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01:08:33

중무현

{{{#!wiki style="margin:-12px -0px" <tablebordercolor=#ee1c25> }}}
{{{#!wiki style="color: #ffff00;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rowcolor=#fff> 지급행정구
지급시 17
현급행정구
시할구 54, 현급시 21, 82, 성직할현급행정구 1
정저우시
성도
郑州市
중위안구
中原区
얼치구
二七区
관청후이족구
管城回族区
진수이구
金水区
상제구
上街区
후이지구
惠济区
궁이시
巩义市
싱양시
荥阳市
신미시
新密市
신정시
新郑市
덩펑시
登封市
중무현
中牟县
카이펑시
开封市
구러우구
鼓楼区
룽팅구
龙亭区
순허후이족구
顺河回族区
위왕타이구
禹王台区
샹푸구
祥符区
치현
杞县
퉁쉬현
通许县
웨이스현
尉氏县
란카오현
兰考县
뤄양시
洛阳市
뤄룽구
洛龙区
라오청구
老城区
시궁구
西工区
찬허후이족구
瀍河回族区
젠시구
涧西区
옌스구
偃师区
멍진구
孟津区
신안현
新安县
롼촨현
栾川县
쑹현
嵩县
루양현
汝阳县
이양현
宜阳县
뤄닝현
洛宁县
이촨현
伊川县
핑딩산시
平顶山市
신화구
新华区
웨이둥구
卫东区
스룽구
石龙区
잔허구
湛河区
우강시
舞钢市
루저우시
汝州市
바오펑현
宝丰县
예현
叶县
루산현
鲁山县
자현
郏县
안양시
安阳市
베이관구
北关区
원펑구
文峰区
인두구
殷都区
룽안구
龙安区
린저우시
林州市
안양현
安阳县
탕인현
汤阴县
화현
滑县
네이황현
内黄县
허비시
鹤壁市
치빈구
淇滨区
허산구
鹤山区
산청구
山城区
쉰현
浚县
치현
淇县
신샹시
新乡市
웨이빈구
卫滨区
훙치구
红旗区
펑취안구
凤泉区
무예구
牧野区
웨이후이시
卫辉市
후이셴시
辉县市
창위안현
长垣市
신샹현
新乡县
훠자현
获嘉县
위안양현
原阳县
옌진현
延津县
펑추현
封丘县
자오쭤시
焦作市
제팡구
解放区
중잔구
中站区
마춘구
马村区
산양구
山阳区
친양시
沁阳市
멍저우시
孟州市
슈우현
修武县
보아이현
博爱县
우즈현
武陟县
원현
温县
푸양시
濮阳市
화룽구
华龙区
칭펑현
清丰县
난러현
南乐县
판현
范县
타이첸현
台前县
푸양현
濮阳县
쉬창시
许昌市
웨이두구
魏都区
젠안구
建安区
위저우시
禹州市
창거시
长葛市
옌링현
鄢陵县
샹청현
襄城县
뤄허시
漯河市
옌청구
郾城区
위안후이구
源汇区
사오링구
召陵区
우양현
舞阳县
린잉현
临颍县
싼먼샤시
三门峡市
후빈구
湖滨区
산저우구
陕州区
이마시
义马市
링바오시
灵宝市
몐츠현
渑池县
루스현
卢氏县
난양시
南阳市
워룽구
卧龙区
완청구
宛城区
덩저우시
邓州市
난자오현
南召县
팡청현
方城县
시샤현
西峡县
전핑현
镇平县
네이샹현
内乡县
시촨현
淅川县
서치현
社旗县
탕허현
唐河县
신예현
新野县
퉁바이현
桐柏县
상추시
商丘市
량위안구
梁园区
쑤이양구
睢阳区
융청시
永城市
민취안현
民权县
닝링현
宁陵县
저청현
柘城县
위청현
虞城县
샤이현
夏邑县
신양시
信阳市
핑차오구
平桥区
스허구
浉河区
뤄산현
罗山县
광산현
光山县
신현
新县
상청현
商城县
구스현
固始县
황촨현
潢川县
화이빈현
淮滨县
시현
息县
저우커우시
周口市
촨후이구
川汇区
화이양현
淮阳区
샹청시
项城市
푸거우현
扶沟县
시화현
西华县
상수이현
商水县
선추현
沈丘县
단청현
郸城县
타이캉현
太康县
루이현
鹿邑县
주마뎬시
驻马店市
이청구
驿城区
시핑현
西平县
상차이현
上蔡县
핑위현
平舆县
정양현
正阳县
췌산현
确山县
비양현
泌阳县
루난현
汝南县
쑤이핑현
遂平县
신차이현
新蔡县
성직할
현급행정구
지위안시
济源市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background-color: rgba(255, 0, 0, .2)"
색인: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padding: 3px; text-align: center"
}}}}}}}}}


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2.3. 중근세2.4. 근현대

1. 개요

中牟
영어 Zhongmu 
한국 한자음 : 중모

허난성 정저우시의 현. 정저우와 카이펑 사이의, 쟈루강 하안의 평야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40만명으로, 현 치고 상당히 많다. 중원의 한복판에 위치하여 역사가 깊고, 삼국지 관도대전이 벌어진 곳이다. 중모(中牟) 지명은 진나라 시절부터 2천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송대 이후 천년 가까이 카이펑 관할이다가 80년대에 정저우 관할로 이관되었다.

