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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 레콩키스타 - 스페인 제국 - 현대 | ||
<colbgcolor=#c60b1e>
스페인 제국 (1492년 ~ 193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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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왕국 압스부르고 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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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왕국 보르본 왕조 |
에스파냐 왕국 Reino de España Restauración borbóni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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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cde02> 국기 | 국장 | |
1874년 12월 29일 ~ 1931년 4월 14일 | ||
<rowcolor=#fcde02>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스페인 제1공화국 | 스페인 제2공화국 | |
<colbgcolor=#db0a13><colcolor=#fcde02> 국가 | 왕의 행진(Marcha Real) | |
위치 | 오늘날의 스페인, 식민지 | |
수도 | 마드리드 | |
인구 | 20,300,000명(1910년) | |
정치 체제 | 입헌군주제 | |
국가 원수 | 국왕 | |
주요 국왕 |
알폰소 12세 알폰소 13세 |
|
주요 실권자 |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 | |
언어 | 스페인어 | |
종교 | 가톨릭 | |
민족 | 스페인인 | |
주요 사건 |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 |
통화 | 스페인 페세타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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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73년 혁명으로 세워진 스페인 제1공화국이 마르티네스 캄포스의 쿠데타로 붕괴된 이후 1874년 보르본 왕조를 다시 추대하면서 세워진 왕실. 스페인 제1공화국의 혼란상에 학을 떼고 정치적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해 세워진 정치 체제였지만 정치적 실권은 보수 기득권층에게만 존재했고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농민, 바스크/카탈루냐 민족주의자 등 많은 세력의 불만을 야기했다. 1931년 알폰소 13세가 폐위되고 스페인 제2공화국이 세워지면서 50여년 만에 폐지된다.스페인 제1공화국을 붕괴시킨 마르티네스 캄포스를 위시로 한 군부는 이사벨 2세의 아들 알폰소 왕자를 국왕으로 추대한다. 제1공화국의 혼란상[1]에 넌더리가 나있던 보수 세력들이 동조하면서 알폰소 왕자가 알폰소 12세로 선포되었고 공식적으로 스페인 왕국이 부활하게 된다. 새로운 헌법이 재정되었고 스페인의 정치 체제는 입헌군주제로 규정된다. 주권은 의회와 국왕에게 존재하였고 왕과 의회는 동등한 권력[2]을 부여받았다.
진보적인 헌법과 더불어 국왕으로 즉위했던 알폰소 12세는 빠르게 혼란을 수습하고 재도약해 나가기 시작한다. 스페인에서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산업 발전에 주력했다. 알폰소 12세는 1885년 결핵으로 급서했다.
알폰소 12세가 사망했을 당시 아직 알폰소 13세는 태어나지도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헌법에 의거해 모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섭정을 맡게 된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1895년 쿠바에서 흑인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난 데 이어 1898년에는 쿠바를 호시탐탐 노리던 미국이 자국의 전함이 폭발한 사건을 빌미로 선전 포고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벌어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배한 스페인은 쿠바의 독립을 인정하는 한편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 등을 미국에 양도해야만 했고 이것으로 스페인은 라틴아메리카와 태평양 일대에 보유하고 있었던 모든 식민지를 상실하고 만다. 식민지의 상실로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졌고 반체제 세력들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1902년 알폰소 13세가 국왕으로 친정을 시작한다. 새로 즉위한 알폰소 13세는 산업 발전과 가톨릭 교회 개혁, 노동자들의 소요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국왕과 내각은 모로코의 식민지화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여기에 불만이 폭발해 1909년 바르셀로나에서는 노동자들의 봉기가 일어나는 상황까지 터진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자 스페인은 중립을 선언하는 한편으로 전쟁 당사자들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아올린다. 하지만 이런 급속한 성장으로 나온 부는 기득권층들에게 편중되어 대다수 농민/노동자들은 여전히 빈곤에 허덕여야만 했다. 이미 1917년에 아나키즘 성향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일으켰고 1차대전 종전 이후 전쟁 특수가 사라지면서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욱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여기에 1921년 스페인 군대는 리프 전쟁에서 베르베르족을 진압하는데 실패하고 리프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는 사태, 총리 에두아르도 다토가 아나키스트들에게 암살되는 사건까지 터져버린다.
1923년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가 주축이 된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왕 알폰소 13세가 재가하면서 리베라의 독재 정치가 시작된다. 리베라는 각종 정치 결사를 탄압하는 한편으로 계엄령을 선포했고 각종 학술원과 언론 역시 철폐해 버린다. 이런 강압 정치에 반발의 목소리가 큰 상황에서 리베라가 기존에 약속했던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역의 자치 허용까지 뒤집어버리자 스페인 전역에서 반 리베라 움직임이 거세지기 시작하고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으로 스페인이 초토화가 되자 군부 내에서까지 리베라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결국 1930년 리베라는 사임하고 파리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
연이은 실정을 일삼고 군부 독재를 옹호했던 알폰소 13세는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스페인 전역에서 공화정을 다시 수립하자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기 시작한다. 1931년 4월 12일에 총선이 있었고 여기서 공화주의자들이 압승을 거둔다. 이 상황에서도 알폰소 13세는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믿었던 군부마저 국왕을 저버리면서 결국 알폰소 13세는 스페인을 떠나야만 했고 4월 14일에 스페인 제2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선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