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보통신대학교 韓國情報通信大學校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Univers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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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58f,#8fbbd0>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분류 | 사립대학 |
개교 |
1998년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2002년 3월 한국정보통신대학교 |
통합 | 2009년 3월 한국과학기술원 |
법인 | 학교법인 한국정보통신학원 |
주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119번지 |
이사장 | 정보통신부 장관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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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CU(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University)2009년까지 존재했던 정보통신부 산하 사립대학.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동( 행정동: 전민동)[1]에 위치했다. 정보통신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KT 등 국내 IT 기관과 업체들이 공동으로 설립했다. 200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 통합되어 문지캠퍼스가 되었다.
정보기술 전문 대학교였으며, IT공학부와 IT경영학부의 2개의 학부만이 있었고, 단과대학이 아니라 종합대학이었다. 특이했던 점은 IT공학부 학생은 의무적으로 IT경영학부 과목을 일정 학점 이상 들어야했었고, IT경영학부 학생도 의무적으로 IT공학부 과목을 일정 학점 이상 들어야했었다. 전과목 영어로 강의를 했으며, 1년 3학기제로 3년만에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2. 연혁
- 1997년 학교법인 한국정보통신학원 설립
- 1998년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개교
- 2002년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개교 (학사과정: 공학부, IT경영학부)
- 2004년 한국정보통신대학교로 통합 #
- 2007년 경영전문대학원(한국형 MBA) 개원
- 2009년 한국과학기술원에 통합
3. 상세
1998년에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가 개교했다. 교명에 대학원이 붙어 있는 이유는, 1998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석·박사과정만 있는 대학원대학이었기 때문이다. 학사과정은 2002년 한국정보통신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생겼다. 즉, 하나의 학교법인이 두 대학을 운영하는 형태였던 것이다. 이후 학사과정과 석박사과정 간 연계교육에 번거로움이 있어, 2004년에 대학원대학을 폐지하고 한국정보통신대학교로 통합하였다.설립 취지는 21세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정보통신 분야의 발전을 주도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고급 지도인력, 복합기술력과 경영능력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고, 교육목표는 정보통신 및 관련분야에 대한 실천적인 교육과 연구활동을 통하여 정보통신 산업현장에 요구되는 실용기술 개발능력 및 응용능력을 향상시키고, 창의력을 계발하는 데....있지만 실상은 과학기술부가 세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눈부신 성공을 보고, 정보통신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및 여러 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체에서 '우리도 하자!'하며 만든게 한국정보통신대학교이다.
설립 초기에 정보통신부와 삼성그룹, LG그룹,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유수의 기업과 연구원들의 후원을 받으며 '입학생 전원 전액 장학금 지원'&'졸업만 하면 대기업 취직보장'이라는 그야말로 서울대학교 뺨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기를 끌었고, 한때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보다 수능 커트라인이 높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는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사장인 사립대학교라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의 경우에는 「한국과학기술원법」에 따라 과학기술부 산하에서 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ICU의 경우에는 「정보화촉진기본법」에 명시된 정보통신관련 인력의 양성사업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법 제25조, 제33조, 제34조)을 근거로 정보통신부에서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2004년 감사원에서 이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법률을 개정하여 정보화촉진기금이 대폭 축소되었다.[2]
정보통신부에서는 ICU 특별법을 추진했고, 학교 측에서도 빠른 시일에 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허운나 당시 총장이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인데다 정부의 관심도 높았고 여당이 다수당인 상황이었으니까. 실제로 국회에 법안도 발의 되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김영선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고, 한나라당도 반대하여 결국 무산 되었다. ICU는 결국 한국과학기술원과 통합할 것인가, 사립대로 남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된다. 통합설이 불거진 초기( 2006년 말)에는 반대하는 학생들이 주류였지만 이후 돌아가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총학생회측에서 TF가 꾸려지고 상황 파악에 들어갔는데, 통합이 불발될 경우 학교가 경제적으로 자립이 불가능해 사실상 낙동강 오리알이 될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형성되어 2007년 여름을 기점으로 통합 찬성이 다수가 되었고, 가을학기가 시작하면서 총학생회장이 사퇴하고 통합 찬성파를 중심으로 비대위가 꾸려졌다. 비대위원장은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한 텐트 농성에 돌입했다.
