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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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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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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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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 시온 | 와타라이 류키 | 타케다 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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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슌 (山口俊 / Shun Yamaguc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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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87년 7월 11일 ([age(1987-07-11)]세) |
출신지 | 오이타현 나카츠시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7cm / 98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 요코하마) |
소속팀 |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06~2016)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7~2019) 토론토 블루제이스 (2020)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마이너 (2021)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1~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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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야구 선수.2010년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선발투수로 활동하며 2019년의 커리어하이 달성을 계기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후지나미 신타로와 함께 흔치 않은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일본인 투수의 사례로 남게 되었다.
2. 프로 입단 전
야나기가우라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학년이었던 2003년 여름 고시엔에 출전했으나 첫 경기에서 죠소가쿠인고등학교에게 패했다. 2학년이었던 2004년에는 가을 규슈 대회, 진구 대회에서 우승했다. 3학년이었던 2005년에는 봄 고시엔에 출전했는데 첫 경기였던 텐리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151km를 기록[1]했지만, 팀은 패했다. 그 해 여름 고시엔 오이타 대회에서는 준결승 경기 도중 팔꿈치를 다쳐 강판당했고, 팀도 연장 11회 승부 끝에 패했다.이후 2005년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 1순위로 지명되었다. 계약금은 9천만엔에 등번호는 11번.
3. 프로 입단 후
3.1.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시절
2006년 6월 23일 1군에 등록되었고, 같은 달 2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등판하며 데뷔전을 가졌다. 5회 2아웃까지 주자를 한 명도 보내지 않았고 6이닝 동안 무사사구 2피안타 1실점을 기록, 승리 투수가 되었다.[2] 그러나 이후에는 부진하여 5경기 21이닝 1승 2패 방어율 6.43이라는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2007년은 6경기(4선발) 20이닝 3패 방어율 6.30을 기록했다.
2008년은 중간계투로만 16경기를 등판, 23.2이닝 1승 1패 2홀드, 방어율 0.76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셋업맨으로 1군에 정착하였다. 4월 한 달동안 10경기 등판, 14이닝 2승 5홀드 14탈삼진 방어율 0.64를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월간 MVP를 수상했다. 시즌 도중에 마무리 투수가 되었고, 51경기 55이닝 5승 4패 18세이브, 방어율 3.27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2010년은 구단이 마무리 투수로 크리스 부첵을 영입해 선발 투수로 시즌을 준비했지만 부첵이 시범경기에서 털리면서 개막 직전 다시 마무리 투수가 된다.[3] 전반기에는 조금 부진했지만 센트럴리그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했는데, 마쓰다상[4]을 수상했다. 후반기에 성적을 복구시켜 54경기 68.2이닝 2승 8패 30세이브 2홀드 방어율 2.62를 기록. 개인 통산 첫 30세이브 시즌을 만들었다.
2011년에는 2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하고, 2년 연속 30세이브를 기록했다. 최종 성적은 59경기 61.1이닝 2승 6패 34세이브 방어율 2.49. 다만 10월 22일 요미우리전 원정경기에서 초노 히사요시에게 일본 프로 야구 사상 8번째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았다.
2012년은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하고 나타났는데, 어째 점점 맞아가는 빈도가 높아져서 결국 시즌 중에 삭발했다. 그래도 9월 4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 홈 경기에서 NPB 사상 25번째 통산 100 세이브를 달성(최연소 달성 - 25세 53일. 종전 최연소 기록은 아카호리 모토유키의 26세 55일)하고 방어율도 마무리투수 정착 이후 가장 낮은 1.74를 기록한다. 다만 시즌 중간에 마무리 자리를 잠시 내려놓기도 하는 등 부침이 심했다. 최종 성적은 60경기 62이닝 1승 3패 22세이브 방어율 1.74. 2013시즌 후 포스팅 시스템에 의한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구단에 전했지만 요코하마 구단은 이를 거절했다.
2013년은 작년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가 무색하게 매우 부진했다. 마무리 투수가 2군에 세 번씩이나 내려가고, 결국 마무리 투수 자리가 외국인 투수 호르헤 소사에게 넘어갔다. 최종 성적도 44경기 5승 2패 7세이브 6홀드 방어율 5.40으로 부진했다.
