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000" {{{#!wiki style="margin:0 -10px -0px" {{{#DF2925 {{{#!folding [ Discography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tablewidth=100%> | ||||
Skid Row 1989 |
Slave to the Grind 1991 |
Subhuman Race 1995 |
Thickskin 2003 |
Revolutions per Minute 2006 |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 |
스키드로우 Skid Row |
}}} | |
|
||||
<colcolor=#DF2925><colbgcolor=#000> 국적 | 미국 | |||
결성 | 1986년 | |||
미국 뉴저지 톰스리버[1] | ||||
데뷔 | 1989년 1월 24일 | |||
정규 1집 " Skid Row"[2] | ||||
해체 | 1996년 | |||
재결성 | 1999년 – 현재 | |||
장르 | 헤비 메탈, 글램 메탈, 하드 록, 얼터너티브 메탈[3] | |||
멤버 |
데이브 "스네이크" 세이보 (기타) 레이첼 볼란 (베이스) 스콧 힐 (기타) 롭 해머스미스 (드럼) 에릭 그론웰 (보컬) |
|||
전 멤버 |
|
|||
레이블 | 애틀랜틱, SPV, 메가포스, 스키드로우 (미국, 자체 설립), 빅토르 (일본)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헤비 메탈 밴드.2. 특징
본 조비, 신데렐라, 건즈 앤 로지스 등과 함께 1980년대 후반 글램 메탈의 제2차 웨이브[4]를 선도했던 밴드다. 데뷔 시점이 1989년도로 웬만한 메이저급 글램 메탈 밴드 중에서는 가장 늦기 때문에 글램 메탈 최후의 불꽃이라고도 불린다.[5] 스키드로우의 등장 이후 글램 메탈은 변변한 스타를 찾지 못하면서 양산형 음악만을 배출하다가 결국 1990년대 불어닥친 얼터너티브 열풍에 맥 없이 무너지고 만다.머틀리크루, 건즈 앤 로지스와 함께 유럽 투어를 돌 정도로 큰 밴드였지만 1996년 세바스찬 바흐가 여러가지 사유로 인하여 밴드를 탈퇴한 이후로는 그저 그런 밴드가 되었다. 본 조비 등 주요 글램 메탈 밴드들이 인기가 예전만하지는 않아도 아직까지도 빌보드 상위권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스키드로우는 별다른 활동 없이 조용히 공연 몇번 하는 옛날 밴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글램 메탈 팬덤에게는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전설적인 밴드이며, 한국에서도 인기가 꽤 있었던 밴드였다.
3. 주요 멤버
스키드로우의 구성 멤버 | ||
세바스찬 바흐 Sebastian Bach | ||
<colbgcolor=#000><colcolor=#DF2925> 출생 | 1968년 4월 3일 ([age(1968-04-03)]세) | |
출신지 |
[[바하마| ]][[틀:국기| ]][[틀:국기| ]] 프리포트 |
|
활동 | 1986년 - 1996년 | |
포지션 | 보컬 | |
데이브 세이보 Dave Sabo | ||
출생 | 1964년 9월 16일 ([age(1964-09-16)]세) | |
출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뉴저지 퍼스 앰보이 |
|
활동 | 1986년 - 현재 | |
포지션 | 기타 | |
레이첼 볼란 Rachel Bolan | ||
출생 | 1964년 2월 9일 ([age(1964-02-09)]세) | |
출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뉴저지 포인트 플레전트 |
|
활동 | 1986년 - 현재 | |
포지션 | 베이스 | |
스콧 힐 Scotti Hill | ||
출생 | 1964년 5월 31일 ([age(1964-05-31)]세) | |
출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뉴욕시 맨해셋 |
|
활동 | 1987년 - 현재 | |
포지션 | 기타 | |
롭 애퓨소 Rob Affuso | ||
출생 | 1963년 3월 1일 ([age(1963-03-01)]세) | |
출신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뉴욕시 뉴버그 |
|
활동 | 1987년 - 1996년 | |
포지션 | 드럼 | |
- 데이브 "스네이크" 세이보 (Dave "The Snake" Sabo): 밴드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 레이첼 볼란과 함께 대부분의 히트 곡들을 작사 작곡하였다. 뉴저지 출신으로, 존 본 조비와는 부랄친구 사이이다. 존 본 조비가 데이브와의 옛 정을 생각해 스키드로우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면도 있다. 2000년대에는 4대 스래시 메탈 밴드[7] 중 하나인 앤스랙스와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스네이크라는 미들네임 때문인지 뱀 그림이 그려진 크레이머사의 커스텀 기타도 있다.
