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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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 |||||||||||||||||||||||||||||||||||||||||||||||||||||||||||||||||||||||||||||||||||||||||||||||||||||||
황금종려상 | ||||||||||||||||||||||||||||||||||||||||||||||||||||||||||||||||||||||||||||||||||||||||||||||||||||||||
제50회 ( 199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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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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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회 (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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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체리 향기) 이마무라 쇼헤이 ( 우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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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앙겔로풀로스 ( 영원과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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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덴 형제 ( 로제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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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 ||||||||||||||||||||||||||||||||||||||||||||||||||||||||||||||||||||||||||||||||||||||||||||||||||||||||
제47회 ( 199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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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 19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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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회 ( 19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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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모 ( 인생) 니키타 미할코프 ( 위선의 태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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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앙겔로풀로스 ( 율리시즈의 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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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폰 트리에 ( 브레이킹 더 웨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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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상 | ||||||||||||||||||||||||||||||||||||||||||||||||||||||||||||||||||||||||||||||||||||||||||||||||||||||||
제36회 ( 198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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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 198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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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 198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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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없음 | → |
테오 앙겔로풀로스, 타나시스 발티노스, 토니노 게라 (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
→ | 수상자 없음 | ||||||||||||||||||||||||||||||||||||||||||||||||||||||||||||||||||||||||||||||||||||||||||||||||||||
역대 베니스 영화제 | ||||
은사자상 | ||||
제44회 ( 198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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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 198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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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 1989년) |
제임스 아이보리 ( 모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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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앙겔로풀로스 ( 안개 속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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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앙 세자르 몬테이루 ( 노란 집의 추억) 쿠마이 케이 (센노 리큐 - 본각방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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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Greeks | ||||||||
※ 2009년 그리스 Skai TV 방송이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 100명'을 선정 | |||||||||
TOP 10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알렉산드로스 3세 | 게오르요스 파파니콜라우 |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 |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 | 소크라테스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아리스토텔레스 |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 | 플라톤 | 페리클레스 | |||||
11위~100위 | |||||||||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 콘스탄티노스 카라테오도리 | 멜리나 메르쿠리 |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 니코스 카잔차키스 | |||||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오디세아스 엘리티스 | 호메로스 | 마노스 하지타키스 | 레오니다스 1세 | 히포크라테스 | |||||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피타고라스 | 콘스탄티노스 카바피 | 마리아 칼라스 | 아르키메데스 |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 |||||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 | 엘 그레코 | 콘스탄티노스 11세 | 요르기오스 세페리스 | 리가스 페레오스 | |||||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아리스 벨루키티오스 | 요안니스 메탁사스 | 니코스 갈리스 | 게오르기오스 카라이코스 | 데모크리토스 | |||||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 | 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 | 야니스 마크리야니스 | 아다만티오스 코라이스 | 야니스 리트오스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테미스토클레스 | 헤라클레이토스 | 투키디데스 | 유클리드(에우클레이데스) | 파블로스 멜라스 | |||||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아테네의 크리스토둘로스 | 아타나시오스 디아코스 | 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 | 디미트리 나노풀로스 | 무명용사 | |||||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페이디아스 | 아리스토파네스 | 코스티스 팔라마스 | 에톨리아의 코스마스 | 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 | |||||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소포클레스 | 니코스 벨로야니스 |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 | 요르요스 파판드레우 | 니콜라오스 마르지오리스 | |||||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 |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 에피쿠로스 | 알렉산드로스 파파디아만티스 | 오톤 | |||||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반젤리스 | 솔론 | 클레이스테네스 | 아이스퀼로스 | 바실리오스 2세 | |||||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콘스탄티누스 1세 | 이온 드라구미스 | 코스타스 시미티스 | 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 |||||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테오 앙겔로풀로스 | 니코스 실루리스 | 스텔리오스 카잔티디스 | 차릴로스 플로라키스 | 에우리피데스 | |||||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카롤로스 코운 | 유스티니아누스 1세 | 라키스 라조폴로스 | 헤로도토스 | 다나시스 벤고스 | |||||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헬레네 글리카츠아흐와일러 | 카티나 팍시누 | 알리키 부지욱라키 | 마르코스 밤바카리스 | 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 | |||||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바실리스 치차니스 | 피로스 디마스 | 마노스 로조스 | 마노리스 글레조스 | 엘레나 무잘라 | |||||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필리포스 2세 | 디미트리스 혼 | 라스카리나 부불리나 | 탈레스 | 프락시텔레스 |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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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d342e> 이름 | 테오 앙겔로풀로스 (Theo Angelopoulos) |
본명 |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Θόδωρος Αγγελόπουλος) |
국적 | 그리스 |
출생 | 1935년 4월 27일 |
그리스 아테네 | |
사망 | 2012년 1월 24일 (향년 76세) |
그리스 피레우스 | |
직업 | 감독, 시나리오 작가 |
활동 | 1965년 – 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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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 의 영화감독.아테네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다가 군 복무를 마치고 프랑스의 파리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1960년대에 파리의 이덱(IDHEC)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감독으로 데뷔하여 활동하였다.
