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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 박형준 | 홍준표 | 유정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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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 이장우 | 김두겸 | 최민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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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 김진태 | 김영환 | 김태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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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영 | 김영록 | 이철우 | 박완수 | ||||||
제주 | |||||||||
오영훈 | |||||||||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임기: 2022년 7월 1일 ~ 2026년 6월 30일(예정) |
|||||||||
1960-1961 · 민선 1기 · 민선 2기 · 민선 3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초대 박경훈 |
제2대 유해진 |
제3대 임관호 |
제4대 김용하 |
제5대 김충희 |
제6대 최승만 |
제7대 길성운 |
제8대 전인홍 |
제9대 양제박 |
제10대 김선옥 |
|
제11대 강성익 |
제12대 김영관 |
제13대 강우준 |
제14대 정우식 |
제15대 구자춘 |
|
제16대 권용식 |
제17대 이승택 |
제18대 장일훈 |
제19대 강신익 |
제20대 박상렬 |
|
제21대 이규이 |
제22대 최재영 |
제23대 장병구 |
제24대 이창수 |
제25대 이군보 |
|
제26대 홍영기 |
제27·28대
우근민
|
제29대 신구범 |
제30대 김문탁 |
제31대 신구범 |
|
제32·33대
우근민
|
제34·35대
김태환
|
제36대 우근민 |
제37·38대
원희룡
|
제39대 오영훈 |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권한대행 | }}}}}}}}} |
<colcolor=#fff>
'''제주특별자치도지사 濟州特別自治道知事 Governor of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
|
|
현직 | <colbgcolor=#fff,#191919> 오영훈 / 제39대 (민선 8기) |
취임일 | 2022년 7월 1일 |
정당 |
|
홈페이지 |
1. 개요2. 역대 제주도지사 및 제주특별자치도지사3. 역대 선거 결과
3.1.
1960년 지방선거3.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3.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3.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3.5.
2004년 재보궐선거3.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3.7.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3.8.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3.9.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3.10.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3.11.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 역대 정당별 전적5. 역대 후보별 순위6. 도정 구호7. 여담8. 관련 문서[clearfix]
1. 개요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근무지는 제주시 문연로 6에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청이다.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특별자치도의 지사로서 다른 광역자치단체장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 산하 행정시[1]의 시장이 민선직이 아니라 도지사에 의한 관선직(임명직)인 것이다. 산하 시장들이 독립된 기관장인 기초자치단체장이 아니라 도지사가 임명권을 가진 산하 기관장인만큼 실질적으로 기초자치단체장 권한까지 모두 가진 광역자치단체장이라고 볼 수 있다.[2] 또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에 한해서는 대통령령에 준할만큼의 영향력을 가진다.
2. 역대 제주도지사 및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역대 도지사의 명단은 제주특별자치도청의 분류기준에 따른다.2.1. 제주도사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임명자 | 비고 |
<rowcolor=white> 일제강점기 제주도사 | ||||
초대 | 이마무라 도모 (今村 革丙) | 1915년 1월 1일 ~ 1919년 5월 30일 | 조선총독부 | [3] |
2대 | 콘도 신지로 (近藤 晉二朗) | 1919년 5월 30일 ~ 1923년 5월 24일 | ||
3대 | 마에다 젠지(前田 善次) | 1923년 5월 24일 ~ 1928년 7월 21일 | [겸직] | |
4대 | 스츠키 헤이사쿠(鈴木 兵作) | 1928년 7월 21일 ~ 1929년 12월 7일 | [겸직] | |
5대 | 다나카 한지(田中 半治) | 1929년 12월 8일 ~ 1931년 12월 11일 | [겸직] | |
6대 | 다구치 테이키(田口 禎禧) | 1931년 12월 11일 ~ 1935년 9월 6일 | ||
7대 | 후루카와 사다키치(古川 貞吉) | 1935년 9월 14일 ~ 1940년 8월 31일 | ||
8대 | 사카모토 니고이치(坂本 二五一) | 1940년 8월 31일 ~ 1943년 9월 30일 | [겸직] | |
9대 | 오노 토라이치(小野 虎市) | 1943년 9월 30일 ~ 1945년 9월 10일 | [8] | |
<rowcolor=white> 미군정기 제주도사 | ||||
초대 | 안세훈(安世勳) | 1945년 9월 10일 ~ 1945년 9월 22일 | 미군정 | [9] |