교수진의 경우, 총장은 통합 반대의사를 보였지만 교수진은 통합 찬-반으로 나뉘었고 다수였던 찬성파는 총장을 비토하는 상황이 되었다. 2007년 중간고사 기간에 서울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이사회가 열렸는데, 이때 찬성이든 반대든 많은 학생들이 상경했다. 찬성 및 중립 학생들은 정보통신부 청사가 들어서있던 kt 빌딩 근처에서 시위를 열었고, 반대파는 이사회장을 점거하려 했으나 비밀리에 장소가 변경하여 이사회가 강행되었다. 결과는 통합 추진으로 결정되었고 총장은 반발해 사퇴, 이사장이 총장 대행을 하게 되었다. 2007년 11월 KAIST와의 합병이 최종 결정되었지만, 돌연 KAIST에서 예산 및 여러가지 문제를 이유로 합병을 거절했다. 2009년 1월 1일부로 KAIST와 전격 통합 결정이 된 듯 하였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서 연기되어 2009년 3월 통합되었다.[3]
2008년경 한국정보통신대학교 홈페이지(지금은 사라짐) Q&A게시판에 올라온 답변의 일부를 보면
안녕하세요.
현재까지 공학부 석사 과정의 정원(132명) 및 박사/통합과정의 정원(53명)보다 저조합니다.
KAIST와의 통합은 세부협의를 하고있고 특별한 일이 없는한 2009년 봄학기에 통합이 될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까지 공학부 석사 과정의 정원(132명) 및 박사/통합과정의 정원(53명)보다 저조합니다.
KAIST와의 통합은 세부협의를 하고있고 특별한 일이 없는한 2009년 봄학기에 통합이 될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2009년 이전에 실제로 ICU의 입학처에 전화 문의를 해본 결과 '현재 저희는 KAIST와 통합을 추진 중이며 만일 합격을 하게될 경우 모든 학생들은 ICU의 과정과 KAIST 과정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할 예정입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들리는 바로 ICU가 위치한 건물 자체가 IT공학 건물로 바뀌면서 KAIST의 모든 IT과가 이전한다고 하였으나, 통합전 KAIST의 전산학과는 대부분 이전하지 않았다.
2009년 2월 9일을 기점으로 09학번 신입생들은 KAIST학번과 ICU학번 2가지를 가지게 되었으며 신입생들은 모든 수업을 9일부터 KAIST에서 듣게되었고, 2009년 3월 1일부로 ICU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 교내 장소
- 윈드존: 학교 본관의 L동과 F동 사이의 넓은 공간.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는 가만히 있는 자전거가 쓰러질 정도로 바람이 분다. 과거 문지축제를 이곳에서 열었다.
- 성큰: R동과 F동 사이에 지하로 내려가는 큰 계단이 있는 위치. 성큰콜로니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오해하지만, 선큰 구조의 건축물에서 유래했다.
- 스낵바: 2,000원의 샌드위치부터 4,000원의 쌈밥까지 여러 분식류랑 식사류가 존재하는 식당. 이용자수는 학식에 비해서 적다.
- 피라미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유리로 된 피라미드랑 유사하게 생긴게 본관 바로 앞에 있다. 학교 본관 앞 하면 이곳을 주로 떠올리는 편이다.
- 피라미드밑: 지하로 움직이면 피라미드 밑 부분에 넒은 공간이 있고 여러 동아리 및 자치기관(언론국, ICP, 루나틱, 학과방, 학생회실)이 있다.
- 슈펙스홀: 타 학교의 대강당 같은 곳으로(사실 규모는 작다. 근데 재학생 전원이 다 들어가는게 가능하다) 각종 행사가 진행된다.
