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1:16:13

오노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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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1]
2005 2010

파일:小野晋吾2024.png
<colbgcolor=#191919><colcolor=#ffffff> 치바 롯데 마린즈 스카우트
오노 신고
小野晋吾 / Shingo Ono
출생 1975년 4월 7일 ([age(1975-04-07)]세)
시즈오카현 슨토군 나가이즈미초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82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학력 고텐바 니시 고등학교
프로입단 1993년 NPB 신인 드래프트 6순위
소속팀 치바 롯데 마린즈 (1994~2013)
지도자 치바 롯데 마린즈 2군 투수코치 (2016~2021)
치바 롯데 마린즈 1군 투수코치 (2022~2024)
프런트 치바 롯데 마린즈 스카우트 (2014~2015)
치바 롯데 마린즈 프로 스카우트 (2025~)
등장곡 Iecca - My measure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2.1. 2000 시즌2.2.2. 2001 시즌2.2.3. 2002~2008 시즌2.2.4. 2009~2013 시즌
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스카우트.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5학년때 오른쪽 대퇴골에 골낭종이 발견되어 한때는 야구를 포기했었지만, 6학년때 부상을 입고도 현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하였다.

고텐바 니시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1학년 가을에 열린 현 대회 결승에서 도카이대학 공업 고교를 상대로 우승하였다. 그리고 2학년 봄에 열린 '제64회 선발 고등학교 야구대회' 에 출전하여 히가시야마 고교의 오카지마 히데키와의 맞대결에서 역전패를 당하며 탈락하였다.

당시 고등학교 선수로는 보기 드문 너클커브를 던지며 많은 탈삼진을 기록하였다.

199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치바 롯데로 부터 6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에서 해낼 자신이 없다'며 입단을 일시 거부했지만, 당시 스카우트였던 미즈타니 노리히로의 설득으로 입단을 하게되었다.[2]

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입단 3년차까지는 기량 미달이나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된 결과 하나 내지 못했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고 변화할 것을 결의를 다지며 입단 4년차인 1997년에 슬라이더를 독학으로 배우고, 2군 로테이션에 합류하며 2군 올스타전에 선발되었다.

당시 입단 동기이자 동일한 고졸 투수였던 후쿠우라 카즈야와 함께 3년차에 타자 전향을 시도했다고 한다. 다만 타자로 전향하는 것이 낫다는 판정을 받은 후쿠우라와 다르게 오노는 투수로 남아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이었는지 투수로 남았다.

2.2.1. 2000 시즌

2000 시즌부터는 1군 선발 로테이션에 정착하게 되었다.

4월 23일 오릭스 블루웨이브전 부터 7월 9일 닛폰햄 파이터즈전 까지 일요일에만 등판하여 9연승을 달리며, 팀의 대선배이자 대투수인 무라타 쵸지의 별명인 '선데이 쵸지'를 따서 선데이 신고라고 불렸다.

6월에는 월간 MVP로 선정되었으며 그리고 올스타에도 선출되었다.

시즌 성적은 13승 5패 최고 승률 타이틀을 획득했고, 또한 평균 자책점 리그 2위를 기록했다.

2.2.2. 2001 시즌

2001년 부터는 기존 등번호였던 63에서 무라타 쵸지가 사용했던 29번으로 변경하였다.

4월 8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전에서 93구로 완봉승을 올렸다.

순조롭게 승승을 거듭해 9월 중에 10승째를 올렸지만, 8월 중 4일 등판으로 어깨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무리해서 계속 던지다 종반에 3연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시즌 10승 9패, 평균 자책점 3.74(리그 6위)의 성적을 남겼다.

2.2.3. 2002~2008 시즌

2002 시즌은 부진하며 5승 8패의 성적으로 끝났지만, 3점대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다.

2003 시즌은 10경기에 등판하여 불과 2승으로 끝났다.

2004 시즌은 바비 발렌타인감독의 의향으로 주로 중간 계투로 32경기에 등판(선발은 6경기)하여, 4승 3패 평균 자책점 3.45를 기록했다.

2005 시즌은 선발뿐만 아니라, 시즌 후반에 야마자키 켄 이 이탈 후 부터는 중간 계투로 등판하며 시즌 10승(선발 7승)을 올렸다. 규정 이닝에 충족하지 못했지만, 팀의 31년 만의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2006 시즌은 9월 13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5년 만에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2001년 이후 규정 이닝을 충족 시켰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며 7승에 멈췄다. 평균 자책점은 2.66을 기록하며 리그 5위를 기록했다.

2007 시즌은 4월 20일 라쿠텐전부터 8월 5일 닛폰햄전까지 선발로 등판했지만 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전시즌과 같이 7승으로 끝났다.

2008 시즌은 오른쪽 어깨에 통증도 있어, 5승 4패 6점대의 평균 자책점으로 끝났다.

