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戰時作戰統制權 / Wartime Operational Control, WT-OPCON전시작전통제권을 줄여서 전작권이라고도 부르며, 작통권, 전시작전권, 전시작통권 등으로도 불린다.
전쟁 중일 때만 적용되는 개념이며, 평상시의 작전통제권은 평시작전통제권이라 하며 전시작전통제권과는 별개이다. 말 그대로 전시에 군 작전을 통제[1]할 권리를 말한다.
2. 대한민국의 작전통제권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전작권 환수는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과 동맹국의 결정적인 군사능력이 갖춰지고 한반도와 역내 안보환경이 안정적인 전작권 전환에 부합할 때"까지 무기한 연기되었다. # 전작권의 개념은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지는 통수권의 차하위,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지휘권의 하위 개념이다.1978년의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이후,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작전통제권이 미군에 있었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한미연합군사령부에 있으며 주한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은 양측의 의견에 맞추어 통합적으로 지휘된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존재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에 예속되어 있으며, 미국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군사상의 결정도 못하는 식민지'라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2] 하지만 한미연합사령부에 의한 전시작전통제권의 행사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한국과 함께 싸우는 연합작전 특히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서로 합의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군사적인 도움도 받지 못하는 분쟁[3]에 대해서까지, 미국이 한국의 통수권자의 결정에 따른 군사력 동원을 막거나 간섭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게다가 한국군의 일부 부대들 가운데는 전평시를 막론하고 한미연합사령부의 관할 밖에서, 항상 대한민국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예로 대한민국 육군의 수도방위사령부와 제2작전사령부가 있다. 또한 향후 전략사령부가 생기면 한국군 수뇌부가 F-35 운용부대인 제17전투비행단 같은 일부 핵심 병력을 독자적으로 행사할 여지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만약 한국이 전쟁 수행 과정에서 미국과의 견해차이가 심해진다면, 당장 한국군 병력의 대부분을 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 아래에서 철수시키고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은 어디까지나 통수권과 군령권자가 위임해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6.25 전쟁 당시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 측에 넘겨준 장본인격인 이승만 대통령도 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켜 독자적으로 북진하겠다"는 의사를 간혹 펼치기도 했다.[4] 그 이전에는 삼팔선을 넘어 북진하도록 이승만이 독단적으로 북진 명령에 결재를 하여 국군 단독으로 북진을 하게 되었으며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하루나 이틀 정도 뒤에 유엔군을 북진시켜 사실상 눈감아주었다.[5] 다만 전작권을 가진 미군의 북진은 중국 인민해방군(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할 명분으로 써먹은 건 어쩔 수 없다.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다면, 아니 작전통제권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한민국 국군은 마음대로 북진을 선포하고 북한을 공격하며 자기 마음대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고 이는 이미 여러 전례에서 드러난 것이다. 당시에는 기껏해야 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쳐서 단독 행동을 막을 영향력은 없으니 어려웠겠지만, 진짜 작전통제권을 포함한 군통수권을 아예 뺏긴 수준은 동유럽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한 소련의 동유럽의 공산권 군대들의 통제와 지휘체계 확립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이 때문에 냉전해빙기 때 동유럽은 군대를 통한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동독의 경우에는 아예 어떠한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국군은 쿠데타를 위해서 군을 움직인 사례가 있는데 이는 분명히 전시/평시 작전통제권을 위반한 경우이다. 북한과 대치 중인 전방 사단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사례는 원칙적으로는 월권이지만 사후에 정치적으로 무마된 것이다.
2.1. 역사
대한민국은 이승만이 6.25 전쟁 발발 후 한 달이 조금 안 되던 1950년 7월 14일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권을 더글라스 맥아더 극동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에 위임하였고, 7월 16일에 이를 확인하여 6.25 전쟁 때 작전지휘를 함으로써 유엔군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다.[6] 유엔군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임했으며, 이때는 한국군이 지휘계통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정말 작통권을 미군이 행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1979년 한미연합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CFC)가 창설되면서 이쪽에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부터 한국군이 본격적으로 지휘계통에 개입이 가능해졌다. 한미연합부사령관 겸 지상구성군 사령관이 한국군 대장에 참모진의 절반이 한국군 출신이니 당연한 일.이후 작전권 회수를 공약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작전권 환수를 목표로 미국 정부와 협상을 한 끝에 후임인 김영삼 정권 때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로 환수된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작전통제권환수에 반대하는 군고위 장성 압박과 설득을 병행하면서 미국과의 2년이 넘는 협상끝에 환수를 확정지었다.[7] 또한 군 장성들의 반발과 합참이 과연 작전지휘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절충안으로 평시작전권을 일단 1993년에 환수하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1995년에 전시 작전권까지 완전 환수한다는 일정이 합의되었다. 그러나 1993년 평시작전권 환수 이후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1994년 전쟁위기설이 나오자 1995년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한미 간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이 상태 그대로 노무현 정부까지 흘러오게 된다.
