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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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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시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사르를 재현한
리인액트먼트의 사진.[1] 로가티프카를 쓰고 기병창을 잡은 울란(창기병)과 신로마 양식(Casque « à la romaine ») 투구를 쓴 흰 제복의 퀴레시어(흉갑기병)도 함께 보인다.[2] |
15세기부터 20세기[3]까지 존재했던, 기병 병과 중 하나. 대표적인 경기병이다. 헝가리에서 유래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이름의 유래에 대한 학설은 두 가지로 갈리는데, 세르비아의 гусар[4]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헝가리의 huszár[5]되었다는 두 가지로, 아래의 설명은 후자의 설을 토대로 한다.
2. 역사
2.1. '구사르'(Gusar)
중세 세르비아 왕국에는 전통 병과로써 도둑, 약탈자를 뜻하는 구사르(гусар) 경기병이 있었다. 이들은 나무방패와 금속 패딩, 창으로 무장하고 기사들을 2선에서 지원하는 경기병들이였는데, 전장에서는 주로 기사들을 지원하는 지원병으로 보조적 임무를 맡았고, 전방에서 척후 임무 및 적이 패주할 때에 추격전을 벌이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임무는 후의 후사르들이 맡은 것과 유사했다.오스만 제국이 14세기 말~15세기 초에 세르비아를 공략하면서 다수의 세르비아인 전사들이 헝가리 왕국 남부[6]로 이주해갔고, 최초의 후사르를 형성하는 인적 기반이 되었다.
2.2. 형성
헝가리 왕국에는 중세시기부터 전통적으로 오랜 경기병 전통이 있었다. 동로마 제국이 10~11세기 무렵에 이지역에서 '호사리(Chosarioi)'라는 용병 경기병들을 모집해 전장에서 활용할 정도였다. 여기에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에게 제압당하면서 많은 수의 세르비아 전사들이 헝가리로 이주했고, 이로 인해 세르비아의 병제가 헝가리로 대거 유입되면서 '후사르'라는 경기병 병과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을 조직적으로 편성한 것은 헝가리 왕국의 맹장 후녀디 야노시의 아들이자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이 되어 헝가리의 마지막 전성시대를 열었던 마차시 1세 코르비누스(Matthias 1 Corvinus)[7]로, 국왕 친위대인 '검은 군대'[8]에 주력 경기병으로 조직화, 편성한 것이다. 이들은 마챠시 1세의 정복활동 기간중 오스만 제국의 시파히과 대등한 전투력을 지녔음을 입증했다. 마차시 1세가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으로 재위하는 도중 오스트리아를 침공하고 보헤미아 일부를 통제하던 도중[9] 사망하면서 '후사르'는 동유럽 일대로 퍼져나갔다.
쉴레이만 1세에게 헝가리 왕국이 사실상 멸망하여 합스부르크 왕령 헝가리, 오스만 헝가리, 에르데이 공국으로 3분할된 후에는 합스부르크 제국 황제군의 주요 경기병 병과로 존재했으며, 오스만 제국도 일부 이들 후사르들을 활용했다.
2.2.1. 번외 - 윙드 후사르
자세한 내용은 윙드 후사르 문서 참고하십시오.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처음으로 후사르를 접한 것은 오스만 제국에 의해 북쪽으로 쫓겨온 세르비아인 용병에게서부터로 여겨진다. 마차시 1세의 '검은 군대' 에게서 강한 충격을 받은 폴란드 귀족들은 1500년대부터 세르비아인 용병들을 주축으로 하는 '후사르' 들을 다수 확보해 전장에 참여했다. 폴란드 왕국 또한 기병 전통이 상당히 강한 국가였기에 이러한 병종 도입은 어렵지 않았다. 이들 '폴란드 후사르' 들은 차츰 중무장화하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후사르들 중에서도 '폴란드 후사르' 는 경기병이 아닌 중기병에 가까운 병과로 평가되고 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전성기를 연 명군으로 본래 에르데이 공작이었던 ' 스테판 바토리'가 1570년대에 이들을 모아 조직화한 것이 그 유명한 윙드 후사르의 시작이다.
