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June 1962 Alcatraz escape attempt1962년 6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알카트라즈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탈옥한 사건.
2. 실종자[1]
프랭크 모리스(Frank Lee Morris)[2] 1926년생. 당시 36세. 생존해 있다면 현재 [age(1926-01-01)]세. |
존 앵글린(John William Anglin)[A] 1930년생. 당시 32세. 생존해 있다면 현재 [age(1930-01-01)]세. |
클라렌스 앵글린(Clarence Anglin)[A] 1931년생. 당시 31세. 생존해 있다면 현재 [age(1931-01-01)]세. |
그러나 관련 법에 의해 이들이 모두 99세가 되는 해인 2030년까지 사건은 종결되지 않는다.
3. 상세
사건의 발단은 프랭크 모리스라는 죄수가 알카트라즈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1960년 마약 소지 및 무장 강도 혐의로 체포되어 알카트라즈에 수감된 그는 들어오자마자 알카트라즈를 탈출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모리스의 궁리에 형제인 존 앵글린과 동생 클라렌스 앵글린, 그리고 앨런 웨스트[5][6]가 동참했다. 앵글린 형제도 수많은 무장 강도와 탈옥 경력을 가졌던 직업 범죄자들이었다.모리스의 지휘 아래 2년 동안 복잡한 탈옥 계획이 진행되었다. 환풍구 주변 벽 콘크리트가 단단하지 않다는 헛점을 발견하게 됐다.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는 우비로 뗏목을 만들고 석고, 종이 등으로 미끼 인형을 만든 다음 감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교대로 환풍구 주변에 땅굴을 팠다. 땅굴을 파기 위해 이용한 것은 포크, 숟가락 등 식기류로 이들은 식당에서 하나씩 훔쳐 숟가락은 머리 부분을 절단해 송곳 모양으로 만들어 손톱깎이 뾰족한 부분과 용접해 땅굴을 팠다. 벽을 파낸 것을 숨기기 위해 마분지로 가짜 창살을 만들어 뚫어둔 환풍구를 덮어뒀다. 마침내 1962년 3월 땅굴이 완성되어 옥상으로 향하는 통풍구까지 연결되자 이들은 1962년 6월 11일 미리 만들어 둔 미끼 인형을 침대에 두고 통풍구를 타고 옥상까지 올라간 뒤 뗏목을 타고 북쪽으로 8km 떨어진 엔젤 아일랜드 섬으로 향하면서 탈옥과 동시에 모습을 감추었다.
놀랍게도 감옥 안에서 석고에 종이를 붙여서 만들었음에도 좀 거리를 두고 보면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 인형 머리에 붙인 머리카락은 이발소에서 주워 온 것으로 보인다. 사진
이 사건은 영화라도 좀 작위적일 정도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면이 있어 이후 수많은 탈옥물 등에 큰 영감과 소재를 제공했다. 물론 이 사건 자체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일단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괴담과 떡밥들이 난무하며 대표적인 미스테리로 남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도 실종자들의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진 엄청난 ' 썰'이 난무했고 심지어 UFO 납치설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는데 이 사건은 탈출 과정도 극적인 데다가 이후의 행방도 묘연하여 호사가들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그것도 영화까지 제작될 정도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켜서 해외에까지 널리 이들의 캐릭터가 알려졌음에도 단 한 명의 용의자조차 확인된 제보가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 탈출 과정에서 익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래서 공식 발표로도 일단은 익사 추정이긴 하다. 만약 탈옥이 성공했다면 신분을 세탁하고 지냈을 것인데 본인들이 끝까지 숨기고 싶었으면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본인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사실 탈옥수라는 것을 말할 수도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이런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7]
4. 탈옥, 그리고 가설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교도관들은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의 방에서 인형을 찾아내 이들이 탈옥한 것을 알게 되었고 FBI가 동원되어 광범위한 수색을 펼쳤다. 그러나 시체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FBI는 이들이 감옥에서 나가기는 했어도 끝내 샌프란시스코로 나가는 데는 실패해서 바다에서 익사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FBI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것에는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오던 노르웨이 국적의 선박 선원들의 증언도 한 몫 했다. 이 선박의 선원들은 해안가에서 떠다니던 시체를 발견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체를 건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고 가 버렸다고 증언했다. 또 FBI의 수색으로 방수가방과 뗏목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가방 안에서 앵글린 형제의 소지품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FBI는 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비슷한 시점에 샌프란시스코 해변에서 차량을 강탈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FBI는 차량 강탈 사건과 이들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했고 결국
1979년 이들이 살아 있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선언하고 수사를 종결지었다. 하지만 수사만 종결지었을 뿐 이들은 여전히 징역형 집행 정지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체포만 되면 다시 징역형을 시작해야 한다.
