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8-10 21:52:41

릴리앙 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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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앙 튀랑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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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파트리크 비에라
(2006~2008)
릴리앙 튀랑
(200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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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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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앙 튀랑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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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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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앙 튀랑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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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FIFA)
출전 횟수
(RSSSF)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릴리앙 튀랑 142회 1994.8.17
(vs 체코)
2008.6.13
(vs 네덜란드)
2 위고 요리스 139회 2008.11.19
(vs 우루과이)
2022.6.10
(vs 오스트리아)
3 티에리 앙리 123회 1997.10.11
(vs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6.22
(vs 남아프리카 공화국)
4 마르셀 드사이 116회 1993.8.22
(vs 스웨덴)
2004.6.17
(vs 크로아티아)
5 올리비에 지루 112회 2011.11.11
(vs 미국)
2022.3.29
(vs 남아프리카 공화국)
6 지네딘 지단 108회 1994.8.17
(vs 체코)
2006.7.9
(vs 이탈리아)
앙투안 그리즈만 2014.3.5
(vs 네덜란드)
2022.6.13
(vs 크로아티아)
7 파트리크 비에라 107회 1997.2.26
(vs 네덜란드)
2009.6.2
(vs 나이지리아)
9 디디에 데샹 103회 1989.4.29
(vs 유고슬라비아)
2000.9.2
(vs 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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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릴리앙_튀랑_(1).jpg
이름 릴리앙 튀랑
Lilian Thuram
본명 뤼디 릴리앙 튀람윌리앵[3]
Ruddy Lilian Thuram-Ulien
출생 1972년 1월 1일 ([age(1972-01-01)]세)
프랑스 과들루프 푸앵타피트르
국적 [[프랑스|]] | 파일:과들루프 비공식 기.svg 과들루프
신체 185cm, 80kg[4]
직업 축구선수 ( 수비수[5] / 은퇴)
큐레이터
소속 팀 AS 모나코 FC (1991~1996)
파르마 칼초 (1996~2001)
유벤투스 FC (2001~2006)
FC 바르셀로나 (2006~2008)
국가대표 파일: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42경기[6] 2골[7] ( 프랑스 / 1994~2008)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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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들 마르퀴스 튀랑, 케프랑 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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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서훈
6. 튀랑에 대한 말말말7. 기타

[clearfix]

1. 개요



릴리앙 튀랑은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 라이트백이었다. 1998년 월드컵 유로 2000에서 조국 프랑스의 우승에 기여한 수비수이다. 선수 시절 피지컬, 체력, 스피드, 태클, 압박 수비뿐만 아니라 점프력을 기반으로 한 공중 장악 능력도 뛰어나며 기복도 없어서 무결점의 짐승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프랑스 아트사커를 든든히 받쳐주어 개인으로서도 팀으로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카리브해에 있는 과들루프 섬에서 태어난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걷는 대신 축구선수가 되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정부로 일하시는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 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고 모나코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1부 리그 입성의 문턱까지 갔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고 축구인생을 접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중앙수비수로 다시 뛰게 된 그를 아르센 벵거 감독은 신뢰했고, 모나코 관중들의 야유를 받던 그를 중용하였다. 그리고 그의 실력이 성장함에 따라 입지도 점점 탄탄해져 갔다.

1996년까지는 거의 후보로 지냈다. 그러나 96년 AC 파르마로 이적한 그는 파비오 칸나바로를 팀 동료로서 만나게 되고 칸나바로-튀랑 라인은 공격수들을 씹어먹으며 파르마를 리그 2위로 올려놓는다. 이후 몇 년간 소위 '세리에 7공주 시대'에 파르마는 7공주의 멤버중 하나로 유벤투스 FC, AC 밀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AS 로마, SS 라치오, ACF 피오렌티나와 어깨를 겨루게 되는데 이럴수 있었던 배경엔 이 칸나바로-튀랑 라인과 최고의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이 버티고 있던 덕이 컸다.

2001년 유벤투스 FC로 이적하면서 2,200만 파운드의 수비수 이적료 기록을 세운다.[8][9] 그리고 튀랑과 더불어 파벨 네드베드 등의 활약으로 유벤투스는 리그 우승을 하였고, 이것은 그의 첫 리그 우승이다.