이때 김영삼 정부에서는 이를 자주국방의 성과로 표현했고, 당시 언론들도 '다음 과제는 전시작전권 회수라는 말로 김영삼 정부를 옹호했다.[8] 때문에 김영삼이 노무현 정부 시절 전시전작권 환수를 비난하고 나서자 그 내용의 시비를 떠나서 치매 또는 기억상실증 소리를 들었다. 전시작전통제권은 노무현 정부 당시 2012년 환수로 합의됐으나 이명박 정부 시기에 안보공백 우려로 인해 2015년 12월로 미뤄지게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4년 10월에 시기를 명시하지 않고 한국군의 능력과 주변 안보환경 등 ‘조건’이 충족돼야 전작권을 한국에 넘기도록 하여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재연기되었다. 2017년 9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 행사에서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전작권을 조기 환수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전작권 회수라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반드시 해야할 과제로 여기지만 자신들의 집권시기에 다루기는 상당히 난감해서 계속 다음 정부로 떠넘기는 식이 반복되는 형국이다. 수도권 40km 거리에있는 북한은 미치광이 전략으로 각종 위협을 가하고 도발의 형태는 계속 바뀌는데 오직 한국의 힘으로 그것에 일일이 대응하기에는 예산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한편, 제반작업이 성공적으로 이행되어 전작권을 환수한다 하더라도 유사시 해군/공군의 작전권은 미군 측에 계속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의 육해공 비중이 육군에 편중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해군과 공군의 독자 작전수행 능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대부분이 공격 능력에 편중되어 있어 미군이 보유 중인 핵심 전략자산, 특히 정보와 통신 자산의 질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예로 연합사에 소속될 경우 미군으로 부터 위성 통신, 레이더 등의 정보를 최소한의 절차를 거쳐 받아볼 수 있고 필요하면 미군 자산을 통해 통신 중계를 받는 등 미군과 통합 작전이 수월해지지만 한국군의 단독작전으로는 여러 문제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밑에 서술된 서독과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종심 거리가 짧은 남한 특성상 전쟁 상황시 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이 때문에 전시작전권을 환수한다는건 미군과의 빠른 통합작전을 포기한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기에 정치권에서도 쉽게 결정할수 없는 문제다.
3. 각국 전시작전통제권들과의 차이
3.1. NATO
NATO의 경우는 대한민국과 유사한 작전통제 환경을 가지고 있으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한다. 대다수 NATO 회원국의 경우는 회원국 정부가 승인한 부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유럽동맹군 총사령관(Supreme Allied Commander Europe: SACEUR)이 지휘하게 된다. 참고로 나토 총사령관(SACEUR)은 언제나 미군 대장이며 이는 대한민국과 유사한 전시작전통제 환경을 가진다.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나토군에 차출된 군병력은 각국의 군병력 약 10~25%만이 나토군에 배속되나[주의] 예외적으로 냉전시절 최전선이었던 서독군은 한국군과 동일하게 병력의 90%를 나토에 배속해서 운영했다. 이는 전체 유럽군은 예비전력적 성격이 강했던 것에 반해 독일은 유럽전선의 주전선이자 최전방으로서의 입장[10]이라 개전 즉시 NATO의 단일한 지휘통제가 필요했던 지역이기 때문이었다.[11] 북한을 상대로 사실상 최전선인 한국이 현실적으로 연합사에게 서독을 제외한 다른 나토 국가들처럼 군병력을 10% 정도만 배속시키지 않고 독일과 유사한 비율의 병력을 연합사 예하에 배속시키는 이유라고 하겠다. 때문에 전투부대 중에선 제2작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병력이 연합사의 지휘에 놓이게 된다.
3.2. 일본 자위대
일본은 주일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일본국 정부가 자위대를 지휘한다. 자위대의 법적 직위상의 일본 국내적으로도 연합체제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의 통합사령부는 어렵긴 했다. 하지만 2005년 이후부터 일본에서 꾸준히 미일연합사령부 즉 한미연합사령부와 같은 형태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있다.[12]2015년 9월 19일, 집단자위권 개정으로 전시와 평시 중간지대인 그레이존에서도 타국으로 제한적인 군사력 투사가 가능해 졌다.
자위권 개정의 주요한 부분은 "동맹이 공격을 당했을 때" 라는 부분이다. 즉, 다른 동맹국과 함께 제3국에 무력투사가 가능해진 것으로 일본 스스로 전쟁을 선포하고 혼자서 공격해 들어 갈 수는 없다. 일단 언론 등에서는 제한이 하나씩 해제된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듯.
3.3. 호주군
호주군 역시 연합체제는 미국과 갖추어져 있으나 상당히 느슨한 편이다. 이는 호주 주변에 적대적 위협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이것이 기인되었기 때문에 냉전시기부터 지금까지 통합사령부 형태의 군령권 행사가 가능한 기구는 두지 않고 국방장관회담과 태평양이사회-특별이사회와 같은 상부구조의 연락체계 안에서 협력을 하고 있다. 물론 군사적으로는 현지의 ISAF 사령부와 같은 미국주도의 다국적군 사령부의 작전통제지휘를 받는 형태를 취한다. 이 점은 한국군과 비슷하다.실제로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호주군은 6천 명까지 파병되었을 때에도 독자적인 사령부가 아니라 MACV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았고 그 이후 이라크-아프간 등에서도 마찬가지 형태였다.
