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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행정조직 |
앙골라 고등교육과학기술혁신부(고등) 앙골라 교육부(초·중등) |
예산 | GDP의 2.4%[1] |
언어 | 포르투갈어 |
HDI | 0.591(2022년) |
문해율 | 71.1%(2021년)[2][3] |
[clearfix]
1. 개요
앙골라의 교육에 대한 문서다. 최빈국에 큰 내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교육 제도에 허점이 많다.앙골라는 2024년 기준, 2016년 교육법 개정안에 따라 9년의 무상 의무교육제를 시행 중이다.[4]
2. 국가행정조직
앙골라의 교육행정은 두 국가행정조직이 분담한다.앙골라 교육부(Ministério da Educação)[5]는 중등교육과 그 하위 단계의 교육 관련 행정을 담당한다. 앙골라 유아교육 및 초등교육청(Estado para o Ensino Pré-Escolar e Ensino Primário)과 앙골라 중등교육청(Estado para o Ensino Secundário)이 산하에 있으며 각 부처의 명칭대로 초등-유아교육과 중등교육을 담당한다.
앙골라 고등교육과학기술혁신부(Ministério do Ensino Superior, Ciência, Tecnologia e Inovação)[6]는 아래 설명할 대학교들의 운영을 포함한 고등교육을 담당한다. 산하에 있는 앙골라 고등교육청(Estado para o Ensino Superior)이 고등교육 관련 행정을 처리하는 부처이다. 또한, 고등교육과학기술혁신부 산하 앙골라 과학기술혁신청(Estado para a Ciência, Tecnologia e Inovação)은 과학기술 관련 행정을 담당한다.
3. 역사
식민지배기에는 당연하게도 원주민들에 대한 교육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특히 루안다같이 제대로 도시화된 지역만 그나마 제대로 된 교육정책의 혜택을 받았으며 미개발 지역인 내륙의 인구들을 대상으로는 선교를 위해 세워졌던 로마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들만이 교육을 지원해주었다. 물론 조나스 사빔비나 아고스티뉴 네투 같이 총명했던 학생들 같은 경우 교회가 잘 지원해주면서 포르투갈 본토로 가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으나 이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그래도 60년대~70년대를 거치며 교육 대상의 수치는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었다.하지만 앙골라 독립전쟁이 앙골라의 독립으로 끝나고 앙골라 인민공화국(RPA)과 앙골라 민주주의 인민공화국(RPDA)으로 앙골라가 두쪽나버리며 대규모 무력충돌이 발발했다. 당연히 전쟁으로 경제력이 국방에 집중되자 앙골라 내 시민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포르투갈인들이 전부 앙골라를 탈출하거나 새 정권이 포르투갈인들을 추방하자 교육자들을 포함한 인텔리들이 전부 앙골라에서 사라지면서 내전 초기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래도 RPA 같은 경우 당회의에서 문해율과 교육을 최우선 의제로 지정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1980년까지 100만명의 인구가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7] 초등-중등교육의 질도 어쨌든 수치상으로는 증가하며 1986년에는 백만 명 이상의 인구가 초등학교에 등록했다. 고등교육 같은 경우 앙골라 내 유일한 대학이었던 아고스티뉴 네투 대학이 있었다. 그리고 소련이나 쿠바의 협력으로 자국 내에 해외 교육자들을 데려와 교육기관을 신설하였다.
반면 RPDA는 조나스 사빔비의 망나니같은 특성 상 교육에 신경쓰지 않았고 RPA를 이기기 위해 타 부서에 지급되었어야 할 자금을 전부 무기에 때려박았다. RPDA는 항상 RPA에 비해 약세였기에 악착같이 싸우기 위해 이런 일이 생겼던 것. 또한 양 세력 모두 해외로 유학을 간 자국의 인구가 복귀하지 않는 현상을 경험하며 치명적인 인재유출을 겪었다. 결국 2002년에 RPA에서 앙골라 공화국으로 체제가 변경된 좌익 계열 세력이 RPDA를 꺾고 승리하였다. RPDA의 집권정당이었던 UNITA는 아직 세력이 꽤나 건재했기에 앙골라 공화국 내 정당이 되었다.