2014년에도 셋업맨으로 시작했지만 5월까지 방어율이 7.62까지 치솟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내려가고 나서는 아예 선발 전향을 시도. 6월 1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 원정경기에서 2007년 9월 19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 이후 7년만의 선발 등판, 6이닝 2피안타 무실점의 호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선발승을 거둔 건 2006년 이후 8년만이었다. 6월에 4경기 등판, 3승 1패 방어율 0.99이라는 성적을 거둬 월간 MVP를 수상하며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7월 1일 주니치 드래곤즈전 3회초에 자신의 데뷔 첫 홈런을 기록. 9월 3일의 한신 타이거스전 원정경기에서 5피안타 1실점 11탈삼진을 기록하며 본인의 첫 완투승을 기록하고, 9월 10일 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 홈경기에서는 4안타 5탈삼진 무볼넷으로 프로 첫 완봉승을 기록한다. 9월 2완봉을 포함한 3완투를 기록하며 또 다시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최종 성적은 33경기(17선발) 8승 5패 3홀드 방어율 2.90을 기록했다. 2015년에는 풀타임 선발투수로 뛸 것을 밝혔다.
2015년 4월까지는 선발 3연승을 기록하는 등 잘 나가다가 선발 투수에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급속도로 체력이 방전, 6회만 되면 실점하는 모습을 자주보였다. 근데 5월 중순부터 부진했음에도 득점지원을 최상위권으로 받아 패전은 적립하고 있지 않았는데, 7월 4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하고, 7월 11일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시즌 3패째를 당했다. 결국 그 동안의 운도 꺼져버리며 1군과 2군을 왔다갔다하는 신세가 된다. 시즌 최종성적은 20경기 3승 6패 방어율 4.49. 4월에 3승을 기록하고 나서 단 1승도 못 올리고, 7월 이후에만 6연패를 기록했다.
2016년 시모조노 타츠야 대신 구단의 선수 회장으로 취임. 전 시즌을 말아먹었지만 개막전 선발투수로 지명되었는데, 시범 경기 기간 동안 조정 목적으로 등판한 롯데와의 이스턴 리그(2군) 경기에서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다 오른쪽 발목을 삐었다.[5] 4월 9일 야쿠르트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 자신이 친 2년만의 홈런으로 시즌 첫승을 거두었다. 교류전 기간 동안 센트럴 리그 투수 최초로 2경기 연속 완봉승을 기록.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기록해 올스타전에 감독추천 선수로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7월 9일 투구 연습 도중 왼쪽 발목을 삐었고, 후속 진찰에서 좌전 거비 인대 및 경비 인대의 손상이 밝혀졌다. 때문에 올스타전 출전은 하지 못하고, 이노 쇼이치가 대체 선수로 출전한다. 한 달 후인 8월 3일에 1군에 복귀하고 나서도 에이스의 성적을 유지하고, 9월 3일의 한신전에서 자신의 첫 시즌 10승을 달성한다. 팀도 긴 암흑기를 벗어나 드디어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그러나 9월 10일 주니치전 후에 이번에는 어깨를 다쳐 그대로 시즌 아웃,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등판하지 못한다. 부상으로 인해 두 달정도 출장하지 못하면서 규정이닝은 채우지 못했지만 19경기 11승 5패 방어율 2.86의 성적을 기록했다.[6]
3.2. 요미우리 자이언츠 1기
2016 시즌이 끝나고 국내 FA 자격을 획득, 권리를 행사하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계약 조건은 3년 7억엔에 메이저리그 포스팅 허가. 요미우리 구단은 이제까지 포스팅을 통한 메이저리그 진출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런 조항까지 넣어가면서 FA계약을 한 것으로 보아 요미우리 구단이 굉장히 급했던 듯.[7] 등번호는 42번을 택했는데, 요미우리 소속 일본인 선수가 등번호 42번을 단 사례는 오스미 마사토가 1968년에 단 후 49년만이라고 한다.그런데, 2017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인해 드러눕고 만다. 때문에 첫 선발 등판을 6월 14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 홈경기에서야 하게 된다. 이 경기에서는 다행히도 6회까지 무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뒤이어 등판한 스캇 매티슨과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가 소프트뱅크 타선을 무피안타로 틀어막아 센트럴 리그 사상 최초의 합작 노히트 노런으로 이적 후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대차게 망하면서[8] 돈값을 전혀 못 하고 있었는데 올스타전 직전인 7월 11일 자신의 생일이라고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가 실수로 유리에 손을 벤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까이고도 남는데 손을 치료하기 위해서 간 토호대학병원에서 만취 상태에서 병원의 문을 박살을 내고 말리는 경비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행위를 저질러 경찰에 고발장이 제출되는 사태가 터진다. 이 때문에 7월 18일로 예정되어 있던 선발등판도 취소되고[9] 2군으로 쫓겨나고 만다. 그리고 8월 18일에 구단 징계가 나왔는데, 벌금 1억엔과 잔여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래도 이후 정신을 차렸는지, 2018 시즌에는 한결 사람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7월 27일 주니치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10][11] 오시마 요헤이에게 볼넷 하나만을 허용. 재미있게도 이 날 주니치의 선발은 바로 직전 센트럴 리그 노히트 노런 달성자였던 야마이 다이스케(2013년 6월 달성)였다. 이렇게 돈값을 하나 했는데 이번엔 팀이 망하면서 9월 이후에는 중간계투로 등판한다. 그래도 선수 생활 13년만에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달성. 최종성적은 30등판(21선발) 154이닝 9승 9패 1세이브 1홀드 144탈삼진 방어율 3.68. 6완투 2완봉을 기록한다.
