 그냥 황제 자리는 아버지가 물려주면 땡이고 신하들은 당연히 그에 복종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17] 차이점은 하륜은 최영의 죽음에 이바지를 한 반면 조준은 비록 하륜으로 인해 뒷전으로 완전히 밀려났으나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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