4. 전작권 전환에 대한 의견
4.1. 전작권 전환 반대
4.1.1. 대한민국의 전작권 단독 행사 반대
대한민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 행사 하는 방식의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의견은 다음과 같다.4.1.1.1. 한미동맹 약화 우려
전작권 전환은 결국은 안보 차원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성을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정부는 그동안 전작권 문제만 부각시켰지 군사능력 차원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성을 추구하는 데 전격적으로 투자하고 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한국의 정책방향이 전작권 전환 문제에 관한 논란을 더욱 증폭시킨 것이다. 현재 전작권 전환을 두고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 핵이 완성단계에 이르러 위협이 증대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찬성 측은 미국으로부터 안보적 독자성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 군사능력을 확보하려고는 하지도 않고있다.[13]전작권 전환이라는 명분은 가져가되 이를 뒷받침할 능력은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려한다면 미국에 있어 대한민국은 매우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동맹관계에서 한쪽이 한쪽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만큼은 무조건 피해야하는 것이 마땅한다 그런데 현재의 전작권 전환은 딱 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미동맹의 견고성도 해치고 미국이 우리를 입으로만 자주와 전작권 전환을 외치고 북한의 핵무기-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대응이나 방어에 있어 미국의 전략자산들을 그대로 써 자주국방도 이루어지 못하는 거나 다름없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오핸런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평시에 유시하는 전력을 위해 미국이 연간 100조원의 국방예산을 지출했다고 하였다. 진보세력에 의하면 한국의 1년치 국방예산의 3배 가까운 비용을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유지를 위해 쓰는 측이 지휘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당연히 이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정상적이지도 않다.[14] 한미연합사라는 일원화된 조직 예하에 있는 기존 체제보다 긴밀하지 못한 연합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을 내포하며, 이런 독립적인 체제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한미동맹의 긴밀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므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약화시키겠다는 정치적 메세지로 해석될 여지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방위비 협상으로 강경하게 나오자 막장으로 치닫는 거 보면 한미동맹이란 건 단순히 언론플레이로 써먹는 존재로 보인다.
4.1.1.2. 지휘통일의 원칙 파괴 우려
지휘통일(Unity of Command)의 원칙은 “투입된 모든 군사력을 지도할 수 있는 적절한 권한을 가진 단일의 지휘관 하에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든 군사력이 운용되는 것으로 단일 사령부의 권위에 근거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하에서 부대의 모든 노력이 통합되어 공동목표로 지향되도록 하는 것"이다.[15]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에 있어서 이러한 지휘통일의 문제가 부상될 수밖에 없다. 지휘통일의 원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칫 전쟁에서 비효율성을 늘리고 아측 화력에 의한 오인사격 등의 사고가 급증할 수 있다.
일례로 1994년 미 공군 소속 2대의 F-15 전투기가 이라크 북부에서 평화유지 활동을 하던 2대의 UN 헬리콥터를 적으로 오인해 격추시킨 사건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16명의 평화유지군을 포함한 탑승자 전원 26명이 사망했다. 전체 작전을 총괄하던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전투기 조종사가 헬리콥터를 격추시킬 것임을 알려졌을 때 재빨리 개입하여 이를 막았어야 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조종사들이 헬리콥터를 이라크군으로 오인한 이유는 UN 헬리콥터가 비행금지구역에 들어올 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고 사전통보를 받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비행기금지구역에서 헬리콥터를 발견하고 피아식별체계를 작동시켰으나 헬리콥터 쪽에서 아무런 응답도 없었고 따라서 적 비행체를 제거하라는 임무 수행을 위해 사격을 실시하였다.[16]
한편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승무원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는데 해당 승무원들은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당해 비행이 최초 임무라 사전 준비와 훈련이 부족했다. 또한 승무원들 간에 임무분장이 애매하였고 사고에 대한 명확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조직수준에서는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UN군 간에 알력이 있었고 이 때문에 조직내외에서 상대방이 임무수행시 어떤 절차에 따르는지 몰랐고 사전대비,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조기경보통제기와 F-15는 미 공군 조종사가 조종하고 UN 헬리콥터는 미 육군 조종사가 조종하고 있었는데, 서로 다른 주파수를 사용하고 상이한 피아식별 코드를 사용하고 있었다.[17]
위의 사례는 지휘통일의 원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수 발생될 수 있는 사례로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진다면 위에서 제시한 사례와 유사한 상황이 다수 발생될 수 있다. 특히 현재 연합사가 해체되는 것을 전제로 한 전작권 전환에서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2개의 작전기구를 구축하는데 서로 다른 지휘부에 다른 지휘체계에 다른 지휘방식에 다른 전략과 다른 전술인 이상 이는 전시에 지휘통일의 원칙을 크게 저해할 수밖에 없다. 만약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한국군과 미군이 각자 서로를 지휘한다면 이는 작전 효율성도 저하시키고 전시에 군을 운영하는 데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전쟁이란 사전에 계획한대로 또는 예상한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안개와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우발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이다. 전장상황이 복잡하고 작전의 템포가 빠른 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적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휘체계를 양분화하고 ‘주도-지원’ 등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전반적인 작전을 복잡하게 함으로써 지휘관의 결심을 지연시키고 작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18]