2.3.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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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왕국의 후사르 기병대 프로이센의 후사르 기병대는 검은색 옷을 입고, 해골문양이 새겨진 버즈비를 썼다.[10] 나중에 이러한 특성은 독일 제국 시대에도 유지되었으며 나치 독일의 군대와 SS에게도 계승되어 이들은 검은색 제복에 해골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거나 모자를 썼다. |
17세기까지 후사르는 합스부르크 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등 중부유럽 일대의 특산(?)병과에 가까웠다. 동유럽의 루스 차르국- 러시아 제국은 카자크라는 비슷한 경쟁 병과가 있었다보니 후사르의 숫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도중인 1703년 라코치 페렌츠 2세가 일으킨 헝가리 독립운동[11]의 여파로 헝가리인들은 유럽 각지로 흩어졌고, 이들의 병과, 즉 '후사르' 또한 유럽 각지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또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또한 국정 난맥으로 인해 붕괴되고 있었고, 다수의 탈영병이 발생했다. 이들에게 주목한 것이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이였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경기병대로써의 후사르의 가치를 인정했고, 자신의 경기병 연대로 '후사르' 들을 대거 편성하기 시작했다. 1741년 폴란드인 탈영병과 헝가리인으로 5개 연대를 편성한 것을 시작으로 1744년, 1745년 프로이센인들로 구성된 후사르 연대도 여럿 편성,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에 투입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들 후사르 연대들을 척후임무 및 적 전열의 측후방 타격에 활용했는데, 매우 활용도가 높았으며 프리드리히 대왕의 승전 중에는 이들 후사르 연대들이 가져온 첩보 및 측후방 타격에 의한 것도 여럿 있다. 때문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후사르 연대들에 대한 대접은 매우 좋아서, 헝가리의 전통 복장을 착용하는 것도 허용했으며 프로이센 왕국군의 일반적인 체벌 대상에서 후사르 연대는 제외되기도 했다.
이러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성공은 다시 유럽 각국의 프리드리히 빠(...)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이로 인해 후사르는 전 유럽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후사르의 본가인 헝가리를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 제국군과 그 후신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서도 후사르는 창기병인 갈리치아 울란, 승마보병인 용기병과 함께 기병 병과를 구성하는 주축이었다. 합동 육군 기병대에는 황립 및 왕립 후사르 연대가 다수 존재했고, 헝가리 왕국의 자체적인 지방군인 왕립 헝가리 혼베드 기병대는 전원이 헝가리 후사르였다.
2.4. 18 ~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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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대육군 후사르 |
물론 울란, 경창기병을 비롯한 창기병류와 기마 예거, 기마 샤셰르와 경용기병 등의 총기병류 역시 어엿한 경기병대였지만, 각자 특징이 뚜렷한 이들과 다르게 후사르는 세이버 한자루로만 무장하여 특색이 없었기에 전자를 창기병, 후자를 총기병으로 따로 구분한 것과 다르게 그냥 경기병으로 불렸다. 이 시기에 유럽 각국은 경기병 전부를 후사르로 전환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는 '모든 기병을 후사르로 통일시키려는' 모습까지 보여, 드라군 연대나 퀴레시어 등을 후사르 연대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기병의 위상이 보조병과로 내려앉으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중기병 병과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것을 인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나폴레옹은 동유럽에 잔존해 있던 창기병 병과를 대거 영입해 조직화했고, 이들 창기병( 울란)들을 잘 활용하면서 일시적으로 창기병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러나 범용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류는 되지 못했다.
유럽 각국이 후사르를 양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라틴 아메리카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현지에서 태어난 이들을 인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라틴 아메리카 해방운동때 이들 현지인 출신 후사르들은 대활약했다.
2.5. 20 ~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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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 후사르 기병 제복을 입은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원수 | 돌격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헝가리 후사르 기병대 |
비록 기병은 보조병과로 내려앉았으나, 사실상 경기병 그 자체였던 후사르의 위치는 굳건해 보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은 그러한 생각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참호와 철조망, 야포와 기관총으로 고착된 전선은 기병에 대한 사형선고였으며, 결국 서부전선에서는 모든 기병이 사실상 보병화되면서 후사르 또한 사라져갔다.
