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8 14:15:46

공자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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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한국어) : 孔子平和賞
중국어 : 孔子和平獎(공자화평장)
영어 : Confucius Peace Prize

1. 개요2. 상세3. 역대 수상자

1. 개요

공자평화상은 2010년 중국의 중국국제평화연구센터라는 단체가 만든 천안문 6.4 항쟁과 관련된 민주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가 옥중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이러한 노벨평화상에 맞붙기 위해 만든 상이다. 그 무모함과 정치적 목적에 대한 비난으로 1년만에 폐지되었다는 설이 돌았으나 # 곧 부활해 2017년까지 시상했다. 2018년에 소리 소문없이 중국국제평화연구센터를 해산하며 폐지되어버렸다.

2. 상세

중국국제평화연구센터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이 만든 상으로써, 블라디미르 푸틴을 공자평화상 제2 회 수상자로 발표하자 중국 정부가 허가 되지 않은 상이라고 폐지를 해버리기도 하였다. 당연하게도 푸틴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중국에 유학 중이던 러시아인 여자 유학생이 대리 수상하였다.

그러자 이 단체는 홍콩으로 이전하여 다시 상을 주었다고 한다. 수상자가 기이한 것으로 미뤄보아 중국 정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

황당하게도 그 동안 공자평화상 수상자들이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몇몇은 본인들도 자신이 공자평화상을 받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다. 2015년 제6 회 공자평화상에서는 빌 게이츠와 중국도교협회, 박근혜 대통령 등의 쟁쟁한 후보들이 경합한 결과 짐바브웨의 대통령인 로버트 무가베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

충격적이게도 수상자인 로버트 무가베는 그 유명한 짐바브웨 달러의 슈퍼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악랄한 독재자로 알려져있다. 수상된 이유는 기묘하게도 짐바브웨의 경제와 정치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나라의 평화와 범아프리카주의와 아프리카의 독립을 지지하며 아프리카 문화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금은 50만 위안[1]으로 노벨상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3. 역대 수상자

횟수
(년도)
수상자 직위 수상 여부
1회
(2010)
롄잔 대만 부총통 수상 거부. 정체 불명의 여자 아이가 대리 수상.
2회
(2011)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2] 수상 거부. 통합 러시아당은 논평으로 무가치하다고 일축.
벨라루스 출신 여자 유학생이 대리 수상.
3회
(2012)
코피 아난,
위안롱핑
유엔 사무총장
농학자
둘 다 불참.
4회
(2013)
이쳉 중국불교협회장 역대 수상자 중 유일하게 수상 당사자가 참석했다.
5회
(2014)
피델 카스트로[3]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불참[4] 쿠바 유학생을 통해 상금을 전달.
6회
(2015)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수상 당시) 수상 거부
7회
(2016)
선량량(申亮亮)[A]
양슈펑(杨树朋)[A]
리레이(李磊)[A]
중국 인민해방군 유가족이 수상
8회
(2017)
훈 센 현(現) 캄보디아 총리 수상 거부

롄잔(連戰) 전 대만 부총통이 재직기간 중 양안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초대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롄잔은 이를 무시하였다. 시상식에는 웬 6살 먹은 여자아이가 나와서 트로피를 받아갔는데, 이 아이의 정체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으며, 취재진의 질문도 거부하였다.[8]

파일:attachment/공자평화상/Confucius Peace Prize.jpg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류사오보와 관련된 200명이 넘는 사람이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는데 노벨상을 대신 받는걸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젠 점점 무관심으로 밀려나있는 서울평화상을 같이 견주는 의견도 있으나 적어도, 서울평화상은 공자평화상보다 훨씬 낫긴 했다. 문제는 서울평화상을 시상하는 이들에 대한 논란이 있고(서울평화상 항목 참고할 것.) 2018년에는 나렌드라 모디에게 수상하면서 공자평화상 따라하느냐는 비아냥을 받고 있지만.


[1] 2010년 환율 기준 약 5700만원. [2] 현재는 다시 대통령이다. 항목 참조 [3] 참고로 이때 황당하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상 대상 후보 중 하나였다고 한다. 사실 저 시점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외교적으로 친중을 지향하고 있었고 중국과의 사드 갈등도 벌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박근혜가 후보자가 된 것이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4] 이 경우 사실상 수상을 수락한 것과 다름없다. [A] 이들 3명은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의 군인들로, 아프리카 말리와 남수단에서 유엔 평화유지군(PKO)활동 중 현지에서 사망하였다. [A] [A] [8] 중국국제평화연구센터에 소속된 관계자의 자녀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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