- 레이첼 볼란 (Rachel Bolan): 데이브와 함께 원년멤버이자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다. 데이브와 함께 스키드로우 내에서 메인 작사/작곡 담당이다. 보컬 능력도 꽤 좋은지, KISS의 멤버로 유명한 에이스 프레일리의 솔로 앨범에서 보컬로 참여했고, 머틀리 크루의 백킹 보컬로도 활동했다. 특유의 코걸이가 특징인데 이는 "만약 우리가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하면 나 코 뚫는다"라고 선언했던 걸 실천한거라고..
- 스콧 힐 (Scotti Hill): 데이브와 레이첼 다음으로 작곡 비중이 크다. 스키드 로우는 딱히 리드/리듬기타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18 and life, I remember you, Wasted time, In a darked room 등 유명한 기타 솔로는 다 이쪽이 연주했다. 여담으로 지금도 마른 체형이지만 활동 초창기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깡마른 몸이었다.
- 롭 애퓨소 (Rob Affuso): 밴드 내 최연장자이다. 1985년 본 조비의 오디션을 보다가 데이브와 알게 되어 스키드로우에 가입했다. 1996년 일시적 해체 후 1999년 재결성을 할 때 참여하지 않으면서 밴드를 탈퇴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밴드 멤버들과는 친하게 지낸다고 하며 2002년 재결성 공연에서도 한번 참여한 바 있다.[8]
4. 역사
4.1. 초창기
스키드로우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한때 액슬, 본조비 뺨치는 꽃미남 보컬로 유명했던 세바스찬 바흐지만 그가 스키드로우의 기둥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밴드 오디션을 보고 들어온 멤버에 불과했고 실질적으로 밴드를 만든건 데이브 "The Sanke" 세이보라는 기타리스트다. 데이브는 10살때부터 존 본 조비와 알고 지낸 사람으로, 한때 존 본 조비와 밴드를[9] 같이 했는데 당시는 존 본 조비의 실력이 데이브와 비교가 안되어서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데이브가 본 조비 결성 기준으로 19세라 너무 어렸기 때문. 데이브는 본 조비가 MTV를 타고 날아다닐때도 한동안 고생하다가 1986년 레이첼 볼란을 만나 스키드로우를 결성하였다. 이때까지 보컬은 맷 팰론이라는 사람이 맡고 있었다.그런데 데이브 세이보는 존 본 조비, 데이비드 리 로스, 빈스 닐 등 미남형 보컬들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고, 맷 팰론을 짜르고 잘생긴 보컬을 찾아나섰다. 이때 스키드로우의 광고를 보고 오디션을 본 사람이 그 유명한 세바스찬 바흐. 바흐는 3옥타브 후반까지 쫙쫙 올라가는 쩌렁쩌렁한 보컬, 193cm에 이르는 키, 찰랑이는 금발머리, 엄청나게 잘 생긴 얼굴 등으로 단숨에 데이브의 마음에 들어 밴드에 영입되었다.
