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2-04 10:40:13

혹부리 영감


1. 개요2. 줄거리3. 일본 유래설4. 한국 유래설5. 기타

1. 개요

마음씨 착한 혹부리영감은 도깨비 덕택에 혹을 떼고, 마음씨 나쁜 혹부리영감은 도깨비 때문에 혹만 더 붙이게 되었다는 설화.

2. 줄거리

목에 이 달린 영감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서 묵을 곳을 찾다가 빈집을 발견해서 하룻밤을 쉬기 위해 들어갔다. 혼자 심심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근처에 있던 도깨비(혹은 오니)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몰려 왔다. 혹은 도깨비들이 와서 숨었는데 이들이 춤을 추며 즐기자 숨어 있던 영감도 흥에 겨워서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불렀다는 버전도 있다.

노래에 감동한 도깨비 두목이 "노인, 그 고운 노랫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요?" 하고 물었더니 노인은 농담삼아 "목에 달린 혹에서 나오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도깨비는 재물을 줄 테니 그 혹을 자기에게 팔라고 했으며, 그 다음 재물을 던져 주고 혹을 떼어 갔다[1]. 이렇게 해서 노인은 혹도 떼고 도깨비가 준 재물로 부자가 되었다.

그 뒤 이웃에 살던 다른 혹부리 영감[2]이 그 말을 듣고 본인도 혹을 떼고 부자가 되기 위하여 일부러 그 빈집을 찾아 들어가 밤이 되기를 기다린 다음 노래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소리를 듣고 도깨비들이 몰려 왔다. 도깨비 두목이 또 그 노랫소리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도 태연하게 이웃 노인과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자 도깨비 두목이 그 말을 듣더니 "그 전에 어떤 영감이 와서 거짓말을 하더니, 너도 거짓말을 하는구나."라고 화를 내면서 다른 편에 혹을 하나 더 붙이고 가버려서 결국 혹만 하나 더 달고 엉엉 울면서 돌아가는 거로 끝[3].

판본에 따라서 혹은 에서 나온다고 사실대로 말했더니 도깨비들은 자기들도 수없이 노력했지만 좋은 노래만은 도저히 부를 수 없었다며 전혀 안 믿고 수많은 보물과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를 선물로 주고 혹을 떼어간다. 혹부리 영감이 그러다가 나중에 그 혹에서 노래가 안 나오면 자신의 입장이 곤란하다며 하소연하자 오히려 도깨비 왕이 "영감님이 정직한 분인 것은 여기 도깨비들이 모두 말 안 해도 전부 아니까 그런 일이 생겨도 절대로 따지지 않을 테니 복받았다 생각하시고서 그 보물들을 가지고 행복하고 착하게 사세요."라며 부하 도깨비들과 인사하고 사라지는 버전도 있다.

이후에는 욕심많은 혹부리 영감이 찾아오자 "네놈이 평소에 착한 영감님을 무시하던 그 못된 영감이지?!"라고 비난하며 혹을 하나 더 붙여주고 착한 영감님의 복수라며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을 부하들과 같이 크게 혼내준다. 또한 도깨비들이 이 욕심쟁이 노인을 그 전의 노인으로 착각하는 버전도 있으며, 그 뒤의 얘기는 동일.

3. 일본 유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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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ぶとりじいさん, '고부토리지산'으로 표기한다.

'혹부리 영감'을 맨 처음 발굴해서 소개한 사람은 일본인 교사 '다카하시 도루'다. 1910년에 발행된 '조선물어집'의 서문을 읽어 보면 다카하시 도오루는 고등학교 학감으로 있으면서 학생들과 학부모로부터 설화를 채집했다고 한다. 도깨비 담을 연구한 김종대 교수는 '혹부리 영감'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입된 설화라고 보고 있다. 김종대 교수가 '혹부리 영감'을 한국의 전래동화로 보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13세기에 쓰여진 일본 고대 설화집인 『우치습유물어』[4]와 『오상내의초』에 「혹부리 영감」이 이미 수록되어 있다.
2. 일제가 국어 교과 과정을 개정할 때 '우리 민담의 성향과 같은 일본의 특징적인 민담을 수록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3. 「혹부리 영감'과 「방망이 얻기」는 같은 도깨비 담이라도 내용이 다르다. 한국 도깨비 담에서 늙은 부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4. '혹부리 영감'이 한국 내에서 전승되고 있기는 하지만, 수집된 입말 본이 극히 적다.[5]