물론 동부전선에서는 아직 기병이 충분히 활용도가 높았고, 따라서 전후에도 동유럽 일대에서는 여전히 후사르가 활동했으나 그것도 1930년대를 전후로 종말을 맞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동적인 전선으로 인해 기병이 활동할 수 있었으나 러시아에는 후사르가 활동하는 보조, 척후 및 추격전에 있어서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카자크들이 그 위치를 차지했으며, 독일은 어디까지나 수송 업무에만 말들을 활용했다. 2차대전 중 헝가리 군 후사르 부대가 있었지만 독일이나 소련 기병부대와 마찬가지로 전투시에는 대부분 말에서 내려서 총을 쏘며 싸웠다. 또한 기병대에 전차나 중화기를 보유했다. 그나마 말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는 보병대보다 기동력이 좋았고 정예 부대였다.
후사르라는 병과는 이렇게 사라졌으나, 이름만큼은 남았다. 프랑스,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캐나다 등에서 '후사르 연대'는 기갑연대로써 존속했다. 그러나 최근의 군비 축소 경향으로 인해 이들 기갑부대들도 갈수록 축소, 소멸하면서(예를 들어, 네덜란드는 현재 기갑부대를 완전히 폐지한 상태이다. 영국도 거의 그럴 예정이다.) '후사르'라는 이름도 차츰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원조격인 헝가리에서 후사르 부대를 재창설한다고 한다.
3. 무장과 전술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존속해온 병과인만큼 무장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했다.15~17세기까지 후사르의 기본 무장은 기병도( 세이버)와 기병창( 랜스), 나무 방패였으며 가끔씩 가죽 갑옷이나 가벼운 철갑옷을 입었다. 전장에서의 주 전술은 중기병들의 돌격을 지원하는 것으로, 기동성을 살려 측면으로 돌아가 중기병의 차징에 '시간차로' '다른 각도에서' 돌격을 감행, 적군으로 하여금 중기병의 돌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였다. 물론 보조적 역할을 맡았던 후사르가 중기병의 무장과 역할까지 모두 담당하는 윙드 후사르같은 예외도 있지만.
물론 경기병답게 척후, 정보수집, 매복, 소규모 적 섬멸, 적 추격 및 전과확대와 같은 일이야말로 후사르의 본임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가 지나가면서 기병의 역할이 보조적인 임무로 축소되자 무장은 갈수록 간소해져서 세이버와 권총 두어정, 승마복 정도의 무장이 주류가 되었고, 돌격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어디까지나 전열이 흩어진 적들에게만 수행할 뿐 잘 짜여진 보병 방진에 대한 공격은 회피하곤 했다. 다른 기병종에 비해 사실상 장점이 싸고 빠르게 훈련을 마치고 충원할 수 있다는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4. 기타
헝가리에서 유래된 병과답게 후사르의 제복은 한참 후에도 헝가리식 전통 복장의 특성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17, 18세기의 후사르는 가슴에 묵직한 금색 브레이스(꼬아놓은 끈)을 수평으로 달고 금속 견장과 목칼라, 곰털 장식이 달린 철모, 한쪽 어깨에 걸치는 돌먼, 중간 길이의 '아틸라' 재킷 등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후사르의 전통적인 이미지는 무모하고, 난폭하며, 용맹하고, 술 잘마시는 등 마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전장 밖에서는 종종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난폭자들이였다.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의 유명한 후사르 부대였던 지옥불 여단의 지휘관 앙투안 샤를 루이 드 라살은 '30세가 넘도록 살아있는 후사르는 겁쟁이다' 는 말을 남겼다. 정작 라살 자신은 34세까지 살아있었으나, 1809년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 도중 바그람 전투에서 기병대를 몰아 적진으로 공격하던중 전사했다.
5. 각종 매체에서
위에서 나온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가 가진 이름값 덕분인지 창작물에서는 자주 등장하지만 등에 날개를 달고 있는 경우가 많다.카자크와는 일종의 라이벌로 취급되지만, 실제 (동유럽) 후사르와 카자크가 대치한 경우는 많지 않다. 러시아군에서도 카자크인들로 구성된 후사르를 창설하기도 했고, 적백내전당시에는 오히려 백군파 카자크와 동유럽 후사르가 동맹관계가 되어서 협력하여 싸운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 나폴레옹 전쟁이나 근대 역사물 등에서 종종 등장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77년 데뷔작, 결투자들(The Duellists)에서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후사르 기병대원 둘이 주인공들로 나온다. 그당시 후사르들에게 유행하던 한쪽으로 땋은 머리까지 고증할 정도로 비주얼 묘사에 매우 충실하다는 평.
