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 주로 활약하는 문파이며, 소오강호에서도 나름 조연으로 등장한다.장삼봉이 개파했으며, 무당칠협이 유명하다. 장삼봉이 장군보시절일 때의 스승인 각원대사를 기리기 위해 사조로 모시고 있다. 도교의 대신령인 진무대제(眞武大帝)를 신봉하고 있다. 중원에서는 서역의 광명정을 떠나온 장무기와 명교 신도들의 본진 격으로 쓰이기도 했다. 무당칠협은 유대암이 폐인이 되고, 장취산이 사망한 후에는 무당오협으로 불리기도 한다.
명나라 때인 소오강호 시점에 가서는 소림사에 버금가는 무림의 태산북두로 성장한다. 꼰대나 위선자가 종종 나오는 소림사와는 달리 은근 인격적인면에서 대우가 좋은 편으로, 송청서 정도를 제외하면 인격에서 큰 하자가 있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2. 인물(사조삼부곡)
- 사조 : 각원대사
- 장문인: 장삼봉
- 2대 장문인: 유연주
- 무당칠협
- 영허자(靈虛子): 유대암의 문하로 묘사된다. [1]
- 청풍(淸風), 명월(明月): 폐인이 된 유대암의 시중을 들고 있는 두 명의 도동(道童). 나중에 장무기가 청풍으로 변장을 하기도 했다.
3. 무공
3.1. 태극권(太極拳)
의천도룡기에서는 무당파 제자들이 만안사(萬安寺)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조민과 그 부하들이 무당파를 습격했을 때, 처음 언급된다. 장삼봉이 18개월 동안 좌관하여 무학의 요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통달한 끝에 태극검과 함께 단숨에 완성했다고 묘사된다.[2] 처음으로 전수 받은 사람은
유대암과 곁에서 함께 배운
장무기이며,
구양진경,
건곤대나이와 함께 장무기의 대표 무공이 된다.
다만 다른 김용의 작품들에서 태극권은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의천도룡기보다 먼저 집필된 서검은구록, 비호외전에서는 심지어 태극권이 무당파의 무공이 아니라 태극문(太極門)의 무공이다. 소오강호에서도 태극권이 언급되긴 하나, 태극검이 훨씬 중요하게 다루어진다.[3] 벽혈검, 녹정기에서는 무당파만 언급되며, 태극권은 언급되지 않고, 협객행에서는 딱 한 번 언급되고 무당파의 무공이긴 하다.
실제의 태극권에 대해서는 태극권 참조.
다만 다른 김용의 작품들에서 태극권은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의천도룡기보다 먼저 집필된 서검은구록, 비호외전에서는 심지어 태극권이 무당파의 무공이 아니라 태극문(太極門)의 무공이다. 소오강호에서도 태극권이 언급되긴 하나, 태극검이 훨씬 중요하게 다루어진다.[3] 벽혈검, 녹정기에서는 무당파만 언급되며, 태극권은 언급되지 않고, 협객행에서는 딱 한 번 언급되고 무당파의 무공이긴 하다.
실제의 태극권에 대해서는 태극권 참조.
3.2. 무당장권(武當長拳)
기초 입문 권법. 총 32세(勢)로 이루어져있으며, 안시식(雁翅式), 도기룡(倒騎龍), 칠성수(七星手), 일조편(一條鞭), 정란(井欄) 등의 초식이 언급된다.
장무기가 최초로 배운 무공이자, 아버지
장취산에게 배운 유일한 무공. 주장령은 장무기가 무당장권을 쓰는 것을 보고 그가 정말 장취산의 아들인 장무기임을 파악하였다.
3.3. 면장(綿掌)
장법(掌法)으로 총 36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유극강의 무당파 무공의 정수를 담고 있어 극히 유연하고 날렵하면서도 부드러운 초수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무당파의 대표 무공이었으나, 태극권이 등장한 이후에는 언급이 없다. 작중 장취산 등이 종종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장무기와 맞서 송청서가 사용하기도 했다. 이때 송청서는 빈사 상태인 장무기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 반격을 꾀하고 있음을 깨닫고, 강맹한 위력이라곤 없는 면장을 통해 차력타력의 술수를 봉쇄하려고 했다. 하지만 장무기는 건곤대나이 신공을 7단계까지 깨우친 상태라 면장의 미미한 힘줄기조차 놓치지 않고 틀어놓아 보기좋게 송청서를 곤란에 빠뜨린다.