2019년 등번호를 요코하마 시절과 같은 11번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상태가 안 좋았던 스가노 도모유키를 대신해 요미우리의 에이스로 거듭난다. 개막 후 4승 무패, 방어율 1.59를 기록하여 3,4월 월간 MVP를 수상하지만 5월에는 잘 던지고도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는 불운한 면도 보였다. 6월 29일 야쿠르트전에서 프로 통산 1000이닝을 달성했다. 6월에 다시 4승 0패, 방어율 0.77의 성적으로 시즌 2번째 월간 MVP를 수상했다. 당연히 올스타전에도 출전(개인 3번째). 7월 16일 야쿠르트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며 10승을 기록, 요미우리 이적 후 처음으로 두 자리수 승리를 기록한다. 8월 1일 현재 11승 2패(승률 .846) 131탈삼진 방어율 2.55를 기록하며 4개 부문에서 리그 1위를 기록했지만,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해 잠시 1군에서 말소된다. 그 후 9월에 다시 복귀해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6경기 170이닝 15승 4패(승률 .789) 188탈삼진 방어율 2.91. 다승왕, 승률왕, 탈삼진왕 타이틀을 따내고, 방어율도 리그 3위를 기록하는 등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본인의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파이널 스테이지 제1차전에 한신 타이거즈를 상대로 선발로 등판하여 7.1이닝 1실점을 기록, 승리투수가 됐다. 일본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선발로 나와 6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이 센가 코다이에게 막혀 패전투수가 되었고, 본인은 더 등판하지 못한 채 팀이 4연패를 기록, 일본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한다. 시즌 후 2019 프리미어 12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오프닝 라운드에서 펠릭스 듀브론트가 선발로 나온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선발로 등판해 4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슈퍼 라운드 호주전에서도 선발 등판하여 4이닝 2실점을 기록, 본인은 부진했지만 어쨌거나 일본 대표팀 최초의 프리미어 12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결승전에서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발등판했지만 김하성과 김현수에게 두개의 홈런을 맞으며 1이닝 3실점을 기록,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12] 그래도 야마다 테츠토가 양현종을 상대로 역전 쓰리런 홈런을 쳐내 승리, 프리미어 12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3.3. 토론토 블루제이스 시절
2019 시즌이 끝난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도전하였다. 몇몇 구단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결국엔 12월 18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2년 635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 본인과 같이 포스팅 시스템을 이용해 탬파베이 레이스와 2년 12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은 쓰쓰고 요시토모와 같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있어 요코하마 전 동료가 진출 첫 시즌에 서로 맞붙게 된다.2020년 1월 15일 로저스 센터에서 프런트 고위급 인사들이 모두 와서 정식으로 입단식을 치렀다. 계약 확정 시기에 비해 입단식을 치른 시기가 다소 늦은 편인데, 이는 나중에 계약한 류현진과 함께 일괄적으로 입단식을 치렀기 때문이다. 계약 확정과 입단식 사이 텀이 길어서 그런지 중간에 언론과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다.
2020년 상반기 전세계에 악명을 떨치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정규시즌 개막이 연기된 가운데, 새로운 팀인 토론토가 있는 캐나다가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면서 졸지에 팀 동료 류현진과 함께 자기 팀의 홈구장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러다 3월 25일자로 하네다 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귀국했다.