1987년, 밴드는 본 조비와 친분이 있던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사 New Jersey Underground Music과 계약을 맺었다. 실력 외적인 이유로 데이브 세이보와 밴드를 같이 하지 못했던 존 본 조비가 부랄친구였던 동생 데이브를 생각해 본 조비의 무대에 자주 스키드로우를 오프닝 밴드로 내세웠고 이 때문에 스키드로우의 인지도는 계속하여 높아졌다. 1988년, 스키드로우는 공식적으로 레드 제플린 등 초거대 밴드들이 몸담았던 것으로 유명한 애틀랜틱 레코드사와 계약하고, 1989년 1월 1집 Skid Row를 내놓아 데뷔하게 된다.
4.2. 전성기
셀프 타이틀 앨범인 1집 Skid Row는 18 and Life, I Remember You, Youth Gone Wild 등 국내외로 유명한 스키드로우의 대표곡들을 수록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명반으로 사상 최고의 글램 메탈 음반이자 데뷔 음반중 하나로 꼽힌다. 현재까지 1집은 미국에서만 총 500만장 가량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싱글 컷된 노래중에서는 18 and Life가 빌보드 핫 100 4위, I Remember You가 6위에 오르며 크게 히트했고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았다.Nevermind의 발매 직전인 1991년 여름에 발매된 2집 Slave to the Grind은 당당히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10] 특히 이 앨범은 "헤비메탈" 앨범으로 데뷔 1위를 한 최초의 앨범이기도 하다. 스키드로우의 전성기를 알린다. 이 앨범은 1집보다 더 깊이있는 음악성과, 글램 메탈에서 살짝 비껴나간 정통 헤비메탈 추구를 통해 상업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사로잡았고 평론가들에게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대표곡은 아메리칸 하드 록 넘버 Monkey Business[11], 강렬한 헤비 메탈 노래인 Livin' On a Chain Gang, 그리고 Quicksand Jesus 등이 있다. Wasted Time은 스키드로우가 미국 차트에서 마지막으로 올린 히트곡이자 세바스찬 바흐가 건즈 앤 로지스의 스티븐 애들러가 헤로인에 중독된 걸 보고 만든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12][13]
92년도에는 B Side Ourselves라는 커버 앨범[14]을 발매했는데 이 역시 그런지 시대임을 감안하면 어느정도 상업적으로 중박의 성공을 거뒀다.
4.3. 침체기
하지만 1991년, 너바나의 Nevermind가 대흥행을 거두면서 메탈의 시대가 저물고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가 도래하고야만다. 본 조비, 머틀리 크루, 신데렐라 등 1980년대를 휩쓸었던 글램 메탈 밴드들이 대부분 몰락했는데 스키드로우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음반 판매량이 급감하고 밴드는 침체기에 빠졌다. 더군다나 세바스찬 바흐와 다른 멤버들의 사이가 멀어진 것도 침체기의 한 원인이 되었다. 글램 메탈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지자 스키드로우의 인기 역시 바닥을 치게 되었는데 세바스찬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이런 현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밴드 활동에 회의감을 느낀 세바스찬 바흐가 아무 말도 안하고 스키드로우의 투어를 빠지고 대신 당시 막 주목받던 신참 밴드 판테라와 합동 투어를 해버리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1994~5년경 부터는 슬슬 스키드로우 해체 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스키드로우는 이런 해체설에 반박하기라도 하듯이 3집인 Subhuman Race를 내놓았다. 3집은 1,2집에서 보여준 멜로딕한 하드 록에서 벗어난 정통 헤비 메탈을 추구한 음반이었다. 세바스찬 바흐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판테라 스타일의 그루브한 메탈의 영향도 가미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스키드로우의 수많은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상업성을 버리고 음악성을 추구한 덕분에 평론가들에게서는 의외로 긍정적인 평을 얻었다. 물론 기존 팬덤의 이탈은 막지 못해 빌보드 차트에서 35위를 차지하는 등 상업적으로 대참패를 면치 못했다.[15]