권한대행 | 김문희(金汶熙) | 1945년 9월 10일 ~ 1945년 10월 28일 | ||
2대 | 셔먼 스타우트(Thurman A. Stout) | 1945년 10월 28일 ~ 1946년 3월 28일 | [10] | |
직무대리 | 김문희(金汶熙) | 1945년 10월 28일 ~ 1945년 11월 8일 | ||
3대 | 박경훈 (朴景勳) | 1946년 3월 28일 ~ 1946년 7월 31일 | [11] | |
<rowcolor=white> 1946년 8월 1일 제주도(濟州道) 설치 |
2.2. 관선 1차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2]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초대 | 박경훈 (朴景勳) | 1946년 8월 ~ 1947년 3월 20일 | 미군정 | |
2대 | 유해진 (柳海辰) | 1947년 4월 13일 ~ 1948년 5월 | ||
3대 | 임관호 (任琯鎬) | 1948년 5월 28일 ~ 1949년 4월 21일 | [13] | |
4대 | 김용하 (金容河) | 1949년 4월 21일 ~ 1949년 11월 15일 | 이승만 정부 | [14] |
5대 | 김충희 (金忠熙) | 1949년 11월 15일 ~ 1951년 8월 | ||
6대 | 최승만 (崔承萬) | 1951년 8월 ~ 1953년 11월 23일 | ||
7대 | 길성운 (吉聖運) | 1953년 11월 23일 ~ 1959년 5월 30일 | ||
8대 | 전인홍 (全仁洪) | 1959년 5월 30일 ~ 1960년 4월 30일 | ||
9대 | 양제박 (梁濟博) | 1960년 5월 12일 ~ 1960년 10월 7일 | 허정 내각 | |
10대 | 김선옥 (金善玉) | 1960년 10월 7일 ~ 1960년 12월 30일 | 장면 내각 |
2.3. 민선 1차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5] | 비고 |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 ||||
11대 | 강성익 (康性益) | 1960년 12월 31일 ~ 1961년 5월 24일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4. 관선 2차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6] | 비고 |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 ||||
12대 | 김영관 (金榮寬) | 1961년 5월 24일 ~ 1963년 12월 17일 | 국가재건최고회의 | [17] |
13대 | 강우준 (康祐俊) | 1963년 12월 19일 ~ 1966년 1월 25일 | 박정희 정부 | |
14대 | 정우식 (鄭雨湜) | 1966년 1월 29일 ~ 1968년 2월 22일 | ||
15대 | 구자춘 (具滋春) | 1968년 2월 22일 ~ 1969년 10월 25일 | ||
16대 | 권용식 (權容湜) | 1969년 10월 25일 ~ 1971년 6월 11일 | ||
17대 | 이승택 (李昇澤) | 1971년 6월 11일 ~ 1976년 1월 12일 | ||
18대 | 장일훈 (張日勲) | 1976년 1월 12일 ~ 1978년 9월 11일 | ||
19대 | 강신익 (姜信翼) | 1978년 9월 11일 ~ 1980년 1월 17일 | ||
20대 | 박상렬 (朴商烈) | 1980년 1월 17일 ~ 1980년 7월 16일 | 최규하 정부 | |
21대 | 이규이 (李圭貳) | 1980년 7월 16일 ~ 1982년 1월 5일 | ||
22대 | 최재영 (崔在榮) | 1982년 1월 5일 ~ 1984년 10월 10일 | 전두환 정부 | |
23대 | 장병구 (蔣炳九) | 1984년 10월 10일 ~ 1987년 10월 21일 | ||
24대 | 이창수 (李昌洙) | 1987년 10월 22일 ~ 1988년 5월 19일 | ||
25대 | 이군보 (李君普) | 1988년 5월 19일 ~ 1989년 12월 13일 | 노태우 정부 | |
26대 | 홍영기 (洪瑛基) | 1989년 12월 13일 ~ 1991년 7월 29일 | ||
27대 | 우근민 (禹瑾敏) | 1991년 8월 1일 ~ 1993년 3월 3일 | ||
28대 | 1993년 3월 4일 ~ 1993년 12월 27일 | 김영삼 정부 | ||
29대 | 신구범 (愼久範) | 1993년 12월 27일 ~ 1995년 3월 28일 | ||
30대 | 김문탁 (金文鐸) | 1995년 3월 29일 ~ 1995년 6월 30일 |
2.5. 민선 2차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18] | 출신지 | 비고 |
<rowcolor=white> 제주도지사 민선 (선출직) | |||||
31대 | 신구범 (愼久範) |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제주 제주시[19] | |
32대 | 우근민 (禹瑾敏)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새정치국민회의| |
[20] | |
33대 | 2002년 7월 1일 ~ 2004년 4월 27일 |
[[새천년민주당| |
[21] | ||
권한대행 | 권영철 (權寧喆) | 2004년 4월 28일 ~ 2004년 6월 5일 | 행정부지사 | 경기 안성 | |
34대 | 김태환 (金泰煥) | 2004년 6월 6일 ~ 2006년 5월 8일 |
|
제주 제주시[22] | [23][24] |
권한대행 | 김한욱 (金漢昱) | 2006년 5월 9일 ~ 2006년 6월 30일 | 행정부지사 | 제주 서귀포 | |
<rowcolor=white>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민선 (선출직) | |||||
35대 | 김태환 (金泰煥)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제주 제주시 | |
36대 | 우근민 (禹瑾敏)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25] | ||
37대 | 원희룡 (元喜龍) |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
[[새누리당| |
제주 서귀포[26] | [27] |
38대 | 2018년 7월 1일 ~ 2021년 8월 11일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8][29] | ||
권한대행 | 구만섭 (丘萬燮) | 2021년 8월 12일 ~ 2022년 6월 30일 | 행정부지사 | 충남 서천 | |
39대 | 오영훈 (吳怜勳) | 2022년 7월 1일 ~ 현재 |
|
제주 서귀포[30] |
3. 역대 선거 결과
역대 민선 제주도지사 | ||||||
1960 | 1995 | 1998 | 2002 | 2004 | ||
무소속
|
한나라당
|
|||||