브루킹스 연구소의 오헨런은 사막의 폭풍작전을 예로 들면서 현대전에서 아측 화력에 의한 오인사격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의 4분의1에 이를 것이라 판단한다고 적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쟁지도체계에서 지휘통일의 원칙은 가장 중요시 되어야할 원칙이라고 하였다.[19]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작권을 미국과 한국이 따로 가지고 있을 때 앞에서 말한 사례와 같은 문제가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대응의 효과성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명료하고 집권적인 지휘통제체계의 보유 여부 및 관할권의 명확하가 매우 중요한 잣대 중 하나이다. 전시에서 이는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요소이고 이를 갖추지 못할 경우 아군은 적을 대상으로 한 작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4.1.2. 전작권 전환 찬성 측에 대한 반박
1. 미국 역시 정치외교적 리스크를 덜기 위해서 한국의 전작권 환수를 원한다?Q) 일각에서는 미 행정부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군 재배치 작업을 진행중에 있으며,
주한미군 역시 이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작전통제권 이양'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이에 대한 찬반보다는 어떻게 이양받을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박용옥[20])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미군 재배치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맞추어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온 것이며, 이를 '작전통제권 이양'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기본적으로 미 행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항구적으로 보유할 의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카터 행정부 당시인 1970년대 중반과 클린턴 행정부 당시인 1990년대 중반에도 주한미군 감축 및 작전통제권 이양을 추진한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은 1989년부터 동아시아주둔 미군의 장래에 대한 검토를 본격적으로 수행하여 주한미군 3단계 철수계획을 수립하고 이와 함께 한미연합사 체제의 개편도 구상했었습니다. 당시 계획에 따라 1단계(1990~92)로 주한미군 7,000명이 감축되었으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연합사 해체, 사실상의 주한미군 전면 철수 등 2단계(1993~95)와 3단계(1996년 이후) 로드맵은 북핵 위기로 인해 그 실행이 전면 유보되었습니다.
그 대신 1990~94년 사이에 한미 양 군사당국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1993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대표에 한국군 장성 임명, 같은 해 10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책임 한국군 담당, 1992년 7월 한미 야전군사령부(CFA) 해체, 같은 해 12월 지상구성군사령부 설치 및 한국군 장성 사령관 보임, 그리고 1994년 12월 평시작전통제권 이양 등 여러 조치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로드맵이 한국정부와 긴밀한 협의하에 추진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1994년까지의 한반도 안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본 결과 로드맵 이행이 어렵다고 판단, 2단계와 3단계 계획 자체를 전면 유보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태우 정부 당시 한미 양국은 한반도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일치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평시작전통제권 이양을 비롯한 제반 조치들이 매우 원만하게 처리되었던 것입니다....(후략)
원본 링크 [21]
박용옥[20])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미군 재배치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맞추어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온 것이며, 이를 '작전통제권 이양'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기본적으로 미 행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을 항구적으로 보유할 의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카터 행정부 당시인 1970년대 중반과 클린턴 행정부 당시인 1990년대 중반에도 주한미군 감축 및 작전통제권 이양을 추진한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은 1989년부터 동아시아주둔 미군의 장래에 대한 검토를 본격적으로 수행하여 주한미군 3단계 철수계획을 수립하고 이와 함께 한미연합사 체제의 개편도 구상했었습니다. 당시 계획에 따라 1단계(1990~92)로 주한미군 7,000명이 감축되었으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연합사 해체, 사실상의 주한미군 전면 철수 등 2단계(1993~95)와 3단계(1996년 이후) 로드맵은 북핵 위기로 인해 그 실행이 전면 유보되었습니다.
그 대신 1990~94년 사이에 한미 양 군사당국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1993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대표에 한국군 장성 임명, 같은 해 10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책임 한국군 담당, 1992년 7월 한미 야전군사령부(CFA) 해체, 같은 해 12월 지상구성군사령부 설치 및 한국군 장성 사령관 보임, 그리고 1994년 12월 평시작전통제권 이양 등 여러 조치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로드맵이 한국정부와 긴밀한 협의하에 추진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1994년까지의 한반도 안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본 결과 로드맵 이행이 어렵다고 판단, 2단계와 3단계 계획 자체를 전면 유보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태우 정부 당시 한미 양국은 한반도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일치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평시작전통제권 이양을 비롯한 제반 조치들이 매우 원만하게 처리되었던 것입니다....(후략)
원본 링크 [21]
또한 위의 의견에 덧붙여서, 설령 미군의 이동과 감축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기 및 기지이동/감축규모는 충분히 협상이 가능한 성질의 것이었고, 그것을 이유로 전작권을 단독행사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말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라는 것. 게다가 전작권 단독행사를 먼저 주장한 쪽은 명백히 미국이 아닌 참여정부 쪽이었다. 참여정부 요인들의 전작권 환수 발언록
2. 지나친 미군 의존을 벗어나고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키우기 위해 전작권을 환수해야 한다?