2002년에도 좋은 활약으로 유벤투스가 리그 2연패를 기록하는 데 공헌하였다.

2005년 유벤투스는 파비오 칸나바로를 영입하여 칸나바로-튀랑의 센터백 라인에 골키퍼 부폰(...)이라는 ㅎㄷㄷ한 수비진을 구축해[10] 팀 실점이 절반으로 줄고 리그를 또 한번 우승하고 만다. 그리고 06년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준우승에 기여하며 제 2의 전성기를 가진다.

이후 그 유명한 칼초폴리 사건으로 유벤투스가 2부 리그로 강등당하면서 튀랑은 유벤투스를 떠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하지만 많은 나이로 인한 노쇠화와 더불어 점점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주로 백업 출장에만 머물렀으며 2008년 계약 만료로 방출되자 고국의 파리 생제르맹 FC로 이적하게 된다.

그러나 메디컬 테스트 도중 심장 이상이 발견되어 계약이 전면 취소되었고, 튀랑은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11]

2.2. 국가대표 경력

파일:attachment/624429_w2.jpg

1994년 프랑스 국가대표로 데뷔하고 1996년까지는 동향 선배인 조슬랭 앙글로마와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쳤다.[12] 앙글로마가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튀랑이 파르마로 이적한 이후부터는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1997년 프랑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국가대표 주전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대망의 1998년, 비셴테 리사라수 - 마르셀 드사이 - 로랑 블랑 - 릴리앙 튀랑의 일명 철의 4백의 수비라인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라인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월드컵 우승으로 올려놓게 된다.

또한 이 월드컵에서 튀랑은 인생 경기를 펼친다. 바로 4강전 크로아티아와의 경기. 이 월드컵 득점왕을 차지했던 괴물 공격수 다보르 슈케르[13]를 상대로 맞이한 튀랑은 수비에서 실책을 범했고,[14][15]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슈케르는 바로 프랑스 골문을 뒤흔든다. 1-0으로 뒤지게 된 프랑스는 공격에 힘을 더 싣게 되는데, 선제골의 빌미를 제공했던 튀랑이 오버래핑을 과감하게 하는가 싶더니, 상대편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공을 빼앗아 실점한지 1분만에 동점골을 넣는다. 이때까지 그는 국가대표로서 단 한 골도 넣어본 적이 없던 선수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는 경기종료 20분 전 상대 키퍼 라디치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멋들어진 왼발 감아차기 슛으로 역전골까지 넣었다. 당연히 그는 프랑스의 영웅이 되었다.[16] 그리고 프랑스는 2-1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고, 결승전에서도 튀랑은 그 호나우두를 철저히 지워버리며 3대0 대승으로 월드컵 첫 우승을 차지한다. 여담으로 그의 국가대표 기록은 142경기 2골이다. 그야말로 국가대표로 뛰면서 득점을 기록한 유일한 경기. 심지어 해당 경기 실점에까지 관여한 문자 그대로 완벽한 원맨쇼(...). 월드컵 내의 활약을 인정받아 브론즈볼도 수상한다.[17]

프랑스는 UEFA 유로 2000에서도 우승하였으나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프랑스가 조별 예선 탈락하며 흑역사를 남겼다.[18]

하지만 티에리 앙리의 결승전 골든 골을 어시스트하며 200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우승 등의 기록을 남긴다.

이후 UEFA 유로 2004에도 출전했지만 프랑스는 8강에서 그리스에게 패해 탈락하였고, 대회 종료 이후 튀랑은 지네딘 지단, 클로드 마켈렐레와 함께 국가대표에서 은퇴를 결정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월드컵 예선에서 어려움을 겪자 1년 만에 지네딘 지단, 클로드 마켈렐레와 함께 국가대표 복귀를 선언, 월드컵에 진출하게 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베테랑들의 역량을 총동원해 프랑스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19]

월드컵 종료 후 지단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튀랑은 도메네크 감독의 요청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더 이어가게 된다. UEFA 유로 2008에도 출전, 주장이던 비에이라가 부상으로 빠지자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뛰었지만 정작 프랑스는 대회 최고의 공격력을 보여 준 네덜란드의 기세에 맥없이 무너지면서 1-4 완패를 당했고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맛봤다. 튀랑은 대회 종료 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

