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自 由 民 権 運 動 / Freedom and People's Rights Movement일본 제국 시기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운동. 당시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자유민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거론되었다.
2. 역사
1870년대부터 시작된 운동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계몽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20세기 초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절정을 이뤘다. 이 세력들이 1920년대 중도좌파 정당인 입헌민정당을 창당하기도 했다.그러나 일본의 자유민권운동은 주류 자유주의(좌파) 세력들이 우파들과 정쟁을 피하고자 1920년대 치안유지법 제정을 합의하면서 사실상 끝나다시피 했고 1930년대 천황제 파시즘이 대두되면서 탄압받고 사그라들었다.
이로 인해 부분적인 성과는 이룩했음에도 장기적, 결과적으론 실패한 운동이 되었는데 전후 마루야마 마사오 같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이 운동의 실패를 아쉬워했다. 성공해서 완전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면 천황제 파시즘과 군국주의 세력의 발호를 막았을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3. 주장
자유민권운동의 주요한 의제들은 다음과 같았다.- 중앙집권 정부에 대한 비판과 세금 축소
-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보장
- 조선, 대만 등 식민지인들에 대한 차별 정책 시정
- 식민지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반대하거나 개선하자는 것이다. 식민지인들도 일본 제국의 신민이니 인종 차별하지 말자는 논지에 가깝다. 이들은 참정권 문제도 식민지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하라는 주장도 하였다. 그런데 사실 이미 일본 본토에 거주하는 식민지인들은 모든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동등하게 주어졌다. 본토의 일본인과 일본 본토 거주 식민지인에게 모두 적용됐던 납세액 기준 조항도 1924년 이후 폐지되어서 제국의 신민이고 남성이면 누구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조선에서는 중의원 선거구가 없었기 때문에 조선 거주 일본인, 조선인 모두 투표권이 없었는데 1946년부터 조선에도 중의원 선거구를 설치하여 모든 조선 거주의 조선인에게도 투표권을 보장하려고 했으나 1945년에 일제패망으로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다만 지방선거와 귀족의원에 대해서는 조선인도 참정권을 행사했다. 문민 총독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이였던 대만과 달리 한국의 식민지 통치에서는 보수주의자들과 군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였기 때문에 전면적인 차별 시정은 이뤄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자유민권운동가를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의 의견도 어느 정도 수용되어 대만의 내지연장주의와 함께 조선의 문화통치가 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