여담으로 의천도룡기 내에서는 아미파에도 금정면장(金頂綿掌)이 있는데, 세부적인 운용법이나 내식이 판이하다지만 겉으로 보이는 초식이 무당파의 면장과 흡사하다는 묘사가 있다. 아마 곽양과 장삼봉의 인연, 혹은 둘 다 전수받은 구양진경의 원리에 두 문파 무공의 동일성의 비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본편에서는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위일소가 구사하는 한빙면장도 한자를 공유하지만 이 쪽은 별 공통점이 없다.
여담으로 의천도룡기 내에서는 아미파에도 금정면장(金頂綿掌)이 있는데, 세부적인 운용법이나 내식이 판이하다지만 겉으로 보이는 초식이 무당파의 면장과 흡사하다는 묘사가 있다. 아마 곽양과 장삼봉의 인연, 혹은 둘 다 전수받은 구양진경의 원리에 두 문파 무공의 동일성의 비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본편에서는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는다. 위일소가 구사하는 한빙면장도 한자를 공유하지만 이 쪽은 별 공통점이 없다.
3.4. 진산장(震山掌)
3.5. 진천철장(震天鐵掌)
3.6. 호조절호수(虎爪絶戶手)
무당칠협의 둘째
유연주가 무당파의 호조수를 바탕으로 변화시켜 만들어 낸 금나수법. 원래 장삼봉이 창안한 호조수(虎爪手)는 단 일초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초식은 상대방을 제압해도 내공으로 운기해서 빠져나올 위험성이 많고, 이때는 모처럼 장악한 승기를 잃어버리고 상대와 내력을 겨루어야 하는 부득이한 국면이 전개될 수 있었기에 무공의 경지로 따지면 빈틈이 있는 초식이었다.
유연주는 이 약점을 없애기 위해 호조수로부터 파생되는 12가지의 변화초식을 궁리했는데, 그 결과 탄생한 호조수는 이전보다 훨씬 위력적이고 정교한 절학이 되었다. 유연주는 평소에 하듯이 자신이 만들어 낸 호조수를 스승 장삼봉에게 시연해 보이고 가르침을 구했는데, 장삼봉은 고개만 두어 차례 주억거릴 따름이지 가타부타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에 유연주는 스스로 만들어낸 무공이 완성도가 낮은 줄 알고, 더더욱 연구해서 약점을 보완하고 다듬은 뒤에 장삼봉에게 다시 가르침을 구했다. 이에 장삼봉은 유연주를 향해 "내가 가르쳐 준 광명정대한 초식으론 모자라서 이런 무서운 살수를 만들었단 말이냐?"라고 나무란다. 유연주가 개량한 호조수는 매 초식이 등허리 요추(腰椎)의 급소를 노리기 때문에, 위력이 대단함은 물론이고 허리의 음맥(陰脈)을 끊어 자식을 낳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는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뜻밖에 스승이 엄하게 나무라자 유연주는 그저 데꿀멍엎드려 용서를 구할 따름이었다. 장삼봉은 유연주를 엄하게 꾸짖긴 했지만, 무공 자체가 대단한 절학이니 그냥 폐기하기엔 아깝다고 여겨, 다른 제자들에게 이 일화를 알려 주고 유연주로부터 새 호조수를 전수받도록 명했다. 단 무공의 위험성을 잊지 않기 위해, 남의 자손을 끊는다는 의미의 '멸문절호(滅門絶戶)' 가운데 '절호' 두 글자를 따서 '호조절호수'라고 부르도록 명했다. 또한 생사의 위기가 다가오기 전에는 결코 써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후일 장삼봉의 100세 생일날에 많은 문파가 무당산에 몰려와
장취산을 추궁하려 하자,
장송계는 곤륜, 공동파 등의 대고수들을 기습적으로 일시에 제압하여 분위기를 무당파에 유리하도록 만들자는 계책을 내놓는다. 이 때 단숨에 고수들을 제압하기 위해 제안된 초식이 바로 이 호조절호수이니 그 무시무시함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은 사부님의 생일에 그런 흉험한 초식을 사용하는 것을 꺼렸으나,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 도사나 노인네들에게 쓰면 괜찮지'라고 어영부영 타협하게 되었다(...). 하지만 곤륜, 공동보다 훨씬 존재감이 있는
소림사의 삼대 신승들이 들이닥쳐서 이 기습 작전은 자연스레 무산되었다.