5.1. 게임
- 도미네이션즈 - 후사르 윙이 유물로 등장한다.
- 토탈 워 시리즈
- 토탈 워: 엠파이어 - 후사르라는 이름을 가진 유닛이 몇 가지 등장하는데, 다음과 같다.
- 후사르(Hussars) - 프로이센(프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러시아, 네덜란드 연합주에서 생산 가능하다. 세이버를 사용하는 경기병으로, 일반 기병연대(Regiment of Horse)에 비해 방어력과 공격력이 낮은 대신 스테미나가 뛰어난 특성이 있다. 스태미나가 뛰어나기에 빠르게 적 대열을 우회하여 뒤를 치기에 쓸만하지만 안 그래도 기병이 약한 게임인데다, 스탯마저 낮으므로 함부로 막 쓰면 전멸해버리니 주의.
- 헝가리 후사르(Hungarian Hussars) -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 지역에서만 생산 가능. 후사르의 강화 버전으로, 스태미나도 뛰어나면서 일반 기병연대보다도 스탯이 좋다. 그래도 여전히 힘싸움에 동원하기는 모자란 스탯이므로, 일반 후사르와 같은 방식으로 운용하면 된다.
- 해골 후사르(Death's Head Hussars) - 프로이센에서 딱 한 부대만 사용할 수 있는 정예 후사르. 일반 후사르보다 스탯이 높고 특히 사기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 윙드 후사르(Winged Hussars) -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10부대 한정으로 생산가능. 다른 후사르는 검을 쓰는 경기병이지만 윙드 후사르는 창기병이며 중기병이다. 스탯이 괴물같은데, 창기병급의 돌격 보너스와 퀴레시어급의 근접공격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고, 매우 높은 사기에, 주변 아군을 고무시키는 능력도 있다. 한번의 닥돌로 적진을 찢어버릴 수 있는 존재지만, 스태미나가 모자라서 금방 지치므로 운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 토탈 워: 나폴레옹 - 여기에서도 시대의 요인으로 경기병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플레이어블 팩션 전원이 후사르라는 이름의 유닛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서도 헝가리안 후사르는 사기 소리를 듣는다. 다만 프랑스의 경우에는 밸런스의 이유에서인지 후사르를 생산하지 못한다. 특수 유닛 한카드를 생산할 수 있는것이 전부. 심지어 후사르를 양산할 수 있는 국가를 해방시켜도 후사르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
경기병 문서 참조. 날개가 달린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이는
윙드 후사르에서 따온 것이다.
후사르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은 역시 윙드 후사르인가.확장팩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서 추가된 경기병의 최종 업그레이드로 첫 등장. 번역명은 '호위 경기병' 이기 때문에 경기병 문서에 작성한다. 결정판에서는 후사르로 번역.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 유럽 국가들의 기본 중기병으로 다시 재등장. 정식 명칭대로 '후사르' 라고 나왔다. 문서 참조.
- 문명 시리즈 - 문명 3과 문명 5에서는 오스트리아, 문명 6에서는 헝가리의 고유 유닛으로 등장한다.
- 문명 3 - 기병대를 대체하는데, 문제는 본작에서 오스트리아 문명 자체가 추가되려다가 막판에 엎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처 완성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데, 후사르도 그 중에 하나. 무슨 말인고 하니, 모든 면에서 일반 기병대와 똑같다.
- 문명 5 - 기병대를 대체한다. 시야와 행동력이 1 더 높고, 측면 공격 시 10%가 아닌 15%의 전투력 보너스를 받는다. 측면 공격은 적 유닛을 공격할 때 그 유닛과 인접한 아군 유닛이 있을 경우 받는 보너스인데, 아군이 많을수록 더 높은 보너스를 받으므로 높은 행동력을 이용하면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할 수 있다. 다만 지상함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시야와 행동력 보너스가 사라지고 측면 공격 보너스만 남는데, 정 아쉬울 경우 이념을 전제로 고르고 전격전 주의를 찍으면 된다.[12]
- 문명 6 - 역시 기병대를 대체하는데, 문명 3과 5의 원어명은 Hussar인 반면 이번에는 헝가리어식으로 Huszár가 됐다. 일반적인 기병대보다 생산 비용이 살짝 높지만 기본 전투력이 높고, 체결한 동맹마다 전투력 보너스를 받는다. 평은 살짝 애매한데, 본작에서의 헝가리는 정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만큼 다른 문명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어렵고 그에 따라 동맹을 체결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
온풋 후사르 | 마운티드 후사르 |
-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
다만 한국어판에서는 '호위 경기병'으로 번역되어서, 쓰면서도 이게 후사르인지 알 수가 없다(...) 위에서 나폴레옹 시기에 거의 경기병 = 후사르가 되었다는 것을 반영해서 호위 경기병이라고 번역한듯.