4.4. 몰락과 현재
결국 1996년, 세바스찬 바흐는 멤버들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스키드로우에서 해고당하고[16]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밴드 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멤버가 탈퇴했으니 밴드의 세가 더더욱 기우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 이후 2년간 스키드로우는 잠시 해체되었다가, 1998년 복귀한다. 복귀 직후 밴드는 그들의 유일한 컴필레이션 앨범인 40 Seasons: The Best of Skid Row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2곡의 신곡이 포함되어있어 국내외로 주목을 받았지만 어떠한 나라의 차트에도 오르지 못하면서 글램 메탈의 퇴조만을 부각시켰다.1998년 다시 뭉친 이후 보컬은 조니 솔링거로 바뀌었다. 하지만 팬들은 세바스찬 바흐 없는 스키드로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난리를 쳤고 밴드의 인기는 점점 하락해갔다. 2014년 잠깐 TNT 출신의 토니 허넬로 바뀌었다가, 2016년부터는 ZP 시어트가 보컬을 맡고 있다. 1995년 3집의 대실패 이후 스키드로우는 2003년 Thickskin, 2006년 Revolutions per Minute 등 2장의 정규 앨범을 더 발매했으나 대중들은 물론이고 팬들에게까지 외면을 받아, 하드 록의 수요가 어느정도 되는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2021년 6월 26일, 전 보컬이었던 조니 솔링거가 간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55세였으며 지난 5월 sns를 통해 간부전 진단을 알린지 약 한달만이었고 의료보험에 가입돼있지 않아 치료를 받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https://edition.cnn.com/2021/06/27/entertainment/skid-row-singer-johnny-solinger-dies/index.html 스키드 로우 측에서도 공식 계정을 통해 조니 솔링거를 추모했다.
2022년도 3월 22일 밴드와 보컬 ZP 시어트와 갈라섰다는 소식을 발표했고 새로운 보컬로 스웨덴 하드록 밴드 H.E.A.T의 전 보컬 에릭 그론웰[17]을 영입하고 새앨범 부터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에릭은 4월에 열린 콘서트에서부터 등장해 공연을 소화하고 있다. 세바스찬 바흐와는 달리 남성적으로 잘생긴 상이며, 노래도 괜찮게 해서 스키드로우 팬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2021년 4월에 밝힌 바에 따르면 2022년을 목표로 6집을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첫 싱글을 선 보인 후 투어를 돌며 새 보컬을 알리기 시작했고 유튜브 등에서의 반응도 꽤 좋은 편이었다. 2022년 10월 드디어 16년만에 6집 "The Gang's All Here"를 발매했다. 또한 3집 이후 정말 20년만에 세계 각국 앨범차트에 오르며 성공적인 행보를 보내고 있다. 스웨덴, 영국, 미국, 스위스, 스페인, 캐나다, 독일, 핀란드 등지에서 20위 안에 등장했고 밴드들 모두 이런 반응에 굉장히 놀란 상황이다. 특히 밴드 멤버들은 새로 들어온 에릭이 스키드로우 음악을 새로운 레벨로 올려놓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며 23년 열심히 투어를 돌고 있는 중이다.