내전 종전 이후 국영기업의 자원 수출로 이전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자본이 역내에 유입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이 진행되어 교육 부문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앙골라의 문해율은 66.03%에서 72.4%까지 증가하였다.[8]
4. 초·중등 교육
내전기 소년병까지 동원해가며 치열하게 두 세력이 맞서 싸웠기에 사회적 취약계층이었던 아동들은 당연히 교육의 혜택을 못 받았던 경우가 많았다. 이에 내전 직후인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앙골라 정부는 380만명의 신규 18세 미만 아동들을 교육 명단에 등록하고 2004년에 초등교육과 중등교육 교사들 총 29,000명을 교육시켰다. 이에 2005년에는 1-4학년 학생들의 등록 인구가 100만명을 뛰어넘었다.[9] 물론 도시화율이 낮은 시골로 들어갈 수록 통학에 필요한 인프라의 부재가 심각해질 뿐더러 국토에 매장된 지뢰 피해자들, 전쟁으로 입은 부상을 안고 살아가야 될 아동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해결해야 될 공교육 문제가 많다.5. 고등교육
1962년, 포르투갈의 해외부(Ministério do Ultramar)는 포르투갈령 앙골라 루안다[10]에 국립 종합대학을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명칭은 앙골라 일반 연구 대학(Estudos Gerais Universitários de Angola)이었으나 이후 1968년에 루안다 대학교(Universidade de Luanda)로 명칭을 변경한다.앙골라가 독립하자, 대학은 앙골라 대학교(Universidade de Angola)으로 개칭하였다. 독립 직후 앙골라 대학교는 심각했던 초·중등 교육의 실태를 해결하기 위해 중등교육 교사 양성에 집중하였다. 이 시기 ISCED(Institutos Superiores de Ciências da Educação)라고 불리는 교육 과학 연구소가 루안다를 비롯한 각종 거점 도시들에 설립되었다. 또한 포르투갈의 루안다 대학교 시절부터 있던 다양한 학부를 폐지하지 않고 존치했으며 우암부에 위치한 농업 연구소 역시 폐지하지 않고 운영하였다.
1985년, 아고스티뉴 네투를 기리기 위해 아고스티뉴 네투 대학교(Universidade Agostinho Neto)로 개명하였으며 현재도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고스티뉴 네투 대학교는 앙골라 내에서 유일했던 공립대학이었고 앙골라 정부의 지원 하에 루안다를 거점으로 앙골라 각지에 캠퍼스를 설립하며 규모를 불려나갔다. 2009년, 네투 대학의 규모가 너무 커지자 지방 분권화를 위해 다양한 분캠을명하였으며 현재도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아고스티뉴 네투 대학교는 앙골라 내에서 유일했던 공립대학이었고 앙골라 정부의 지원 하에 루안다를 거점으로 앙골라 각지에 캠퍼스를 설립하며 규모를 불려나갔다. 2009년, 네투 대학의 규모가 너무 커지자 지방 분권화를 위해 국토 각지에 위치했던 다양한 분교들을
- 루안다의 본교인 아고스티뉴 네투 대학교 (Universidade Agostinho Neto)
- 벵겔라의 카티아발라 브윌라[11] 대학교(Universidade Katyavala Bwila)
- 카빈다의 11월 11일[12] 대학교(Universidade 11 de Novembro)
- 우암부의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13] 대학교(Universidade José Eduardo dos Santos)
- 루방구의 만두메 야 은데무파유[14] 대학교(Universidade Mandume ya Ndemufayo)
- 말란즈의 루에지 안콘데[15] 대학교(Universidade Lueji A'Nkonde)
- 우이즈의 킴파 비타[16] 대학교(Universidade Kimpa Vita)
를 포함한 총 7개의 개별 대학교들로 독립시켰다. 위 대학들은 앙골라의 국립 고등교육을 대표하는 7개의 대학교들이며 당연하게도 네투 대학이 최대 규모이다. 또한 앞서 말했던 ISCED의 루방구 연구소는 네투 대학에 소속돼있다.
위 공립대학들을 제외하고도 앙골라에는 카톨릭계 사립대학들도 위치해있다.
현재 총 11개의 앙골라의 국립대학교들이 앙골라 고등교육청[17]의 행정 하에 있다. 앞서 말한 7개 대학교 말고도 루안다에 위치한 루안다 대학교, 모사메드스에 위치한 나미브 대학교, 말란즈에 위치한 은징가 음반데 대학교, 메농그에 위치한 쿠이투 쿠아나발레 대학교가 있다.
[1]
CIA 자료
#
[2]
82.0% 남성, 60.7% 여성
[3]
CIA 자료
#
[4]
출처:
UNESCO
#
[5]
#
[6]
#
[7]
1985년에 문해율을 공식 추산 59%를 찍었다. 물론 훨씬 신빙성이 높은 미국의 자료는 20% 정도로 추산한다.
[8]
출처:
세계은행
#
[9]
출처: 미국 노동부
#
[10]
모잠비크에도 동시 설립
[11]
앙골라 중부에 위치했던 바일룬두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12]
앙골라의 독립기념일
[13]
당연히 앙골라의 전 대통령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에서 따온 이름
[14]
나미브 지역의 오밤보족 왕국이었던 오쿠와냐마(Oukwanyama)의 마지막 국왕인 만두메 야 은데무파유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포르투갈과 남아프리카의 개척자들에 용맹하게 맞서 싸우다 전사한 영웅으로
나미비아,
앙골라 양쪽에서 모두 추앙받는 인물이다.
[15]
앙골라 동남쪽에 위치했던 룬다 왕국의 여왕
[16]
콩고 왕국에서 활동한 콩고인 기독교 선교사
[17]
고등교육과학기술혁신부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