-
이들이 결국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캐나다로 도망치려다가 범죄 중개인과 마찰이 생기는 바람에 캐나다 국경 산골 어딘가에서 전부 살해당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은 익명의 제보자가 FBI에 제보했지만 증거는 없다. 이 가설은 사실 여부는 둘째치더라도 모리스 일당이 알카트라즈를 벗어난 건 인정한다는 특징이 있다.
-
당시 알카트라즈를 탈옥했던 앵글린 형제의 조카 데이비드 위드너의 말에 따르면 탈옥 사건 이후 수년 동안 누군가가 자신의 할머니(즉 앵글린 형제의 어머니)에게 수년 동안 우편으로 장미를 보내 왔는데 꽃과 동봉된 카드에는 앵글린 형제의 서명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마도 앵글린 형제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
1975년에 앵글린 형제들이
브라질의 한 농장에서 찍힌 사진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 이 사진은 앵글린 형제의 친구 브리찌라는 사람이 찍은 사진으로 추정되며 법의학 예술가가 사진 속 얼굴 구조를 분석하여 형제의 가족 사진 및 감옥 수배 사진과 비교해 보았더니 99.9%의 정확도를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 FBI는 브라질로 FBI를 파견해 수색 작업을 했지만 단서는 못 찾았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법의학 예술가는 형제들이 탈출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들의 비슷한 나이의 형제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지금쯤이면 죽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들의 조카인 켄 위드너는 데일리 메일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삼촌들이
남미로 건너가 브라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후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8]
- 2018년 1월 FBI가 탈옥범 중 한 사람이었던 존 앵글린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를 공개했다. # 이 편지는 2013년에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에 온 것으로, 5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으나 지역 방송국의 취재진이 그 존재를 밝혀냈다. 이에 따르면 존 앵글린과 함께 탈옥했던 클라렌스 앵글린과 프랭크 모리스는 각기 2008년, 2011년에 사망하였으며 존 앵글린 자신도 암에 걸린 상태였고 TV에 편지를 발표한다면 1년 내에 감옥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 편지에 따르면 존 앵글린은 탈옥 당일 오후 10시에 샌프란시스코만에 도달했고 이후 시애틀과 노스다코다를 거쳐 지금은 사우스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내용을 방송국에 내보내고 본인의 약속을 들어주면 자신의 주소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다만 이 편지의 진위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9] 물론 출처도 불분명하고 실제 존 앵글린과 같은 필적, DNA,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기에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현지나 외국 여론들은 이 편지가 진실일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기본적으로 방송국에서 자신의 편지의 내용을 내보냈을 때 보낸 이가 앵글린이 아니라면 주소를 알려주지 않고 잠적하거나 거짓 주소를 알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방송국에서 5년동안이나 내보내지 않고 숨겼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62년이면 DNA와 지문 검출 기술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을 때이고 흐른 세월을 감안하면 필적이 변해도 전혀 이상한 세월이 아니다. 노년의 나이의 같이 탈옥한 두 사람은 이미 사망했고, 본인 또한 암에 걸려 치료비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편지가 사실일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5. 여담
- 탈옥 사건 3일 뒤, 탈출하지 못한 앨런 웨스트는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에게 이 탈옥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혔다. 즉, 본인도 이 사건에 동참을 한 것과 탈옥 계획에 대해서 모두 밝힌 것이다.
