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티모슈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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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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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리 셰브첸코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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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 티모슈크 (2012~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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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렉산드르 쿠체르 (2016~2020) |
아나톨리 티모슈크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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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쇼노크 · 2
치스탸코프 · 3
D. 산토스 (C) · 4
고르시코프 · 5
바리오스 · 7
소볼레프 · 8
웬데우 9 아르투르 · 11 클라우지뉴 · 15 카라바예프 · 16 아다모프 · 17 모스토보이 · 21 예로힌 24 페드루 · 25 에라코비치 · 27 니누 · 28 알리프 · 30 카시에라 · 31 만투앙 · 32 곤도우 41 케르자코프 · 55 호드리강 · 67 글루셴코프 · 77 아흐메토프 · 79 바실리예프 · 82 볼코프 |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본래 스쿼드에서 타 팀으로 임대간 선수는 제외되었습니다. |
ФК Зенит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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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나톨리 티모시추크 Anatoliy Tymoshch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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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아나톨리 올렉산드로비치 티모시추크[1] Анатолій Олександрович Тимощу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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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9년
3월 30일 ([age(1979-03-30)]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볼린 주 루츠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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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우크라이나|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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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1cm / 체중 75kg | |
직업 |
축구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센터백 / 은퇴) 축구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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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009ee1> 선수 |
FC 볼린 루츠크 (1995~1997)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1997~2007)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7~2009) FC 바이에른 뮌헨 (2009~2013)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3~2015) FC 카이라트 (2015~2016) |
스태프 |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7~ / 수석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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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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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前 축구선수, 現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석코치.FC 샤흐타르 도네츠크,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며 UEFA 컵과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았으며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상을 3회 수상하기도 한 우크라이나의 레전드이지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의 만행에 침묵하고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남는 매국 행보를 보이면서 우크라이나 축구계에서 제명된 선수다.
2. 클럽 경력
2.1.
FC 볼린 루츠크
고향팀 볼린 루츠크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고 성공적인 2시즌을 보낸 후 다른 구단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2.2.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1997년 18세의 나이로 우크라이나의 강호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했다. 샤흐타르에서 리그 우승 3회, 컵 대회 우승 3회를 경험하였으며 샤흐타르의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유럽 여러 구단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2.3.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1기
2007년 2월, 티모시추크는 약 15m 유로의 이적료로 러시아의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적했고 곧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티모시추크는 팀의 첫 번째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는데, 이것은 1984년 제니트가 소비에트 톱 리그에서 우승한 이후 달성한 두 번째 우승이었다. 07-08 시즌 UEFA 컵에서는 4강전에서 분노의 영입을 한 FC 바이에른 뮌헨을 탈탈 터는 등 크게 활약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2.4. FC 바이에른 뮌헨
2009년 7월 1일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비공개였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14m 유로 정도.
팬들은 그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티모시추크는 시즌 초반부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특히 패스미스를 많이 내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결국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와 팀의 주장이었던 마르크 판보멀에게 완전히 밀려나 시즌 후반에는 벤치 신세를 지게 되었다.
10-11 시즌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나왔지만 센터백으로도 자주 출장하였다.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활약은 해 주었다.
11-12 시즌에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간혹 센터백으로 출장하였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첼시 FC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센터백으로 선발 출장하였지만 팀은 승부차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12-13 시즌에는 하비 마르티네스가 영입되어 입지가 더 좁아졌으며, 경기가 끝날 때 쯤 교체로만 출장하는 처지로 전락하였다. 시즌이 끝나고 팀을 떠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결국 시즌 종료 이후 바이에른을 떠나는 것이 확정되었다.
