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03:52:30

크리스티앙 카랑뵈

크리스티앙 카랑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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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0
}}} ||
올림피아코스 FC
Olympiacos F.C.
파일:Christian Karembeu.jpg
<colbgcolor=#c10e17><colcolor=#ffffff> 이름 크리스티앙 카랑뵈
Christian Karembeu
본명 크리스티앙 랄리 카케 카랑뵈
Christian Lali Kake Karembeu
출생 1970년 12월 3일 ([age(1970-12-03)]세)
누벨칼레도니 리푸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파일:누벨칼레도니 기.svg 누벨칼레도니)
신체 181cm
직업 축구 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c10e17><colcolor=#ffffff> 선수 FC 낭트 (1990~1995)
UC 삼프도리아 (1995~1997)
레알 마드리드 CF (1997~2000)
미들즈브러 FC (2000~2001)
올림피아코스 FC (2001~2004)
세르베트 FC (2004~2005)
SC 바스티아 (2005~2006)
행정 포츠머스 FC (2006~2007 / 스카우터)
버밍엄 인터네셔널 홀딩스 (2007~2010 / 비상임 이사)
올림피아코스 FC (2013~ / 스포츠 디렉터)
국가대표 53경기 1골 ( 프랑스 / 1992~2002)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이후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수훈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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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축구 선수 출신 행정가. 현재 올림피아코스 FC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레 블뢰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다.[2]

2. 선수 경력

남태평양의 작은 섬 누벨칼레도니 리푸에서 태어난 카랑뵈는 어릴적부터 남다른 운동신경을 자랑했으며 매주 일요일마다 마을 광장에서 친구들과 모여 축구를 하던 중 우연히 FC 낭트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15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축구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19세의 나이에 낭트의 1군에 데뷔하였고 데뷔 다음 시즌부터 2선에서 클로드 마켈렐레와 함께 최전방의 레이날드 페드로스와 파트리스 로코를 지원하며 낭트를 2시즌 연속 리그 5위에 올려놓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이 시기부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하기 시작했다. 매시즌 활약을 이어가던 중 마침내 1994-95 시즌에는 12년만에 낭트를 리그 정상으로 이끌었으며 리그앙 우승 이후 FC 바르셀로나, PSG 등 복수의 빅리그와 빅클럽의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되었고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인 세리에 A UC 삼프도리아로 이적했다.

삼프도리아에서 카랑뵈는 로베르토 만치니, 엔리코 키에사, 빈첸조 몬텔라,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클라렌스 셰도르프 등의 재능있는 선수들과 함께 뛰었으나 두 시즌 동안 리그 8위, 6위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팀의 좋지 못한 성적 속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던 카랑뵈였기에 1997-98 시즌 라리가 최고의 명문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할 수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한 카랑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측면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았고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바이어 04 레버쿠젠전부터 준결승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발 출장하여 풀타임 활약하며 3골을 넣는 활약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결승까지 올려놓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1998년 5월 20에 열린 UEFA 챔피언스 리그 유벤투스 FC와의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여 레알 마드리드의 7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 참가하여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결승전을 포함해 4경기를 뛰면서 헌신적인 플레이로 프랑스의 사상 첫 우승에 공헌했다. 그는 오세아니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다. 이후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유프 하인케스에서 거스 히딩크, 비센테 델보스케 등으로 바뀜에 따라 팀내 입지가 좁아져 로테이션 자원으로 경기에 출장했다.

UEFA 유로 2000에서는 최종 엔트리에는 들었으나 릴리앙 튀랑, 파트리크 비에라와 같은 국가대표팀 후배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네덜란드전 1경기만을 소화했다. 그래도 프랑스는 유로에서 우승했으니 해피엔딩.

레알 마드리드는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이 선출됨에 따라 그의 공약대로 갈락티코스 정책을 시행했고 카랑뵈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미들즈브러 FC를 거쳐 올림피아코스 FC로 적을 옮겼다. 올림피아코스에서 리그 2연패 후 스위스의 세르베트 FC를 거쳐 프랑스의 SC 바스티아에서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었다.

3. 플레이 스타일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정석과 같았던 선수로, 축구에서 미드필더가 필요한 모든 재능들을 갖추고 있어 레알 마드리드나 프랑스 우승 스쿼드 등 최고의 팀들에서 항상 중책을 맡았다.

박투박 본좌답게 적극적인 활동량을 주무기로 삼았다. 170-80대의 작은 신장이었지만 다부진 피지컬을 갖추고 있었으며 패스, 드리블, 개인기, 활동량 그리고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 등 뭐하나 빠지는게 없는 육각형 그 자체였다.

공격적인 미드필더들이 많았던 소속팀에서는 주로 최후방에서 수비수를 지원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으나, 상기한대로 장점이 많았기 때문에 측면 미드필더나 우측 윙백에도 많이 들어가며 필드 오른쪽애서 쉴새없이 공수 양면으로 셔틀런을 뛰며 볼에 관여했다. 개인에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는 오늘날 축구 기준으로도 카랑뵈는 윙백과 박투박 미드필더를 섞어놓은듯한 플레이를 구사했던, 상당히 희귀한 유형의 선수로 볼 수 있다.

4. 은퇴 이후

2013년부터 올림피아코스 FC의 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옹즈 드 옹즈: 1995
  • 오세아니아 올해의 선수: 1995, 1998
  • UNFP 20주년 스페셜팀 트로피: 2011

5.3. 수훈

6. 기타

6.1. 혈통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일명 인간 박람회에 끌려와 전시된 누벨칼레도니아 출신 원주민 중 한 명이 카랑뵈의 증조부였다. 그런 이유로 카랑뵈는 국가대표팀 소집에는 응하지만 국가 제창은 하지 않는다.

레 블뢰의 동료 릴리앙 튀랑이 2011년 이 끔찍한 인종차별 역사를 알리는 박람회를 개최했고, 그 때 이 사실이 알려졌다.

6.2. 미녀와 야수

파일:external/img.spokeo.com/christian_karembeu_2008_06_16.jpg
첫 결혼한 전 부인 슬로바키아 출신 모델 아드리아나 스크레나리코바(Adriana Sklenaříková). 1998년 결혼하고 2012년 결별했다.

WAGs 중에서도 돋보이는 남녀간 외모 격차 때문에 대표적인 미녀와 야수 커플로 손꼽힌다. 지금은 그리스의 스키 국가대표 선수인 재키 차문과 재혼했다.


[1] 일반적으로 홀딩 미드필더 역할을 했지만 박스 투 박스와 우측면 미드필더, 라이트백까지 소화 가능한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2] 하지만 하술할 이유로 A매치 때 라 마르세예즈를 제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