5. 본 조비와의 관계
본 조비와의 관계로 유명하다. 밴드 리더이자 대부분의 곡을 작사 작곡한 데이브 세이보부터 본 조비의 부랄친구였고 본 조비가 메이저 밴드로 우뚝 선 이후에도 존 본 조비가 어릴때 우정을 생각해 스키드로우가 유명해질 수 있도록 도왔다. 물론 본 조비가 아주 팍팍 밀어준 밴드인 신데렐라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존 본 조비의 인심이 없었다면 과연 스키드로우라는 밴드가 그렇게까지 유명해질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저을 것이다.하지만 정작 세바스찬 바흐와 존 본 조비의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는 존 본 조비가 1987년경 밴드와 계약을 하면서 스키드로우의 수익금중 일부분을 본 조비의 지분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존 본 조비와 친분이 있었던 다른 멤버들은 나름 수긍을 했겠지만 본 조비와 친분이 없던 세바스찬 바흐 입장에서는 밴드 보컬에 얼굴 마담까지 자기가 다하는데 돈은 본 조비가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배알이 꼴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본 조비와의 세바스찬 바흐의 불편한 관계는 결국 세바스찬이 밴드를 탈퇴하게 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세바스찬 바흐와 존 본 조비가 주먹다짐을 벌였던 것은 매우 유명한 일이다. 참고로 결과는 키가 세바스찬보다 15cm정도 작은 존 본 조비가 일방적으로 세바스찬을 줘패면서 본 조비의 승리로 끝났다.[18] 하지만 이 둘은 2006년 런던 한 호텔 바에서 만나게 되고 화해하면서 이전의 일들은 묻어두기로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특별한 마찰은 없는 듯 하다. https://rockcelebrities.net/the-time-jon-bon-jovi-threatened-to-kill-sebastian-bach-out-of-rivalry/
6. 음악적 특징과 평가
글램 메탈이 가장 상업화되고, 양산화되어가고 있을때 인기를 누린 밴드인데다가, 그나마 현재까지 빌보드 차트 상위권은 유지하는 본 조비와는 달리 세바스찬 바흐의 탈퇴 이후 급속도로 밴드가 쇠락하여, 음악성에 대비하여 평론가들에게는 꽤 저평가받는 밴드다. 롤링 스톤, NME 등 웬만한 음악 잡지들의 음악 리스트는 커녕, 어클레임드 뮤직에서조차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하지만 양산형에 그렇게 신경 안쓰는 글램 메탈 진영에서는 찬사를 받는 밴드다. 롤링 스톤 선정 가장 위대한 글램 메탈 앨범 50선에서 데뷔 앨범이 5위로 꼽히는 등 글램 메탈 내에서 스키드로우는 큰 호평을 받고 있다. 그 외에 2집은 RYM에서 3.6점정도로 수작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양산형 밴드라고 보기도 힘든 것이, 데뷔 앨범만해도 당대 주류 글램메탈보다 상대적으로 직선적이고 과격한 성향이 강했으며, 2집에서는 주다스프리스트류의 날카로우면서 정통적인 헤비메탈을 본격적으로 지향하였고, 1995년에 발매된 3집은 아예 상업성을 역행하면서 얼터너티브/그루브 메탈 등 나름의 고민에 따른 변화한 음악성을 추구했기 때문에 평론가들에게서도 고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세바스찬 바흐가 탈퇴한 이후에는 포스트 그런지 등 다양한 장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제법 트랜디한 헤비 메탈 음악을 들려주었다.
7. 디스코그래피
7.1. 1집 Skid Row (1989)
- 문서 참조.
7.2. 2집 Slave to the Grind (1991)
Slave to the Grind | |
|
|
<colbgcolor=#BC4D20><colcolor=#F1EB89> 발매일 | 1991년 6월 11일 |
녹음일 | 1990년 - 1991년 |
장르 | 헤비 메탈, 글램 메탈 |
곡 수 | 12곡 |
재생 시간 | 48:41 |
프로듀서 | 마이클 와그너 |
레이블 | 애틀랜틱 |
|
빌보드 200 역대 1위 앨범 | ||||
<rowcolor=#000> Niggaz4Life N.W.A. |
→ |
Slave to the Grind Skid Row (1주) |
→ |
For Unlawful Carnal Knowledge Van Halen |
전세계적으로 300만장 정도 팔렸으며 발매하자마자 빌보드 1위에 오를만큼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던 히트작이다.
전작에서 보여준 글램 메탈의 멜로딕함이 줄어들고 정통 헤비 메탈쪽에 조금 더 가까워진 앨범이다. 1집이 다소 밋밋하고 음악이 다 똑같다며 욕을 먹었기 때문에 이 앨범에서는 멤버들이 조금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한 흔적이 이곳 저곳에서 보인다. 평론적으로도 전작에 비해 더 높은 평을 받았다.
