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04:28:32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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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Manic Street Preachers
파일:Manic Street Preachers.jpg
<colbgcolor=#000><colcolor=#fff>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결성 1986년
영국 웨일스 카이어필리 블랙우드
데뷔 1988년 6월
싱글 <Suicide Alley>
현재 멤버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 (보컬, 기타)
션 무어 (드럼)
니키 와이어 (베이스)
이전 멤버 마일스 "플리커" 우드워드 (베이스)
리치 제임스 (리듬 기타)
장르 얼터너티브 록, 팝 록, 브릿팝, 하드 록, 펑크 록, 포스트 펑크
레이블 컬럼비아 레코드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평가3. 멤버4. 사건사고5. 음반 목록6. 내한공연

[clearfix]

1. 개요

영국 웨일스 출신 록 밴드. 줄여서 MSP나 매닉스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후자쪽이 보편화 되어 있는듯. 밴드명의 유래는 불명확하지만 브래드필드의 버스킹을 구경하던 누군가가 그에게 '넌 무슨 미치광이 길거리 목사Manic Street Preacher 같은거냐?' 라고 말한거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가장 유명하다. NME 어워즈에서 제임스가 밝히기를 '카디프에서 굴러다닐 때' 이름이 지어졌다.

80년대 중반 섹스 피스톨즈를 좋아했던 4명의 노동 계급 젊은이들이 카디프에서 모여서 결성했으며, 초기엔 하드 록에 가까운 강성 록을 선보이다 점점 주류 친화적인 사운드로 변모해 갔다. 정치적인 가사와 강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밴드.

2. 평가

초창기에는 매카시의 반골적인 가사와 건즈 앤 로지스의 말초적인 메탈 사운드를 섞으면서 더 클래시처럼 전통적인 로큰롤 범주 내에서의 펑크적인 시도를 하는 스타일이 주를 이루었다. 한마디로 당시의 음악스타일을 종합하자면 더 클래시 + 건즈 앤 로지스 + 매카시 의 합집합.

리치 제임스의 실종 이후 발매된 Everything Must Go부터는 키보디스트 니콜라스 네이스미스[1]의 영향과 러시, 그것도 뉴웨이브 시절의 러시 빠돌이가 된 니키 와이어 덕분에 서정적인 멜로디와 비장미 넘치는 비트가 조화된 브릿팝 스타일의 곡들이 주를 이루었다. 트윈 기타 포지션의 붕괴와 주제의 변화로 드라마틱한 전개와 기타 솔로가 사라져 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Send Away The Tigers에서 스웨디시 팝의 변용을 통해 생명연장을 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멤버들 모두가 상당히 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뛰어난 편이다. 4집 가사 대부분이 실존 미술가, 시인, 건축가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싱글, EP, 앨범, 라이브 DVD 등 모든 결과물에 유명 인사들의 명언을 첨부한다. (심지어 세트리스트가 적힌 종이에도 항상 인용구가 다르다. 그 모든 책을 다 봤다는 소리?).

오아시스가 영국 노동자의 그것과 같은 비타협적인 태도로 구설수에 휘말린다면 이들은 사회비판적인 발언으로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실제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와 작사가이자 베이시스트 니키 와이어 공산주의자로 유명하다.

광적인 팬들이 많다. 라이브도 상당히 열정적이라는 평. 유명한 공연으로 1999년 12월 31일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새천년 기념 공연은 매닉스 최고의 공연으로 꼽으며 영미권 밴드 처음으로 쿠바에서 라이브를[2] 하기도 했다.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 출신으로 향토의식이 강해 4집을 발매했을 때는 웨일즈어로 프로모션을 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웨일즈를 빛낸 100인의 위인 100 Welsh Heroes에 제임스가 17위, 리치가 25위에 선정되었다. 이 설문에 과거 인물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봤을때 이들의 위치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해볼수 있는 부분.