이 주장은 지나치게 뛰어난 미군의 존재가 한국군의 작전능력 배양을 방해하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혹은 지나치게 미군에 의존하는 경향[22]), 위와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그 부작용은 감내하고 작전권을 단독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굳이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 없이도 달성 가능한 목표를 근거로 한미연합사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군의 작전능력이 떨어진다면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상적인 군의 발전 방향이지, 정치, 군사적 리스크를 감내하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4.2. 전작권 전환 찬성
전작권 전환 찬성 의견을 대표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23] |
4.2.1. 전작권 전환 연기 찬성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에 찬성하는 쪽은, 기본적인 틀은 연기 반대측과 같으나 그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전작권을 반분하는 현 연합사 체제에서, 미군이 한국군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순 있으니 최대한 준비가 갖추어져 한국군이 온전하게 작전능력을 배양할 때까지는 연기해야한다는 것, 이들의 의견은 2012년은 너무 이른 시점에서 반환이라 한국군이 제대로 된 준비를 하기에는 능력상이나 예산상의 문제로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명시조항을 구체적으로 개정해야 하며, 둘째로 서로 북으로 북한, 중국 러시아 남으로 일본이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 타국을 제압할 수 없어도 "너희들이 우릴 죽일 순 있겠지만 너희들도 불구가 될 거다." 라는 억지력이 가능한 군사력이 있어야 하며, 셋째로 주한미군에 크게 의존하던 군사정보력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
4.2.2. 전작권 전환 연기 반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에 반대하는 쪽은, 전작권을 회수하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만약의 경우, 미국의 참전은 국제 조약상 당연히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애초에 한미상호조약과 전시작전통제권은 엄연히 다르다.일반적으로 전작권 반환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 북한이 이를 요구한다고 생각하거나[24] 미국은 이를 돌려주려 애쓰려는 이유 때문에 행여 한국측의 일방적인 손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데 그것은 오해다. 엄밀히 말하자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전시작전통제권의 반환이 아니라 한반도 내 미군의 전면철수고[25], 미국이 전작권을 한국 측에 반환하려 애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리스크 때문이다.
전작권이 미국이 있는 경우에는 다른 나라와의 마찰로 인해 불가피하게 전면전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군사적 보복을 해야할 경우, 연합사령부를 통하여 한미 간의 협의를 거쳐 대응하여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대응하건 미국은 반드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즉, 보복을 하게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면 보복을 당한 국가는 그것을 미국의 공격이라 비난할 명분이 되고, 반대로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동맹국(한국) 내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이 높아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미 한국전쟁에 중국이 그 명분으로 개입한 것만 봐도 충분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미국은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줌으로써 정치 외교적 리스크를 덜고, 한국은 한국대로 해당 도발국에 대하여 필요한 만큼의 확실한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는 주장이 연평도 포격전 이후 제기된 바 있는데, 이 주장은 당시 국방부 장관 김태영이 공식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자위권보다 하위에 있는 개념이며 한국군 단독으로 보복작전이 가능하다고 국회 질의에서 답변했으나, 연평도 포격전 당시 연합사 맥도널드 정보작전 부장 왈, “내가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어제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 시간, 매 분마다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보다 못하단 말인가?” 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국방부 장관의 답변의 신뢰도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기사
또한 한국이 북한에 비하여 군사적으로 충분히 우위에 있지 못하던 1980년대까지는 전작권이 미국에 있는 것이 더 합리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2010년 현재, 한국이 군사력으로 세계 10위 안에 들어갈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북한에게 압도적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는 이로 인한 이득보다 손해가 더 막대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확실한 우위에 있는 지금으로서는 작계 5027의 삭제로 인하여 전시 증원될 미군의 지상군의 투입이 늦춰진다 하더라도[26] 한국군은 그 증원군이 올 때까지 충분히 막아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전작권 단독행사를 주장한다.[27] 그리고 미국이 한국에 마냥 우호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추후 상황이 다를 수 있다. 당장 전작권만 나오면 들먹이는 한미관계는 사실 의미없는 수준으로 미국이 군사 관련으로 뭔가를 요구하면 개차반이 되는 반응과 비난하는 상황도 일어나는 이중적인 상황이다.
또 참여정부 당시 전작권 환수에 621조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작권 환수에 모두 투자하는 비용이 아니라 2020년까지 15년간 국방비의 총합이다. 전작권 환수로 인한 국방비 추가는 없다고 국방부가 밝힌 바 있었다. #
5. 대한민국 국방부의 공식 입장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대한민국 국군이 '능력부족'을 이유로 전작권 환수를 미루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예정대로 2012년에 환수해도 문제가 없으며 2015년 말이 되면 국군의 정보능력, 합동화력운용체계, 정밀타격능력 등 핵심전력이 2012년보다 상당부분 더 구비돼 전작권 전환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28] 발끈(?)하며 공식입장을 표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전작권 전환 절차가 예정대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2015년 이후 더 이상의 전작권 이양 연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었다.
이렇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한국이 미국에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 이후로 재연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달했다는데, 미국은 당초 계획대로 2015년 전작권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의 핵무장 위협 증대를 명분으로 추가적인 준비 시간이 요구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일단 2013년 10월에 개최된 연례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는 "좀 더 의논해보자"는 정도로 이야기 되었다.