2.5.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기
2013년 6월, 제니트로 다시 이적하는 것이 확정되었다.사실 바이에른을 탈탈 털 정도의 수미였는데 공격 위주의 축구를 추구하던 루이 반할에 의해 1년 놀다 센터백으로 출장해서[4] 고생을 많이 했다. 선수생활의 마지막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라 제니트에 남긴 그의 활약을 기억해준 팬들의 격려에도 불구하고 수미로서의 기량을 잘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2.6. FC 카이라트
2015년 7월 6일 카자흐스탄 프리미어 리그의 FC 카이라트로 이적했고, 1년 6개월의 계약을 체결했다. 카이라트에서는 이적하자마자 팀의 주장으로 선정되었고 2015 카자흐스탄 컵 우승을 경험했다. 2016년 말,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고, 2017년 2월 12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3. 국가대표 경력
2000년 4월 26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 데뷔하며 국가대표 경력을 시작한 티모시추크는 점차 팀의 핵심 멤버가 되었고 2002년 4월 17일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첫 골을 넣었다.2006 독일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전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우크라이나를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켰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유럽예선처럼 전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을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8강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2010년 10월 11일에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하여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국가대표팀의 경기에서 대부분 풀타임으로 뛸 정도로 국가대표팀의 중추 역할을 수행한 티모시추크는 2012년 안드리 셰우첸코가 은퇴한 이후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되었다. 2013년부터는 대표팀에 선발되는 젊은 선수들에게 밀려 로테이션으로 나서게 되었지만, 국가대표팀을 하나로 모으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선발되었다. 그는 UEFA 유로 2016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 23인 최종 명단에도 포함되어 비록 우크라이나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폴란드전에서 92분에 교체출전하여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를 조금이나마 소화하였다. UEFA 유로 2016 이후 2016년 8월에 티모시추크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A매치 144경기에 출장하여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A매치 역대 최다 출장자가 되었고, 국가대표팀에서 총 4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국가대표팀 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기록과 영예는 2022년 3월 9일 부로 없어졌다.
4. 대회 기록[5]
-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1997~2007) -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 2001-02, 2004-05, 2005-06 -
우크라이나컵 : 2000-01, 2001-02, 2003-04 -
우크라이나 슈퍼컵 : 2005
-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7~2009 / 2013~2015)
-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 2014-15
- UEFA 유로파리그 : 2007-08
- UEFA 슈퍼컵 : 2008
- FC 바이에른 뮌헨 (2009~2013)
- 분데스리가 : 2009-10, 2012-13
- DFB-포칼 : 2009-10, 2012-13
- DFL-슈퍼컵 : 2010, 2012
- UEFA 챔피언스 리그 : 2012-13
5.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축구 코치로 활동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코칭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2017년부터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6. 논란 및 사건사고
6.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논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18~60세인 남성을 대상으로 징집 명령이 떨어져 티모슈크 역시 징집 대상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거짓이다.[6] 하지만 이와 별개로 러시아가 해당 전쟁에서 보여준 만행에 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고, FC 디나모 모스크바의 수석코치였으나 전쟁이 터지자 바로 수석코치를 그만둔 안드리 보로닌과는 달리 수석코치직을 내려놓지 않고 러시아에 남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국 축구팬들은 물론 후배들인 자국 축구인들에게조차 거센 비난을 받았다.[7]이로 인해 한때 안드리 셰브첸코와 함께 당시 우크라이나 축구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고 우크라이나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던 그는 순식간에 우크라이나 국민들 모두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이러한 행보에 분노한 우크라이나 축구 협회에 의해 2022년 3월 9일 우크라이나 축구계에서 제명, 코칭 라이선스 박탈 및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과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에서 그가 달성한 기록들이 모두 삭제되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었다. 번역본 하지만 티모슈크는 이러한 처벌 이후에도 여전히 전쟁에 관해 침묵하고 있으며, 현재 그의 인스타그램은 성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우크라이나 축구팬들은 티모슈크의 유니폼을 불태우고 밟고 침을 뱉는 퍼포먼스로 티모슈크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러시아 슈퍼컵이나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아무 문제 없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차기 제니트 감독감으로도 꼽히고 있다.
2023년 1월에 우크라이나의 블랙리스트 4인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티모슈크는 러시아인 아내가 있고, 러시아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기 때문에 아내와 자식을 내팽겨치고 무책임하게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정도 감안해야 한다. 또한 현재 러시아에는 아직 몇 명의 우크라이나 국적 선수들이 남아있으며, 러시아로 귀화한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들도 있다. 또한 그의 소속인 제니트의 모기업은 그 유명한 가즈프롬, 즉 러시아의 국영기업이다. 러시아의 강력한 공권력을 감안하면 공기업에 소속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자기 소신대로 행동했다간 러시아에 남은 자기 아내나 가족들이 위험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같이 데려가자니 그것도 러시아인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사실상 반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며 제3국에 놓고 자기만 가는 것도 문제인 것이 도망친 러시아인을 제 3국이 환영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8] 결국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이므로 가족이라도 지키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가즈프롬은 전쟁에 대단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기업 중 하나로, # 이로 인해 2023년에는 아예 EU 제재를 묵시적으로 받아서 역대 최악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데에 소속되어 있는데[9] 단순히 돈과 명예에 눈이 멀어서 조국을 배신했다는 말은 다소 억측적인 면이 있다. 무엇보다 티모슈크는 이미 돈과 명예를 다 얻었음에도 우크라이나 국가대표에 144경기나 출전했는데 애국심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10]
물론 당연하겠지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축구계 입장에서 “사정을 참작해서 봐 주겠다!“ 라고 할 수도 없으니 우크라이나 축구계에서 그를 제명하고 동료들이 그를 비난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2023년 이후로는 병력 부족으로 40-50대 중년들은 물론 당뇨병 등을 갖고 있는 만성질환자, HIV 감염자나 초기 암 환자까지 징집하는 상황인데 축구 선수와 코치들은 특별히 군 면제 처리를 받았다.[11] 이렇게 국가로부터 엄청난 배려를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전체주의적으로 보일 지 몰라도 축구계 인사들이 국가를 위한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누가 나쁜놈이라고 하기보다는 전쟁이 일으킨 비극이라고 보는 게 맞다.