대중들에게는 아무래도 I Remember You나 Youth Go Wild 같은 히트곡들이 수록된 1집이 더 유명하겠지만, 팬들은 이 앨범을 1집보다 더 높게 쳐준다. RYM에서는 3.68점을 얻어 오히려 1집(3.54점)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안타깝게도 스키드로우의 전성기는 여기까지로, 1991년 너바나가 등장한 이후 록 음악에 대격변이 일어나 대부분의 헤비 메탈 밴드들이 몰락하게 된다.
7.3. 3집 Subhuman Race (1995)
Subhuman Race | |
|
|
<colbgcolor=#2B328A><colcolor=#EB2036> 발매일 | 1995년 3월 28일 |
녹음일 | 1994년 |
장르 | 헤비 메탈 |
곡 수 | 13곡 |
재생 시간 | 56:39 |
프로듀서 | 밥 록 |
레이블 | 애틀랜틱 |
|
1995년 스키드로우가 함께한 밴 헤일런의 Balance[22] 투어 도중 시연되었고, 그해의 3월에 발매되었다.
2집에서 시도한 원초적 헤비 메탈보다 더욱 묵직하고 깊어진 헤비 메탈 사운드가 특징이다. 글램 메탈의 색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스키드로우의 노선 전환은 평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롤링 스톤에서는 사운드가든의 Superunknown 이후 가장 참신한 헤비 메탈 앨범이라며 극찬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스키드로우의 갑작스러운 노선 전환에 당황하며 집단으로 탈덕을 해버렸다. 그 결과 미국 빌보드 200에서 35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멤버들조차 이 앨범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세바스찬 바흐가 말하길 "이 앨범은 앞으로 두번 다시는 들어보고 싶지 않다. 메탈리카에게 세인트 앵거[23]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3집이 있다"라. 세바스찬 바흐는 이 앨범의 상업적 실패에 실망하여 이듬해 밴드를 탈퇴했다.
7.4. 4집 Thickskin (2003)
Thickskin | |
|
|
<colbgcolor=#000><colcolor=#FF201A> 발매일 | 2003년 8월 5일 |
녹음일 | 2002년 - 2003년 |
장르 | 얼터너티브 메탈, 포스트 그런지 |
곡 수 | 12곡 |
재생 시간 | 46:46 |
프로듀서 | 스키드로우, 스티브 헤이글러 |
레이블 | SPV |
|
세바스찬 바흐가 탈퇴한 이후 3년간 밴드를 해체하며 혼란기를 겪다가 1999년 재결성한 이후 처음으로 발매한 음반이다. 세바스찬 바흐가 탈퇴했다고 해서 그것이 밴드의 음악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세바스찬 바흐는 작사/작곡에 거의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글램 메탈이 완전히 숨통이 끊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스키드로우는 펑크 록과 얼터너티브 록의 영향을 받아들여 더더욱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음악을 추구하였다. 올뮤직에서는 이 음반을 "예상 외로 좋은 음반"이라고 칭하며, " 푸 파이터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혁신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라고 평하였다.
1집에서 큰 인기를 얻은 ' i remember you '를 펑크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i remember you two가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팬들은 세바스찬 바흐 없는 스키드로우는 가짜 스키드로우라며 4집을 철저히 무시했고 그 결과 이 음반은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차트인에 실패하는 처참한 기록을 세우고 만다.
7.5. 5집 Revolutions per Minute (2006)
Revolutions per Minute | |
|
|
<colbgcolor=#000><colcolor=#FF201A> 발매일 | 2006년 10월 24일 |
녹음일 | 2005년 - 2006년 |
장르 | 헤비 메탈 |
곡 수 | 12곡 |
재생 시간 | 40:24 |
프로듀서 | 마이클 와그너 |
레이블 | SPV |
|
똥반이다. 거의 대부분의 매체로부터 부정적인 평을 받았으며 흥행은 더욱 실패해서 빌보드 200 등 구미권 모든 국가에서 차트인에 실패한것은 물론 팝 메탈에 우호적인 국가인 일본에서조차 200위권에도 못들었다.