결국 2014년 4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기간 중에 전작권 재검토 하기로 합의하면서, 2015년 12월로 계획되었던 전환 시기의 재연기가 기정 사실화되었다.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KAMD)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 억지 전력을 확보하는 시기가 빨라야 2020년 초로 예상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약 10년 동안은 한미 연합사령부로 대표되는 현재의 전작권 행사 체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
2014년 10월 23일의 한미 SCM에서 전작권 전환의 재연기가 공식 확정되었다. '시기'보다 '조건'에 기반을 둔다는 취지에 따라 전환 시기는 명시되지 않았고, 이후 양국 정상 차원에서 전환 시기를 결정한다고 발표했다.[29] 국방부 보도자료. SCM 직후 한민구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2020년대 중반을 목표시기로 제시했지만[30], 전작권 전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반민족범죄'라며 맹렬하게 비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추악한 반민족적 범죄행위'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박근혜 패당이 최근 미국 상전에게 애걸해 전작권 전환을 재연기하도록 하는 반민족범죄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
6. 19대 대선 이후
2017년 5월의 제19대 대선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은 선거 공약으로 '임기 중으로 전작권 전환 완수 추진'을 포함시킨바 있다. 이에 따라 전작권의 조기 전환 문제가, 다시 한미 양국 간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여겨진다.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이었던 4월 27일의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한국군이 사령관을, 미국군이 부사령관을 맡도록 한미연합사를 유지하면 독자적인 전작권 행사에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구상했던 병렬적 공동방위, 즉 연합사 해체보다는 '한국군이 지휘하는 연합사'를 전제로 하여, 전작권 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방향을 추진할 듯.
이에 대해 '미군이 자국 군대를 다른 나라의 지휘 아래에 둔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실현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결국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 통일된 연합사령부의 해체로 귀결될 것이라고 비판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연합사령부'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지난 2012년에 제임스 서먼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먼저 제안한 것이며 2014년 10월 23일 제46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미군 주도의 연합사령부에서 한국군 주도의 새로운 연합방위사령부로 대한민국이 제안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게다가 2013년 이래 진행 중인, '조건에 기초하는 전작권 전환'이 지향하는 미래 연합지휘구조도 분명 한국군 사령관이 연합사를 지휘하는 구조임을 명시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기존의 방침이 한국의 독자적 대북 억지 능력 확보가 마무리되는 수년 후(2020년대 초-중반 추정)인 반면, 문재인 정부는 이를 임기 중으로 앞당기는 정도일 뿐인 것이다. 이마저도 국정기획위에서는 '임기 중'이라는 구체적인 시한을 정하지 않고, 단순히 조속하게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미래연합지휘구조에서 미래사령부는 구 한미연합사와 같은 전구사령부 역할을 수행한다. 사실상 바뀌는 것은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하고, 미국 장성이 부사령관직을 수행한다는 것, 한국군 장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다는 것 그리고 미래사령부가 한국 합참 내에 설치되며 전시 작전지휘 장소가 한미연합사 벙커에서 수방사 담당 벙커로 바뀐다는 것 정도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으로서 지휘를 주도하는 듯한 모양새가 된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에서도 어느 정도 수용할 여지가 있으며, 보수진영에서도 실질적으로 한미연합사가 유지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용할 여지가 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한반도 전구의 미군 전체가 타군 장성의 지휘 아래에 들어간다는 점이 불쾌하지만, 단순히 겉으로 볼 때만 그럴 뿐 실질적으로는 현재의 한미연합사가 그렇듯 한국군 사령관이 미군 부사령관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며 지휘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대북전에서 미국은 남한을 지원하는 입장이 되어 부담이 줄어들고, 당연히 한국군에게 좀 더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는 점[31]은 미국이 만족할 부분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현재의 연합사처럼 상황에 따라 한반도 내 미군 지휘에 개입할 여지가 유지된다는 점[32]과 대북전에서 조금 더 주도적인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부분이다. 한미 양국의 관계자들이 고심해서 나온 해답이라고 봐야할 듯하다.
2017년 6월 30일(현지시각 기준) 미국에서 열린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양측의 첫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연합방위 체제에서의 한국군 주도 원칙 인정',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의 조속한 추진을 위한 양국 간 협력 지속'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들 모두 전작권 전환의 가속화를 양국 정상 차원에서 합의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책임국방'의 취지 아래 전작권 전환에 다시 적극적인 한국 문재인 정부, 그리고 동맹 당사국의 방위책임 강화를 선호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
3주 후인 7월 19일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에서는, 전작권 전환의 '조속한' 추진도 포함되었다. 공식적으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쓰인 표현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지만, 언론들은 대선 공약에서 명시된 '임기 내'라는 표현이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다음 2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가장 일반적인 설명으로 "향후 한국군에게 필요한 군사적 준비를 고려하면, 임기 내 전환이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는 현실론이다. 다른 하나는 "현재 문재인 정부,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과 야당의 지리멸렬한 상황으로 오는 20대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재집권 전망이 긍정적이고, 그 결과 차기 대선에서도 전작권 전환을 지지하는 대통령과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으므로, 굳이 문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 전환을 무리하게 끝내야 할 부담이 작아졌을" 가능성이다.[33]
2017년 9월 18일,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가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의 요청으로, 전작권 전환을 계기로 설치될 '한국군 지휘 방식의 미래사령부' 논의가 중단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기존의 '미군 지휘하의 연합지휘체제' 변경을 전제로 하는 전작권 전환에 부정적이라는 암시를 주는 내용. 그러나 국방부는 곧바로, "브룩스 사령관이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고, 미래사령부 설치를 위한 한미 양국의 논의는 로드맵대로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해당 보도를 부인했다.