현대 그리스 영화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거장. 미조구치 겐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와 더불어 롱테이크의 상징으로 꼽힌다. 타르콥스키와 함께 1980년대 유럽 영화사를 이끈 대표적인 거장이다. 후술하겠지만 그는 많은 작품으로 황금종려상, 은사자상등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였다.
미조구치가 롱테이크를 통해 미학적 탐구를,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종교적·철학적 문제를 다루었다면, 앙겔로풀로스는 정치적·역사적 문제을 주로 다루었다. 또한 작품의 기복이 없이 항상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보여주는 거장이다. 쉽게 말해 망작이 없다.
영화가 주로 롱테이크로 이루어져 얼핏 지루할 수 있지만, 훌륭한 영상미와 아름다운 음악 때문에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특히 그는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작곡가 '엘레니 카라인드루'와 함께 작업했는데, 왕가위의 영화보다 왕가위의 OST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영화와 관계없이 이 사람이 작곡한 OST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중에서도 콜렉터들은 〈 율리시즈의 시선〉과 〈 영원과 하루〉의 OST를 최고로 뽑는 편.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 부르는 평론가와 마니아들의 상찬과 달리 유난히 덜 알려진 감독이기도 한데, 영화계의 변방인 그리스에서 활약한 점,[1] 호메로스를 비롯한 그리스 고전과 현대 그리스 역사를 자주 인용하는 등, 관람시 어느 정도 지식을 요구하는 작품 특징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침묵 삼부작〉 이후 작품들은 기초 지식이 없으면 제대로 관람하기가 힘들 정도.
일본에서는 성우 이케자와 하루나 아버지이자 소설가 이케자와 나츠키가 1979년 유랑극단을 시작으로 일본 내 앙겔로풀로스 영화 번역을 전담하고 있다. 나츠키가 딸 하루나와 함께 그리스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고 그리스 시를 번역할 정도로 그리스어에 조예가 있었기에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2. 생애
1935년 4월 25일, 그리스 내전이 한창이던 중에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아버지가 포로로 잡혀가 본인이 9살이 돼서야 아버지가 풀려나서 아버지의 얼굴을 늦게 알았다고 한다. 아마 이때부터 죽음과 부재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 같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자기 이야기에 인색하고 인터뷰에 어색해 했던 지라 개인적 삶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2000년대 초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해서 영화감독 생활을 시작했는지 밝힌 적이 있다.
...앙겔로풀로스는 인터뷰에 인색한 사람이다. 그나마도 그 인터뷰들이란 게 작품들에만 한정되어 있어서 그의 개인적인 삶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 있었다.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그 자신의 영화적 결심에 관해서 그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들려주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그리스에는 영화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와서 공부하였다. 그가 입학한 학교는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IDHEC (지금의 FEMIS)였다. 이 학교는 입학 자격 요건도 까다롭지만 교과 과정도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를 다닌 많은 감독들이 퇴학을 당하거나 중퇴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2]
앙겔로풀로스는 고전영화 스타일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고전영화의 문법에 관한 과정으로 투 쇼트나 상상선, 쇼트-역 쇼트 나누기로 콘티를 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시나리오를 나눠 주고 과제로 그 다음 주까지 콘티를 작성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앙겔로풀로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방식으로 주어진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전영화에는 존 포드만이 아니라 오슨 웰스의 방법[3]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주인공을 가운데 세워 놓고 카메라가 360도 회전 트래킹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콘티를 구성했다. 그 콘티를 보고 지도 교수는 앙겔로풀로스를 불렀다. “자네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나?” 앙겔로풀로스는 대답했다.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네의 천재성은 그리스에서나 가서 뽐내 보이게.” 이 말은 학교를 떠나라는 뜻이었다. 앙겔로풀로스는 대답했다. “그리스에서도 그렇고 싶지만 파리에서도 그걸 인정받고 싶습니다.” 선생은 간단하게 말했다. “만일 학교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시 콘티를 짜지 않으면 자네는 학교 바깥에서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하게나.”