튀랑은 A매치 총 142경기에 출장하여 현재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 중이다.[20]

3. 은퇴 이후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자행된 식민지의 유색인종을 납치해 본국 박물관에 전시했던 행태를 알게 되어 크게 충격을 받고, 이러한 인간 전시의 야만적 역사를 폭로하는 박람회를 열었던 것. 깨어 있는 축구선수다.[21]

실제로 이것으로 2011년 9월 KBS 역사스페셜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파일:튀랑 역사스페셜.jpg
KBS 역사스페셜에 출연한 튀랑

4. 플레이 스타일



떡대와 체격이 좋은 커맨더+파이터형 수비수였다. 괜히 레블뢰하면 가장 유명한 철의 4백 일원이 아니다.

철저한 수비를 자랑하듯 압박 수비와 대인 수비가 일품이었고 태클 능력도 뛰어났으며 점프력도 뛰어나 공중 장악 능력도 좋았다. 게다가 수비수치고는 롱패스도 잘했던 그야말로 '무결점'

젊은 시절에는 스피드도 엄청 빨라서 우측면 풀백으로 뛰며 오른쪽을 씹어먹었다. 너무 포스가 엄청나서 당시 라이트백으로 뛸 때 비견되던 선수가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을 꼽을 때 늘 언급되는 카푸였으며 역시 엄청난 실력자인 국대 후배 윌리 사뇰이 튀랑 때문에 2006년에야 국대 주전 라이트백을 소화할 수 있었다.

월드컵 우승 당시 브론즈볼을 수상했을 정도의 활약으로 많은 사람들한테 라이트백으로 뇌리에 남았지만, 정작 본인은 센터백 포지션을 더 좋아했고 클럽에서는 센터백으로 상당히 많이 뛰었다. 대표팀에서 자신이 바라는 포지션에서 뛰지 못한다고 불만을 표시했을 정도였다. 물론 단순히 징징거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센터백으로도 절륜한 실력을 보였다. 당장 튀랑이 유럽 전체에 명성을 얻게 된 계기가 파르마에서 파비오 칸나바로와 센터백을 이루며 파르마의 성공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측 풀백으로 뛴 것은 당시 프랑스 대표팀에서 튀랑말고도 중앙 수비수로 마르셀 드사이, 로랑 블랑이 있었는데 3명 중 프랑스 수비진의 약점인 우측[22]에서 뛸 수 있는 기동력과 체력을 가진 선수가 튀랑이라 레블뢰에서 라이트백으로 뛴 것. 그러면서도 당시 프랑스에 그를 능가하는 라이트백이 없었다. 그야말로 만능 수비수. 수비력 하나만을 놓고 봐도 역대급 임펙트를 보여줬던 선수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대급 선수들을 평가할 때 라이트백과 센터백을 둘 다 잘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역대 베스트 11을 뽑거나 순위를 매기게 되면 수비수나 골키퍼들은 공격수들에 비해 손해를 보게 되므로 포지션에 따라 선수들을 평가하게 되는데 튀랑은 센터백과 라이트백을 둘 다 잘 해서 한쪽에만 넣을 수 없기에 평가가 뭔가 애매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라이트백에 놓을 때 튀랑과 비견되는 선수들이 카푸, , 아우베스, 포크츠 등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들임을 생각하면[23] 대단한 수비수인건 맞다. 그러면서도 센터백에서 평가받을 때도 역대급 센터백으로 평가받는다. 주로 동시대 이탈리아 외계인 수비수로 평가 받던 네스타와 비슷한 반열에 올라갈 수 있는 선수.

정리하자면 당시 센터백으로써도 장신에 속하던 185cm 신장의 엄청난 피지컬을 가진 괴물같은 무결점 센터백. 몸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수비진 전역을 커버하는 미친 활동량, 거친 몸싸움과 반전되는 깔끔한 커팅과 태클, 그러면서도 마치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이 상대 공격수를 계속해서 압박하던 말 그대로 짐승 수비수였다. 게다가 엄청난 주력과 깔끔한 빌드업까지 겸비해 우측 풀백을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수준을 넘어 우측 풀백이 주 포지션인지 헷갈릴 정도의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이며 활약했었던 괴물 수비수였다.