문재인-트럼프 행정부의 출범 후 처음으로 개최된 2017년 10월 28일의 SCM에서는 6월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전작권 전환의 조속한 실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내용이 채택되었다. 다만 핵심 사항인 전작권 전환 이후 수립될 '한국군 주도의 미래 연합사령부' 구조를 비롯한 주요 로드맵의 완성, 승인은 내년 SCM까지로 미뤄졌다. 한국군에서 연합사령관을 맡는다는 원칙은 그대로지만, 휘하 참모조직 등에 대한 구성을 놓고 아직 결론을 못 냈기 때문이라는 것.
2018년 1월 19일 국방부는 신년 업무보고에서, 지난해 SCM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던 한국군 주도 연합사의 구성 방안을 5월까지 미국과 합의할 방침을 밝혔다. 또한 내년 예정된 한국군 주도 미래 연합사의 '검증 이전평가'를 생략하고, 곧바로 '초기능력(IOC) 검증 평가'를 실시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경우 전작권 전환 속도의 가속화가 더욱 힘을 받을 전망이다.
5월 11일에는 송영무 국방장관이 "현 정부의 국방개혁이 완성되는 2023년까지는 전작권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 토론회에서 밝혔다. 정확히는 2023년까지 전작권 전환을 감당할 수 있는 독자 역량을 갖추겠다는 의미에 가깝지만, 언론은 다시 구체적 연도를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현재의 한반도 정세 호전에 따라 북핵 위협의 평화적인 해소, 평화체제 실현이 가시화된다면, 그 이전에라도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지는 데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10월 31일(현지시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이 워싱턴D.C에서 열린 제50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조속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에 공감하며 전작권 환수 이후 연합방위태세의 밑그림이 담긴 연합방위지침에 합의했다. 8개 항으로 된 연합방위지침은 전작권 환수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철수하지 않고, 지금의 한미연합군사령부 형태의 지휘구조를 유지하며 연합사의 사령관은 한국군 대장, 부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맡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전작권 환수에 대비해 한국군 주도의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평가하는 기본운용능력(IOC) 검증도 내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
7. 기타 및 다른나라 사례
북대서양 조약 기구 주요 국가인 이탈리아는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나토 간의 관계는 한국과 미국 간의 상황과 다르다. 만약 이탈리아가 외부의 공격을 받게 되면, 이탈리아는 군대를 나토에 위임할 수 있고, 그럴 때 나토가 전작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나토에 위임할 지 여부는 이탈리아 정부가 정하는 것이고, 나토의 개입을 거부할 권리도 있다”라고 답했다 라고 했는데 예를 들어, 한 회원국가가 자국 군 전체의 10분의 1을 나토에 위임했다 하면 나머지 90% 군의 전작권은 여전히 해당 회원국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34]
[1]
지휘와 통제를 막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휘는 통제와 처벌할 수 있는 통제의 상위 권한이다. 현재의
한미연합사령부는 각국
국방부에 처벌 권고를 할 수 있을 뿐.
[2]
주한미군의 존재는
주체사상파인
NL의 소위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의 핵심근거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PD계열이나 1990년대 이후 개량화된 시민운동 계열은 한국을 대체로 미국의 강한 영향력을 받고 있지만, 상당한 독자적 기반을 갖춘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애초에 미국 영향 안 받는 나라가 어디있냐는 것도 이들의 의견 중 하나.
[3]
예로
일본과의
독도 분쟁이나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의 투사 대상과 무관한 제3국과의 전쟁. 한일전쟁 소설
작전명 충무에서도 미국이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한국군이 직접 전작권을 통제하게 되었다.
[4]
다만 이건 실제로 그러겠다는 뜻보다는 휴전 협상에 대한 불만, 미국과의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 체결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정치적인 제스처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물론 일단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한 말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그리고 근미래의 정부도 음미해야 할 일화다. 작전권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 한다. 전투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수행할 능력 이야기다. 그것이 없으면 작전권이 내게 있어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
[5]
이 때
대한민국 국군 수뇌부에게 '왜
삼팔선을 안 넘나'라면서 '줬을 때도 우리가 갖다줬으니 받을 때도 우리가 받아올 거요. 국군은 즉각 북진하시오'라 덧붙이고 바로 북진 명령서를 결재해줬다. 역시 독불장군.
[6]
작통권을 넘긴 과정이 날림이라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군 수뇌부들의 의견을 묻기는 했으나 비공식적인 자리였고 결국 이승만의 편지 한 통으로 작통권이 이양되었다.
[7]
당시 합참에서 이 작업을 진두지휘한 실무자가
임동원 중장이었다. 훗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다.
[8]
다만
조선일보는 그 당시에도 안보공백우려, 전쟁억지력 약화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김영삼 정권과 조선일보의 관계도 이때부터 금이 가게 된다.
[주의]
평상시 나토협정상의 이야기이고 나토 전체가 개입하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들도 나토의 통제권 아래 들어오도록 되어 있다.
[10]
실제 냉전말까지 독일에는 미군-영국군-프랑스군-네덜란드군등의 독일 뒤의국가들의 지상전력과 항공전력이 포진해있었다. 이들은 독일통일과 냉전의 종식으로 미군을 제외하고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해소되었다.