2.2.4. 2009~2013 시즌

2009 시즌은 시범 경기에서는 부진했지만, 시즌에 들어서고 나서는 선발 로테이션을 계속 지키며 3점대의 평균 자책점과 시즌 8승을 기록했다. 바비 발렌타인 감독의 배려로 10월 3일 닛폰햄전에서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5이닝을 던지며, 3년 만에 규정 이닝을 충족시켰다. 이 경기에서 '시미즈 나오유키'도 1이닝을 던져 규정 이닝을 충족했다, 경기 후 발렌타인 감독은 '큰 노력을 기울여 온 두 사람에게 해줄수 있는 작은 감사'라고 말했다.

2010 시즌은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3연승을 했지만, 4월 21일 라쿠텐전에서 엉덩이를 다치며 2군으로 말소되었다.
그 후 5월 25일 한신 타이거즈전에서 복귀했지만, 1회에 크레이그 브라젤의 타구가 오른쪽 어깨에 직격하여, 공 16개만 던지고 강판 되어 다시 2군으로 말소되었다. 8월 10일 1군에 복귀후에는 중간 계투로 등판하면서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하극상이라고 평가받는 일본시리즈에서 우승을 도왔다.

2011 시즌은 19경기에 등판(선발 11경기)하여 4승 5패로 끝났다.

2012 시즌에는 15경기 등판(12경기 선발)했지만 2승 5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2013 시즌은 1군 등판은 없었다, 9월 19일에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10월 6일 홈경기 최종전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오노와 마찬가지로 현역 은퇴를 발표한 '야부다 야스히코'와 함께 은퇴 세레모니를 했다. 마운드에 서서, 타석에 선 입단 동기인 후쿠우라 카즈야 삼구삼진으로 잡아내며 선수 생활을 마쳤다.
파일:오노신고 은퇴식.png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치바 롯데에서 도카이 지구 스카우트를 담당했다.

2016년부터는 현장으로 복귀하여 2021년까지는 2군 투수코치로 역임했다.

2022년부터는 1군 투수 코치로 배치 전환 되었다.

2025년부터 다시 스카우트를 맡게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몸쪽 모서리에 아슬아슬한 각도로 슈트라 불리는 투심성 공을 던지는 투구가 특징이다.

슈트, 슬라이더, 컷 패스트볼을 던지며, 순수한 패스트볼의 투구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카운트를 잡는 볼배합에 뛰어나고, 첫번째 스트라이크의 피안타율이 낮은 경향이 있다.
또한, 수비나 견제에도 능숙한 편이다.

최대의 무기로는 '장 가쓰오' 코치로부터 전수받은 날카로운 슈트라는 평 많지만, 오노 본인은 '많은 사람들이 슈트 투수로 봐주고 았다고 생각하지만, 슬라이더가 있어서 슈트를 던질수있다' 라고 말하며 지금도 슬라이더 쪽이 더 자신이있다, 슈트는 어디까지나 보여주는 공 이라고 말하고 있다.

5. 기타

  • 말수가 적고, 성실하며 차분한 성격이다. 경기 중에는 포커 페이스에서 자신이 호투하고 있을 때, 아군 타선의 점수 지원이 없어 져 버렸을 때도 '자신의 책임' 이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감독의 기용법에도 불만을 누설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맡은 일을 해낸다. 이런 인품면이 평가에 반영되어 연봉이 인상된 적이있다.
  • 2012년 8월 30일 라쿠텐전에 선발등판하여, 7회에도 계속 던지기 위해 연습 투구를 하던 중에 투수 교체 지시 오류로[3] 미나미 마사키가 불펜 등판을 위해 자동차를 타고 등장한 일화가 있었다.[4] 투수 교체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미나미는 자동차에서 발도 딛지 못하고 도로 불펜으로 차를 타고 들어간 일화가 있다.
  • 같은 팀 포수인 사토자키 토모야 유튜브 방송중에 뽑은 투구 사인을 바꿨을 때 '(사인을) 틀리는 놈은 정해져 있다' 에서 뽑혀 사인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후배인 사토자키에게 질타를 당한 적이 있다.

6. 관련 문서



[1] 사실 2010년의 경우는 말이 우승반지지 일본시리즈 우승을 엔트리에서 겪었다는 기록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치바 롯데 마린즈는 2010년애 공식적인 우승반지를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 다만 2005년에는 만들었다. [2] 이때 1993년 드래프트 입단 동기로는 후쿠우라 카즈야가 있다. [3] 선발투수를 계속 쓰기로 했는데 어째서인지 불펜에서는 미나미를 등판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착각했다. [4] 롯데는 홈구장에서 투수교체를 할시 불펜에서 자동차를 타고 선수를 내보낸다. 심지어 원정 선수도 태워준다. 다만 선발등판하는 선수는 덕아웃에서 마운드로 뛰쳐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