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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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선조의 왕녀
정화옹주 | 貞和翁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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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옹주와 권대항 합장묘 전경 | |||
출생 | 1604년( 선조 37년) 3월 22일 | ||
사망 |
1667년 (
현종 8년)
9월 24일 (향년 6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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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 |
정화옹주와 권대항 합장묘 경기도 양주시 덕정동 1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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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 전주 이씨 | |
부왕 | 선조 | ||
생모 | 온빈 한씨 | ||
부군 | 동창위 권대항(東昌尉 權大恒) | ||
자녀 |
자녀 없음 양자 - 권덕휘(權德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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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호 | 정화옹주(貞和翁主) |
[clearfix]
1. 개요
조선 제 14대 임금 선조의 14남 11녀중 막내딸로 선조와 온빈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말을 못하는 벙어리에 청각장애인이었고 지각이 없었다고 한다.2. 생애
정화옹주는 말을 하기 전 어린 나이에 청각장애인이 되면서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고 한다. 또한 지각도 없었고 병치레도 잦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런 문제로 인해 아버지인 선조 사후 22년 이상이 지나도록 혼인도 못하고 혼자였다. 광해군이 정화옹주의 집을 증축해주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지만 길례는 행하지 못하였다.당시로서는 혼기를 한참 지난 정화옹주가 26세를 넘은 1629년, 인조는 왕녀가 병이 있긴 하나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다 죽을 수는 없다는 말과 함께 뒤늦게 정화옹주의 부마 간택령을 내린다.[1] 혼기를 놓쳤다고는 해도 어쨌든 왕녀였으니 완전히 모르는 집안과 결혼시키지 않고 이미 선조가 사돈을 맺었던 도승지 권희의 집안에서 부마를 골랐는데 그렇게 고른 부마가 정화옹주의 이복언니 정선옹주의 남편 권대임의 육촌 동생인 권대항이다.[2]
인조는 무관이었던 권대항을 자의대부로도 승진시키고 금군청의 부총관으로도 만들었다. 권대항은 말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인조는 권대항에게 사복시의 말도 하사한다. 그러나 권대항은 말을 받아보고는 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담당 관리를 매질하였다가 탄핵받는다. 재미있는 건 현재 그의 무덤에 가보면 바로 옆에 애마총도 있다는 것이다.
어릴때 병약했던 것에 비해 장수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늦게 혼인한 탓인지 정화옹주는 노년까지도 권대항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보지 못하였고, 효종 7년 남편 권대항이 먼저 죽고 나서 이듬해 향년 64세로 죽었다.
3. 가족 관계
- 시부 : 동지중추부사 증 이조참판 권익중(同知中樞府事 贈 吏曹參判 權益中, 1571 ~ 1659)
- 시모 : 정부인 한양 조씨(貞夫人 漢陽 趙氏) - 현감 조단[3](縣監 趙端)의 딸
- 남편 : 동창위 권대항(東昌尉 權大恒, 1610 ~ 1666)
- 양자 : 한산군수 권덕휘(韓山郡守 權德徽, 1622 ~ ?) - 시숙 권대유의 아들
[1]
선조의 유일한 적녀인
정명공주는 정화옹주와 비슷하게 혼기 지난 21살 때까지 혼인을 못한 노처녀였는데도 인조반정 직후, 반정의 여파를 다 수습하지 못한 채 혼인을 서둘렀던거에 비하면 취급이 안 좋은데, 당시 정명공주는 반정 명분인데다 인목왕후 역시 살아있었고 무엇보다 선조의 유일한 적녀였지만, 정화옹주는 어머니가 뒷방 후궁에 정화옹주 본인도 장애도 있고 병치레가 잦다보니 일찍 사망할거라 생각해서 혼인을 계속 미루다가 인조 시대까지 온 걸로 추정된다.
[2]
참고로 이때
정선옹주는 이미 21세의 나이에 요절해버린 후였다.
[3]
양절공 조온(良節公 趙溫)의 8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