[11]
그러나 1994년 독일은 나토에 가입한 상태로 전시작전권을 되찾아와 이제 이것도 옛말이 되었다.
[12]
2015년에 다시 이 언급이 불거지는 걸 보면 미일동맹의 밀월에 의한 역할론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게 실현될 가능성이 적은게 한반도에 미 8군 사령부가 있고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관할하는데 태평양사령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동북아 관할에만 이미 4성 지휘관이 2명이나 있는 점이 감안된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행정부 때 한미갈등으로 슬슬 빠지려고 했을 때 미군이 8군 사령부를 일본으로 철수하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요건 때문이기도 했다.
[13]
부형욱,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슈와 정책방향#, 국방연구원, 2013, pp. 9-10
[14]
부형욱,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슈와 정책방향#, 국방연구원, 2013, pp. 10
[15]
박휘락,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지휘통일”, 『국방정책연구』, 제81호, 2008, pp. 157-185
[16]
United States General Accounting Office, OSI-98-4 Operation Provide Comfort: Review of U.S Air Force Investigation of Black Hawk Fratricide Incident, 1997
[17]
Jos A. Rijpma, From Deadlock to Dead End: The Normal Accidents-High Reliability Debate Revisited, Journal of Contingency and Crisis Management Vol. 11 No. 1, 2003. pp. 42-43.
[18]
박창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신연합방위체계의 효율성”, 『국방정책연구』, 제88호, 2010, pp. 137-164.
[19]
Michael E. O'Hanlon, OpCon Transfer or OpCon Confusion: Making the Best of a Dubious Idea. 2010. 4.
[20]
1999~2000년까지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 부총장
[21]
추가로, 박용옥 전 총장의 주장 후반부 내용을 보면 '전작권 환수를 해도 한미동맹 관계는 굳건히 유지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등장한다.
[22]
하지만 한국군이 미군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의견은 한국군의 국방비와 전력을 보았을 때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의견이라 할 수 있겠다. 약 59만 명의 군 규모를 유지하고, 한 해 국방비에 50조 1000억 원을 투자하며 연간 국방비 증가가 2~3조 원 정도인 국가가 타국 군에 (마치 6.25 이전 국군과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군처럼)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자체적인 국방력을 유지, 증대시키면서도 지옥과 같은 주변국의 안보 위협에 대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단기간 내에 얻기 힘든
핵우산과 전자전 등의 능력을 미군에
아웃소싱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의견일 것이다.
[23]
상세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 참조.
[24]
최근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대해 북한이 '반민족범죄'라며 맹비난한 것을 보면 북한이 전작권 반환을 원하고 있다.
[25]
사실 미군철수마저도 북한입장에서 복합적인 태도로 보는 것이 맞다. 미군의 존재로 북한도 중국견제의 반사이익을 얻는 등 이점이 있다. 그래서 지난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군의 존재를 용인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이런 점 때문이며 실제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당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내린 유언 중 하나가 중국을 맹신하지 말라는 것일 정도로 북한은 중국과 마냥 행복한 사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26]
이미 짜여있는 작전을 바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회의 동의를 거치고 새로 작전 수립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늦어지는 것을 말한다.
[27]
아니, 막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북한에 어느 정도 진입은 가능한 수준이다. 애초부터 한국과 북한의 국방비가 차원이 다른데 연 몇 조 단위의 국방비를 가지고 고작 북한군 따위도 이기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
[28]
그러나 여전히 주한미군 10대 임무조차도 완벽하게 한국군 스스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2021년이라면 거의 모든 면에서 주한미군보다 우수하다. 하지만 현재조차도사실 예전 한미연합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 지휘역량, 전력지수를 한국군 독자적으로 대체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29]
그 대신 전작권 전환의 핵심 조건으로 알려진 한국군의 독자적인 전력 확보(즉,
킬체인과
KAMD)를 2020년대 중반까지 추진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30]
본래는
킬체인,
KAMD 구축의 목표 시기인 2020년대 초로 제시되었는데, 예산 부족이나 전력화 초기의 운용능력 미숙의 가능성이 있고, 같은 시기까지 북한이 핵무장을 고수할 경우, 그에 따른 추가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
[31]
한국군이 주도적인 위치에 선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그만큼 부담해야되는 부분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32]
만약 이전의 논의처럼 단일 전구 사령부를 완전히 해체해버리고 연락장교단을 파견하는 식었다면 사실상 한반도에서 작전하는 미군의 작전 통제에 한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33]
반대로 만약 현재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하거나, 야당의 세력이 건재해서 20대 대선에서 민주당의 재집권을 섣불리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전작권의 전환을 매듭 지으려는 의지를 강조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결국 20대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전작권 환수는 미지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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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할 것은, 이것이 어디까지나 "나토"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토는 기본적으로 다국적 체제이기 때문에 나토 국가들끼리 전쟁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저런 권한을 만들어놓은 것. 나토의 주적인 러시아를 상대로 하는 대러전에서는 유명무실한 조항이다. 그리고 한미연합사에 전작권을 넘길 때 반드시 미국은 한국 대통령과 논의해야 하는데, 만약 한국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작전권은 여전히 한국 측에 있다. 그리고 예외도 있는데, 위에서 서술했듯 독일군의 전작권 90%는 나토에 위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