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06:03:51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정교회)

그리스어: Πατριαρχεῖον Ἀλεξανδρείας καὶ πάσης Ἀφρικῆς
영어: Greek Orthodox Patriarchate of Alexandria and all Africa
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2.3. 근세 ~ 근대2.4. 현대
3. 관련 문서

1. 개요

정교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를 중심으로 한 교구.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정교회 신도들을 관할하고 있다. 해당 교구는 콥트교와는 별개이다.

2. 역사

2.1. 고대

로마 제국이 기독교가 보급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여러 종파들이 들어섰다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동부는 단성론 보편교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일반인들이 종파 관련한 이해도나 교리 관련하여 서로 갈등했다기보다는 지역감정 혹은 민족감정과 연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언어를 사용하던 주민들 주로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콥트어 사용 주민들, 시리아 일대를 중심으로 한 아람어 사용 주민들은 단성론 성향의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그리스 반도 일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어 사용자들은 보편교회 편에 섰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시대 이집트 사회는 도회지를 중심으로 거주하던 상류층인 그리스인들, 그리고 유대인, 농촌을 중심으로 거주하던 이집트 현지인 이렇게 크게 세 가지 민족 집단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는 로마 제국 시대 이전부터[1]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에 꾸준히 진출해왔던 영향으로 고대 기원전 7세기부터 리비아 동부( 키레나이카)에 여러 그리스 폴리스들이 들어섰던 바 있었다. 이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정복한 이후에는 그리스 용병들이 이집트에 대거 유입되었던 바 있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집트 정복 이후에 나일강 하류에 알렉산드리아가 건설되면서 상당수의 그리스인들이 이집트로 유입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부터 고대 로마 시대를 거치며 고대 그리스어는 고대 이집트어를 대체하여 이집트 일대의 공용어로 거듭났다.

한 편 알렉산드리아는 로마 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3개 대도시 중 하나로, 로마 제국의 5개의 총대주교구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안티오키아,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예루살렘과 함께 총대주교구가 들어서는 영예를 안았다. 이집트의 초대 교부 신학자 키릴로스 네스토리우스와의 신학 논쟁을 벌이면서 유명해졌고, 이집트 현지에서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 중 상당수가 단성론 신학 체계를 완성하였다. 451년 칼케톤 공의회의 결과 이집트와 시리아의 단성론은 보편 교회에서 갈라져 나왔다. 한 편 이집트 속주 사회 내에서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속주 현지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던 사람들이었으나 엄연히 소수파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콥트어 사용자들에게 말카(대충 번역하면 왕당파 이런 뜻)로 불리면서 따돌림을 받았고 이런 갈등은 현지 사회의 알력으로 이어졌다.

2.2. 중세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단성론[2]를 이단으로 여겨 인정하지 않았고, 동로마 제국이 이집트를 지배하던 당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라 하면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를 의미했다. 그러나 아랍 무슬림들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정교회를 강제하던 동로마 제국 정부가 축출당하면서, 콥트교인들은 이집트 기독교 사회에서 갑 입장이 되었고 보편 교회에 해당하던 정교회 신도들은 힘 없는 소수파로 전락하게 되었다.

정통 칼리파 시대 당시 아랍 무슬림들에게 정복되었던 이집트 사회에서는 한동안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꾸준히 사용되어 왔으나, 우마이야 칼리프조 시대 관청에서 그리스어 사용이 금지되면서, 그리스어로 사무를 보던 관청들은 아랍어로 사무를 보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잔존하던 그리스어 사용자들(그리스계 후손들)은 아랍어를 배우고 문화적/언어적으로 아랍어를 보았으나 상당수는 그리스 정교회를 고수하였는데, 이들의 후손들은 오늘날 이집트 내 그리스 정교회 신도들의 한 축을 이룬다.

2.3. 근세 ~ 근대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알리의 케디브 왕조 시대에는 다시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에 정착, 체류하면서 수백여 년간 고립되어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정교회 총대주교구도 새로 상당수의 신도가 유입되었다.

2.4. 현대

20세기 초반 이집트 왕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고 중동전쟁이 발발하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본토나 미국, 호주 등으로 망명하면서 이집트 내 그리스 정교회 사회는 다시 아랍계 기독교인 위주로 재편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설립된 후 그리스 키프로스의 그리스인들은 1965년에 남아공으로 많이 이주했다. 1994년에는 남아공의 정치적 과도 변화가 생소한 점 때문에 많은 그리스계 남아프리카인들이 그리스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었다. 2018년 이후를 기준으로 하여 13만 8천여명이 거주한다.

남아공 외에도 리비아, 카메룬, 짐바브웨, 콩고민주공화국, 잠비아에도 그리스계 디아스포라가 있으며, 그 외 말라위, 시에라리온에도 소수 그리스인들이 거주한다.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구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총괄하는 교구이기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 내 그리스인들은 명목상으로는 해당 총대주교구에 속해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그리스인들은 정교회를 중심으로 서로 단합하는 편인데, 해외에 나가면 굳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언어 문제 및 정보 교환을 이유로 종교 시설을 중심으로 모임을 갖는 편이기 때문이다.

3. 관련 문서



[1] 오늘날 그리스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 주민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한 역사는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역사 기록에 남은 가장 오래된 사례로는 고대 이집트를 침공한 바다 민족의 일파인 블레셋인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블레셋인들은 오늘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연대의식이나 문화를 공유한 것은 아니라, 이들을 그리스인의 아프리카 진출 사례로 보기는 애매하다. [2] 이집트의 콥트교 역시 단성론에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