강성익 | 신구범 | 우근민 | 김태환 | |||
역대 민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2006 | 2010 | 2014 | 2018 | 2022 | ||
무소속
|
새누리당
|
무소속
|
||||
김태환 | 우근민 | 원희룡 | 오영훈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주요 후보 득표율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분 | 주요 후보 득표율 | ||||
1960년 |
1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강성익 26.62%2위: 김선옥 25.21% 3위: [[신민당(1960년)| 4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김영진 22.18%
|
|||||
1995년 |
1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신구범 40.64%2위: [[민주자유당| 3위: 강보성 24.27% |
|||||
1998년 |
1위: [[새정치국민회의| 2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신구범 30.78%3위: 현임종 16.45% |
|||||
2002년 |
1위: [[새천년민주당| 2위: 신구범 45.41% |
|||||
2004년 |
1위: 김태환 56.00% 2위: [[열린우리당| |
|||||
2006년 |
1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김태환 42.73%2위: 현명관 41.10% 3위: [[열린우리당| |
|||||
2010년 |
1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우근민 41.40%2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현명관 40.55%3위: [[민주당(2008년)| |
|||||
2014년 |
1위: [[새누리당| 2위: [[새정치민주연합| |
|||||
2018년 |
1위: [[무소속(정치)| 무소속 ]]
원희룡 51.72%2위: 문대림 40.01% |
|||||
2022년 |
1위: 오영훈 55.14% 2위: 허향진 39.48% |
}}}}}}}}} |
3.1. 1960년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양남전(梁南躔) | 19,949 | 3위 |
[[신민당(1960년)| |
22.43% | 낙선 | |
2 | 김선옥(金善玉) | 22,427 | 2위 |
|
25.21% | 낙선 | |
3 | 양제박(梁濟博) | 3,166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56% | 낙선 | |
4 | 강성익(康性益) | 23,673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6.62% | 당선 | |
5 | 김영진(金榮珍) | 19,731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2.1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6,804 |
투표율 30.78% |
투표 수 | 88,946 | ||
무효표 수 | - |
3.2.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우근민(禹瑾敏) | 89,000 | 2위 |
[[민주자유당| |
32.53% | 낙선 | |
2 | 강보성(姜普性) | 66,406 | 3위 |
|
24.27% | 낙선 | |
3 | 신구범(愼久範) | 111,205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0.64% | 당선 | |
4 | 신두완(申斗完) | 6,961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5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48,191 |
투표율 80.47% |
투표 수 | 280,197 | ||
무효표 수 | 6,625 |
3.3.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현임종(玄林鍾) | 43,559 | 3위 |
|
16.45% | 낙선 | |
2 | 우근민(禹瑾敏) | 139,695 | 1위 |
[[새정치국민회의| |
52.76% | 당선 | |
4 | 신구범(愼久範) | 81,491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0.7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65,121 |
투표율 73.67% |
투표 수 | 268,984 | ||
무효표 수 | 4,239 |
3.4.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신구범(愼久範) | 119,502 | 2위 |
|
45.41% | 낙선 | |
2 | 우근민(禹瑾敏) | 135,283 | 1위 |
[[새천년민주당| |
51.40% | 당선 | |
3 | 신두완(申斗完) | 8,373 | 3위 |
[[민주국민당(2000년)| |
3.1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87,982 |
투표율 68.94% |
투표 수 | 267,479 | ||
무효표 수 | 4,321 |
3.5. 2004년 재보궐선거
제주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태환(金泰煥) | 108,853 | 1위 |
|
56.00% | 당선 | |
3 | 진철훈(秦哲薰) | 85,542 | 2위 |
[[열린우리당| |
44.0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396,248 |
투표율 49.79% |
투표 수 | 197,331 | ||
무효표 수 | 2,936 |
3.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진철훈(秦哲薰) | 44,334 | 3위 |
[[열린우리당| |
16.15% | 낙선 | |
2 | 현명관(玄明官) | 112,774 | 2위 |
|
41.10% | 낙선 | |
6 | 김태환(金泰煥) | 117,244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2.73%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411,862 |
투표율 67.26% |
투표 수 | 277,003 | ||
무효표 수 | 2,651 |
3.7.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2 | 고희범(高喜範) | 48,179 | 3위 |