현지시각 7월 26일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승부치기 상황에 올라와 호세 마르티네즈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케빈 키어마이어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아웃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관련기사
현지시각 7월 29일에도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내셔널스 파크에서 진행된 경기에서 연장 10회초 승부치기 상황에 올라왔으나, 무사 만루의 위기를 허용했고 이후 삼진 2개로 한 점도 허용하지 않고 끝내나 싶었으나 자신의 몸을 맞고 튄 불규칙한 내야안타, 3루타로 1이닝 4실점(3자책)으로 무너지고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벌써 시즌 2패째. 'ERA 36.00' 야마구치, 또 승부치기서 4실점 좌절…벌써 2패
한국시간 8월 13일 마이애미 말린스를 상대로 임시 홈구장인 세일런 필드에서의 첫 등판에서 5회초 2사 3루 상황에 올라와 31구를 던지면서 2.1이닝 4탈삼진 0볼넷 0피안타를 기록하였다. 이 투구로 평균자책점은 9.00까지 내려갔다.
한국시간 8월 18일 류현진의 선발등판 경기에서 9회에 몸만 풀고 출전은 하지 못했다.
바로 다음날인 8월 19일 세일런 필드에서 진행된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 등판하여 1.2이닝을 소화하면서 32구를 던져 3피안타 2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였으며 평균자책점은 7.50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8월 21일 세일런 필드에서 진행된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 등판하여 2.2이닝을 소화하면서 53구를 던져 0피안타 2볼넷 4탈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준 것이 그날 팀의 역전승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 투구로 시즌 평균자책점도 5.19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8월 27일 세일런 필드에서 진행된 보스턴 레드삭스전에 등판하여 4이닝을 소화하면서 59구를 던져 2피안타 2볼넷 2탈삼진을 잡아내며 1실점으로 마무리지었다. 최근 블루제이스는 선발진이 대거 부상으로 이탈하며 불펜이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 날 역시도 불펜데이였지만 야마구치 홀로 4이닝을 책임져주며 불펜이 과부하되는 것을 막아냈다. 타선도 이에 화답하여 9득점을 뽑아내며 야마구치는 시즌 첫 승을 구원승으로 거두었다. ERA가 4.26까지 내려간 것은 덤. '8월 ERA 1.54' 야마구치, 불펜 설움 딛고 시즌 첫승 감격
그러나 보스턴 레드삭스 경기에서 글러브 안쪽을 손가락으로 만지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포착되면서, 투수들 사이에 암암리에 퍼져있다는 파인타르 부정투구를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일본 시절에는 선발이었지만 토론토에서는 불펜에서 추격조에 가까운 보직이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8월에 선발 대부분이 부상으로 이탈해서 본래 선발 투수 출신인 야마구치에게 기회가 올 수도 있었지만 토론토는 선발 자원들을 여럿 데려오는 선택을 하며 야마구치를 계속 불펜에 머물게 했기 때문이다.
9월 2일 마이애미 말린스를 상대로 말린스 파크에서 등판하여 2.2이닝동안 30개의 공을 던져 3탈삼진 3피안타 1실점을 기록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9월 6일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팬웨이 파크에서 등판하여 3이닝동안 45개의 공을 던지면서 1실점 4피안타 1탈삼진을 기록하였고 평균자책점은 3.93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9월 9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세일런 필드에서 등판하여 2이닝 3피안타 1실점 1볼넷 3탈삼진을 기록하였고 평균자책점은 3.98로 소폭 상승하게 되었다. 그 경기에서 팀이 2:1로 승리하며 구원승을 챙기게 되었다. '야마구치 구원승' 토론토 3연승 질주, 양키스 5연패
9월 16일 뉴욕 양키스전에서는 1.1이닝 2피안타 4볼넷 7자책으로 거하게 털렸다. 평균자책점이 6.65로 폭등했다.
9월 2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0.2이닝 2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평균자책점은 6.35로 소폭 하락하였다.
9월 26일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백투백 홈런을 포함하여 총 3피홈런을 맞았다.
2020시즌 최종 평균자책점은 8.06으로 마무리 지었다. 日도 '쉴드 불가'… "야마구치 ERA 8.06, 구단 역대 최악 6위"
결국 토론토의 2020 아메리칸 리그 와일드카드 시리즈 28인 로스터에 들지 못하여 데뷔 첫해부터 굴욕을 맛보았다.