3.7. 태극검(太極劍)
태극권과 더불어 장삼봉이 만년에 창안한 무당파 최고의 절기. 그 핵심은 눈으로 보이는 초식이 아니라 초식이 표현하고자 하는 검의(劍意)에 있다. 그럴싸한 이름을 가진 수십 가지 초식은 사실 검으로 크고 작은 '원'을 그려낸다는 단일한 검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처음 장삼봉이 군웅들 앞에서 시범을 보일 때는 동작이 하도 느릿느릿해서 검초가 뻔히 눈에 보인데다 두 번째로 시범을 보일 때는 같은 초식인데 어째 동작이 딴판으로 달라져서 이것이 무슨 도깨비놀음인가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곤대나이를 터득하고 내력이 정순한 장무기는 두 차례의 시범을 통해 장삼봉의 뜻을 이해하고 태극검의 진수를 펼쳐낼 수 있었다.
태극검의 진수는 검으로 원을 그리며 상대의 직선적인 공격을 받아내고 제압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팔비신검 방동백 같은 고수가 의천검으로 펼쳐내는 검법을 가뿐히 제압할 수 있었다. 의천검은 고수가 휘두르면 칼집에 들어 있는 상태에서도 산호금 지팡이를 절단낼 수도 있는 천하의 명검인데, 의천검의 칼날이 아니라 칼몸을 목검으로 원을 그리며 밀어내는 식으로 그 예리함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
방동백은 과거 검술의 달인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태극검을 상대로는 장무기의 옷자락 하나 베지 못하고 수백 초를 휘둘리며 점점 출초의 속도가 떨어지고 내공이 소진되어 가는 기이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번개 같은 출수로 단숨에 죽이거나 제압하는 무림의 명문 검술들과는 목표 자체가 다르다. 이정제동, 이유극강의 무당파 무공 철학을 극한까지 추구한 검술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상대를 해치기보다 몸을 지키는 데 극히 유리하고, 싸울수록 끈기가 발휘되는 무당파 내공과 결합하면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맞붙어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은리정이 최강 무공 중 하나인 구음백골조의
주지약을 상대로 싸우면서도 태극검의 정묘함에 힘입어 오래도록 버티며 지구전을 내다볼 수 있었을 정도.
3.8. 신문십삼검(神門十三劍)
13초식으로 이루어진 검법으로, 모든 초식이 손목의 신문혈(神門穴)을 공격하는 것으로 보아 주로 무장해제용으로 판단된다.
장취산이 무당산을 떠날 때,
장삼봉은 이 검법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으나 10년 후 그가 돌아왔을 때
은리정이 펼쳐보이게 된다.
3.9. 요지유검(繞指柔劍)
72초의 검법. 장검의 칼날이 부드러운 허리띠처럼 휘어지면서 방향을 잡지 못하게 된다. 웅혼한 내력으로 칼끝을 휘어서, 검초가 정상적인 공격로를 벗어나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적이 막아내지 못하도록 혼란을 주는 초식이다.
막성곡이
은천정과 싸울때 사용했다.
3.10. 현허도법(玄虛刀法)
유대암이 복건성의 도적떼를 처단할 때 썼다고 이름만 나온다.