[[민주당(2008년)| |
18.03% | 낙선 | |
|
|
사퇴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8 | 현명관(玄明官) | 108,336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0.55% | 낙선 | |
9 | 우근민(禹瑾敏) | 110,588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1.40%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424,098 |
투표율 65.08% |
투표 수 | 276,056 | ||
무효표 수 | 8,918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현명관 | 우근민 | 격차 |
전체 | 40.8% | 42.0% | 1.2%p경합 |
3.8.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원희룡(元喜龍) | 172,793 | 1위 |
[[새누리당| |
59.97% | 당선 | |
2 | 신구범(愼久範) | 99,493 | 2위 |
[[새정치민주연합| |
34.53% | 낙선 | |
3 | 고승완(高承完) | 12,209 | 3위 |
[[통합진보당| |
4.23% | 낙선 | |
4 | 주종근(朱鐘根) | 3,637 | 4위 |
|
1.2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467,182 |
투표율 62.79% |
투표 수 | 293,323 | ||
무효표 수 | 6,339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원희룡 | 신구범 | 격차 |
전체 | 61.2% | 34.6% | 26.6%p |
3.9.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문대림(文大林) | 137,901 | 2위 |
|
40.01% | 낙선 | |
2 | 김방훈(金方勳) | 11,241 | 4위 |
[[자유한국당| |
3.26% | 낙선 | |
3 | 장성철(張性哲) | 5,019 | 5위 |
[[바른미래당| |
1.45% | 낙선 | |
6 | 고은영(高恩永) | 12,188 | 3위 |
[[녹색당(대한민국)| |
3.53% | 낙선 | |
7 | 원희룡(元喜龍) | 178,255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1.72%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532,515 |
투표율 65.90% |
투표 수 | 350,943 | ||
무효표 수 | 6,339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문대림 | 원희룡 | 격차 |
전체 | 41.8% | 50.3% | 8.5%p |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 당일 날 출구조사로는 원희룡 후보가 문대림 후보를 8.5%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실제 개표 결과로는 11.71% 격차로 여유롭게 압승하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국 유일의 무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타이틀을 지켜내게 되었다. 지방선거 직후 보수 진영의 홍준표, 유승민, 남경필 그리고 중도 보수 ~ 중도 진영의 안철수, 손학규가 차기 대선 주자 반열에 상당한 내상을 입고 사실상 재기 불능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계열의 박원순, 김경수와 함께 보수 계열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수혜자로 등극한 셈. 4년 전 새누리당 중진 차출론의 미명하에 자의반 타의반 제주특별자치도지사로의 도전이, 같은 명분하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남경필 전 의원과 상대적으로 비교 열위[35]로 비춰졌던 것을 감안하면, 원희룡 전 지사로서는 그 당시의 선택이 현재 신의 한수가 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제주특별자치도가 더불어민주당 텃밭임에도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원희룡 후보는 무소속으로 당선됨으로써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다시 한번 당선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원희룡 전 지사는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선됐으나 2006년, 2010년 지방선거에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더불어민주당이 강한 지역이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3개 선거구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4번 연속 당선됐을 정도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고, 최근엔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역시 높은 상황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의 무능으로 인한 반사이익과 지난 4년간 (민선 6기) 원희룡 도정에 대한 제주특별자치도민의 긍정적 평가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재선 성공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문대림 후보는 김우남 전 의원과의 더불어민주당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후보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고, 우근민 전 지사와의 관계 해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며, 원희룡 후보가 제기한 송악산 부동산 투기 의혹과 골프장 명예 회원 논란, 법학석사 논문 표절 논란, 부동산 개발업체 임원 이력 등 여러 의혹을 해명하지 못한 채 도덕성과 자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은 물론, 지지세를 역전당한 이후에 단 한번도 치고 올라가지 못했었다.