그리고 현지 시각 2월 10일 자로 DFA 되었다. 20시즌 성적을 감안해본다면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사실상 종료. 일본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2월 12일에 완전 방출되었다. 웨이버로 데려갈 팀이 없다고 판단해 그냥 내보낸 것으로 보인다.
3.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산하 마이너 시절
현지 날짜 2월 2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 계약을 맺어 잔류를 위한 시도를 한다.시범경기 총 4경기서 6이닝 1.50을 기록했지만 표본 부족으로 인해 3월 28일에 마이너로 내려갔다. 다만, 샌프가 현재 팀 계투진이 불안정한 상황이라 승격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옵트아웃을 하지않고 마이너로 내려간다고 본인이 SNS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AAA에서의 성적도 6점대로 좋지 않아 콜업은 꿈도 못 꾸는 상황. 결국 6월 SNS를 통해 일본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팀 정해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를 보내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가장 유력한 행선지로 거론됐고, 일각에서는 이미 협상에 나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3.5. 요미우리 자이언츠 2기
결국 2021년 6월 10일자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복귀가 확정되었다. 연봉은 3천만엔. 류현진 동료였던 야마구치, 친정 요미우리 복귀 격리를 마치게 되면 20일에 팀에 합류한다.이후 23일에 곧바로 1군에 합류했다. 마이너에서 던졌던걸 감안해도 복귀가 상당히 빠른데, 이는 스가노 토모유키가 부상 및 컨디션 난조로 인한 부진 등으로 인해 팀 선발진에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 어쨌거나 무사히 국내로 복귀하긴 했지만 독설가로 유명한 장훈에게 관광 다녀왔냐는 식의 쿠사리를 피하진 못했다. 현지 팬들도 복잡미묘한 감정인 모양.
그리고 6월 23일 요코하마 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5⅔이닝 5피안타(1피홈런)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챙겼다.
복귀해서는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며 교진 선발진의 힘이 되어주었다. 15경기 78.1이닝 ERA 3.56 2승8패로 그럭저럭 던지긴 했는데 승운이 더럽게 없었다.
2022년은 시범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무리 시범경기에서 조금 부진했다지만 메이저리그까지 다녀온 검증된 베테랑 야마구치가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것은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개막 선발 로테이션은 1군 미경험자가 3명씩이나 되는 등 요미우리는 22년을 시끌시끌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3월말 스가노가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1군에서 말소되었고, 그 자리에 콜업되었다.
하지만, 4월 8일 야쿠르트전에서 2이닝을 던지고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기회를 받지 못하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2 시즌을 앞두고 요미우리와 2억 3천만엔짜리 계약을 새로 맺었는데, 빼도박도 못하는 먹튀다. 결국 시즌이 끝난 뒤 전력 외 통고를 받으며 방출. 선수 본인은 현역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름 메이저까지 다녀온 클래스 있는 선수에다가 내년 35세 시즌으로 나이는 많지만 아직 몇 년 정도는 더 뛸만한 선수이기에 큰 폭의 연봉삭감을 감수한다면 전망은 밝은 편이었으나...
