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2 21:37:35

귀인 권씨(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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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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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성종의 후궁
귀인 권씨 | 貴人 權氏
출생 1471년
사망 1500년
(향년 30세)
재위기간 조선 숙의
1480년 3월 9일 ~ 1495년 1월 29일 이후
조선 귀인
1495년 1월 29일 이후 ~ 1500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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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본관 안동 권씨 추밀공파
부모 부친 - 권수(權壽)
모친 - 청주 한씨 한가구(韓可久)의 딸
형제자매 1남 2녀 중 막내
배우자 성종
자녀 슬하 1남
장남 - 전성군(全城君, 1490 ~ 1505)
봉작 숙의(淑儀) → 귀인(貴人)
}}}}}}}}}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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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성종의 후궁. 아버지는 금성 현령을 지낸 권수(權壽)이며, 어머니는 의영고 사를 지낸 한가구(韓可久)의 딸이다.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오빠는 권주(權輳)이며, 언니는 정수의(丁守義)의 처이다.[1]

슬하에 전성군을 두었는데, 성종의 서10남이 된다.

2. 생애

1479년(성종 10) 성종이 예조에 전교하여 숙의의 예로 맞이하였다가 이듬해 1월에 정식으로 봉작하였다.[2] 이때 권씨의 아버지를 '고(故)'라고 칭하는데 아버지가 일찍 죽었거나 권씨가 후궁으로 들어간 뒤에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권씨는 성종 연간에는 숙의로 있었고, 성종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귀인(貴人)으로 품계가 올랐다.

[1] 권주는 1480년(성종 11) 사마시에 합격하고, 서부 참봉에 제수되었다. 동생이 후궁이 된 덕분이었는데 이를 부끄럽게 여겨 출사하지 않았다. 1491년(성종22) 생활이 곤궁하여 관직을 맡았고, 나중에 중종의 원종공신이 된다. [2] 성종실록 113권, 성종 11년 1월 19일 경자 3번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