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협려의 등장인물 | ||
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 장삼봉 張三丰 / Zhāng Sānfē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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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
의천도룡기 2019〉의 장삼봉(왕더순(王德顺) 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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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D256E,#1C082D><colcolor=#A79E8D> 이명 | 장군보(張君寶) (초명) | |
성별 | 남성 | |
민족 | 한족 | |
자택 |
무당산(武當山) ( 원나라 하남강북행성)[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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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무당파 (장문인) | |
기술 |
태극권, 무당장권, 태극검, 의천도룡공, 진무칠절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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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작품 |
- 소설 《
신조협려》 (원작1) - 소설 《 의천도룡기》 (원작2) - 각종 2차 창작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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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張三丰소설 《 신조협려》, 《 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 실존인물 장삼봉을 모티브로 한다.
무당파의 개파조사이자 장문인. 젊은 시절 이름은 장군보(張君寶)이며, 훗날 스스로 '삼봉(三丰)'이란 호를 써 장삼봉으로 불렸다. 젊은 시절에는 각원대사의 속가 제자로, 소림사 장경각에서 각원을 도와 청소와 책 관리를 했다. 각원대사를 통해 구양진경의 일부분을 배워서 내공은 어린 나이에도 상당히 뛰어났다. 《의천도룡기》에서는 태사부(太師父)로 호칭되며, 작중에서 세계관 최강자이다.
2. 작중 행적
2.1. 《신조협려》
《 신조협려》의 막바지에 각원대사와 함께 구양진경을 훔쳐간 소상자와 윤극서를 쫓아 화산논검이 벌어지는 화산으로 왔다가 양과를 만난다.윤극서의 몸을 뒤지려다 그와 대결했지만 내공력은 있어도 싸우는 초식은 전혀 알지 못해 당하다가, 양과로부터 3가지 초식을 배워 그것으로 윤극서를 쓰러뜨린다.
하지만 구양진경은 되찾지 못하고 소림사로 돌아가게 된다.
2.2. 《의천도룡기》
2.2.1. 장군보 시절
《 의천도룡기》에서는 소림사에 온 곽양을 만나 철나한상을 받게 된다. 나한상의 움직임을 보고 흉내내어 나한권을 익혔다.스승 각원대사가 곤륜삼성 하족도와 대결하다가 위기에 빠지자, 옆에서 끼어들어 각원대사가 하족도를 쓰러뜨리게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하족도는 장군보에게 대결을 걸게 되고, 장군보는 곽양이 줬던 나한상을 보고 배운 소림 나한권에 그 동안 수행한 구양신공의 내공으로 싸워 하족도를 쓰러뜨린다. 하족도는 패배를 인정하고 각원대사에게 윤극서의 유언을 전한 다음 사라졌다.
하지만 장군보는 "스승의 지도 없이 무공을 배워서는 안된다."는 소림사의 계율 때문에, 원로 고승에게 질책을 받게 된다. 무색선사는 장군보를 변호했지만, 이 계율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화공두타 사건을 직접 겪은 원로 고승이 원한에 차서 계속 고집을 부리자 어쩔수 없었다.
장군보가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스승 각원대사는 신공을 발휘하여 장군보와 곽양을 데리고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각원대사가 입적하기 전에 구양진경의 경문을 듣게 된다.[3]
이후 곽양에게 양양성에 가서 곽정에게 의지하라는 말을 듣고 양양으로 향했으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한 아낙이 남편을 타박하며 "명색이 사내대장부라면 스스로 독립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뭔가를 깨닫게 된다.
특히 곽양으로부터 곽부는 성미가 까탈스러워서 비위를 잘 맞춰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사내 대장부가 남 앞에 굽실대면서 구차하게 살아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양양성으로 가는 것을 그만두고 무당산에 가서 샘물과 과일을 먹고 구양진경을 수행했다.
또 도가의 경전을 얻어 그 가르침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여 도(道)를 깨달아 무당파의 무학을 창출해낸다. 그리고 무당산 정상에 도관을 세우고 도사가 되었으며, 북방을 유람하던 중 산봉우리 셋을 보고 무학의 또 다른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삼봉(三峰)이라는 도호를 쓰게 된다.
2.2.2. 장삼봉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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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A79E8D> 2019년 드라마판에서의 모습 |
무당파의 개파조사가 됐다. 《 신조협려》 말미에서 벌어졌던 2차 화산논검에서 최초로 얼굴을 내민다. 당시에는 소림사의 각원대사 밑에 소속된 10대 초중반인 하인에 불과했으나 각원대사에게 구양진경을 일부 전수받았다. 또한 무공 초식은 전혀 모르는데도 양과에게 몇 수 지도받고 당세의 고수인 윤극서를 엿먹이는 등 자질이 뛰어났다. 스승 각원대사가 죽고 벌어진 일어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소림사에서 도망친 후 도가의 원리를 접목한 무공을 창안하여 나중에 소림사와 함께 무림의 양대산맥으로서 오랫동안 군림하는 무당파를 세운다.