4. 은퇴
2023년 3월 29일, 일본 언론인 교도통신은 보도를 통해 야마구치 슌이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몸을 만들며 2023 시즌을 준비했지만 영입 제안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13]은퇴 이후엔 도쿄 롯폰기에서 창코나베 음식점을 운영 중이다. 아버지 타니아라시가 하던 음식점을 물려받은 것. 위치도 롯폰기역에서 도보로 1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편하다고 한다. #
5.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NPB)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2006 | 요코하마 | 5 | 21 | 1 | 2 | 0 | 0 | 6.43 | 22 | 8 | 2 | 17 | 1.43 |
2007 | 6 | 20 | 0 | 3 | 0 | 0 | 6.30 | 21 | 10 | 1 | 14 | 1.55 | |
2008 | 16 | 23.2 | 1 | 1 | 0 | 2 | 0.76 | 10 | 16 | 1 | 28 | 1.10 | |
2009 | 51 | 55.0 | 5 | 4 | 18 | 7 | 3.27 | 44 | 17 | 4 | 68 | 1.11 | |
2010 | 54 | 68.2 | 2 | 8 | 30 | 2 | 2.62 | 57 | 24 | 1 | 78 | 1.18 | |
2011 | 59 | 61.1 | 2 | 6 | 34 | 1 | 2.49 | 46 | 19 | 4 | 48 | 1.06 | |
2012 | 60 | 62.0 | 1 | 2 | 22 | 3 | 1.74 | 46 | 22 | 5 | 62 | 1.10 | |
2013 | 44 | 46.2 | 5 | 2 | 7 | 6 | 5.40 | 46 | 16 | 2 | 48 | 1.33 | |
2014 | 33 | 124.0 | 8 | 5 | 0 | 3 | 2.90 | 107 | 60 | 3 | 96 | 1.35 | |
2015 | 20 | 114.1 | 3 | 6 | 0 | 0 | 4.49 | 127 | 42 | 3 | 119 | 1.48 | |
2016 | 19 | 138.2 | 11 | 5 | 0 | 0 | 2.86 | 112 | 44 | 4 | 121 | 1.13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2017 | 요미우리 | 4 | 21.0 | 1 | 1 | 0 | 0 | 6.43 | 24 | 16 | 1 | 22 | 1.90 |
2018 | 30 | 154.0 | 9 | 9 | 1 | 1 | 3.68 | 127 | 60 | 9 | 144 | 1.21 | |
2019 | 26 | 170.0 | 15 | 4 | 0 | 0 | 2.91 | 137 | 60 | 13 | 188 | 1.16 | |
2021 | 15 | 78.1 | 2 | 8 | 0 | 0 | 3.56 | 66 | 37 | 3 | 83 | 1.32 | |
2022 | 1 | 2.0 | 0 | 0 | 0 | 0 | 0.00 | 0 | 2 | 0 | 4 | 1.00 | |
NPB 통산 (16시즌) |
443 | 1160.2 | 66 | 66 | 112 | 25 | 3.36 | 992 | 453 | 56 | 1053 | 1.24 | |
역대 기록(MLB)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2020 | TOR | 17 | 25.2 | 2 | 4 | 0 | 1 | 8.06 | 28 | 17 | 2 | 26 | 1.75 |
MLB 통산 (1시즌) |
17 | 25.2 | 2 | 4 | 0 | 1 | 8.06 | 28 | 17 | 2 | 26 | 1.75 |
6. 여담
[1]
NHK의 스피드건으로는 148km
[2]
이와중에 첫 삼진 타자는 다름아닌 4번타자였던
이승엽.
[3]
이후 부첵은 계투로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해 방출된다.
[4]
KBO의 미스터 올스타. 2017년부터 NPB 올스타전의 스폰서가 마쓰다에서 마이나비로 변경됨에 따라 마이나비상으로 변경.
[5]
개막전 선발은
이노 쇼이치가 대신했다.
[6]
여기에 5완투 3완봉으로 모두 세리그 1위를 기록했다.
[7]
실제로 요미우리는
바뀐 감독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고, 이 때문에 야마구치 외에도
모리후쿠 마사히코를 2년 4억엔에,
양다이강을 5년 15억엔에 사오고, 외국인 선수 두 명에 315만 달러를 쓰는 등 돈질을 제대로 했다.
[8]
7월 2일에 친정팀 요코하마를 상대로 선발 등판했는데, 4이닝 9실점으로 털린다.
[9]
대체 선발로는 타카기 하야토가 나왔는데, 경기에 패하고 만다. 요미우리는 전반기에 13연패를 하며 추락하고 있다가 후반기 들어 4연승을 거두며 살아나고 있었는데, 여기서 졌다.
[10]
이 경기는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노히트노런 경기가 된다.
[11]
100세이브 이상 기록한 투수 중에 유일하게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12]
김광현도 바로전 대만전에서 패전투수가 돼 공교롭게도 이번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한일 투수들 모두 프리미어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13]
야마구치 정도의 커리어와 나이면 실력은 좀 떨어져도 생활태도나 자세 등이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친정팀에 복귀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있지만 야마구치는 요미우리에서 쿠와타 코치나 스가노와 불화설이 돌기도 했고 2017년 폭력 사고를 일으키는 등 귀감이 될만한 쪽과는 거리가 멀어서 팀을 못 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14]
본명은 야마구치 히사시, 1952년 4월 16일 출생. 2010년 10월 19일
간암으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