배트맨의 주인공 크리스찬 베일이 이들의 팬이다. 같은 웨일즈 출신[3] 이라 잘 아는듯.[4] 9집에서 오프닝 트랙에 그의 대사를 도입부에 사용하였다.[5]

밴드 활동을 휴지하던 2012년 말에 뜬금없이 WWE 소속 레슬러 웨이드 바렛의 테마곡을 만들어준다는 소문이 돌고있다. 링크 사실 매닉스는 레슬링을 좋아한다. 리치 제임스의 유고 작사 노트를 기반으로 만든 앨범인 Journal For Plague Lovers 의 수록곡 <Me and Stephen Hawking>에서는 영국 레슬러 자이언트 헤이스택스를 인용한 적도 있다.

3. 멤버

4. 사건사고

사실 섹스 피스톨즈처럼 되고 싶었다는 그들의 선언처럼, 그들의 초창기 활동은 센세이션으로 가득차 있었다. 초창기에는 " 건즈 앤 로지스 판매고 넘으면 해체한다~"라는 충격적인 발언도 했으며 (앨범 한 장만 내고 해체된 섹스 피스톨즈의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이라 할수 있다.) 당시 영국에서는 노골적인 동성애 컨셉을 선보인 스웨이드와 한 묶음으로 센세이션 폭탄으로 여겨졌다.[6] 다음은 그 사건들의 나열.
  • 4 Real 사건
    1991년 영국 음악 잡지인 NME가 밴드와 인터뷰를 하던 도중, "당신들의 펑크 정신이 진실된 거냐" 취지의 질문을 던졌는데, 이에 빡돈 리치 제임스가 면도칼로 자기 팔에 '4 Real'(우린 진짜다) 라는 문구를 새겨 세인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그들은 소니 뮤직과 계약하게 된다. 계약후 내놓은 첫 앨범 Generation Terrorist가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진실성을 입증 받았으니 잘 된 듯. 그 이후로도 그 인터뷰를 했던 스티브 라막과는 상호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Motorcycle Emptiness MV 사건
    이들의 대표 곡인 Motorcycle Emptiness는 일본을 배경으로 PV가 제작되었다. 하지만 촬영허가를 얻지 못해 그냥 가서 몰래 찍었다고 한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멤버들 표정이 왠지 굳어있고 노래를 부르는 데도 뭔가 뻥긋뻥긋 말하는게 보인다.
  • 마이클 스타이프 디스 사건
    니키 와이어가 80~90년대 명성을 쌓은 컬리지 록 밴드 R.E.M.의 보컬 마이클 스타이프를 빗대 1992년 공연에서 '요즘 같은 좋은 시절에 마이클 스타이프도 프레디 머큐리처럼 가버리라고 기도하자'라는 발언을 하였다. 문제는 마이클 스타이프는 당시 게이가 아닌가 루머에 시달렸던 인물. 훗날 커밍아웃을 하였지만 당시에는 딱히 시인하지 않았으므로 좀 무례한 발언이다.
    훗날 인터뷰에서 니키 와이어는 '앞뒤가 안맞고 멍청한 짓이었지만 자주 하던 특이한 비유였으며 논쟁의 끝에는 결론은 없고 논란이 될만한 거리만 남는 것'이라며 해명하였다.
  • IRA 코스프레 사건
    3집을 발매하고 으레 그렇듯이 매닉스도 마찬가지로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영국 TV 프로그램에 하나하나 출연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당시 BBC의 Top of The Pops라는 음악 프로에 나오게 되었는데 무대가 공개되자 보컬 겸 기타리스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가 사고를 쳤다.
    IRA 테러리스트를 연상시키는 군복에 발라클라바를 머리에 쓰고 출연한 것. 이 때문에 BBC는 2만5천통이 넘는 시청자들의 항의전화를 받게 된다. 영국에서 꽤 민감한 소재를 건드린 셈.
  • 리치 제임스 실종 사건
    각종 센세이셔녈한 사건들과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열광적인 인기로 인해 밴드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당시 밴드는 매니저인 피터 홀이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알콜 중독에 니키 와이어는 섭식 장애, 리치 제임스는 신경 쇠약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닥이었다. 