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22 04:12:46

모리후쿠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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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시즌, 포스트시즌 가리지 않는 전천후 활약으로 호크스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파일:모리후쿠 마사히코 요미우리 자이언츠.jpg
그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이후에는 이 사진이...
모리후쿠 마사히코 (森福允彦/Masafuku Morihiko)
생년월일 1986년 7월 29일 ([age(1986-07-29)]세)
국적 일본
출신지 아이치 도요하시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체격 172cm, 68kg
프로입단 2006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4순위 지명
소속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 ~ 2016)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6 ~ 2019)

1. 개요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전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2.1. 2007년 ~ 2009년2.2.2. 2010년2.2.3. 2011년2.2.4. 2012년2.2.5. 2013년2.2.6. 2014년2.2.7. 2015년2.2.8. 2016년
2.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3.1. 2017년2.3.2. 2018년2.3.3. 2019년
2.4. 은퇴 후
3. 여담4. 연도별 투수 성적

1. 개요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이며, 현재 RKB 마이니치방송, 큐슈아사히방송 소속 야구 해설자이기도 하다. 애칭은 쵸메(ちょめ).

왼손 사이드암 구원투수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이던 때에는 2011년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모리후쿠의 11구로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아시아시리즈에서는 박석민, 최형우, 강봉규를 삼자범퇴로 막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 요미우리 이적 이후에는 받은 돈에 비해 실망스러운 활약을 보여줘서 소프트뱅크의 첩자라고 까이고 있다. 성적은 물론 멘탈도 경기중 키쿠치 료스케에게 법규를 시전하거나, 2군 경기에서 포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포착되어 까이는 중. 이 때문에 요미우리가 FA로 선수를 영입할 때마다 모리후쿠는 비공식 보상선수로 취급받고 있다.[1]

2. 선수 생활

2.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국 제패를 이끌었고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때 모두 하계 소속 현 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끌었다. 고교 2학년 때에는 56이닝 무자책점이라는 기록을 수립했다.[2] 이것은 쿠도 키미야스가 아이치 현 대회의 기록을 경신한 것이며 당시에는 ‘미카와의 닥터 K(三河のドクターK)’라는 별명이 불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준결승전에서는 야마우치 소마, 하세베 고헤이가 소속된 도자쿠 고등학교와의 맞대결에서도 완봉승을 따냈지만 결승전에서는 도노우에 다케히로, 마루야마 다카시가 소속된 아이치 공업 대학 메이덴 고등학교한테 0대 3으로 패했다.

고교 졸업 후인 2005년에 노무라 카츠야가 감독을 맡던[3] 시닥스[4]에 입사, 3월에 열린 도쿄 스포니치 대회에 출전하여 호투하는 등의 활약으로 신인상을 수상했고 다케다 마사루[5]와 함께 시닥스의 주력 투수로서 도시 대항 야구 대회와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 출전을 이끌기도 했다. 2006년, 도시 대항 야구 도쿄 2차 대회 예선에서는 메이지 야스다 생명과 상대했지만 제구력 난조와 컨디션 저하로 인해 예선에서 패했고 JR 동일본의 보강 선수로서 도시 대항 야구 대회에 출전했다. 호리이 데쓰야 감독의 지도하에 마무리 투수를 맡아 JR 동일본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 후 시닥스 야구부의 해체가 결정되었고 일본 선수권 간토 지역 2차 예선에서는 도시바를 상대하면서 선발 등판했지만 집중타를 맞아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닥스는 이 경기에서의 패배로 인해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시닥스의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한 투수가 되었다.

시닥스의 해체에 따른 특례로 고졸 2년째이면서 드래프트 대상 선수가 되었고[6]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않으면 JR 동일본의 입단이 정해져 있었지만 2006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소프트뱅크의 등번호 19번은 당시 시닥스의 감독이었던 노무라 카츠야가 현역 시절에 착용했던 등번호였다.

2.2.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소프트뱅크의 왼손 수호신

2.2.1. 2007년 ~ 2009년

1군 데뷔 경기인 2007년 3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 QVC 마린 필드)에서의 9회에 등판하면서 아웃 3개는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2008년 2009년에 1군 등판은 있었지만 우타자와 상대할 때 피안타율이 높아지면서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2.2. 2010년

왼손 타자를 상대하거나 패전 처리 등에서 신뢰를 쌓아올렸고 8월 15일부터 30일까지 등판한 6경기에서 11과 2/3이닝을 던졌을 때 WHIP이 0.343이라는 기록을 남겼다.[7] 특히 8월 26일 오릭스 버펄로스전( 야후 돔)에서는 연장 11, 12회를 5자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는 등 완벽하게 막아냈다. 다음날 지바 롯데전에서는 5회초 1사 만루 상황에 한방이면 역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등판, 무실점으로 처리해 프로 데뷔 첫 승리를 거뒀다. 최종적으로는 갓토 게이스케와 함께 일명 ‘SBM’이라고 불리는 셋쓰 다다시, 브라이언 팔켄보그, 마하라 다카히로 등의 뒤를 이은 팀의 중간 계투로서 성장했다. 미세 고지, 시노하라 다카유키 등이 연달아 퇴단한 팀의 중간 계투진에서는 유일하다고 말해질 정도로 좌완 중간 계투로서의 지위를 얻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2.2.3. 2011년