반면 원희룡 전 지사는 지난 임기 동안 중앙 정치만 바라봤고 제주특별자치도민과의 소통이 미흡했다는 비판에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인물론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들었다. 원희룡 전 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점을 고려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도덕성, 진정성, 정책 생산 능력, 준비 정도를 고려하면 원희룡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일을 더 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50대 이상의 제주특별자치도민들에게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 사법시험 수석 출신의 원희룡 전 지사를 큰 인물로 키워야 한다는 정서도 지난 선거에 이어 먹힌 것으로 분석되며 지역별 득표 현황에서도 서귀포시 대정읍 및 제주특별자치도 서쪽의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에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YMCA 청소년 모의투표에서도 각 지역별로 청소년들에게서 유일하게 득표율 1위를 기록한 보수 진영 후보가 원희룡이었다. 기사 대체적으로 중년층 이상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청년층, 장년층에서 근소 우세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보수 진영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살아남은 원희룡 전 지사의 차기 행보도 관심거리다. 3선 국회의원에 재선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된 원희룡 전 지사는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 주자로 비상할 계기를 마련했지만 선거 기간 언급했던 더불어민주당 입당 가능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차기 대통령 선거 주자들이 많은 여권보다는 보수 진영에서 그의 몸값이 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희룡 후보는 선거 기간에 중앙 정치를 곁눈질한다는 오해가 있었다. 4년 동안 당적을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중앙 정치에 몸을 담글 가능성이 커졌다.
원희룡 전 지사의 장점 및 강점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중도적 보수 주의 색채를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개혁적 보수 및 중도 정치에 대한 갈망이 상당히 있다는 걸 감안하면 나름 유권자들에게 소구력을 강하게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남 원 정 구성원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는 평이고, 2000년대의 중도 ~ 중도 우파 소장파 이미지의 긍정적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다는 것은 또한 큰 플러스 요소다. 남경필 및 기타 소장파들과 다르게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 스토리 및 노동 운동 경력, 친대중 스탠스의 전적들도 나름 스토리가 된다는 평가다. 다만,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부분과 다소 자기 확신형이 강한 여러 과거 언행들이 비지지자 및 진보 유권자에게 비호감 내지는 견제 심리를 갖게 한다는 단점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외에 무소속 출신으로서 어느 당에서의 확고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도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무소속으로서의 운신의 폭을 넓게 가질 수 있지만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약점 및 단점으로 손꼽힌다.
중국자본 문제 및 쓰레기 처리 문제, 제2공항 문제 해결이 우선시되는 시점에서 재선에 성공한 원희룡은 업무추진에 있어 날개를 펼칠 수 있을지는 과제로 꼽히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방훈 후보의 공약에서 (서귀포시 인구수에 맞추기 위해) 제주시를 동서로 분할하는(...) 공약이 있었고, 장성철 후보의 경우는 제2공항과 제주해저터널의 공론화(주민 투표)를 추진하는 공약이 있었다. 둘 다 제주특별자치도민들 입장에선 엄청 싫어하는 공약이다.( 김방훈 후보 쪽에 있어서는 제주특별자치도 거주민들, 장성철 후보 쪽의 경우는 제주특별자치도민 거의 전부(+성산읍 거주민))[36] 그 까닭에 고은영 후보가 어부지리(?) 같은 식으로 3위를 차지하기는 했다. 또한 문대림 후보 측 진영(즉 더불어민주당)의 경우는 도의원 공천 잡음과 도지사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극렬한 대립각 등으로 시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다 시피 했다. 극도로 반발했었던 김우남 측은 선거 운동 말미에서야 문대림 측에게 힘을 보탰고.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 측에게 있어선 잡음 때문에 초래된(+ 문재인 후광만 믿고 밀어부친 데 대한 부작용이 생긴) 것으로 봐도 될 정도.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는 거의 산더미와 같은 정도로 존재한다. 중국 자본(+외국 자본)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외국인들(대표적으로 유커에 해당되거나 갑부에 해당되는 중국인들)이 땅을 사들여서 생기는 환경 문제와, 난민+유커+관광객이 과잉유입되면서 생기는 치안 문제.[37] 등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쓰레기 처리 문제(봉개소각장 사용량 포화로 인한 소각장 신설관련 해당부지 주민들과의 갈등)와 제2공항 문제도 해결해야할 문제고.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경우는 사실상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채워져서 업무 추진력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 함정.