여담으로 한창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어마무시한 포스를 자랑하던 당대 호나우두를 가장 잘 막던 수비수로 평가된다. 많은 최고의 수비수들이 호나우두를 가리키며 했던 말들을 생각해보면, 그런 호나우두가 만날때마다 애먹었던 수비수이니 당시 튀랑의 대인수비력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서훈

6. 튀랑에 대한 말말말

네스타는 대단한 수비수이다. 그러나 튀랑은 우주에서 온 수비수이다.
- 파비오 칸나바로
나는 튀랑과 같은 해 여름 유벤투스에 합류했다.그는 플레이에 힘과 투쟁심이 넘쳤다. 그러면서 또한 우아하기까지 했다.
- 잔루이지 부폰
그는 제가 상대한 수비수 중 가장 까다로운 수비수였으며 무쇠처럼 단단해서 부딪히게 되면 아픈건 저뿐이었습니다.
- 클라렌스 세도르프
파르마와의 경기는 항상 긴장된다. 세계 최고의 수비수들을 상대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검은 흑인 선수가 제일 무섭다. 그는 마치 사나운 날짐승 같다.
- 호나우두
짐승이 파르마에 온 이후로 나는 그 팀과 상대하는 것이 매우 즐겁다. 저번 홈경기에서 나의 완벽한 헤딩을 그가 시저스 킥으로 걷어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것 같다.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유벤투스가 튀랑을 내준다면 나는 튀랑을 얻기 위해 긱스를 내줄 수도 있다.
- 알렉스 퍼거슨
다시 말하지만, 아주 강한 선수. 튀랑은 우리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유벤투스를 할 때 항상 유나이티드를 힘들게 했다. 뒤쪽에서 공을 옮길 때는 정말 날카로웠고 운동도 아주 잘 해 헤더와 몸싸움을 많이 따냈다. 그는 게임을 정말 잘 읽을 수 있었다.
- 라이언 긱스

7. 기타

  • 음치이다. 경기 시작전 라 마르세예즈를 제창할때 자세히 들어 보면 박자도 안맞고 음도 안맞는다. 그럼에도 노래는 무지하게 크게 불러서 눈치채기 쉽다. 위 영상 53초경부터 등장하는 굵고 튀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튀랑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저 경기는 조별리그 3차전인 토고전이었는데 동갑내기였던 지네딘 지단은 경고누적으로 결장하였다. 대신 비에이라가 주장으로 출전하였다.
  • 미셸 플라티니는 "그는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는 축구선수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인권에 관심이 많다. 책도 몇 권 펴냈는데, 인권과 관련한 책[24][25]도 썼다. 평소 생활할 때는 안경을 쓰는데 안경을 쓴 튀랑은 상당히 지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 아들이 2명 있는데, 2명 모두 축구선수다. 장남 마르퀴스 튀랑[26]은 잠재성이 충만하다고 평가받는 축구선수이며, 차남인 케프랑 튀랑[27] 역시 마르퀴스 만큼은 아니지만 릴리앙의 아들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28]