6.2. 루마니아 시민권 취득 관련 논란
근황이 없다가 2023년 5월 27일에 티모시추크가 루마니아 국적을 취득하려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12] # 근거는 할머니가 1929년에 체르니우치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체르니우치는 루마니아 왕국의 영토였다는 근거로 루마니아 시민권을 취득하려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전처와 그의 친척들을 조사한 결과 티모시추크에게는 루마니아 혈통을 가진 할머니가 없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편 이와 별개로 루마니아 국적을 취득하면 우크라이나 국적이 소멸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다른 구 소련 국가들과는 달리 특이하게 이중국적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13]
7. 여담
- 행운의 숫자가 '4'라고 했다.
[1]
국제음성기호는 [ɑnɑˈtɔlʲi tɪmɔˈʃtʃuk\]
우크라이나인이지만
안드리 셰우첸코처럼 한국에 알려질 당시 우크라이나어 표기법이 정립되지 않아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부른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어 발음과 러시아어 발음의 차이는
여기서 들을 수 있는데,
키이우 출신 남자 목소리는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도네츠크 출신 여자 목소리는 우크라이나어로 등록되어있지만 러시아어 발음에 더 가깝다. 두 언어의 차이와 관련된 다른 사례로는 우크라이나 출신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 문서나
러시아어/발음 문서를 참조.
[2]
2022년 3월 9일 우크라이나 축구 협회에서 제명되면서 클럽 기록이 말소되었다.
[3]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였으나 2022년 3월 9일 우크라이나 축구 협회에서 제명되면서 국가대표 기록이 말소되었다.
[4]
당시 반갈 감독은 전문 센터백을 거의 두지 않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땜빵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는
루이스 구스타부도 마찬가지.
[5]
2022년 3월 9일 우크라이나 축구계에서 제명되면서 우크라이나 소속 축구 대회들에서 우승한 기록들이 모두 삭제되었다.
[6]
우크라이나 내 거주 중인 남성들만 해당된다고 하며,
올렉산드르 진첸코,
안드리 루닌 등 해외에서 거주하는 일부 축구선수들 역시 비징집되었다. 또한 국내파 축구선수들도 투입 직후에 전사한 소수를 제외하면 얼마 후에 조기전역을 하고 축구선수 활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7]
루슬란 말리노우스키: "그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 레전드가 아니다.", 올렉산드르 알리예프: "티모슈크가 말하던 애국심은 그저 볼에다 우크라이나 국기 그려놓고 관심받으려는 거에 불과했나?"
[8]
물론 입국이야 안 막겠지만 사회적 시선을 감안하면 아내와 자녀가 좋은 시선으로 보일 리가 만무하다.
[9]
우크라이나 국민들이야 당연히 분노하겠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을 위시한 러시아 정부가 과연 사전 통제를 안 했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10]
우크라이나가 강팀도 아니고 센추리 클럽에만 목적을 뒀다기엔 144경기는 적지 않은 경기 출장 수다. 진짜 애국심이 없었다면 여타 축구 비강대국들의 돈을 많이 번 선수들처럼 적당히 뛰다가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을 것이다.
[11]
다만 이는 축구가 일종의 외교행위로써 작용하는 유럽에서, 힘이 약한 우크라이나가 타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에 그런 것이다. 당장 해외 강대국 팀에 속해있는 축구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며, 그렇다고 대놓고 해외파만 봐 줄 순 없다보니 국내파들까지 봐 준 것이다.
[12]
루마니아로 국적을 바꾸면 우크라이나의 제재를 피할 수 있고 심지어 우크라이나 입국도 가능하다. 동시에 러시아에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
[13]
2014년 이후 크림반도, 돈바스 지역에 살거나 2022년 전쟁 이후, 러시아 점령지에서 살면서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한 경우는 예외로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