의천도룡기의 본격적인 스토리는 무당파가 세워지고 시간이 지나 문파의 명성이 높아진, 그가 90세가 되는 시점에서 시작하므로, 본 작품 안에선 호호 할배라 별로 활약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장무기의 아버지가 장삼봉의 제자였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 무당파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으며, 장삼봉도 종종 언급된다.
천하오절과 곽정, 양과, 주백통, 금륜국사 등 엇비슷한 수준의 절정고수들이 난립했던 두 전작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에서와는 달리, 의천도룡기에서는 주인공인 장무기가 대성하기 전까지 장삼봉 혼자서 무림지존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 장무기가 최고수준의 내공을 보유했고 건곤대나이와 성화령 신공이라는 강력한 무공을 익혔으므로 장무기가 장삼봉과 비슷한 급이라고 추측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히 위력의 강하를 떠나 무학의 깊이 면에서 명백히 장삼봉이 훨씬 더 위임을 알 수 있다.[4]
소림사의 도액 등 소림삼대신승, 명교의 광명좌우사와 사대호교법왕, 아미파의 장문인 멸절사태, 조민의 수하였던 현명이로 등의 당세를 주름잡은 고수들도 장삼봉보단 명백히 몇 수 아래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장무기 전대의 명교 교주 양정천이 높은 경지까지 올라 간 것 같긴 하나[5] 그 역시 훨씬 아래로 보인다.[6] 특히 초기 판본에서는 장삼봉과의 대결에서 판정패를 당해서 확인사살.[7] 게다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보니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았다.[8]
정파무림의 태산북두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정파 측에서 무조건적으로 경원하다시피하는 사파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하여, 사파에 몸담은 인물이라 해도 군자의 기질이 있다면 친구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실로 관대한 시각을 가졌다. 즉, 정과 사를 이분법적으로 일도양단해 버리는 편파적인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명문정파에 속하여 사파를 매도하면서도 뒤로는 사파 인물들보다 더 악독한 짓을 저지르기를 일삼는 치사한 놈들[9]이 작품 안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므로 장삼봉의 이러한 생각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가장 아끼던 제자인 장취산이 죽은 후 사파에 대해서 확실한 반감을 품었다. 장무기에게 절대로 명교에 입교하지 말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고, 후에 장무기가 명교의 교주가 되어 나타나기 전까지 명교에도 감정이 안 좋았다. 장무기가 명교 교주가 되자 "올바른 장무기가 명교를 이끌게 되었으니 명교가 바로 서겠구나"라며 생각을 바꿨다.
95세 무렵부터 해마다 아홉 달씩 폐관수련을 하였다. 왜냐하면 장삼봉이 구양진경을 바탕으로 무당파 무공을 창안하였는데, 자기가 구양진경의 일부밖에 모르므로 그에 바탕한 무공에 결함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양진경을 온전히 알지 못한 바에야 스스로 무공을 창출하여, 지금까지 자기가 창안한 무공과 전혀 다른 것을 만들려 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태극권과 태극검이다.
100세 가 되도록 여전히 숫총각이었으며, 80년간 홀로 수행한 끝에 터득한 순양무극공(純陽無極功)을 극한까지 연마하였다.
무려 110세 나이로 장무기에게 태극권과 태극검법을 가르침으로써 무공이 대성하도록 돕는다. 제자로는 무당칠협이라 불리는 속가제자 7명이 있는데, 장무기의 아버지 장취산은 그 중 다섯째다. 엄청난 고령에도 불구하고 의천도룡기 마지막까지 건재함을 과시하며, 장무기는 작품 내내 장삼봉을 매우 존경하고 우러러보며 그와 무당파가 위기에 처하면 자기 안위를 돌보지 않고 나선다.
90세 이후로 10주년 생일마다 안 좋은 대사건이 터진다. 90세 생일 때는 제자 유대암이 폐인이 되어 돌아왔고, 100세 생일 때는 장취산이 자살해버렸다. 110세 때는 제자들이 납치당하고 무당산은 쑥밭이 될 뻔했다. 얼마 안 있어 막내 제자 막성곡이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1]
왕더순은
2020년에 방영된 〈
녹정기 2020〉에서
홍안통 역을 맡은 배우이다.