[1] 유로 2008 당시 주장을 맡았다. [2] 8회 수상으로 파올로 말디니, 호베르투 카를루스, 지네딘 지단과 함께 최다 수상 [3] 본인이 스스로 [li.ljɑ̃ ty.ʁam\]이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튀랑'은 아닌 '튀람'이 옳다. 프랑스어 표기법에서 음절말의 철자가 모음+m일 경우에는 비모음으로 실현되지만 외국어에서 유래한 인명이나 지명은 'm' 표기가 /m/으로 난다. Thuram 이외에 프랑스의 사회학자 Émile Durkheim이 이런 경우이다. [4] 선수 시절 체중. 은퇴 후 체중은 정확히 알 수 없다. [5] 센터백, 라이트백 [6]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 [7] 모두 1998 프랑스 월드컵 크로아티아전에서 기록했다. [8] 종전 기록은 1,800만 파운드의 리오 퍼디난드. 재밌게도 튀랑의 이적료 기록을 다시 경신한 선수 역시 리오 퍼디난드였다. [9] 이때 파르마의 팀 동료였던 잔루이지 부폰도 함께 유벤투스로 왔으며 라치오의 파벨 네드베드도 유벤투스로 왔다. 지네딘 지단의 레알 이적료로 이 3명을 산 것. [10]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칸나바로-튀랑 / 부폰 라인은 앞서 파르마에서 먼저 구축된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이들은 ㅎㄷㄷ한 활약을 했다. 파르마와 유벤투스의 나머지 팀 동료들의 실력차를 생각해보면 파르마 때 활약이 더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다. 참고로 이들 셋은 파르마에서 활약했던 시기도 거의 비슷하고(대략 1995/1996~2001/2002정도) 셋다 나중에 유벤투스에서 재회했다.(참고로 부폰/튀랑은 파르마에서 곧바로 유벤투스로 갔지만 칸나바로는 인터밀란을 거쳐서 유벤투스로 갔다.) 2011/12 시즌 에이스였던 지오빈코(물론 유벤투스가 원래 고향팀이긴 했지만)도 유벤투스에게 내줬으니 파르마 팬들은 유벤투스에 대한 감정이 복잡미묘할 듯. [11] 튀랑의 가족들도 심장 이상으로 사망했던 가족력이 있었다. 그나마 말년에 발견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튀랑은 36세까지 뛰었고 트로피 들을만한 거 대부분 다 들어봤으니 미련없이 은퇴했을 것이다. [12] UEFA 유로 1996에서는 튀랑이 주전경쟁에서 조금 더 앞서긴 했다. [13] 여담이지만 튀랑과 슈케르는 둘다 1월 1일생으로 생일이 같다. [14] 실책이라기보단 오프사이드 트랩 구축에 실패한 것. 공을 뺏겼거나 그런 건 아니다. [15] 근데 사실 튀랑이 아니었어도 리자라쥐의 위치 때문에 온사이드였다. [16] 만약 이 경기 직후 대통령 선거를 했다면 튀랑이 대통령으로 뽑혔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17] 튀랑이 매 경기 큰 기복없이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징계로 2경기나 빠진 에이스 지단에게 상을 주기 애매했던 것도 튀랑의 수상에 영향을 주었다. [18] 이 때부터 센터백과 풀백을 번갈아 가며 뛰었고 이 대회 이후부터는 오로지 센터백으로만 뛰었다. [19]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골키퍼이자 유벤투스 동료였던 잔루이지 부폰의 엄청난 활약 덕에 우승이 좌절되고 말았다. [20] 2위이자 현역인 위고 요리스가 2022.3.26 기준 5경기 차이인 137경기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21] 파리서 ‘인간 동물원’ 반성 전시회 참고로, 튀랑의 98 월드컵 대표팀 동료이자 낭트, 삼프도리아,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선수생활을 한 미드필더 크리스티앙 카랑뵈의 조상도 누벨칼레도니에서 프랑스로 납치되어 인간 전시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카랑뵈는 레블뢰에서 유일하게 라 마르세예즈를 제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22] 좌측에는 프랑스 올타임 레프트백이자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던 풀백인 비셴테 리사라수가 있었다. [23] 물론 저들보다 살짝 아래로 평가 받기도 하지만 포크츠와 함께 수비력만큼은 저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손꼽힌다. 튀랑과 포크츠를 제외한 역대급 풀백들은 모두 수비력도 수비력이지만 공격력을 높이 평가받아 그 반열에 들어선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24] Pour L'Egalite (For the Equality, 우리말로는 '평등에 대하여') 이외에도 몇 권 있다. 다만 번역본은 없는 듯. [25] 아동용 도서인 Tous Superheros- 우리는 슈퍼 히어로즈, 차별 없는 세상의 주인공(8세 이상) 은 정발 2017.07.20 번역본이 정발되었다, [26] 포지션은 공격수 [27] 포지션은 미드필더 [28] 참고로 마르퀴스는 갱강 시절 유벤투스를 떠나 리그 1 PSG에 둥지를 튼 잔루이지 부폰과 경기 종료 직후 유니폼을 교환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유베에서 뛰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부폰이랑 자주 보던 사이였는데 어느새 프로 선수가 되어 아빠 친구랑 유니폼을 교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