조니 솔링거의 보컬 정도은 세바스찬 바흐의 전성기 시절 목소리와 비슷하다면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을 얻었다.
8. 싱글
8.1. 빌보드 핫 100 3위~10위
- 18 and Life (1988, 4위)
- I Remember You (1988, 6위)
9. 수상 이력
- 1990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 Favorite Heavy Metal/Hard Rock Album 부분 Skid Row 노미네이트[25]
- Favorite Heavy Metal/Hard Rock New Artist 부분 밴드 수상
10. 여담
- 밴드의 이름은 1960년대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던 밴드 스키드 로우로부터 따왔다. 이 밴드는 로리 갤러거와 함께 아일랜드 블루스 기타리스트중 가장 유명한 게리 무어가 소속된 밴드다. 세바스찬에 따르면 스키드로우라는 밴드 명은 자신이 가입하기 이전부터 정해져있었다고 한다. 이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밴드가 게리 무어에게 무러 3만 5천불을 주고 이름을 샀다고.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스키드 로"가 되어야하지만 왜인지 띄어쓰기도 되지 않은 "스키드로우"라는 표기가 한국에서 더 널리 알려져있는 편이다. 따라서 이 문서의 표제도 "스키드로우"가 되었다.
- "스키드 로우"는 미국의 빈민촌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한국으로 치면 "서울역 4번 출구" 정도의 이름을 가진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스키드로우는 전미에 다양한데 그중에서는 LA의 스키드로우가 가장 유명하다.
-
밴드 멤버들, 특히
세바스찬 바흐는
프레디 머큐리처럼 라이브에서 기복이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정도가 매우 심해서 잘할 때는 음원을 초월하는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못할 때는 이게 같은 보컬이 맞나 싶을 정도라 일부 팬들은 스키드로우는 스튜디오 안에서만 전설이고 라이브 공연은 형편없다고 까기도 한다.
- 스키드로우가 3집 폭망하고 헤매던 시절 세바스찬 바흐는 KISS의 오프닝을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스키드로우가 오프닝 밴드로 나서기엔 너무 큰 밴드라는 말을 했고 이에 격분한 세바스찬은 스키드 로우는 절대 키스 오프닝하기에 큰 밴드가 아니라고 스네이크 사보의 자동응답기 메세지에 심한 말을 했다.[26] 그러나 세바스찬이 탈퇴하고 4년 후, 2000년에 스키드 로우는 키스의 farewell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섰다.
-
1995년, 2013년에 내한 공연을 가졌다. 1995년에 내한공연 당시 TV 인터뷰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 당시 한국이 그렇게까지 음반 시장이 크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의외였다. 95년 공연 당시 보컬 세바스찬 바흐의 깜짝 한복 저고리도 인상적이었다.
- 세바스찬 바흐는 사실 이전부터 밴드와 다시 합류하고 공연등을 돌고 싶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혀왔으나 나머지 멤버들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14년도쯤에 재결합이 진지하게 상의되어 멤버들이 모인 적 있으나 후에 레이첼 볼란은 왜 그를 해고했는지 다시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며 신랄하게 바흐를 깠다. 지금도 심심하면 재결합 안 할 거라는 인터뷰가 1년에 한두번씩은 올라온다.
[1]
LA 메탈 밴드로 알려져있지만 리더인 데이브 스네이크 세이보부터
존 본 조비의 학교 친구였던만큼 뉴저지 출신 밴드이다.
[2]
1987년경 셀프 타이틀 데모를 발매한 적은 있지만 공식 데뷔는 아니었다.
[3]
세바스찬 바흐 탈퇴 이후에는 제법 트랜디한 음악을 한 편이다.
[4]
1986년 MTV의 적극적인 글램 메탈 푸쉬 이후 더욱 노골적으로 상업화된 글램 메탈의 조류를 뜻한다.