- 얄궃게도 이 탈옥 사건이 일어난 지 겨우 1년 만에 알카트라즈 교도소는 폐쇄되었다. 교도소의 위치상 유지비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 2008년 디스커버리 채널의 Mythbusters에서 이들이 탈옥에 성공할 수 있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똑같은 시도를 했다. 바다가 잠잠하고 근처 바다의 조류를 잘 안다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외에도 지난 수 십년간 미국 방송에서 여러차례 직접 실험을 하는 시도를 했었는데, 역시 조건만 잘 맞으면 성공했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티 해리 1편을 감독한 돈 시겔이 감독, 제작하고 제작사는 이스트우드가 공동투자한 말파소 컴퍼니. 배급사는 파라마운트. 800만 달러로 만들어 4,3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 알카트라즈 탈옥 자체는 공식적으로 총 14회 시도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 외에도 1937년에 랄프 로와 테오도르 콜[11]이 창문을 부수고 탈옥한 사건이 있는데, # 이들 역시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익사해 바다로 휩쓸려갔다고 공식적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들의 고향인 오클라호마에 다시 나타나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언들이 있는데 시골의 허술한 치안 때문에 제대로 수사하지는 않았다. 알카트라즈 탈옥수 중 지금까지 행방불명인 탈옥수는 총 5명인데 이 문서에 등장한 3명과 이 문단에서 서술한 2명이다.
- 로키(드라마)의 로키(시즌 2) 5화에도 이 사건이 등장한다. 그나마 편지 등이 남아 있는 앵글린 형제와 달리 정말 사라져버린 프랭크 모리스가 사실 TVA(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직원 케이시(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설정이다.
[1]
아직까진 정황을 알 수 없으므로 실종자로 표기한다.
[2]
키 171cm
[A]
키 180cm
[A]
[5]
이 사람은 탈옥의 계획을 먼저 펼친 주범이지만 탈옥에는 실패했다.
[6]
여담으로 탈출에 성공한 프랭크 모리스와 매우 닮았다.
#
[7]
하지만 밑의 탈옥, 가설들 문단을 보면 앵글린 형제들이
어머니에게 수년 동안
우편으로
장미를 보내 왔고
꽃과 동봉된
카드에는 앵글린 형제의 서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자세한 건 알 수 없다.
[8]
앵글린 형제 중 한 명은 죽어가면서 비밀을 털어놓았고 둘 중 한 명은 브라질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주장이 있다.
[9]
존 앵글린은 1930년생이므로 정말로 그가 편지를 보냈다면 2013년에는 83세의 노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었는데 암을 치료할 만한 돈이 없어서 차라리 감옥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지만 지금으로서는 정말로 존이 편지를 보낸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10]
#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앨런 웨스트는 1929년생으로 자동차 절도범으로서
애틀랜타 교도소(처음 프랭크 모리스, 존, 클라렌스 앵글린을 만난 곳)와 플로리다 주립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는 1957년에 알카트라즈로 보내져 탈출 시도 혐의로 기소되어 AZ1335 포로가 되었다.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들의 탈옥 사건 이후에도 웨스트는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 1963년 2월 18일 알카트라즈를 떠난 뒤
워싱턴주 맥닐 아일랜드와 조지아 주 애틀랜타로 이적해 1965년 1월 7일 연방 교도소에서 석방된 후 웨스트는 조지아와 플로리다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67년에 풀려났지만 나중에 대절도, 강도, 탈출 시도 혐의로 플로리다에서 체포되었다. 종신형을 포함한 여러가지 형을 받은 웨스트는 1969년 1월 플로리다 주 교도소로 보내졌고 1972년 10월 30일 그는
인종 차별적인 사건으로 다른 죄수를 찔러 치명상을 입혔다. 1978년 12월에 심한 복통을 앓던 웨스트는 샨즈 티칭 병원으로 보내져 1978년 12월 21일 향년 49세의 나이로
급성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참으로 불운하고 기구한 인생을 살다 간 인물이다.
[11]
세미놀 족의
인디언이다. 두 사람 다
오클라호마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