5. 여담
2009년 전후로 이 통합 떡밥은, DC카갤, 아라, EYE(ICU BBS)를 비롯한 각종 관련 게시판에서 크게 흥했다. 가장 큰 떡밥은 ICU 학점 완전 인정, 졸업장 떡밥 등 사실 저건 카이스트에서 졸속 협상을 한 측면이 있다. 가장 큰 논란을 학번별로 따져보면 이렇다.~04학번: 졸업 안 하려고 일부러 군대까지 다녀오시는 분 |
05~08학번: 어떻게든 KAIST졸업장 받으면서 ICU학점 완전 인정[4] |
09학번: 노리고 입학했다. |
사실 노리고 입학했다는 것은 전과가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그렇다고 ICU 공학부 학생 전원을 전산/전자학과에 처박기도 힘들었던 게 공학부 90명이면 당시 전산/전자학과 T/O를 합친 거랑 맞먹는다. 전과를 허락하든 안 하든 희대의 떡밥. 통합 당시에는 통합전 ICU 학생을 IT경영학과 및 정보통신공학과에 소속시켜 통합 전 KAIST 학생과 구분하였다.
그러나 ICU생으로서도, KAIST생으로서도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이기에 ICU생은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KAIST생은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게 여러 지성인들의 생각이었다. 또한 양 학교 모두 과학고등학교 출신들이 많이 진학했기 때문에 서로의 학교에 상당한 수의 친구와 동문들이 있었기에 어느정도 친밀감이 있는 상태였다. 두 학교가 먼 거리가 아니고[5] 학과편제도 정리되어 2013년 현재 외부적으로는 갈등이 없는 상태다.
여튼 2009년 3월 1일부로 완벽하게 통합되었으며 통합 이후 당분간은 ICU는 자체 커리큘럼을 통해서 경영학과와 정보통신공학과를 굴리게 되었다. 정보통신공학과에서는 졸업까지 꽤 시간이 남아있는 저학번들과, 고학번이더라도 KAIST의 졸업 요건을 충족하며 제때 졸업하는데 무리가 없는 학생들은 대부분 KAIST 전산과와 전자과로 전과했다. KAIST의 졸업요건을 맞출 경우 졸업이 지연되는 등의 지장이 있는 학생들은 정보통신공학과로 졸업했다. 이후 ICU는 KAIST IT 컨버젼 캠퍼스(ICC)로 변경되었으며 후에 정보통신공학과 및 경영공학과를 ICC에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입시를 보면, 위에서 말했듯이 한때 잘 나갔지만, 통합 전 몇 년간에는 좀 추락했다. 물론 추락했어도 당시 다른 대학들보다 여전히 잘 나가는 편이었지만 주로 고등학교 때 정보계열에서 좀 놀았다거나 하면 으레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대전전민고등학교 학생들이 시험기간마다 도서관 레이드를 가서 고등학교 시험기간만 되면 도서관에선 수시로 학생증 검사를 하기 때문에 이용이 힘들었다.
슈스케2 출신의 가수 김소정이 여기 출신이다. 또한 슈프림팀의 "땡땡땡", 다이나믹듀오의 "야유회" 등을 프로듀싱한 힙합 프로듀서 차승규도 여기 출신이다.
6. 유사 사례
한국정보통신대학교처럼 정부에서 설립한 사립대학들로, 심지어 한국정보통신대학교보다 먼저 개교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 1992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의 사립대학으로 개교.
- 한국공학대학교: 1997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산업대학으로 개교. 2012년 일반대 전환.
- 경기과학기술대학교: 1999년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전문대학으로 개교.
7. 출신 인물
[1]
법정동 상으로는 문지동에 위치해 있었다. 법정동 문지동은 행정동 전민동의 관할이다. 실제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실상 메인 출입구인 후문에서 150m만 걸으면 법정동으로써의 전민동이었고, 학생들의 실제 생활권은 전민동이었다.
[2]
2007년까지는
국회에서 정보통신부의 예산지원안을 통과시켰지만,
2008년에는 예산안이 국회에서 반려되었다.
[3]
통합과 동시에 학교에 걸려있던 ICU 깃발이 카이스트 깃발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재밌게도 훗날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가 통합된 조직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생긴다.
그 이전에 통합되긴 했지만.
[4]
사실 이걸 인정하지 않을 경우 ICU에 불합리하지만 S-U방식이 있다.
[5]
대전이
대덕연구단지부터
과학을 테마로 한
대전엑스포 등 중앙정부의 과학 관련 버프를 어마어마하게 받아왔고
한국과학기술원이나 한국정보통신대학교도 이런 식으로 타 지역에 비해 선점효과를 누려 꽤 쉽게 먹은 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로 기초과학연구원을 득템한 것도 마찬가지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