3.10.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오영훈(吳怜勳) | 163,116 | 1위 |
|
55.14% | 당선 | |
2 | 허향진(許香珍) | 116,786 | 2위 |
|
39.48% | 낙선 | |
4 | 부순정(夫順貞) | 5,750 | 4위 |
[[녹색당(대한민국)| |
1.94% | 낙선 | |
5 | 박찬식(朴贊殖) | 10,138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4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565,084 |
투표율 53.11% |
투표 수 | 300,139 | ||
무효표 수 | 4,349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오영훈 | 허향진 | 격차 |
전체 | 56.5% | 39.1% | 17.4%p |
3.11.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0 | ||
|
00.00% | ||
2 | 0 | ||
|
00.00% | ||
계 | 선거인 수 |
투표율 00.00% |
|
투표 수 | |||
무효표 수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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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eee,#353535> 후보 | ○○○ | ○○○ | 격차 |
전체 | 00.00% | 00.00% | 00.00%p |
4.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 보수 정당 | 제3후보[39] | |
1회 | 강보성 | 우근민 | 신구범[40] |
|
[[민주자유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낙선 24.27% | 낙선 32.54% | 당선 40.64% | |
2회 | 우근민 | 현임종 | 신구범[41] |
[[새정치국민회의|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당선 52.76% | 낙선 16.45% | 낙선 30.78% | |
3회 | 우근민 | 신구범 | 신두완[42] |
[[새천년민주당| |
|
[[민주국민당(2000년)| |
|
당선 51.40% | 낙선 45.41% | 낙선 3.18% | |
재보선 | 진철훈 | 김태환 | - |
[[열린우리당| |
|
||
낙선 44.00% | 당선 56.00% | ||
4회 | 진철훈 | 현명관 | 김태환[43] |
[[열린우리당|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낙선 16.15% | 낙선 41.10% | 당선 42.73% | |
5회 | 고희범 | - | 우근민[44] |
[[민주당(2008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낙선 18.03% | 당선 41.40% | ||
6회 | 신구범 | 원희룡 | 고승완[45] |
[[새정치민주연합| |
[[새누리당| |
[[통합진보당| |
|
낙선 34.53% | 당선 59.97% | 낙선 4.23% | |
7회 | 문대림 | 김방훈 | 원희룡[46] |
|
[[자유한국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낙선 40.01% | 낙선 3.26% | 당선 51.72% | |
8회 | 오영훈 | 허향진 | 박찬식[47] |
|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당선 55.14% | 낙선 39.48% | 낙선 3.42% | |
9회 | ○○○ | ○○○ | - |
|
|
||
- | - |
5.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rowcolor=#000,#fff>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1회 | 신구범 | 우근민 | 강보성 | 신두완 | |
2회 | 우근민 | 신구범 | 현임종 | ||
3회 | 우근민 | 신구범 | 신두완 | ||
재보선 | 김태환 | 진철훈 | |||
4회 | 김태환 | 현명관 | 진철훈 | ||
5회 | 우근민 | 현명관 | 고희범 | ||
6회 | 원희룡 | 신구범 | 고승완 | 주종근 | |
7회 | 원희룡 | 문대림 | 고은영 | 김방훈 | 장성철 |
8회 | 오영훈 | 허향진 | 박찬식 | 부순정 |
6. 도정 구호
이군보 | <colcolor=#000,#fff> 희망찬 새 제주 |
홍영기 | 선진 관광 제주 건설 |
우근민 | 믿음과 희망을 심는 도정 |
신구범 | 위대한 제주시대를 연다 |
우근민 | 100만 제주인 함께 열린 세계로 |
세계를 향한 강한 제주 | |
김태환 | 제2의 도약 제주, 하나된 힘으로 |
도민의 시대 새로운 도전 제주특별자치도 | |
우근민 |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 |
원희룡 |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 제주 | |
오영훈 | 위대한 도민시대,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제주 |
다함께 미래로, 빛나는 제주 |
7. 여담
-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광역자치단체장이지만 관할 인구가 중대형급의 기초자치단체에 가까울 정도로 적고 궨당이라는 제주특별자치도 특유의 지역 문화가 여전히 뚜렷한 탓에 탄탄한 지역 조직을 갖춘 토호들의 무소속 당선이 많은 편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재보궐선거를 포함하여 9번의 선거에서 4번이나 무소속 당선인이 나왔다. 무소속 당선인 중 육지에서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키운 뒤 제주특별자치도로 내려온 원희룡을 빼면 나머지 3명 모두 제주특별자치도 토호 출신 지사들이다.
- 상기 이유 및 내륙과 분리되어 있는 지형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선거는 중앙 정세에 받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선 3기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였지만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았던 우근민이 재선에 성공하였고, 민선 7기 선거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지만 제주도에서는 보수 성향 무소속 원희룡이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민선 8기의 경우 국민의힘이 압승했지만 제주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영훈이 15% 이상의 큰 격차로 승리하였다.
- 1995년 지방자치 부활 후 민선 8기 기준 서부지역 읍면이나[48] 2006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행정구역 기준으로 제주시·서귀포시 시내동에서 태어난 도지사는 아직 없고 출마한 이들도 전원 낙선했다. 원희룡의 고향 중문동은 서귀포시의 동 지역이지만 원희룡이 태어날 당시에는 남제주군 중문면이었고 현재 서귀포시의 원도심인 서귀동과도 거리가 꽤 된다. 그의 집은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골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즉 원희룡 이전에는 신구범, 우근민, 김태환 모두 북제주군 동부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 제주특별자치도는 역사적으로 개신교와 천주교의 세가 약하고 불교의 세가 앞서다 보니[49] 지방자치 부활 후 제주특별자치도지사들은 모두 불교 신자였다. 원희룡만 유일하게 개신교 모태신앙을 갖고 있으며[50] 신구범은 불교였다가 2019년 가을 개신교로 개종한 것으로 보인다.