- 스틸 디비전 2 - 1944년 배경의 게임으로 헝가리 기병 사단의 후사르들이 등장한다. 실제 역사에선 말을 타고 다니는 부대지만 말이 구현되지 않은 게임이라 트럭을 타고 나온다. 전투는 일반 보병으로 소총을 쏘며 싸우고 기관총, 박격포, 대전차포 등 중화기와 전차를 대동한다. 바라노비치 캠페인에서는 독일군 기마 예거사단과 함께 소련군 카자크 기병대와 싸운다. 실제로 히틀러의 반격명령에 의해 전방으로 내몰려서 소련 기병대와 전차들을 상대하다 패배했다고 한다. 비스툴라 캠페인에서는 헝가리 기병여단 후사르들이 바르샤바 전방을 지키고 있다.
[1]
문명 5의 오스트리아 특수유닛으로 나오는 후사르가 바로 이들이다.
[2]
쉽게 설명하자면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군복과 검은 모자를 쓴 기병들이 후사르, 학사모 같은 모자에 랜스를 들고있는 쪽이 울란, 흰색 군복에 갑옷으로 무장한 이들이 흉갑기병들이다.
[3]
1930년대까지 존재했다.
[4]
라틴어의 'cursus'(습격)에서 유래.
[5]
세르비아의 전통
경기병인 'Gusar'에서 유래.
[6]
오늘날
세르비아의
보이보디나 자치주.
[7]
재위기간 1458~1490(헝가리-크로아티아 왕), 1486~1490(오스트리아 대공 주장, 보헤미아 일부 통제)
[8]
Fekete sereg. 1458년에 창설되어 1494년까지 활동한 상비 용병군으로, 전성기 때에는 병력이 28,000명에 달했다. 중앙 유럽 정복 활동 등 마차시의 군사 활동에서 크게 활약했으며, 기병 강국 헝가리답게 기병이 2만에 보병이 8천이었다고 한다. 다만 보병 가운데 25%가 총병이었다는 점도 중요한데, 검은 군대가 해산되고 10년이 지나 16세기로 바뀐 뒤에도 서유럽의 전체 군대 가운데 총병의 비율은 10%에 불과했기 때문. 또한 당시 유럽에서는 헝가리와 오스만 제국을 제외하면 상비군을 거느린 유일한 나라가
프랑스 왕국이었는데, 그나마도 전원이 중기병에 그 수도 수천 명에 불과했다.
[9]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3세와 충돌하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침공해
빈까지 함락시켰으나 오스트리아 대공국 전체를 통제하지는 못했고 오스트리아 대공인 프리드리히 3세와 그 아들
막시밀리안은 살아있었으나
참칭에 불과했다.
보헤미아 왕국 역시
야기에우워 왕조 출신
블라디슬라프가 멀쩡히 살아있었고
보헤미아 본토는 블라디슬라프가,
모라바,
슬레스코, 루지체는 마차시 1세가 통제했다.
[10]
마켄젠 원수의 해골 털모자가 바로 이것이다.
[11]
한때 헝가리 왕국의 대부분을 석권했을 정도로 세력이 강성했지만 동맹의 존재 미비와 국력 차로 인해 오스트리아에게 밀리다가 결정적인 전투에서 지도자 라코치가 말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는 바람에 독립군을 이루던 귀족들 대부분이 오스트리아에게 붙어 망해버린 독립운동으로,
1848년 헝가리 혁명 전까지 헝가리가 일으킨 독립운동 중 가장 대규모였다.
[12]
위대한 장군의 행동력을 높여 주는 것은 물론 지상함에서 시작하는 장갑 유닛 계통 유닛들에게 공격 시 전투력 보너스와 행동력, 적 유닛의 통제 구역을 무시하는 보너스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