4. 한국 유래설

한편 '혹부리 영감'을 한국에서 전승되어 온 설화로 보는 학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1. 13세기 무렵에 나온 일본 고대 설화집에 「혹부리 영감」이 실려 있다고 해서 「혹부리 영감」을 일본에서 비롯한 설화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고시대부터 한국이 일본 신화 및 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2. 「혹부리 영감」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설화가 무수히 발견되는 세계광포설화여서 그 근원을 따지기 힘들다.
3. 9세기 중엽 당나라의 단성식이 쓴 기담집 『유양잡조』에 수록된 「방이 설화」의 내용에서 「혹부리 영감」과 유사한 전개가 나타난다.[6] 그리고 이 「방이설화」는 당나라의 문헌이지만 신라에서 전해진 이야기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민담집인 <조선동화집>(1924)에 혹부리 영감과 관련된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민담의 수집자는 이 이야기가 일본에 잘 알려진 혹부리 영감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분명히 조선에서 채집한 이야기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는 혹을 떼고 붙이는 주체가 장승이다.

5. 기타

최근들어 장애에 관한 인식이 개선됨에 따라, 혹을 제외한 이야기로 권선징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 한국에선 신체 특성상 이 인간을 빗대는 말로 많이 쓰였다. 김일성은 중년기에 들어선 후에 머리 뒤의 지방종이 생겼는데, 이를 조기에 수술로 제거하지 않아서 시간이 갈수록 커졌고, 김일성의 얼굴이 남한에서 공개된 이후에 머리 뒤 혹도 덩달아 유명해지면서 별명이 혹부리 영감이 된것이다. 다만 김일성 사후 거의 30년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혹부리 = 김일성을 바로 떠올리는 사람들은 점점 적어지고 있는 추세.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는 오히려 그 아들인 뽀구리우스가 더 익숙할 것이다. 김정은의 경우는 비대한 몸집 외에는 특징적인 부분이 별로 없다 보니 그냥 이 동물에 빗대어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여튼 김일성 살아생전에는 뒤통수의 그 거대한 혹 때문에 한국인이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기는 했다. 북쪽 미디어에서는 필사적으로 혹을 감추려고 노력했고 한국, 일본, 미국 등 서방세계 미디어는 그걸 또 조롱하고 하다 보니 오히려 혹 = 김일성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개콘 조별 과제에서 최희령은 '혹보노 영감'으로 패러디했으며 혹 부분은 당연히 보노보노. 신윤승의 '보노보노 빼!'는 덤

사실 조정에서 쓴 전술 핵무기에 피폭되어 생긴 혹이었다고 한다



1929년 일본에서는 이 설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

도를 아십니까(웹툰)에 마인으로 등장한다. 두 개의 혹을 이용한 '혹권'을 사용하는데, 기괴하다.
[1] 판본에 따라 보물을 주는 것은 생략하는 대신 도깨비들 중 하나가 본인의 도깨비 방망이를 넘겨주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2] 친구 사이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3] 금은보화 대신 도깨비 방망이를 얻은 판본에서는 가끔 여기서 이야기가 좀 더 이어지기도 하는데, 딱한 소식을 들은 그 영감이 찾아와서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본인이 얻은 도깨비 방망이로 욕심쟁이 영감의 혹들을 말끔하게 다 떼어주었고, 이후로 욕심쟁이 영감은 개과천선했다는 해피 엔딩으로 끝내기도 한다. [4] 宇治拾遺物語, '우지슈이모노가타리'라 읽으며 일본 각지의 민담을 수집해 기록한 최초의 책이다. 가마쿠라 막부 시기인 1212~21년 경에 쓰여졌다고 한다. [5] 일본 내에서는 입말 판본이 수도 없이 많고 심지어 오키나와(류큐)에서도 독자 버전이 있을 정도다. 다만 도호쿠에는 없다고 한다. [6] 이 방이 설화는 또다른 설화인 흥부전의 초기적 형태로도 추정되고 있다. 읽어보면 세세한 설정 차이는 있지만 마치 흥부전과 혹부리 영감을 섞어놓은 듯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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