선발로 전향한 셋쓰 다다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마하라 다카히로, 가토 게이스케, 후지오카 요시아키 등 구원 투수진이 잇달아 전력에서 이탈하던 와중에 그들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마무리 투수 자리를 차지해 60경기에 등판하면서 팀의 2년 연속 리그 우승과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했다. 5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 QVC 마린 필드)에서는 팀이 5점차로 앞서고 있던 9회 2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해 이시미네 쇼타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 퍼시픽 리그 역대 26번째에 해당되는 1구 세이브를 달성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5경기에 등판해 5이닝을 던지면서 무실점으로 처리하는 등 3홀드를 기록하여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4차전에서는 2대 1로 앞선 6회에 선발 투수였던 D.J. 홀튼이 무사 만루의 위기 상황을 만들어 강판돼 모리후쿠는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대타 고이케 마사아키를 헛스윙 삼진, 히라타 료스케를 얕은 좌익수 플라이, 다니시게 모토노부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 무실점으로 처리했다. 한편, 이 경기에서 지상파 방송에서의 순간 최고 시청률 21.7%를 기록했다. 마치 ‘에나쓰의 21구’라고 연상케 할 정도로 언론에서는 이를 모리후쿠의 11구[8]라고 표현했는데[9] 오 사다하루 구단 회장은 “모리후쿠는 완벽하고 훌륭했다” 라고 극찬한 것을 비롯하며 손정의 구단주와 이하라 하루키 등도 모리후쿠의 활약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다.

시즌 종료 후인 12월 3일의 계약 갱신에서는 다음 시즌의 연봉을 4,600만 엔이 증가된 7,000만 엔으로 서명했다.

2.2.4. 2012년

작년과 마찬가지로 마무리 투수를 맡았는데 그 해에는 마하라가 어깨 수술로 인해 전력에서 이탈되었기 때문에 시즌 초반에는 9회에 폴켄버그가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폴켄버그는 과거에 팔꿈치 부상을 고려하여 3연투를 시키지 않는 팀의 방침에 의해 폴켄버그 연투의 다음날은 모리후쿠가 9회에 마무리 투수로서 등판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에 들어가면서 폴켄버그가 어깨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여 모리후쿠가 혼자서 마무리 투수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갑작스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리후쿠는 등판을 계속하는 등 7월이 종료된 시점에서 14세이브를 올린다.

8월에 들어가면서 구원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어 오카지마 히데키나 야나세 아키히로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는 등 다시 중간 계투를 중심으로 등판을 계속했다. 그 해에는 작년을 웃도는 최다 기록인 65경기에 등판해 2승 5패 17세이브 24홀드, 평균 자책점 1.39를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4경기에 등판했는데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2경기에 등판하여 2이닝을 던지면서 호투했고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도 2경기에 등판했지만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2.5. 2013년

2.2.6. 2014년

2.2.7. 2015년

2.2.8. 2016년

2.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요미우리 역사상 투수 최악의 먹튀[10]
믿고 거르는 파리그산[11]

2.3.1. 2017년

이적 첫 해에는 30경기에 등판해 20.2이닝을 소화하고 평균자책점도 3.05라 그나마 사람 구실을 했다. 문제는 2018년부터인데...

2.3.2. 2018년

시즌 종료 후 스프링캠프를 2군으로 배정받았다가 6월 13일 좌완 중간계투를 보완하기 위해 1군에 콜업. 그러나 이후 실망스러운 피칭만 보여주며 7월 2일 바로 2군행.

2018 시즌은 2경기에만 등판했음에도 3실점하면서 방어율은 13.50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성적을 남겼다. 결국 시즌 종료 후 일본 언론에게 불량채권이라 디스당하기에 이르렀다. 이 표현이 나온 곳이 아사히 신문인데, 중앙일간지는 스포츠지에 비해 절제된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분노게이지가 얼마나 차 있는지 알 수 있다.

2.3.3. 2019년

2019 시즌에서도 6월 21일 교류전 소프트뱅크전에서 친정사랑[12] 만루홈런 맞고[13] 바로 다음날 말소된 이후로는 2군으로 내려가 시즌 끝날 때까지 1군에 못 올라왔다. 1군에서의 성적은 7경기 방어율 6.23 3홀드로 여전히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겼다.

결국 시즌이 끝난 9월 30일에, 작년 스기우치 토시야에 이어서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14]를 받으면서 2020년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뛸 수 없게 되었다. 모리후쿠 본인은 현역 연장을 희망했으나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요미우리 팬들에게는 가루가 되다 못해 이미 드립거리이자 개그소재가 되었고[15] 히로시마 팬들에게도 법규사건으로 인해 금지어가 되었다(...). 짤방제조기

2.4. 은퇴 후

2020년 시즌 후쿠오카시로 다시 이사를 가면서 야구해설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롯폰기에 후쿠오카식 곱창전골집을 열었다. 주로 소프트뱅크 전담 해설자로 셋츠 타다시와 함께 활약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소프트뱅크가 스페셜매치에서 선수단을 모습을 스트리밍으로 중계하자 구단 공식 유튜브에서 객원해설을 맡았다.