- 민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5인 모두 선거법 관련 문제로 법정에 선 적이 있다. #
- 타 지역의 역대 광역자치단체장들과 다른 게 1930년대생과 1950년대생이 단 한 명도 없다. 신구범, 우근민, 김태환 모두 1942년생이며, 원희룡과 오영훈은 최초의 서귀포시 출신이자 1960년대생이다.
8. 관련 문서
[1]
대도시 특례를 받는 일부 대도시 산하에 설치된
행정구와 동격의 도청 하부기관일 뿐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가 다른
광역자치단체들에 비하여 가지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바로 기초자치단체가 없는 '단층형 광역자치단체'라는 것이다. 다만
2006년
7월 특별자치도 개편 이전 제주도 시절에는 제주시, 서귀포시, 북제주군, 남제주군 모두 기초자치단체였으며, 어쨌든 '시'는 '시'이기에 행정구보다는 권한이 조금 더 많다. 게다가 '시'인만큼 인구 10만 이상이면 시장도 2급 대우를 받는다. 행정구는 인구가 많아도 보통 4급 대우인 것에 비하면 높은 대우라고 볼 수 있다.
[2]
이는
기초자치단체가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단층형
광역자치단체의 장인
세종특별자치시장 외에는 없다. 둘 모두 산하에 기초단체장이 없는만큼 원래 기초자치단체장에 배부되었던 도시기획권[51]부터 각종 인·허가권 또한 사실상 다 광역단체장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전
조선총독부 경찰관.
[겸직]
제주도 경찰서장.
[겸직]
[겸직]
[겸직]
[8]
조선총독부 최후의 제주도 도사(島司)
[9]
오노 도사의 후임으로 추천되어 임명됐으나 임지에 부임하지 않았음.
[10]
최초이자 마지막 서양인 제주도 도사. 현역 미국 육군 소령이자 미군정 제59군정 중대 사령관 겸임.
[11]
마지막 제주도 도사. 제주도(濟州道) 설치후 초대 도지사 승계.
[12]
선거 당시 당적.
[13]
정부 수립 후 첫 도지사.
[14]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친.
6.25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15]
선거 당시 당적.
[16]
선거 당시 당적.
[17]
전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으로 한국 최초의 해군대장.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 주월 한국대사. 제주도지사 임명 당시 현직 해군 장성이었다. 참모총장에는 1966년에 임명됨.
[18]
선거 당시 당적.
[19]
신구범은
조천읍, 우근민은
구좌읍 출신.
[20]
2000.1.20.
[[새천년민주당|
]]으로 당명 변경.
[21]
2004.4.27.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지사직 상실.
[22]
구좌읍 출신.
[23]
2006.2.17. 공천 불복으로
탈당.
2006.5.8. 지사직 사퇴. [24] 4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입당 번복 등의 혼란이 생기자, 결국 도지사직을 가지고 이번 선거를 치를 수도 있지만 공무원 선거 개입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원칙만을 따질 수는 없었다며 오늘 저의 사퇴가 최근 불거진 공무원 선거 개입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지사직을 사퇴하고 무소속 출마했다. [25] 2013.11.5.
[[새누리당|
]] 복당.
[26]
중문동 출신. 지방자치 부활 후 최초의
서귀포 출신이다.
[27]
2017.1.4.
[[새누리당|
]] 탈당.
2017.1.24. 입당.
2018.2.13.
[[바른미래당|
]]으로 신설 합당.
2018.4.10.
[[바른미래당|
]] 탈당.