이런 피로와 분열증은 3집 The Holy Bible (무려 제목부터 성경이다. )로 나타난다. 90년대 나온 브리티쉬 록 앨범 중 가장 비타협적이고 살벌한 명반으로 대접받는 이 앨범의 가사는 온갖 살벌한 인간들( 유고 내전의 세르비아 지도자, 요크셔의 강간범[7], 리볼버 권총을 발명한 사람, 캄보디아의 학살범, 조상 위에서 뛰노는 극우 정치인들)과 자해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메세지나 사운드나 퍼포먼스나 여러모로 인상적이지만 밴드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앨범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이 디비전 이안 커티스 너바나 커트 코베인의 뒤를 잇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1995년 2월 1일,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와 리치 제임스가 3집 The Holy Bible의 미국 프로모션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로 예정되어있던 날, 리치 제임스가 런던의 호텔에서 아침 7시에 체크아웃한 뒤 영영 모습을 감춘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는 무척 커서, 미국 진출용으로 따로 믹스한 음반은 그대로 사장되어 캐나다에서만 소량으로 찍어내는데 그쳤고 (2004년에 The Holy Bible 10주년 기념반이 나오면서 빛을 보았다.) 밴드 멤버인 니키 와이어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인터뷰에서 "그가 사라지고 난 뒤, 난 멤버 이외의 어떤 친구도 원치 않게 되었다"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리치 제임스가 사라진 뒤, 2002년에 리치의 법적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내려졌지만, 리치의 가족들은 거부했다. 그러나 2008년 11월 23일, 리치 제임스는 법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태가 되었다.
    리치 제임스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나머지 멤버는 리치 제임스 몫의 로열티를 계속 신탁기금에 적립하고 있다. 밴드이기 이전에 먼저 친구였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게 멤버들의 말.
  • You Racist 사건
    웨일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제임스가 자기 앨범 홍보하러 나온 자리에서 전날 숙취가 덜깼는지 뭔가 심기가 불편했나 보다. 옆의 MC가 '웨일즈어로 피시앤칩스 말 해봐, 웨일즈어로 말 해봐, 웨일즈어로 말 해봐' 계속 쫑알대니까 팍 '시끄러 이 인종차별자야' 지르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 T In The Park 사건
    스코틀랜드에서 매해 열리는 락 페스티벌인 T In The Park에 나와서 니키 와이어의 심기가 뭔가 안좋았는지 영국 포크 아티스트 빌리 브랙은 '남의 곡좀 그만 훔치시지?', 스코틀랜드 출신 베타 밴드는 '저 멀리 텐트에 있는 네 사람이 팬의 전부'라고, 동향의 스테레오포닉스는 '기타는 이렇게 놓는거야' 라며 가열차게 깐 사건. 그 결과 매닉스는 T In The Park 페스티벌 영구 출연정지를 당했다.
  • 라디오헤드 디스 사건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대부분 밴드에게 공연시 멘트는 보통 보컬의 몫인데 이들은 밴드의 작사가이자 베이시스트 니키 와이어가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문제는 그가 하고싶은 말은 앞뒤 생각 안하고 지르는 타입이라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편. 2010년 초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에드 오브라이언이 그들의 신보 In Rainbows의 상궤를 벗어난 디지털 발매에 관해 'MP3 음원으로부터 수익을 찾을 방법을 고려해야한다..'는 인터뷰를 듣고 왠지 모르게 흥분해서 글래스고우 공연에서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CD를 사야지 말 많네 먹물 든 티 내지말고 니 잘난 기숙학교로 돌아가라' 요지의 디스를 했다. 그러나 MP3 음원의 대중화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이고 라디오헤드의 시도는 생존을 위한 혁신으로 간주해야 하지 않나 싶다. 영미권 리스너들의 반응도 그가 너무 계급적인 반응을 하였다고 열폭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영국 특유의 노동 계급의 연대의식을 자극하려 했지만 무리수였다는 것.
    그래도 최근에는 도서관 예산에 관한 개념찬 글을 올려서 이미지를 회복한 듯. 가디언지