3. 여담


일본프로야구에서 투구 간격(인터벌)이 긴 것으로 손꼽히던 투수였다. 일반적으로 선발 투수들에 비해 구원 투수들의 투구 간격이 다소 길고, 주자가 올라가면 더욱 길어지기는 하지만 위 영상에서 모리후쿠는 공 하나를 던지는 데 거의 45초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피치 클락 도입이 확산되고 원 포인트 릴리프 제도가 없어지며 낮은 팔각도의 왼손 기교파 투수가 줄어든 미국 야구계라면 더욱 보기 어려운 유형의 투수일 것.

작은 체구와 순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성질이 불같아서 2군에 있을때 사인이 맘에 안든다고 포수를 부르더니 글러브로 싸대기를 친바가 있고 히로시마 카프 전에서 카프의 2루 주자가 잔재주를 부리자 바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는등 여러 일화를 만들었다

4.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별 투수 성적
연도 소속팀 등판 선발 완투 완봉 무볼넷 승리 패전 세이브 홀드 승률 상대타자 투구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고의사구 몸 맞 탈삼진 폭투 보크 실점 자책점 평균 자책 WHIP
2007 소프트뱅크 호크스 7 0 0 0 0 0 0 0 0 ---- 24 6.0 3 0 1 0 2 7 0 0 1 1 1.50 0.67
2008 6 0 0 0 0 0 0 0 0 ---- 33 6.2 9 0 6 0 0 3 1 0 5 5 6.75 2.25
2009 13 0 0 0 0 0 0 0 0 ---- 49 11.0 12 1 3 0 1 11 0 0 7 6 4.91 1.36
2010 36 0 0 0 0 3 1 0 5 .750 188 48.2 34 5 10 1 3 45 0 0 17 14 2.59 0.91
2011 60 0 0 0 0 4 2 1 34 .667 211 55.2 38 3 10 2 1 45 0 0 7 7 1.13 0.86
2012 65 0 0 0 0 2 5 17 24 .286 235 58.1 40 1 17 3 3 55 0 0 12 9 1.39 0.98
NPB 통산
(6시즌)
187 0 0 0 0 9 8 18 65 .529 740 186.1 136 10 47 6 10 166 1 0 49 42 2.03 0.98
2012년 기준.

[1] 마루 요시히로, 스미타니 긴지로, 노가미 료마 등 외부 FA 선수의 보상선수를 누구로 보내야 할지 고민되거나, 경기에서 수비실책 및 실점이 많다면 요미우리 팬들은 망설임없이 "(중략)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리후쿠가 나쁘다"라면서 타 구단에 모리후쿠를 추천한다. 요 다이칸은 덤 [2] 닛칸 스포츠, 2011년 11월 17일 [3] 06년부터는 창단 감독인 타오 야스시를 자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영전을 받아 프로 감독으로 복귀한다. [4] 단체급식 업체이자, 노래방 사업체이기도 하다. [5] 이쪽도 기교파 좌완으로 분류되는 투수로, 모리후쿠와 같은 해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4순위로 지명되어 다르빗슈 유를 보좌하는 2선발 역할을 해냈다. [6] 원래 고졸 사회인 선수는 3년을 뛰어야 드래프트에 나갈 수 있다. [7] 닛칸 스포츠, 2010년 8월 31일 [8] 그리고 모리후쿠가 요미우리에서 죽을 쑤자 요미우리 팬들이 "모리후쿠 돌려드립니다", "1년 29구", " 후쿠다 만루홈런 맞고 보러 와봤습니다", "요미우리 모리후쿠 선수하고 똑같네요" 드립을 쳤다(...). [9] 6回無死満塁斬り!森福“江夏の伝説”とダブる11球 - 스포니치 annex, 2011년 11월 17일자 [10] 연봉추정 총액이 2016년 소프트뱅크 소속 일본인 선수 중 상위 11위 이하라 소프트뱅크는 보상선수도 못 받았는데, 소프트뱅크도 데니스 사파테가 먹튀 규모로 모리후쿠를 훨씬 뛰어넘어 완벽한 금지어가 되었다. [11] 그리고 노가미 료마가 모리후쿠 테크를 그대로 탄다(...). [12] 일본에서는 지방에 기부금을 내고 답례품을 받아가면서 세금까지도 절약할 수 있는 제도인 고향납세 드립이 나왔고, 실제로 요미우리의 팬베이스이기도 한 도쿄도는 고향납세 때문에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소득세와 주민세 등이 많아 골치를 앓고 있다. [13] 참고로 이 만루홈런을 친 후쿠다 슈헤이도 2019년을 끝으로 주전보장 받겠다는 이유로 연장 계약을 제시한 친정팀 소프트뱅크를 걷어차고 FA로 롯데에 갔다가 모리후쿠급의 초대형 먹튀가 되었다(...) [14] 일본에서는 재계약불가를 '전력외통고'라고 한다. [15] 요미우리 팬미팅 때 하이터치회에서도 지독하게 인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