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을 확인하세요.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시대 | ||||||
{{{#!wiki style="" | }}} | ||||||
{{{#!wiki style="" |
|||||||
}}} | |||||||
{{{#!wiki style="" | }}} | ||||||
가마쿠라 시대 | {{{#!wiki style="" | }}} | |||||
무로마치 시대 | {{{#!wiki style="" | ||||||
}}} | |||||||
{{{#!wiki style="" | }}} | ||||||
}}}}}}}}} |
1. 개요
[ruby(縄文時代, ruby=じょうもんじだい)]
일본의 신석기 시대에서 기원전 15세기~ 기원전 10세기(혹은 기원전 3세기)를 지칭하는 구분이다. 구석기 시대와 조몬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토기의 출현, 수혈 주거의 보급, 패총의 형식 등을 들 수 있다. 조몬 시대의 끝은 지역에 따라 다르나 기본적으로는 야요이 시대의 등장과 함께 막을 내린 것으로 본다. 경우에 따라 기원전 1만 3천 년~기원전 300년이라고 할 때도 있다.
2. 상세
부산 일대에서 출토된 조몬 토기 조각. (국립중앙박물관 소재) |
조몬 시대의 '조몬'은 조몬 시대의 토기를 장식한 새끼줄 문양인 '승문'(일본말로 조몬)에서 나온 말인데 한국의 빗살무늬 토기와 매치되는 유물들로, 조몬 토기의 경우 한반도 후기 신석기 토기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일본 각지의 신석기 유적에는 이러한 승문 문양의 토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조몬이 발음이 じょうもん이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하고 죠몽이라 쓰는 경우도 있다.
기원전 1만 년 즈음 해수면 상승 때문에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때 고립되어 일본에 정착한 사람들이 문화를 이루고 이를 조몬 문화라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내륙 깊숙이 파고든 해안가, 즉 후미가 많아졌는데 이 때문에 조몬인들의 어업활동이 증가하여 자연스레 패총을 비롯한 수산업과 관련된 유적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또한 침엽수림이 활엽수림으로 대체되면서 맷돼지, 사슴을 비롯한 중소형 동물들이 번창하기 시작, 사냥 역시 발달하였고[1] 활엽수림의 도토리, 밤 등을 채취, 재배해서 먹었는데 이를 위해 토기가 발전했다. 또한 이러한 열매를 갈아 과자로 만들어 먹거나[2] 연혈토광이라 불리는 훈제, 집석이라 불리는 찜 요리를 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거주 문화로는 수혈주거지라 해서 땅을 파서 5~6명 단위의 가족 생활을 했다. 3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큰 주거지도 발견되었는데 학계에선 이를 회의장으로 추측하고 있다. 장례 문화로는 토광묘, 굴장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주목할 만한 것으론 집단묘로 추정되는 환상열석 형태의 무덤이 있는데 큐슈를 제외한 일본 전역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아키타의 대탕환상열석이 유명하며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 집을 재활용한 폐옥묘 장례가 있었는데 이는 급사한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한 방식으로 추정된다.
조몬인들이 큰 나무로 선박을 만들어서 어업이나 여행 등에 이용하였다는 증거가 남아있다.
조몬인들은 금속 제련 기술이 없었고, 후에 유입된 도래인이 청동기와 철기 제련 기술을 전파하였다. 그 전에는 흑요석, 옥, 다른 종류의 나무 등을 대신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도래인이 유입되기 전에는 농사를 짓는 기술도 없었다.
종교는 초기 신토를 믿었다고 하며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에 바탕을 두었다고 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이누 종교와 연관지어보려고 하지만 기록이 많지 않은 관계로 확실한 건 없다. 최근에는 신사나 제사 의식에 있어서 연속성을 보이는 고고학적 유물들을 바탕으로 야요이 및 고훈 시대 이후의 신토와 조몬인들의 신토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적으로 후지산에 대한 신앙도 조몬 시대의 제사 유물이 발견되어 이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3. 조몬 시대의 대표적 유물, 유적들
3.1. 패총
도쿄[3] 치바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는데 후쿠이현 도리하마 유적[4]과 아오모리 현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이 유명하다.이 중에 산나이마루야마 유적은 조몬인들의 정주생활 흔적이 발굴됨으로 일본의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패총 유적에선 당시 조몬인들의 사냥, 어업 활동의 흔적과 더불어 조몬인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몸상태가 어땠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3.2. 조몬 토우
흔히 일본식 토우하면 떠오르는 이 토우가 바로 조몬시대 토우다. 얼굴에 차광기(흔히 ' 고글' 이라고 부른 것)를 쓴 것 같은 모습 때문에 '차광기 토우'(샤코우키 도구우) 라고도 부른다. 독특한 외관 때문에 일본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패러디된다. 예를 들어 디지몬 시리즈의 토우몬이나 뱀파이어 시리즈의 포보스, 무적초인 점보트3의 가이조쿠, 유희왕 듀얼몬스터즈/도마 편의 오리컬코스 슈노로스, 포켓몬스터의 점토도리, 여신전생 시리즈의 아라하바키 등.
일본 전역에서 1만 5천 개 정도 출토되었으며 조몬 시대 조기에서 만기에 이르기까지 차차 정교해지는 것이 보인다. 위의 사진은 조몬시대 만기의 토우. 당시 조몬인들은 자신을 상징하는 토우를 만들고 자신이 아프면 토우에서 아픈 부분을 찾아 부쉈기 때문에 온전한 형태의 토우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 형태뿐만 아닌 조개, 임산부, 곰, 원숭이를 묘사한 토우도 존재한다.
그 외에 귀걸이, 칠공예, 어린아이의 발을 찍은 점토 유적 등이 출토되었다.
[1]
일본인들이 당시 먹은 고기의 과반수가 멧돼지와 사슴이다. 단 정주생활의 흔적이 발견된 아오모리 지역에선 날다람쥐나 토끼같은 소형 동물을 주식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2]
간혹 다진 고기를 섞어
미트볼 비슷하게 만든 것도 발견된 바 있다. 현대 일본에서는 이를 '조몬 쿠키'라고 부르며, 재현품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다.
[3]
전체 패총의 25%가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4]
조몬 시대 초창기~전기의 유적으로 6천 년 전의 패총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