[28]
2020.2.17. 복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 [29] 2021.8.11.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경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 사퇴. [30] 남원읍 출신. [31] 두 사람의 표차는 2,252표로 역대 지방선거의 광역자치단체장 사상 최소 득표차로 기록되어 있다. 최저 득표율도 기록하고 있었으나 12년 뒤인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와 기호 2번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가 불과 0.15%p 차이로 나타나면서 득표율 기록이 깨졌다. [32] 그럴만한 것이 신구범 전 지사가 퇴임하고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출마했던 것이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으니 충분히 잊혀질 만 했다. [33] 1) 도의원 시절 자신의 지역구였던 송악산 부동산 투기 의혹, 2) 주식회사 '유리의성' 이중급여 및 재산신고 누락 의혹, 3) 법학석사 논문 표절 의혹, 4) 부동산개발회사 부회장 이력과 인허가 관련 로비스트 의혹, 5) 더불어민주당 도지사 후보 경선 과정 중 당원명부 유출 의혹, 6) 세계 7대 자연경관 추진시 도민 혈세 170억원 사용 방조 의혹, 7)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환경위원장 당시 도내 골프장으로부터 명예회원 위촉 논란, 8) 우근민 도정 시절 도의회 의장으로서 중국자본 투자유치 활동 등. [34] 오히려 원희룡 후보의 지지율만 올랐다. [35] 아무래도 수도권, 한국 최대 광역자치단체장과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위상차가 있기 때문이다. [36] 자유한국당 후보의 경우에는 홍준표와 당 지도부의 4.3. 사건, 이승만 관련 행보에 지역 주민들이 반감을 가지게 된 것도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 [37] 제주특별자치도에서 3무는 도둑, 노숙자, 대문이다. [38] 당시엔 허니문 효과와 대북정책의 성공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했지만 인지도 없는 후보를 내보내는 바람에 보수 쪽에서 개인기로 살아남은 후보에게 패했다. [39] 3% 이상 득표자만 기재. [40] 중도 성향 후보. [41] 중도 성향 후보. [42] 보수 정당 후보. [43] 중도 성향 후보. [44] 중도 성향 후보. [45] 진보 정당 후보. [46] 보수 성향 후보. [47] 진보 성향 후보. [48]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대정읍, 안덕면 [49]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제일 세력이 뚜렷한 종교는 무속신앙이다. 기성 종교 중에서 불교의 세가 그나마 세다는 뜻이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서북청년회 활동과 신축민란의 영향으로 도민들의 반감이 꽤 강하다. [50] 친형이 예장통합 교단 소속의 현역 목사이고 아버지도 장로일 정도로 집안 식구 전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새천년민주당|
탈당.
2006.5.8. 지사직 사퇴. [24] 4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입당 번복 등의 혼란이 생기자, 결국 도지사직을 가지고 이번 선거를 치를 수도 있지만 공무원 선거 개입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원칙만을 따질 수는 없었다며 오늘 저의 사퇴가 최근 불거진 공무원 선거 개입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며 지사직을 사퇴하고 무소속 출마했다. [25] 2013.11.5.
[[새누리당|
[[새누리당|
2017.1.24. 입당.
2018.2.13.
[[바른미래당|
2018.4.10.
[[바른미래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 [29] 2021.8.11.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경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 사퇴. [30] 남원읍 출신. [31] 두 사람의 표차는 2,252표로 역대 지방선거의 광역자치단체장 사상 최소 득표차로 기록되어 있다. 최저 득표율도 기록하고 있었으나 12년 뒤인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와 기호 2번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가 불과 0.15%p 차이로 나타나면서 득표율 기록이 깨졌다. [32] 그럴만한 것이 신구범 전 지사가 퇴임하고 1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출마했던 것이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으니 충분히 잊혀질 만 했다. [33] 1) 도의원 시절 자신의 지역구였던 송악산 부동산 투기 의혹, 2) 주식회사 '유리의성' 이중급여 및 재산신고 누락 의혹, 3) 법학석사 논문 표절 의혹, 4) 부동산개발회사 부회장 이력과 인허가 관련 로비스트 의혹, 5) 더불어민주당 도지사 후보 경선 과정 중 당원명부 유출 의혹, 6) 세계 7대 자연경관 추진시 도민 혈세 170억원 사용 방조 의혹, 7) 제주특별자치도의회 환경위원장 당시 도내 골프장으로부터 명예회원 위촉 논란, 8) 우근민 도정 시절 도의회 의장으로서 중국자본 투자유치 활동 등. [34] 오히려 원희룡 후보의 지지율만 올랐다. [35] 아무래도 수도권, 한국 최대 광역자치단체장과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위상차가 있기 때문이다. [36] 자유한국당 후보의 경우에는 홍준표와 당 지도부의 4.3. 사건, 이승만 관련 행보에 지역 주민들이 반감을 가지게 된 것도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 [37] 제주특별자치도에서 3무는 도둑, 노숙자, 대문이다. [38] 당시엔 허니문 효과와 대북정책의 성공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했지만 인지도 없는 후보를 내보내는 바람에 보수 쪽에서 개인기로 살아남은 후보에게 패했다. [39] 3% 이상 득표자만 기재. [40] 중도 성향 후보. [41] 중도 성향 후보. [42] 보수 정당 후보. [43] 중도 성향 후보. [44] 중도 성향 후보. [45] 진보 정당 후보. [46] 보수 성향 후보. [47] 진보 성향 후보. [48]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대정읍, 안덕면 [49]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제일 세력이 뚜렷한 종교는 무속신앙이다. 기성 종교 중에서 불교의 세가 그나마 세다는 뜻이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서북청년회 활동과 신축민란의 영향으로 도민들의 반감이 꽤 강하다. [50] 친형이 예장통합 교단 소속의 현역 목사이고 아버지도 장로일 정도로 집안 식구 전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