앙겔로풀로스는 집에 돌아와서 밤새 고민했다고 한다. 새벽이 올 때 즈음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는 영화를 원한다. 하지만 영화는 나를 원하는가?” 그리고 자신에게 대답했다. 자신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영화가 새로운 영화를 위한 하나의 점을 찍을 수 있다고 그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서 자퇴 원서를 내고 그리스로 돌아갔다. 이 말은 결단이다. 앙겔로풀로스는 부산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이 말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말했다. “여기 앉은 여러분들은 영화를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영화도 당신을 원하는가!” 나는 이 말을 수없이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 말이 앙겔로풀로스 영화 전체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정성일, 2004년 11월 게재한 칼럼에서 전문 링크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영화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당시 그리스에는 영화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와서 공부하였다. 그가 입학한 학교는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IDHEC (지금의 FEMIS)였다. 이 학교는 입학 자격 요건도 까다롭지만 교과 과정도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를 다닌 많은 감독들이 퇴학을 당하거나 중퇴한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2]
앙겔로풀로스는 고전영화 스타일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은 고전영화의 문법에 관한 과정으로 투 쇼트나 상상선, 쇼트-역 쇼트 나누기로 콘티를 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시나리오를 나눠 주고 과제로 그 다음 주까지 콘티를 작성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앙겔로풀로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방식으로 주어진 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전영화에는 존 포드만이 아니라 오슨 웰스의 방법[3]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주인공을 가운데 세워 놓고 카메라가 360도 회전 트래킹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콘티를 구성했다. 그 콘티를 보고 지도 교수는 앙겔로풀로스를 불렀다. “자네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나?” 앙겔로풀로스는 대답했다. “꼭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네의 천재성은 그리스에서나 가서 뽐내 보이게.” 이 말은 학교를 떠나라는 뜻이었다. 앙겔로풀로스는 대답했다. “그리스에서도 그렇고 싶지만 파리에서도 그걸 인정받고 싶습니다.” 선생은 간단하게 말했다. “만일 학교에서 요구하는 대로 다시 콘티를 짜지 않으면 자네는 학교 바깥에서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하게나.”
앙겔로풀로스는 집에 돌아와서 밤새 고민했다고 한다. 새벽이 올 때 즈음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는 영화를 원한다. 하지만 영화는 나를 원하는가?” 그리고 자신에게 대답했다. 자신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영화가 새로운 영화를 위한 하나의 점을 찍을 수 있다고 그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서 자퇴 원서를 내고 그리스로 돌아갔다. 이 말은 결단이다. 앙겔로풀로스는 부산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이 말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말했다. “여기 앉은 여러분들은 영화를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물어보아야 합니다. 영화도 당신을 원하는가!” 나는 이 말을 수없이 다시 생각했다. 나는 이 말이 앙겔로풀로스 영화 전체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정성일, 2004년 11월 게재한 칼럼에서 전문 링크
사생활로, 1980년에 〈구세주 알렉산더〉, 〈황새의 정지된 비상〉 등 많은 영화에서 기획·제작을 맡은 피비 이코노모풀로스와 결혼하여 죽을 때까지 결혼생활을 이었다. 슬하에 3명의 딸을 두었는데, 개중 두 명은 카타리나, 안나라고 이름 짓고, 나머지 하나는 평생 함께 일한 작곡가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이름을 따서 '엘레니 앙겔로풀루'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2012년 1월 24일, '현대 그리스 삼부작'의 마지막 편을 촬영하는 중에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당일 타계했다. 향년 76세.
죽기 전 촬영 중이던 현대 그리스 3부작 마지막편인 〈The Other Sea〉는 결국 미완성 영화로 남게 되었다.
3. 작품 리스트
연도 | 제목 | 분류 | 수상 |
1965 | 포르미닉스 스토리 | 단편 데뷔작 | |
1968 | 방송 | 단편 다큐멘터리 | |
1970 | 범죄의 재구성 | 장편 데뷔작 | |
1972 | 1936년의 나날 | 〈그리스 역사 삼부작〉 1편 | 베를린 영화제 국제비평가상 |
1975 | 유랑극단 | 〈그리스 역사 삼부작〉 2편 |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02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작 스크린 선정 20세기 100대 영화 21위 |
1977 | 사냥꾼들 | 〈그리스 역사 삼부작〉 3편 | |
1980 | 구세주 알렉산더 |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 |
1984 |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 〈침묵 삼부작〉 1편[4] | 칸 영화제 각본상 |
1986 | 비키퍼 | 〈침묵 삼부작〉 2편[5] | |
1988 | 안개 속의 풍경 | 〈침묵 삼부작〉 3편[6] |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
1991 | 황새의 정지된 비상 | 〈국경 삼부작〉 1편 | |
1995 | 율리시즈의 시선 | 〈국경 삼부작〉 2편 |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
1995 | 뤼미에르와 친구들 | 다큐멘터리 | |
1998 | 영원과 하루 | 〈국경 삼부작〉 3편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
2004 | 울부짖는 초원 | 〈현대 그리스 삼부작〉 1편 | |
2007 | 그들 각자의 영화관[7] | 옴니버스 영화 | |
2008 | 먼지의 시간 | 〈현대 그리스 삼부작〉 2편 | |
2012 | 또 다른 바다 | 〈현대 그리스 삼부작〉 3편 | 촬영중 사고사 |
4. 작품 상세
- 1968년 언론간의 경쟁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 <방송>을 연출한다.