[2]
현대 기준으로는 '
중국
후베이성
스옌시 단장커우시(丹江口市)'
[3]
단, 전부를 듣고 외운 것은 아니고 일부만 들었다. 또, 이때 곽양과 무색선사도 이 경문을 듣고 외우게 되었고, 이 중 무색선사가 가장 무공이 뛰어났기 때문에 소림구양공은 가장 중후하게 되었고 곽양이 가장 박식했기에 아미구양공은 가장 범위가 넓었고 장군보는 거의 무공을 익힌 적이 없다보니 무당구양공은 가장 순수한 형태가 되었다.
[4]
장삼봉의 무술 실력을 알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은 의천도룡기 1권에 나오는,
현명이로에 붙잡힌 장무기를 뺏는 장면이다. 장삼봉이 현명이로 중 하나가 잡고 있던 장무기를 순식간에 뺏았았다. 눈앞에서 살짝 어깨를 눌러서 순식간에 현명이로를 제압해버린 것이다. 이 정도라면 수준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현명이로는 의천도룡기 악역 중 무공이 최고라, 주인공 장무기조차 현명이로 2명과 붙어서 단 1초에 패배했다. 만약 죽이려 했다면 단1~2초에 죽였을 것이다. 이 상황까지 고려하면 장무기와 장삼봉의 수준차는 매우 크다. 그 이후 장무기는 무당산에서 장삼봉에게
태극권과
태극검을 직접 지도받고 본인 무학의 여러 부분을 전반적으로 완성하였다. 그래서 장삼봉에게 세심하게 지도받은 지 불과 몇 달 후에 현명이로와 맞붙어 몇십 초만에 패퇴시킬 정도로 무공이 상승하였다. 장삼봉과 장무기의 무학 수준차가 이 정도이다. 장무기가
독학으로 익힌 무공의 한계를 장삼봉이 탄탄하게 다듬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원나라 사주를 받은 금강문 강상으로부터 암습을 당했을 때에도 치명타를 입었음에도 심후한 내공으로 인한 호체지기로 인해 목숨을 잃지 않았고, 되려 즉각 반격하여 일격에 강상을 절명시켜버렸다. 나중에 장무기의 내공을 보고 각원대사나 양과급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김용 월드에서 누가 내공제일인가는 상당한 떡밥이지만, 내공이 극에 이르면 거기서 거기이며 승패는 초식이나 전술 등으로 결정나기 마련이라, 장무기와 장삼봉은 인간이 수련할 수 있는 내력의 거의 정점에 올라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조영웅전 초반은 몰라도 후반부나 신조협려 당시의 천하오절이 이 경지이며, 이 시대에는 장무기와 장삼봉 정도만이 그 경지에 올랐다. 다만 장삼봉은 현실의 중국 민간전설에서 신선 취급 받는 실존인물이라 김용도 장삼봉의 무공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한 묘사는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의천도룡기 시점에서 장삼봉과 장무기가 동급인지, 아니면 둘 중 하나가 좀 더 뛰어난지를 논하기란 무의미하다.
[5]
당대에서는 장삼봉을 제외하면 무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6]
아무래도 실존한 무학계의 전설이다보니 그만한 대우를 한 듯하다. 거기다 양정천은 명교의 비전인
건곤대나이신공도 내공부족으로 다 익히지 못하고 주화입마로 죽었으니 이미 무공의 고하는 꽤 뚜렷하다. 무공 초식이 일천하기 이를 데 없던 장무기가 단지 구양신공과 건곤대나이를 익힌 것 만으로도 무위가 사실상 양정천을 넘어서버렸고, 그 이후 태극권 등을 더 배우고 장삼봉에게 세심한 지도를 받은 장무기에게 확연히 한 수 뒤쳐짐이 분명하다. 그러니 당연히 장상봉과도 확연히 실력차가 날 수 밖에 없다.
[7]
둘이 사흘을 싸워서
무승부를 냈으나 이후에 장삼봉은 멀쩡하였고 양파천(당시 판본에서의 이름)은 피를 토했다.
[8]
한 예로
은리정이 '
의천검과
도룡도의 전설이 무림에서 수백년동안 돌아다녔다'고 말하자 장삼봉은 '응? 그거 고작 7,80년전 일인데? 내가 젊었을 땐 그런 전설 없었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까마득한 전설로 취급되는 의천검, 도룡도보다도 더 오래 살아왔다는 것이다. 당연한게 의천검, 도룡도는 양과가 쓰던
현철중검을 황용이 녹여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9]
화산파의 장문인 선우통,
대리국 주씨의 후예
주장령,
곤륜파의 장문인 부부
하태과
반숙한 등 세어보면 굉장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