3.11. 천지동수(天地同壽)
하늘과 땅이 영원히 수명을 같이 한다는 비장한 의미의 검초. 상대가 자신의 등 뒤에 있을때, 자신의 아랫배를 꿰찌르고 다시 그 칼끝으로 적의 하복부를 계속 찔러들어가는 무서운 검초다.
양소에 대한 원한에 불타던
은리정이
원수를 갚고 자신도 죽으려는 심정으로 만들어냈다.
3.12. 제운종(梯雲縱)
경공술. 구름을 사다리 삼아 딛고 오르듯 진기를 조절하여 공중에 오르는 기술. 무당파 특유의 경공술이다.
3.13. 접기타기(接器打器)
적의 암기를 받아내어 공격해오는 적의 암기를 타격하는 절예. 적의 암기를 받아서 되쏘아 날리되, 한 개를 받아내면 그 한 개로 적의 두개를, 두 개를 받았으면 그 두 개로 적의 세 개를 후려 쳐서 떨어뜨린다.
유연주와
은리정이
아미파에서 쏜 벽력뇌화탄을
태극권으로 받아낸 다음, 계속 쏘아대는 벽력뇌화탄을 받아치면서 사용했다.
3.14. 의천도룡공(倚天屠龍功)
무림에 전해지는 武林至尊, 寶刀屠龍, 號令天下, 莫敢不從, 倚天不出, 誰與爭鋒 (무림의 지존은 도룡보도라, 천하를 호령하니, 감히 따르지 않을 자 없도다. 의천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예봉을 다투랴?)의 24자를
장삼봉이 무공화한 것. 장삼봉 자신은 허공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면서 일종의 지법이나 권법의 응용처럼 펼쳤으나,
장취산은 판관필로 응용하여 사용한다. 이후 장취산의 대표무공처럼 사용되어 도대금을 제압할 때 사용하고, 이후 왕반산도에서
사손과 겨룰 때 사용하여 사손을 탄복시킨다.
3.15. 진무칠절진(眞武七截陣)
장삼봉이 진무대제의 신상 앞에 놓아둔 귀장(龜將)과 사장(蛇將)의 상을 보고, 거북이와 뱀의 두 영물의 특성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무공을 만들고자 생각했다. 나흘이나 고민하던 끝에 장삼봉은 일곱 개의 무공을 만들어 냈는데, 따로따로 펼쳐도 각각 정밀하고 오묘한 효력을 발휘하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더욱 늘어나고, 세 사람이 합치면 더욱 늘어나고, 4명이 힘을 합치면 8명, 5명이 힘을 합치면 16명, 6명일때는 32명, 7명이 힘을 합치면 당대의 일류고수 64명을 당해낼 수 있는 개사기 무공이 되었다.[4] 장삼봉은 이 무공을 각각
무당칠협에게 전수시켜주었으나, 일곱형제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절기를 써야 할 상황은 한번도 오지 않았다.
장삼봉의 100세 생일날 소림사에서 장취산을 추궁하러 와서 도전을 받게 되자 마침내 이 진법을 쓰려 했지만 은소소가 나서서 자백한 탓에 대결이 무산되어 쓰지 않게 되었다.
장삼봉의 100세 생일날 소림사에서 장취산을 추궁하러 와서 도전을 받게 되자 마침내 이 진법을 쓰려 했지만 은소소가 나서서 자백한 탓에 대결이 무산되어 쓰지 않게 되었다.
[1]
유대암은 속가제자인데 제자는 출가한 도사라는 점이 좀 이상하다.
[2]
작중 초반에는 장삼봉은 자신이 터득한 불완전한
구양진경을 보완하고자 태극공(太極功)을 오랜 시간 들여 만들고 있었다고 기술되었는데, 태극공을 완성하고 다음 과제로 태극권과 태극검을 만든 것인지, 방향 전환을 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3]
아무래도 소오강호 전체에서 검술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려졌을 수는 있다.
[4]
장삼봉의 100세 생일때는 유대암이 폐인이된 상태라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장삼봉 바로 아래티어로 취급되는 소림신승 3명을 상대로 완전체가 아닌 무당6협이 자신있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