5. 음반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음반 목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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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한공연

데뷔 초기부터 일본 공연은 빼놓지 않고 다니던 그들이라 한번쯤 한국에 들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가 끊이지 않았던 밴드였지만 이상하게 내한을 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겨왔다. 우리나라 음반산업 특성상 열정적인 관객 외에는 주목받기 힘든 앨범 판매량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마침 2011년 12월 런던 O2 공연장에서 25년간의 활동에 마무리를 짓고 3년간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은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공연하러 갈 수도 있다는 떡밥을 남겨 국내팬들에게 혹시 라디오헤드처럼 깜짝 내한을 할지 귀추가 주목되었고 결국 내한확정! 한국 더럽게 안오기로 유명했던 매닉스였던지라 펜타포트의 흥행을 책임질 밴드로 기대가 컸다.

그리고 8월 12일 헤드라이너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강풍과 폭우가 쏟아지는 불안한 상황속에 공연 시작 1시간 전 무대 뒤에 올려 놓은 베스트 앨범의 대형 포스터가 강풍에 추락하고 메인 마이크에 문제가 생겨 해결하느라 스텝들의 부산한 모습을 보여 불안감을 자아냈지만 다행히 예정시간에서 10분을 넘긴 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짧게 "안녕!"이라는 한국어로 인사를 건넨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는 최근의 조용해진 퍼포먼스에서 벗어나 무대를 연신 누비며 전성기때 특유의 외다리 연주로 관객들의 성원에 답했다. 특이하게 대부분 니키 와이어가 멘트를 맡던 다른 공연과 달리 제임스가 멘트의 대부분을 맡고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전체적으로 공연 시작 전의 악천후를 제외하면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준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내한공연 당시 세트리스트의 인용문은 The Holy Bible Journal For Plague Lovers의 커버아트를 그린 제니 사빌의 인터뷰에서 따왔다.
"The Point is that destruction is fundamental to the process; Without it, you never get anywhere interesting. But fundamental to that is knowing what you can excavate from the destruction"

- J.Saville
원문

'파괴는 결과를 위한 과정에 필수적이며 파괴 없이는 흥미로운 것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파괴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필수다'라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예술의 근본 명제를 말한 그들이 항상 가져온 자세와 연관있는 인용문이었다.


[1]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꼬박 10년간 매닉스의 모든 앨범과 투어에 참가하여 사운드의 한 축을 담당하였고 밴드의 작곡에 관여하는 모습을 Everything Live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Louder Than War 이란 제목으로 DVD를 발매하였는데 이게 피델 카스트로가 공연장을 방문하였는데 꽤 시끄러울 거라고 말하니까 "그래도 전쟁보다 시끄럽진 않겠지, 그렇지? (It cannot be louder than war, can it)" 이라고 소감을 말한 것이 제목이 되었다. 근데 또 니키 와이어 인터뷰에선 드럼소리가 전쟁보다 시끄럽다고 말했다는데 진실은... [3] 레인 오브 파이어 홍보를 위하여 출연한 미국의 토크쇼에서 매닉스의 팬이라고 인증. 하지만 베일이 태어난 곳은 웨일즈가 맞지만 어린 시절부터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면서 자랐다고 한다. 정작 웨일즈에서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고. [4] 재미있는 우연이지만 매닉스는 La Tristesse Durera (Scream to a Sigh)싱글에서 소설이 원작인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의 이름을 따 페트릭 베이트먼이란 B사이드 곡을 수록한 적이 있다. [5] NME 인터뷰 9집의 Peeled Apple의 오프닝 부분에 삽입되었으며 영화 머시니스트의 대사 중 일부라고. [6] 실제로 매닉스는 1집 시절 스웨이드의 데뷔 곡 <The Drowners>를 라이브 무대에서 자주 부르곤 했다. 2023년 현재는 두 밴드가 같이 투어도 도는 중. [7] 뻔뻔하게 연금을 달라고 주장하여 최근 영국인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