[5]
사실 글램메탈이라고 보기가 힘든 사운드다. 1~2집은
주다스 프리스트 스타일의 정통메탈이고, 3집은
판테라의 영향을 받은 low한 그루비 스타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6]
미국 원어 발음은 "서베스천 배크"에 가깝다.
[7]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
[8]
세바스찬과도 여전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세바스찬의 솔로 공연 때도 참여해 드럼을 연주해주는 등 아직까지 세바스찬과 유일하게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는 유일한 멤버이다. 참고로 재결합에 대해 묻자 세바스찬이 복귀하지 않는 이상 재결합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9]
이름은 Jon Bon Jovi & The Wild Ones. 나중에
본 조비로 이름을 바꾼다. 만약 데이브와 존 본 조비가 우정 때문에 계속 본 조비와 같이 밴드를 했다면 본 조비의 기타리스트는
리치 샘보라가 아니라 데이브 스네이크 세이보였을 것이다.
[10]
발매 1주만에 1위에 올랐다. 요즘이야 스트리밍이 빌보드 차트에 반영되니 앨범이 발매하자마자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일이 잦지만 이 당시에는 100% 실물 판매량으로만 집계되었기 때문에, 발매하자마자 차트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기록이었다. 그만큼 스키드로우가 주목을 받았다는 증거.
[11]
SNL의 라이브로도 유명한 곡이다.
[12]
전부 세바스찬 바흐가 쓴 것은 아니고 엔딩부분은 레이첼 볼란이 가사를 썼는데 막상 레이첼 볼란은 이 곡을 매우 싫어했다.
[13]
세바스찬 바흐는 이 곡이 애들러를 위해 쓴 곡이 아니며 그저 중독자에 대한 곡이라 자서전에서 밝혔다. 주제에 영감을 얻은 것은 맞는 듯.
[14]
지미 헨드릭스의 Little Wing 커버,
러시의 What You are Doing 커버가 유명한 편이다.
[15]
UK 차트에서 8위를 차지했다는 점이 그나마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16]
세바스찬 바흐는 키스의 큰 팬이였고 스키드로우가 키스의 오프닝 밴드를 설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세바스찬을 제외한 멤버들이 새로 만든 밴드 활동을 하려고 기회를 거절하자 세바스찬이 스네이크의 자동응답기에 심한 말을 했고 나중에 그걸 들은 스네이크는 세바스찬을 전화로 해고했다.
[17]
켈리 클락슨을 배출한
아메리칸 아이돌의 스웨덴 버전인 '스웨디시 아이돌 시즌6' 의 우승자로 국내에서도 꽤 인지도가 있었다. 당시 오디션 영상을 찾아 볼수 있는데 그 때 부른 곡이 '18 and life'인걸 보면
스키드 로우의 오랜 팬인듯하다.
[18]
세바스찬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본 조비의 티셔츠 판매고를 스키드로우가 앞지르자 본 조비들이 불편해 했고 그 투어 멤버들이 세바스찬을 붙잡고 머리에 맥주를 들이부었다고 한다. 이에 열받은 세바스찬이 자신의 크루들을 데리고가서 계란을 투척하는 일이 있었고 이에 완전 화가난 존 본조비는 아버지, 동생과 약 60명의 사람들과 함께 찾아와 펀치를 날렸다고 한다. 그때 존의 아버지는 Fxxking Kill You. 라고 위협을 했다고 한다.
[19]
무검열본 한정. 검열본에는 Begger's Day가 수록되어 있다.
[20]
앨범 커버에는 실수로 러닝 타임이 4분 57초로 기록되어있다(...).
[히든트랙]
[22]
글램 메탈이 완전히 해체된 상태에서 놀랍게도 빌보드 1위를 당당히 겨며쥔 앨범이라 글램 메탈 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투어였다.
[23]
메탈리카 사상 최악의 음반이라고 불린다.
[보너스트랙]
[25]
수상은 건즈의 Appetite 앨범이 했다.
[26]
해고당한 사유