- 1970년 해외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첫 장편영화인 범죄의 재구성을 연출한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국제비평가협회상 특별언급을 받았다.
-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자신의 영화를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들 사이의 사멸한 공간들의 영화’라고 규정했다. 그에게 처음 국제적인 평가를 안겨준 ‘그리스 역사 3부작’은 바로 시간들 속에서 잊혀져갔던 역사를 찾아간다. 1972년 <1936년의 나날들>은 메타삭스 장군의 군사독재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1936년의 감방과 취조실을 배경으로 하고있으며,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 1975년 초기 대표작이자 걸작인 < 유랑극단>을 특유의 롱테이크로 느리고, 액자 구조의 서사로 연출한다. 각 지방을 다니며 공연하는 유랑극단을 통해 그리스 정치적 상황을 묘사한 영화로, 생애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받아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한다. 1939년 메타삭스장군이 실각 하고 파파고스가 대통령으로 되기까지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그리스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연극을 공연했던 유랑극단 배우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 1977년 그리스 정치적 상황을 다룬 <사냥꾼>들을 연출한다. 그리스의 한 섬을 배경으로 파르티잔 시체가 발견된 이후, 그를 별장으로 옮겨놓은 사냥대들이 벌이는 격론을 다루고 있다
- 1980년 또 다른 초기 걸작 <구세주 알렉산더>로 연출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 1984년 사회주의적인 희망으로 가득 찼던 세기초 그리스의 정치적 현실이 아니라, 정치적 망명과 이주로 점철되었던 그리스에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에 대한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은 망명한 노부부의 시선을 보여준다. 인간 실존의 문제를 묻는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은 칸 영화제/각본상과 국제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 1986년 고독한 양봉치기(극중: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에 관한 < 비키퍼>를 연출한다.
- 1988년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부문에 소개되어, 뒤늦게 한국에도 개봉한 안개 속의 풍경을 연출한다. 사회의 추악함과 도덕적 타락 등을 경험하면서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아버지를 찾아 발칸반도를 가로질러 독일로 가는 어린 남매의 이야기이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은사자상 수상작이다.
- 1991년 이탈리아 대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와 함께한 두번째 작품으로, 불법 난민에 관한 <황새의 멈춰진 걸음>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는다.
- 1995년 중기 걸작이자,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도 평가받는 율리시즈의 시선 을 연출한다. 영화 1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 최초의 영화를 찾아내는 과정을 추적해 나가는 영화로, 명배우 하비 카이텔이 출연했으며, 그해 칸 영화제/그랑프리를 수상한다. 수상 소감은 "나는 황금종려상 수상 소감만 준비했다."로, 본인이 황금 종려상 아닌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참고로 그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언더그라운드이다. 두 작품이 공교롭게도 발칸반도의 역사에 관한 영화이다.
- 1998년 그동안의 영화인생을 집대성 했다는 평가를 받은 영원과 하루를 연출했다. 베를린 천사의 시로 알려진 브루노 간츠가 출연 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감독의 작품들이 OST가 훌륭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아왔지만, 단연 이 작품은 마니아 사이에서도 가장 인기작이다. 피의 역사로 기억되는 발칸반도에서 지식인이자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맞닿아있는 작품으로, 전작에서 황금종려상을 못준게 미안했던지 드디어 감독에게 칸 영화제/황금종려상을 헌사한다.
- 2004년<울부짖는 초원>은 초기의 정치적인 영화들과 최근의 다소 개인적인 영화들을 한데 아우르는 거장의 시선으로 보인다. 20세기 유럽사를 관통하는 현대 그리스 3부작 중 첫 번째 영화인 이 작품은, 1919년 적군(Red Army)이 그리스 오데사 마을을 침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러시아혁명 직후, 부르주아 계급의 반혁명 공세 속에서 적군은 프롤레타리아의 해방과 사회주의적인 미래를 꿈꾸며 혁명을 방어한다. 그 와중에서 전쟁은 소련 지역을 떠나 유럽 전방으로 확대되며 백군(White Army)이 산재해 있었던, 오데사 마을까지 이른다. 그리스의 많은 공동체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방인들은 강제 이주되고 갈 길 없는 이들은 발칸 반도와 전 유럽을 떠도는 기구한 운명속에 놓이게 된다. 결국 앙겔로풀로스가 이 현대 그리스 3부작에서 다룰 이야기는 그의 전 영화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초기의 정치적 관심과 후기의 개인적인 관심을 모두 아우르면서 30년 간의 그의 모든 영화 경력을 하나로 통합 시킨다. 또한 피로 얼룩졌던 발칸의 역사를 눈물로 회고하며, 고통과 희생을 감싸 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