2. 역사

기원전 6000년의 신석기 유적이 발굴되었고, 주나라 성립 후 동성 제후국인 관나라 관할에 놓였다. 동시에 왕후장상의 사냥터로 쓰였다. 춘추시대에는 정나라에 속하였고, 청읍 (清邑)이라 불렸다. 춘추시대 후반, 진-초 양국에 시달리던 정나라는 공물 수요를 맞추기 위해 노비들을 혹사시켰다. 그 결과, 기원전 522년 정나라 노비들이 청읍 동북쪽의 환포택에 모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정정공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는 역사상 첫 노예 반란으로, 중국에서는 하푸쩌기의 (萑苻澤起义)라 부른다. 한편 청읍 인근 관숙읍 (莞叔邑)은 조나라 설립 이전 조헌자 ( 조열후의 부친)가 근거지로 삼았던 곳으로, 삼가분진으로 조나라의 영역이 하북으로 확정된 후 전국시대에는 일대가 모두 위나라에 속했다.

2.1. 고대

진나라 시기 삼천군 (三川郡) 산하 중모현 (中牟縣)이 설치되었다. 기원전 207년, 유방이 동남쪽의 곡우취에서 진나라 장수 양웅을 격파하며 함양 진군을 준비했다. 전한 건국 직후인 기원전 202년, 현 시가지 동쪽에 중모현성이 축소되었다. 한나라 시기 중모현은 하남군 (河南郡)에 속했고, 기원전 195년 중모후국 (中牟侯國)이 설치되었다가 기원전 112년 재차 현이 되었다. 후한 말엽인 서기 200년에는 동북쪽의 평원 (현 관두차오촌) 일대에서 관도대전이 벌어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 동탁 암살에 실패한 후 중모현으로 도주하여 당시 현령이던 진궁과 함께하게 되는 것으로 나오는데, 역사적 근거는 없다. 조위 시기에는 조조의 손자이자 조창의 아들 조해가 223~24년 및 242~43년에 중모왕으로 봉해져 일시적으로 중모국 (中牟國)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2.2. 중세

서진~ 유송 시기 중모현은 사주 (司州) 형양군 (滎陽郡)에 속했고, 북위가 정복한 후 중모현은 폐지되어 북예주 (北豫州) 형양군 무현 (武县)에 소속되었다. 그러다 500년에 중모현이 복구되었고, 534년 동위 설립과 함께 신설된 광무군 (廣武郡)의 치소가 되었다. 동시에 인근에 곡량현 (曲梁縣)이 설치되었으나 북제 시기인 556년에 폐지되었다. 566년에는 중모현의 치소가 포전성 (圃田城)으로 옮겨졌다. 수나라 시기인 581년, 중모현은 피휘를 위해 내모현 (内牟縣)으로 개칭되었다. 596년 내모현에서 관성현 (管城縣), 내성현 (郲城縣)이 분리 및 신설되었고 후자는 중모고성에 설치되었다. 598년 내무현은 포전현 (圃田縣)으로 개칭되었고, 예주 (豫州) 형양군에 속했다. 606년 내성현이 폐지되고, 포전현의 치소가 중모고성으로 이전되었다. 당나라 건국 직후인 618년, 포전현은 다시 중모현으로 돌아왔다. 620년, 중모현은 중주 (牟州)로 개편되었으나 이듬해 폐지되고 관주 (管州)를 거쳐 627년 변주 (汴州)에 귀속되었다. 662년 중모현은 정주 (鄭州)로 이관되었다.

2.3. 중근세

후량 시기 동경개봉부 (東京開封府)에 직속되었다가 후당 시기 재차 정주 관할이 되었고, 후진~ 후주 시기 변주 관할이었다. 북송 시기에는 수도권인 경기로 (京畿路) 개봉부에, 금나라 시기에는 남경로 (南京路) 개봉부에 속했다. 원나라 시기에는 하남강북행성 (河南江北行省) 변량로 (汴梁路)에, 명청 대에는 하남성 개봉부에 속했다.

2.4. 근현대

중화민국기 중모현은 하남성 예동도 (豫東道), 하남성 제2 (때로는 제1) 행정독찰구에 속했다. 국공내전기에는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47년 10월에 인민해방군이 진주했고, 이듬해 중공 위안쑤 (豫皖苏) 제5 행정구에 편성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기에는 첸류전구 (陈留专区)에 속했고, 1952년 첸류전구를 흡수한 카이펑전구 (开封专区)로 이관되었다.[1] 1983년, 중무현은 정저우시로 이관되어 현재에 이른다. 2004년 10월, 관내의 랑청강진에서 후이족 한족 주민들 간의 충돌이 있었다.


[1] 정확히는 흡수 당시에는 정저우 전구였다 곧 개명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